▲ 로열더치쉘이 미국에 설치한 복합충전소(가솔린+수소) 모습.

[월간수소경제 조규정 기자] 수소연료전지차(FCEV) 상용화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4세대 수소전기차를 공개하며 세계 시장을 선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맞춰 현대모비스는 수소전기차 부품 일관 대량생산체제 시스템을 구축해 차량가격 경쟁력 확보는 물론 국내 수소전기차 관련 부품산업에도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완성차 업계의 활발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충전인프라 때문이다. 수소전기차 성능이 향상되고 가솔린 차량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진다 해도 충전소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란 주장이다.

현재 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이 수소충전소 인프라 구축을 위한 특수목적법인(SPC) 설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나 보조금 등의 문제로 제자리걸음이다. 수소전기차 보급 초기에는 30억원에 달하는 수소충전소 건설 비용 대비 운영 효율이 떨어져 충전인프라 구축을 위한 정부 지원은 물론 민간의 투자를 이끌기 위한 SPC 설립이 필수다. 물론 구축비용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충전소를 구축할 부지가 여의치 않다는 것도 보급 확대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020년까지 전국 고속도로에 충전소 200기 설치계획을 내놨고 환경부도 2020년까지 수소충전소를 100곳으로 늘릴 방침이다. 또한 각 지자체들 역시 정부 계획에 맞춰 충전소 구축에 힘을 쏟고 있지만 부지확보 등의 문제로 상황이 녹록치 못하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올해 예정된 충전소 건설을 위한 부지는 확보한 상태지만 앞으로는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도심지에 단독으로 충전소를 건설할 경우 부지 매입비와 관련 인허가로 구축할 마땅한 땅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융·복합특례규정’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지만 융·복합 역시 더 넓은 부지를 확보해야 하는 문제가 또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지자체가 아닌 민간이 갖고 있는 부지나 기존 충전소를 활용할 경우 빠른 구축이 가능하지만 국내에서는 민간에 정부 보조금 지원 규정이 없는 것도 한계다. 해외의 경우 민간 참여가 활발하다. 특히 글로벌 정유사들이 SPC에 가입해 설치 가능한 부지를 제공하는 등 인프라 구축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정유사, 수소사회 맞이 준비 한창
해외 글로벌 정유사는 연료전환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독일은 2015년 2월 다임러와 쉘, 에어리퀴드, 린데, OMV, 토탈 등의 기업들과 합작 투자를 통해 H2 Mobility를 설립해 충전소 설치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들은 독일 정부로부터 50% 자금을 지원 받으며 2023년까지 충전소 432기 구축을 목표했다. 큰 도시를 시작으로 점차 독일 전역에 충전소를 확대 설치할 방침이다. SPC에 참여하고 있는 정유사는 설치 가능한 부지리스트를 H2 Mobility에 제공하고 향후 충전소 자립 운영이 되는 시점에 운영권을 받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쉘과 토탈, 그리고 지역의 정유사가 제공한 부지에 수소충전소를 설치한다. 부지사용료와 지불 조건, 운전지원 등은 H2 Mobility와 부지 소유자가 별도 합의토록 하고 있다. 대신 부지를 제공한 정유사는 10년 간 충전소를 운영하지 않고 향후 특정 시점에 운영권을 갖는다. 또한 최초 구축 시 기존 주유소에 수소 충전설비를 함께 설치함으로써 비용 절감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쉘과 토탈은 지난 다보스 포럼에서 출범한 수소위원회 회원사로서 수소 연료 상용화를 위해 가장 적극적인 활동하고 있는 정유사다.

노르웨이 국영 석유업체 스타토일(Statoil ASA)도 미래 에너지산업 준비가 한창이다. 스타토일은 지난 2013년 천연가스를 개질해 만든 수소 운송을 위해 580㎞ 규모의 파이프라인을 설치함으로써 수소충전사업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산업용가스, 도시가스, OEM, 정유사 등이 참여한 SPC 설립을 목전에 두고 있다. 특히 이번 컨소시엄에 참여한 일본 석유에너지사 JX닛코는 수소연료 공급망 체제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JX닛코는 2020년까지 10개 지역에 수소생산 거점을 구성하고 점차적으로 충전소를 도입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수소생산 기술 개발에도 직접 나서고 있다.

내부 논의 단계지만 SPC 참여는 부담돼

▲ GS칼텍스가 2007년 신촌에서 개최한 '연료전지차 충전용 수소스테이션 준공식' 행사에서 수소주입 시연회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국내 4대 정유사(GS칼텍스, SK에너지, S-OIL, 현대오일뱅크)는 해외 정유사와 온도차를 보인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소경제를 선언할 당시만 해도 정유4사 가운데 GS칼텍스와 SK에너지가 수소충전소 사업에 뛰어 들며 관심을 보였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모두 손을 뗀 상황이다.

GS칼텍스는 2004년부터 수소스테이션 건설사업에 참여해 2007년에는 서울 연세대학교 캠퍼스 내 국내 최초 민간 충전소를 준공했으나 현재는 철거된 상태다. GS칼텍스가 2008년에 발간한 지속가능성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부터 정부 출연금 40억원을 포함해 총 과제비 85억원을 들여 산업자원부와 에너지관리공단, 수소연료전지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개발 실증 프로젝트 일환으로 수소충전소를 건설했다. 당시 설치한 충전소는 나프타와 물을 고온에서 촉매 반응시켜 수소를 직접 생산한 후 압력을 가해 수소를 저장하고 공급하는 구조로 이뤄졌다. 2009년 1월에는 체계적인 충전소 안전 관리와 수소생산을 위해 국제규격인 ISO 9001·OHSAS 18001 인증까지 획득한 바 있다.

▲ SK에너지가 2011년 상암동 월드컵공원에 구축한 수소충전소 전경.
SK에너지 역시 2011년 국내 최초로 매립가스를 이용한 수소충전소를 건설했다. 상암동 월드컵 공원 내에 설치된 충전소는 쓰레기 매립지에서 나오는 CO₂와 메탄(CH₄)을 분리해 순수 메탄을 개질기에 통과시켜 수소를 생산하는 시스템으로 현재 서울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정유사의 이 같은 참여는 이후 끊겼다. 국내 정유 4사에 직접 문의해 본 결과 아직 수소충전소 인프라 구축과 관련해 사업 추진에 대한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수소충전 사업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일부 정유사의 경우 향후 충전 인프라 사업 필요성을 인식하고 내부 논의를 진행한 바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정유사의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수소충전소와 관련된 사업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앞으로는 수소전기차, 전기차 중심의 친환경차 보급이 확대될 것이기에 관련 사업에 대한 검토와 추진 방안 등을 경영진에 보고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이어 그는 “정부에서 전국 주유소에 복합충전소 형태의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할 경우 설치비용의 50%를 지원해 주는 제도는 있지만 수소충전소는 지원 내용이 아직 없는 것으로 안다”라며 “1기당 구축비용도 비싸고 수소전기차 상용화도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서 융합얼라이언스가 추진하는 SPC에 참여하는 것은 부담된다”고 말했다.

실무선에서 사업 필요성을 작성해 보고해도 경영진의 무관심으로 묻히는 경우도 있다. 해당 업체의 관계자는 “연료전환은 시기의 문제이지 반드시 올 것으로 본다”라며 “실무자로서 수소인프라시장의 중요성을 검토해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하는 필요성을 작성해 보고하지만 아직 경영진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어 답답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경영자 입장에서는 임기 내 성과를 보지 못하는 사업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라며 씁쓸해 했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