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초로 열공급형 SOFC 솔루션이 적용된 ‘동해 북평레포츠 연료전지단지’ 현장.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서울역을 출발해 영동선을 타고 동해로 향한다. 기차가 안인역을 지나자 차창 왼편으로 봄 햇살을 받은 바다가 펼쳐진다. 기차는 정동진, 묵호를 지나 남으로 달린다. 종착지인 동해역에 내려 마중을 나온 차에 오른다. 

이날의 첫 목적지는 북평국가산단에 있는 한국동서발전 동해발전본부다. 입구 왼쪽에 블룸SK퓨얼셀의 SOFC(고체산화물 연료전지)가 눈에 든다. 15MW급의 ‘동해 연료전지발전소’로 동서발전에서 약 900억 원을 들여 구축했다. 연간 12만5,000MWh의 전력을 생산하는데, 이는 동해시의 약 5만2,000가구가 쓸 수 있는 양이다. 
 

SPOT  01
한국동서발전 동해발전본부

동해발전본부의 야외 주차장 지붕은 태양광 패널이 대신하고 있다. 그 앞에 ESS(에너지저장장치) 컨테이너 2개가 한 줄로 놓여 있다. 본부 안에 설치된 태양광발전 용량만 2MW에 이른다. 주차장을 덮은 태양광 지붕 위로 200MW급 석탄화력발전소 두 기가 흰 연기를 내뿜고 있다. 그 왼편에 목질계 바이오매스를 활용한 30MW급 순환유동층 발전소가 우뚝 서 있다.

동해발전본부의 김주헌 사업개발팀장이 태양광 ESS 장치를 가리키며 말한다. 

“ESS 용량이 총 6MWh인데, 풀 충전을 하면 화재의 우려가 있어 보통 5.4MWh 정도 써요. 태양광이라는 게 계절이나 날씨에 따른 변동성이 크죠. 본부 내에 설치된 태양광 설비가 총 2MW니까 하루 3.6시간으로 잡으면 7MWh 정도 전기가 나와요. ESS에 충방전을 하면서 남는 전기는 계통에 연계를 하거나 버리게 되죠.”

재생에너지는 한전에 계통연계가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이 계통의 관성이다. 관성(慣性, Inertia)은 발전기가 불시에 정지하거나 전력 주파수가 정상치를 벗어날 때 빠른 회복을 돕는 성질을 말한다. 석탄이나 가스를 쓰는 화력발전, 원전 등은 회전체 동기발전기가 이를 받쳐주지만, 재생에너지 같은 비동기발전기는 관성이 낮아 계통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 동해발전본부 주차장의 태양광 모듈 옆에 ESS가 설치돼 있다.
▲ 하나당 3MWh의 배터리 용량을 갖춘 ESS의 내부.

“정상 계통의 주파수를 60Hz로 봅니다. 이보다 주파수가 낮거나 높아져서 정상치를 크게 벗어나면 전체 전력망이 붕괴될 수 있어요. 이런 사태를 막으려고 지역 변전소에서 전력공급을 차단하게 되죠. 이를 컷테일(curtail)이라고 해요. 풍력이나 태양광이 많이 깔린 제주에서 출력제한이 문제가 되고 있죠. 이런 잉여전력을 활용해서 수소로 만들어 쓰자는 것이 P2G(Power to Gas) 사업의 핵심입니다.”

SPOT  02
동해 P2G 그린수소 실증단지

동해발전본부는 인근에 ‘P2G 그린수소 실증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국내 최초 MW급 P2G 실증사업으로 지난 2019년 5월에 시작됐다. 마라톤 코스로 치면 이제 막 반환점을 돌았다. 지난 4월에 1단계 연구개발 과제가 끝이 났고, 5월부터 2단계 실증사업이 시작됐다. 당초보다 일정이 조금 늘어 2024년 4월까지 실증이 진행된다. 

“이곳 동해발전본부를 비롯해서 GS동해전력(5MW), 해파랑길 햇빛발전소(2.4MW) 등을 합치면 12MW가 넘는 태양광 발전설비를 갖추게 돼요. 2024년에는 동해시 곳곳에서 나는 태양광 전력으로 하루 800kg의 그린수소를 생산할 계획이죠. 연간 300톤에 이르는 양입니다.” 

현장은 동해발전본부에서 서쪽으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총 부지 면적은 6만4,865㎡로 약 2만 평 규모다. 현장에 도착하자 연두색 울타리 너머로 3MW급 태양광 설비가 눈앞에 펼쳐진다. 표지판을 보니 지난해 12월에 준공했다.

“이곳 공터에 수소생산 시설, 메탄화 시설, R&D 실증센터 같은 건물들이 들어서게 돼요. 태양광이 깔린 곳은 공장 부지로 보시면 됩니다. 태양광발전을 하다 R&D 실증센터에 입주하는 기업들이 들어오면 공장을 짓고 지붕 위로 패널을 올릴 계획이죠.”

▲ 동해발전본부 직원들이 ‘P2G 그린수소 실증단지’의 태양광 설비를 둘러보고 있다.
▲ 태양광발전의 월별 발전량 그래프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잘 보여준다.

수소생산 시설에는 국내 업체에서 개발한 2MW급 수전해 장비가 들어온다. 수소에너젠이 개발한 제로갭(zero-gap) 구조의 알칼라인 수전해, 엘켐텍이 개발한 PEM 수전해를 각각 1MW씩 넣어 하이브리드 형태로 운전한다. 

시간당 600N㎥, 즉 수소 54kg 정도를 생산할 예정으로, 하루에 15시간 정도 수전해 설비를 돌리면 800kg 정도의 그린수소를 얻을 수 있다. 국비 285억 원을 포함해 총 485억 원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로, 전력연구원이 과제를 총괄한다. 

이 사업에는 수소 메탄화 공정을 위한 모듈화 기술개발도 들어 있다.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그린수소와 합성해서 메탄(CH4, 천연가스)을 생산하는 실증 플랜트를 짓게 된다. CCU(탄소포집·활용)를 적용한 이퓨얼(e-Fuel) 실증 과제로 볼 수 있다. 

“30MW급 목질계 바이오발전소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배관으로 받아 메탄을 제조하는 데 활용하게 돼요. 이렇게 생산한 메탄을 도시가스 관로에 넣는 것까지 실증에 포함돼 있죠. 메탄보다 암모니아가 낫지 않느냐는 말을 많이들 해요. 실제로 수소의 저장이나 운송 효율 면에서는 액화수소보다 암모니아가 유리하죠. 하지만 암모니아는 독성이 강해 취급에 주의를 요하고 연소 시 NOx(질소산화물) 발생 우려가 있어요.”

▲ 동해발전본부 김주헌 사업개발팀장.

김주헌 팀장은 “LNG선, 항만의 벙커링, 배관 등 관련 시설이 메탄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퓨얼의 경제성을 섣불리 판단할 단계는 아니다. 그린수소를 활용한 다양한 기술을 실증해서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근거로 경제성이나 효율을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SPOT  03
동해 북평레포츠 연료전지단지 

이번에 향한 곳은 동해발전본부 북쪽에 있는 해파랑길 햇빛발전소다. 공간 활용을 잘했다. 동해시의 하수·폐수종말처리장 유휴부지 3만3,000㎡와 시설물 상부에 태양광 모듈을 깔고 충방전이 가능한 ESS를 설치했다. 바로 이곳 현장 끝에 ‘동해 북평레포츠 연료전지단지’가 있다. 

블룸SK퓨얼셀의 SOFC가 눈에 든다. 총 용량 4.2MW로 최근 준공을 마치고 가동에 들어갔다. 그런데 주기기의 배치가 흥미롭다. 둘로 나눠 2.4MW는 일반형으로 배치했고, 1.8MW는 열공급형으로 오른쪽에 따로 배치했다. 2단으로 짠 H빔에 연료전지를 케이크처럼 포개어 3단으로 구성했다. 

가까이에서 보면 블룸에너지의 SOFC 주기기 상단이 막혀 있는 걸 알 수 있다. 주기기에서 나오는 300℃ 정도의 가스배열을 회수해서 열교환기로 물을 데운 뒤 난방수로 공급하기 위한 조치다. SK에코플랜트는 이를 위해 3층 상단에 핀튜브 타입 열교환기(3세트)를 설치했고, 1층 하단에는 판형 열교환기(2세트)를 설치했다. 

▲ 열공급형(1.8MW) SOFC의 3층 상단으로 핀튜브 타입의 열교환기가 설치돼 있다.
▲ 동해발전본부 미래사업부 팽선근 대리가 판형 열교환기 쪽을 살펴보고 있다.

“열공급형 SOFC 솔루션이 적용된 세계 최초의 현장이라 할 수 있죠. 열을 회수해서 활용하면 전기효율이 뛰어난 SOFC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어요. 80℃에 맞춘 온수를 북평레포츠에 공급해서 수영장에 활용하거나 건물 난방에 쓰게 되죠. 시간당 24톤의 온수 공급이 가능해요. 시설 운영비를 따져봤더니 연간 2억 원 정도 절감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왔죠.”

인조잔디가 깔린 ‘동트는 야구장’ 맞은편에서 북평레포츠센터 공사가 한창이다. 지금은 발전만 하고 뜨거운 가스배열은 일단 하늘로 날려 보내고 있다. 연료전지의 장점이 전기와 열을 모두 활용하는 데 있는 만큼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SPOT  04
삼척 소규모 수소생산기지

동해시를 찾은 김에 삼척시의 수소사업 현장을 돌아보기로 한다. 동해와 삼척은 ‘강원 액화수소산업 규제자유특구’로 함께 묶여 있는 데다 국토부의 ‘동해안 수소경제벨트’에도 속한다. 촛대바위가 있는 추암해변에서 쏠비치로 넘어가면 바로 삼척이다. 사실상 같은 생활권이다.

차로 10분을 달려 향한 곳은 삼척복합체육공원이다. 공원으로 진입해 안쪽으로 쭉 들어가면 시민체육관이 나온다. 그 뒤편에서 공사가 한창이다. 산책로가 있던 능선을 깎고 옹벽을 쌓아 소규모 수소생산기지와 수소충전소를 짓고 있다. 

강원테크노파크 조형환 에너지팀장의 안내를 받아 현장을 돌아본다.

▲ 현대로템의 수소추출기 두 기가 설치돼 있다.
▲ 동해발전본부 직원들이 버터탱크를 돌아보고 있다.

수소사업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주민 수용성만큼 힘든 것도 없다. 예측이 불가능하고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주민 민원에 막혀 부지가 변경되면서 사업이 지체됐다. 또 산을 깎고 옹벽을 세우는 택지조성 공사에 큰돈이 들었다고 한다.

“보시다시피 현대로템의 수소추출기 두 기가 들어와 있어요. 한 기당 500kg씩 해서 하루에 1톤 정도 수소를 생산하게 되죠. 수소버스와 일반 수소차에 충전을 하고, 튜브트레일러로 강원도 일대 충전소에 수소를 공급하게 됩니다. 또 이곳 안쪽에 하루 100kg급의 소형 수소액화플랜트를 구축할 예정이죠.”

여기서 생산하는 액체수소는 액화수소선박 운행 실증에 연료로 활용된다. 또 1톤급 진공단열 용기를 설치해 액화수소를 저장했다 평창의 대관령 수소충전소에탱크로리로 실어 나르는 액화수소 운송실증을 진행하게 된다.

“국토부 과제로 ‘수소 R&D 특화도시 조성사업’이 현재 진행 중인데, 그 현장이 언덕 너머에 있어요. 토목설계가 완료되는 대로 6월 중에 착공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300억 원에 이르는 사업비를 들여 수소에너지와 연계한 한국형 타운하우스를 짓는 연구개발 과제다. 실증주택 9동을 비롯해 통합 관리동 1동, 홍보관 1동 등 총 11개의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 국토부 과제로 진행 중인 수소·재생에너지 연계형 타운하우스의 조감도.

태양광과 연계해 P2G 수전해로 생산한 수소를 금속수소화물에 저장한 뒤 이를 가정용 연료전지에 활용하는 안이 들어 있다. 또 ‘수소전기차 하우스’를 지어 가정에서 직접 수소차에 연료를 충전하는 시설도 갖추게 된다. 내년 여름에는 삼척 수소타운하우스의 실물을 접할 수 있다.
 

SPOT  05
삼척 액화수소선박 개발 현장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해양 특수선박 전문업체인 보고(VOGO)의 선창이다. 삼척 대진항에서 가까운 근덕농공단지에 입주해 있는 지역 업체다. 

환한 햇살이 드는 건조장에 들어서자 두 척의 쌍둥이 배가 눈에 든다. FRP(섬유강화 플라스틱) 소형 어선으로 실제로 영동지역에 가장 많이 보급된 선종이다. 앞뒤에 어창을 하나씩 갖춘 전형적인 낚싯배다.

보고는 지난 1981년에 다이빙 전문업체로 설립됐다. 이후 특수선박 제조 쪽으로 눈을 돌려 1990년대 후반부터 국내외 해군과 해경 등이 쓰는 잠수정, 고속단정, 알루미늄 방탄선박 등을 설계하고 제조해왔다. 

보고는 액화수소산업 규제자유특구 사업으로 지난해부터 액화수소선박 개발을 진행해왔다. 조선 경기 침체로 회사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다 최근 필리핀 LCS그룹에서 투자를 받았다는 소식이 들린다. 

국내 최초로 제작되고 있는 액화수소선박을 실물로 볼 기회는 흔치 않다. 서둘러 철제 계단을 밟아 선미에 오른다.

▲ 강원테크노파크 조형환 에너지팀장이 액화수소선박을 살펴보고 있다.

“액체수소로 구동하는 어선 두 척, 알루미늄 관공선 한 척을 제작하게 돼요. 울산 장생포항에서 현재 수소선박 실증이 진행 중인데, 그 배를 기준으로 한국선급과 협의해서 해수부 승인이 나는 대로 바다에 배를 띄울 예정입니다. 올해 안으로 날이 추워지기 전에 실증에 나설 계획이죠.”

조타실 바로 앞 배의 중심에 연료전지가 들어 있다. 현대차 넥쏘에 들어가는 95kW급 연료전지 2개가 한 줄로 고정돼 있다. 액체수소는 기체수소보다 낮은 압력을 요한다. 조형환 팀장의 말을 들어보자.

▲ 넥쏘에 들어가는 연료전지 2개로 파워팩을 구성했다.

“넥쏘의 경우 15~22bar 사이의 압력으로 기체수소를 받아 연료전지를 돌려요. 그런데 액체수소는 13bar가 넘어가면 액체도 기체도 아닌 초임계유체가 됩니다. 그래서 13기압이 넘으면 곤란하죠. 17기압 정도로 기체수소를 받아야 연료전지의 출력을 다 낼 수 있는데, 그러자면 액체수소를 기화하는 설비를 비롯해서 추가 설비가 필요해요. 배라는 한정된 공간에 설비를 늘리고 전력도 더 써야 해서 곤란하죠. 선박용 연료전지로 최적화하려면 10기압 언저리에서 작동하는 연료전지를 따로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액체수소의 공급 압력은 12bar 밑으로 잡고 있다. 그래서 연료전지 한 기당 60kW의 출력을 적용하면 최대출력은 120kW로 낮아진다. 여기에 64kWh 용량의 배터리를 추가로 장착했다. 배터리 전력으로 배가 처음 출발할 때 드는 동력을 지원하고, 일상 운행에서는 연료전지의 전력을 쓰게 된다.

연료전지 앞단에는 하이리움산업에서 개발한 600리터급 액체수소 저장탱크가 들어 있다. 42kg의 수소를 채울 수 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30kg 정도를 채우고 실증에 나설 계획이다. 

▲ 하이리움산업에서 제작한 600리터급 액체수소 저장탱크.

“넥쏘 연료전지 2개가 들어가는 수소전기버스에 견줄 수 있어요. 버스가 30kg의 수소 연료로 300km를 운행하지만, 바다에서는 그보다 거리가 덜 나온다고 봐야죠.”

강원도는 수소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현장에 와보니 그 의지가 더 실감이 난다. 

맹방이든, 삼척이든, 추암이든 동쪽으로 차를 달리면 해변도로 어디서나 바다의 멋진 풍광을 만나게 된다. 관광과 산업이 나란히 보조를 맞추기가 어렵지만, 수소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환경을 해치기보다는 유지하는 쪽에 산업의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동해와 삼척은 액화수소, 그린수소에서 새로운 동력을 찾았다. 국내 기업들이 미래 수소사업에서 가장 주목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여기에 블루암모니아, 그린암모니아를 수입하는 항만을 보유해 전주기 수소사업 실증에 최적의 여건을 갖추고 있다. 강원도 수소사업의 핵심 지역으로 동해와 삼척이 뜨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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