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인환 녹색에너지센터 소장/한국수소및신에너지학회 회장
[월간수소경제] 수소경제의 개념은 석유시대의 종말을 예견한 제러미 리프킨의 저서 ‘수소혁명(The Hydrogen Economy)’을 통해 세간에 유명해졌지만, 사실 미래 에너지로서의 수소 가능성에 주목한 역사는 이전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해저2만리’, ‘잃어버린 세계’ 등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공상과학소설가인 쥘 베른은 이미 1874년에 ‘물이야 말로 미래의 석탄’임을 예언한 바 있다. 그 이후 존 홀데인 등 과학자들을 통해 수소를 미래 에너지 시스템의 주축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지속적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역사로 인해 오히려 ‘수소 에너지는 도대체 언제까지 미래 에너지인 것인가’라는 냉소적인 반응도 함께 있어 왔다.

원래 패러다임 변화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넘어가기 전까지는 표면화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단 티핑 포인트를 넘어서는 순간, 그 변화는 걷잡을 수 없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기 마련이다. 수소 경제도 그 대표적인 일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냉소와 힐난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진행된 R&D 성과들은 계속 누적돼 왔으며 그 결과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들은 2020년경부터 수소전기차 등의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일본 후지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수소 관련 시장이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해 2030년쯤에는 한화 6조원 규모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더욱이 신기후체제 출범과 함께 저탄소 경제 구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수소경제가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어 사회적 실현시기가 더 앞당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수소경제 도래를 준비하는 경쟁국들의 움직임
해외에서는 이미 국가차원에서 수소경제 도래를 준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재 수소경제 구축수준에 있어 기술적·정책적 양 측면에서 가장 앞서 있는 국가가 일본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선도하는 독일 역시 일찍부터 수소에너지에 주목해 개발을 진행해왔으며, 미국 역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로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긴 하나 축적된 기술역량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최근 영국에서도 선두그룹을 추격하기 위한 발판을 구축하고자 하는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 일본이 올해 가정용연료전지(에너팜) 20만대를 돌파하며 수소사회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사진은 에너팜 제조시설.
먼저 선도국가인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자. 일본은 이미 1981년부터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이하 NEDO)를 주축으로 해 수소·연료전지 관련 연구개발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왔다. 현재는 일본과학기술진흥기구(이하 JST)를 통해 수소·연료전지 관련 기초·원천연구가 수행되고 있으며, NEDO에서는 산업화 단계의 연구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등 역할이 분담돼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글로벌 산업 경쟁력 강화, 고용창출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내각부 주관 하에 부처 횡단형 연구개발 과제를 선정하고 기초에서 실용화·상용화까지 이음새 없이 추진하는 ‘전략적 혁신창조프로그램(Cross-ministrial Strategic Innovation Promotion Program: SIP)’이 출범하게 됨에 따라 JST의 첨단저탄소화기술개발(Advanced Low Carbon Technology Research and Development Program: ALCA)에서 추진되던 에너지 캐리어 분야 프로젝트가 동 프로그램으로 이관돼 강력히 추진 중이다.

이러한 연구개발 지원을 통해 창출된 성과는 빠르게 사회로 보급·확산되고 있다. 가정부문에서의 분산전원 활성화 및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위해 가정용 연료전지 ‘에너팜’ 보급을 추진한 결과, 올해 5월 기준으로 누적보급대수가 20만대를 돌파했다. 수송용 부문에서는 도요타가 2013년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인 ‘미라이’를 출시한 이래 지난해 12월까지 전 세계에서 2,843대의 수소연료전지 자동차를 판매했다. 일본 자원·에너지청에서는 2020년까지 4만대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80만대의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보급 목표를 발표하고 보급·확산을 가속화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이 수소사회를 선도하는 원동력으로서 높은 기술력뿐만 아니라 수소사회를 국가차원의 정책 아젠다로 설정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강력한 정부차원의 의지 또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제4차 에너지기본계획(2014)’부터 ‘수소사회’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후 광범위한 국가전략 안에서 공식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일본의 제4차 산업혁명 대응전략인 ‘미래투자전략 2017 Society 5.0 실현을 향한 개혁’에서도 에너지·환경제약의 극복과 투자의 확대 부문에서 수소에너지를 본격 활용하는 ‘수소사회’ 실현을 위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즉, 일본정부는 제4차 산업혁명 전략 내에서도 여전히 수소경제를 중요한 사항으로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올해 내로 수소사회 실현을 향한 정부주도의 기본전략을 수립할 예정임을 표명하고 있다. 이는 정치적 권력의 정점인 내각부가 경제 구조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진두지휘를 할 예정임을 시사한다.

독일이 신재생에너지 정책 분야에서는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국가인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독일은 지난 2010년 에너지 구상(Energiekonzept 2050)에서 이동수단의 1차 연료 및 에너지 사용 비중 감축 목표를 2020년까지 –10%, 2050년까지 –40%(2005년 대비)로 설정했다. 이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독일 정부의 모빌리티 및 연료전략’을 통해 제시한 바 있다.

코트라 함부르크 무역관에 따르면 이 전략에는 드라이브 트레인의 전동화(FCEV 등)가 목표달성의 관건이며, 이를 위해 대량 수소 연료 저장은 불가피한 요소라고 명시돼 있다. 이는 독일 정부가 수소 및 연료전지 기술이 탄소배출 감축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독일은 북부 지역에 풍부한 신재생에너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나 정작 전력 수요는 남부에 집중돼 있어 지역 간 수급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고심해 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수소의 축전 능력에 주목해 신재생에너지의 잉여전력으로 물을 전기분해한 후 수소 가스를 제조·이용하는 ‘Power-to-Gas(P2G)’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 P2G 개념도.

본래 P2G는 기술성숙도가 낮은 것으로 평가되던 기술이다. 그러나 독일은 P2G 기술을 에너지 전환을 위한 핵심과제로 설정해 상용화·비용 절감을 위한 실증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형태로 기술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실증 및 상용화 단계에만 주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 4월 기초원천연구개발을 담당하는 연방교육연구부(BMBF)는 ‘에너지 전환을 위한 코페르니쿠스 프로젝트(Kopernikus Projekte fűr die Energiewende)’를 발족했다. 이는 최초 3년간 총 1억2,000만 유로를 투자한 후 2025년까지 2억8,000만 유로 추가 투입을 예정한 대형 R&D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4대 영역 중 하나로서 잉여 신재생에너지 전력의 9할 이상을 화학연료, 가스연료 혹은 액체 연료의 형태로 저장하는 연구를 추진하는 ‘Power to X(P2X)’ 프로젝트가 설정돼 있는 상태다. 지속적인 기술혁신을 이끌어나갈 기초·원천 R&D에 대한 체제 정비를 완비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 2014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가능한 모든 에너지원을 활용하는 포괄적 에너지 전략(All of the above Energy Strategy)을 공표한 이후 연료전지는 이러한 포괄적 에너지 전략의 일부로서 세계의 청정에너지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 및 새로운 산업 및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반기후변화 대응 정책 기조 등으로 보이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과학적 증거 무시 경향, R&D 투자 감축 등의 요인으로 인해 기술 혁신역량 저하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으나, 지금까지 축적된 기술역량은 단연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의 파리 협정 탈퇴와 유사하게 교토의정서 탈퇴를 선언했던 부시 대통령 역시, 국가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하이브리드 자동차 및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개발을 목적으로 한 ‘첨단에너지구상(The Advanced Energy Initiative: AEI)’을 출범한 바 있다.

이후 미국은 계속해 에너지부 첨단연구계획국(Advanced Research Program Agency-Energy: ARPA-E)의 REBELS(2014) 등을 통해 혁신기술 개발을 지원해 왔다. 특히 지난해부터 고체 이온 전도체를 활용한 연료전지 등을 개발하는 IONICS(2016)와 함께, 재생에너지원을 활용해 물과 공기로부터 탄소중립연료 생성 및 이를 활용한 수소생산 등의 연구를 추진하는 REFUEL(2016) 등 R&D 프로그램들을 새로이 발족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도 예산안 내 ARPA -E를 2019년도에 폐지할 예정이라고 공표했으나 이미 출범한 프로그램에 대한 운영 지원은 2019년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수소에너지 및 연료전지 분야에 대한 혁신기술 개발 연구도 꾸준히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신재생에너지 분야 응용연구단계에 대한 지원을 담당하는 에너지부 신재생에너지 및 에너지 효율국(the Office of Energy Efficiency & Renewable Energy: EERE)에서도 본격적인 탈탄소화(deep decarbonization)를 추진하기 위해 수소·연료전지 연구개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으며, 2020년까지 연료전지 비용 40$/kW, 지속시간 5,000시간(수송), 1,000$/kW, 지속시간 8만시간(가정) 달성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상태다. 또한 미국 에너지부는 캘리포니아 주 정부, Air Liquide 등 33개 조직이 참여한 민관 협의체인 ‘H2 USA’를 결성해 수소 인프라 구축 및 수소전기차 보급·확산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영국은 스스로의 역량을 ‘신속한 추격자(fast-follower)’로 정의하고 이에 따른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산학연관 관계자들로 구성된 에너지연구파트너쉽(The Energy Research Partnership)에서는 영국 에너지 시스템에서의 수소 에너지의 잠재적 역할을 평가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 내용은 수소의 물성부터 시작해 영국 에너지 시스템에서 차지하는 수소의 역할, 수소 에너지의 제조 및 저장, 수소의 수요 및 효율성, 탄소 배출에 대한 다면적인 고찰을 기반으로 수소에너지를 에너지 시스템으로 도입하기 위한 조치를 검토해 정책을 제언했다.

▲ 수전해전문기업 Proton의 재생에너지 기반 수소생산시설.

같은 해 11월에는 영국 혁신청(Innovate UK)을 주축으로 수소·연료전지 개발을 위한 로드맵인 ‘Hydrogen and Fuel Cells: Opportunities for Growth’를 발표했다. 동 로드맵에서는 수소를 미래 저탄소 에너지 시스템의 매우 주요한 구성요소로서 평가하고 에너지 시스템 전반에 걸친 수소 활용, 수송 분야에서의 수소, 연료전지 열병합 발전 등 3개 분야에 대한 RD&D(Research, Development & Demonstration), 규제, 보급 지원 조치를 제시하고 있다. 올해 4월에는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Department for Business, Energy & Industrial Strategy: BEIS)에서 영국의 가정 및 기업 난방을 위한 수소 가스에 대한 잠재적 활용방안을 모색하는 프로그램 운영 계획을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총 2,500만 파운드가 투자되며 수소 품질 표준을 확정하고 가정 및 상업용 수소 활용을 위한 연구개발 및 시험 등이 추진될 예정이다.

우리나라 수소경제 진행 상황과 문제점
주요국들이 수소에너지 개발 및 보급에 주력하고 있는 동안 우리나라 역시 노력을 게을리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후반 수소에너지 관련 소규모 기초연구가 시작된 이래 21세기 프론티어 사업을 시작으로 대형 R&D 사업 내에서도 동 분야의 연구가 꾸준히 추진돼 왔다. 물론 21세기 프론티어 사업은 2013년 종료됐으나 이후 차세대 수소에너지 원천기술개발, 신재생 하이브리드 이용 미래 에너지 저장기술개발사업 등 후속 R&D 사업이 진행됐다.

정부에서만 노력을 기울인 것은 아니다. 민간에서도 2013년도에 현대자동차에서 세계 최초 수소전기차 양산모델인 투싼ix를 출시하는 등 탁월한 기술적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 독일조차 수소전기차 관련 기술의 선도국가로서 일본과 한국을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다. 발전용연료전지 부문의 경우, 두산퓨얼셀에서 최근 2년간 연료전지 수주액이 1조원 대에 도달했으며 영국, 독일 등 유럽 5개 국가 신규 진출을 목전에 두는 등 선전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포스코에너지, 삼천리에서 출자해 준공한 화성의 경기그린에너지는 세계 최대인 약 60MW의 연료전지 발전설비를 운용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연간 약 14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각 이해관계자간 합종연횡 역시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수송 부문에서는 현대자동차와 프랑스의 에어리퀴드간 수소전기차 개발·보급을 위한 협력이 체결됐으며 발전용연료전지 분야 역시 연료전지발전 시장 확대를 위한 에스퓨얼셀-후지전지간 MOU 체결이 완료됐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6월에는 ‘수소융합얼라이언스’가 출범한 후 뒤이어 이를 지원하기 위한 상설 추진단이 설립되는 등 수소전기차 보급·확산을 위한 민관 협력 역시 강화 일로에 있다. 초기 수소 시장 선점을 위해 각계에서의 연계·협력이 도모되고 있는 단계인 것이다.

수소경제 실현을 위한 정책적인 노력 역시 함께 진행됐다. 2015년 12월 범부처 계획으로서 ‘수소전기차 보급 및 시장 활성화 계획’이 발표됐고 지자체 단위에서도 수소 경제에 대한 정책 수립이 자체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현재 광주, 울산 및 충남도 등 광역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지역산업 견인차원에서의 수소산업 육성 계획이 수립·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 주위에서는 수소에너지를 접하기는 어렵다. 본격적인 수소경제에 진입하기 전인 지금이야말로 그 원인에 대해서 한번 짚어봐야 할 시기다.

먼저 법·제도의 미비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수소·연료전지에 대한 지원정책은 수소전기차 구매자·연료전지 설치 시 보조금을 제공하는 제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경제적인 인센티브를 제시함으로서 보급을 확산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는 구매·설치를 위한 초기 비용에 대한 보조 및 지원에 국한돼 있다. 소비자의 비용 부담은 구매·설치비용뿐만 아니라 막대한 운영비용 역시 포함된다. 수소전기차의 필터 등 일부 부품은 소모품이며 주택용 연료전지 발전 원가의 70%는 연료비가 차지한다. 보조금을 통해 초기 설치·구매 비용 부담이 다소 경감되더라도 이후에 드는 막대한 운영비용은 오로지 소비자의 몫이다. 소모품 구매에 따른 환급 혜택, 연료전지 설치 가정에 대한 전용요금제 등의 지원 역시 필요한 상황이지만 이는 현재 제도적으로 공백상태다.

두 번째 원인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일반 대중의 기술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인프라 및 지원 시스템의 부재이다. 이는 경제성 못지않게 편의성 역시 일반 소비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가치판단 기준임을 간과한 점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첨단 기술이더라도 이를 누릴 수 있는 기반시설 및 지원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그 기술의 편익을 누리기에 한계가 있다. 보조금을 받아 수소전기차를 구매해도 충전소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이동에 제한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되면 연료가 있는 한 어디든지 원하는 대로 갈 수 있는 자동차의 자율성과 편의성이 사실상 퇴색되게 된다. 아무리 경제적 인센티브로 경제성을 확보하더라도 이러한 편의성이 제약되면 소비자는 구매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

주택용 연료전지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다. 소비자가 어떤 기기를 구매하더라도 사용 중 고장을 겪게 된다. 일반적인 기기라면 일반 소비자 차원에서도 대응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첨단 기기의 고장일 경우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를 지원하는 A/S 체계가 부실하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아무리 첨단기술이더라도 이를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구입 후 소비자의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지원체계는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실정이다.

마지막으로 수소경제를 견인할 컨트롤 타워의 부재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수소경제 실현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적·기술적 노력을 추진하고 있으나 수소경제는 국가 전체의 패러다임 전환 차원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진 자체는 개별적·산발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체계성이 미흡하다. ‘수소융합얼라이언스’ 등 민관 수행주체 간 연계·협력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시도가 이뤄진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나, 참여 부처에서 기초·원천연구를 주관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포함돼 있지 않아 기술개발과 관련한 원활한 연계·협력에 한계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또한 정부부처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와의 연계·협력 역시 미흡한 수준으로 보인다. 2015년 12월에 비로소 국가차원의 수소경제 관련 범부처 계획이 수립됐으나 수소 경제의 일부분인 수소전기차 및 충전 인프라 관련 내용에 한정돼 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지역 산업 육성을 위해 수소에너지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모두 수소경제의 일부분씩만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경쟁국 모두 산학연관이 일치단결해 수소경제 실현을 위해 역량을 결집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도 산학연관이 한 목소리를 내어 앞으로 다가올 수소경제 시대에 대비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수소사회 실현 가속화를 위한 정책 제언
주지하다시피 수소경제로의 전환은 국가 차원에서 추진돼야 할 패러다임 전환이다. 그러나 현재 시행되고 있는 우리나라 수소경제 관련 정책들은 단편적인 접근에 불과하며 이러한 접근방식으로는 원활한 전환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수소경제를 사회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법·제도의 정비가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소경제의 큰 그림에 대한 이해 없이는 체계적인 정비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결국에는 정책적 공백 영역, 법령 간 충돌 등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수소경제 실현을 위한 국가 차원의 큰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컨트롤 타워를 중심으로 수소경제를 위한 장기 비전 및 로드맵 수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영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수소경제가 우리나라의 에너지 시스템에서 어떤 위치와 위상을 차지하게 될지, 저탄소경제 전환에 어느 정도 이바지할지, 신기후체제 실현에 어느 수준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한 고찰을 기반으로 수소에너지의 공급 및 활용에 이르는 supply chain 전반을 조망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작업은 단일 부처 차원에서 진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따라서 범부처 차원의 강력한 추진체계를 마련해 일관성있게 추진해야 한다. 이 작업이 마무리 된 이후에 법령 및 정책의 재정비를 추진해야 한다. 수립된 국가차원의 비전하에 수소경제 전반에 관련된 제반 법령 및 정책 등을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법령 및 정책 간 충돌 여부와 공백 영역 유무 등을 종합적·구체적으로 점검하는 한편 ‘손톱 밑 가시’ 역할을 하는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하는 작업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 그 이후 보조금 제도 이외의 전용요금제 등 추가적인 경제적 인센티브 부여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또한 국민들이 원활히 기술을 수용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인프라 및 지원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성이 있다. 이는 지역산업과도 연관이 있는 만큼 관련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지역경제에도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다만, 인프라의 경우는 규제 등의 문제가 연관돼 있으므로 공공 부문에서 주관하되, 지원체계의 경우에는 제품의 사후관리에 해당하는 만큼 공공보다는 민간기업에서 주도하는 방향이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향후 세부 부문별 민관간 역할분담 및 연계협력을 위한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상기 문제점에 대한 대응 방향 이외에도 현재의 R&D 성과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지속적인 RD&D 투자의 중요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 등의 선진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기초·원천 및 산업화 R&D를 정비해 지속적인 기술혁신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실증 단계에 도달한 기술의 조기 상용화를 위한 지원에 주력하는 한편, 차세대 알칼리 연료전지 등 차세대 기술에 대한 기초·원천 R&D에 대한 투자 확대 역시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국내 법·제도 미비 등 문제점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국회 및 한국수소산업협회를 중심으로 수소사회 진입을 위한 수소산업 육성 및 기술개발 등을 골자로 하는 법률을 마련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 법은 이전의 접근방식과는 달리 수소전문기업 육성, 수소연료공급시설 등 의무 설치 및 이용 촉진계획, 기반 조성, 수소산업특화단지 조성 및 연료전지용 천연가스 요금체계 등의 내용을 포괄해 수소사회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나, 아직 발의 이전 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가야할 여정이 길어 보인다. 앞으로 각 이해관계자 간 긴밀한 협의 하에 수소경제로의 이행에 대한 국가차원의 컨센서스 도출 작업이 진행돼야 할 것이다.

수소사회의 실현을 위한 시금석을 놓는 중대한 작업인 만큼 강력한 컨트롤 타워의 지휘 하에 장기 비전 및 로드맵 하에 산학연관 간 연계·협력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향후에 있을 국가 차원의 강력한 결단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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