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고양시 중부대 고양캠퍼스에 세워진 플라젠의 ‘3세대 가스화기’.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연일 한파다. 영하 10℃ 밑으로 뚝 떨어진 추위에 귓불이 맵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중부대 고양캠퍼스 안쪽에 우뚝 서 있는 15m 높이의 파일럿 플랜트도 추위를 견디지 못했다. 회색 철제 빔 사이를 숭숭 파고든 한기에 스팀 쪽 배관 파이프가 터졌다. 

“폐플라스틱 1톤으로 약 60kg의 수소를 얻을 수 있는 파일럿 플랜트입니다. 테일가스를 태워 400kWh의 전기도 추가로 얻을 수 있죠. 하루에 50톤을 처리할 수 있는 상용급 플랜트로 나아가기 위한 실증 설비죠.”

플라젠(Plagen)의 경국현 대표가 말한다. 작년 3월에 이곳 중부대와 산학협력 업무협약을 맺고 플랜트를 짓기 시작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일정이 늦어져 지난해 12월에야 설치를 끝마쳤다. 마침 한겨울이 시작됐고, 스팀공급을 위한 배관에 보온 장치를 설치하고 있어 정상 구동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타르개질기를 활용한 ‘In-situ 가스화 기술’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구조된 멸종위기종 푸른바다거북의 배설물에서 플라스틱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린다. 폐플라스틱은 골칫거리다. 가볍고 편리한 플라스틱의 사용량이 해마다 늘면서 해양투기도 늘고 있다. 

2017년 한 해 국내 플라스틱 폐기물(폐합성고분자화합물) 발생량은 1,090만 톤이다. 2017년 환경부 보고서에 따르면 폐플라스틱 재활용률은 62%에 이른다. 나머지 38%는 소각이나 매립으로 처리된다. 수치상으로 재활용률이 높아 보이는 건 플라스틱 폐기물을 소각해 화력발전원으로 이용하는 ‘에너지 회수’를 더했기 때문이다. 실제 ‘플라스틱 물질’의 재활용률은 22%에 그친다.

“플라스틱을 열분해해서 가스화하면 합성가스를 만들 수 있어요. 여기에 PSA 설비를 붙이면 넥쏘에 들어가는 고순도 수소를 생산할 수 있죠.”

폐플라스틱은 가열할 때 나오는 타르가 가장 큰 문제다. 바이오매스보다 5~10배 높은 농도의 타르가 나오고, 이 타르가 열교환기나 후속 공정에 큰 문제를 일으킨다. 가스엔진의 경우 타르 함량이 10mg/N㎥ 미만이어야 정상 작동이 가능하다. 한데 이 타르를 없애는 일이 정말 어렵다. 플라젠은 타르를 분해하는 타르개질기를 반응기 안에 넣은 ‘인시튜(In-situ) 가스화 기술’을 적용했다. 

▲ 플라젠의 경국현 대표가 운영실을 찾아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플랜트 설비의 작동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메인 제어시스템.

“폐플라스틱뿐 아니라 음식물쓰레기, 하수슬러지를 투입해 850℃ 이상의 고온 촉매, 수증기 혼합으로 열분해·가스화 과정을 거치면 수소와 일산화탄소 등으로 이뤄진 합성가스를 얻을 수 있죠. 무산소 조건이라 다이옥신 배출이 없고, H2S(황화수소)나 HCl(염화수소)는 시스템 내에서 제거가 돼요. 소규모 대기오염방지 설비 정도만 갖추면 되죠.”

폐플라스틱은 그냥 분해시키면 되지만, 음식물쓰레기나 하수슬러지는 함수율을 10~15%까지 낮춰서(건조해서) 공급해야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음식물쓰레기의 경우 아프리카 돼지열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사료로 쓰기 힘들어졌고, 건조된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는 업체들이 많다. 

“바이오메탄의 경우 음식물쓰레기를 혐기성 소화조에 넣어서 한 달 가까이 발효 과정을 거치게 되죠. 또 이 메탄을 수소로 개질하는 과정에서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배출이 돼요. 그에 반해 플라젠의 시스템은 폐플라스틱이나 건조된 음식물쓰레기, 폐목재 같은 탄소중립 물질을 원료로 바로 수소를 생산할 수 있죠. 폐플라스틱을 원료로 할 경우 수소 1kg당 2,000~3,000원이면 가능해요. 분산형 수소생산기지로 가면 운송비를 크게 아낄 수 있죠.”

▲ 한 직원이 플랜트 안쪽에 있는 백필터 운전장치를 살펴보고 있다.

음식물쓰레기에는 질소가 4% 정도 포함돼 있다. 가스화 과정을 거친 질소를 물에 녹여 암모니아 형태로 회수할 수 있다. 이때 황산을 넣으면 황산암모늄이라는 유안비료를 얻게 된다. 암모니아 생산에 온실가스가 많이 발생된다. 질소와 수소를 합성해 상당한 양의 비료를 회수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플랜트 설계는 오스트리아 업체와 협력해서 진행했어요. 지난 20년간 상업 운영을 통해 안전성을 검증받은 플랜트 기술이죠. 2002년에 오스트리아 귀싱(Güssing)에 처음 설치가 됐고, 이후 독일, 스웨덴, 태국, 일본에도 설치가 되어 운영되고 있어요. 가스화 기술 중에서 경제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다만 이 설비들은 우드칩 연료에 최적화되어 있고, 통상 우드칩을 태워 합성가스를 만든 뒤 가스엔진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죠.”

파일럿 플랜트의 가스화 핵심 설비는 플라젠이 국내에서 직접 제작했다. 완공 즈음에 현지 슈퍼바이저가 입국해서 시운전도 하고 갔다.

플라젠의 플랜트는 타르개질기를 내부에 넣은 3세대 가스화기로, 폐플라스틱을 원료로 하는 설비의 데이터는 아직 확보가 안 됐다. 운영 효율 등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오스트리아 빈공대 ‘이중 유동층 기술’에 기반

경국현 대표가 음식물쓰레기로 만든 펠릿을 보여준다. 파일럿 플랜트에는 1cm 이하의 펠릿 크기로 가공한 건조된 원료를 투입하게 된다. 플랜트 입구에 있는 호퍼에 원료를 투입하면 파란 홈통을 타고 위로 이동해 사일로에 저장이 된다. 

▲ 고형 음식물쓰레기의 경우 펠릿 형태로 만들어 호퍼에 투입하게 된다.

경국현 대표를 따라 철제 계단을 오른다. 플랜트의 핵심은 타르개질기가 내부에 들어 있는 가스화 반응기에 있다. 바로 뒤편에 촉매를 LNG(천연가스)로 가열하는 연소로가 있다. 연소로 안에서 950℃로 촉매를 가열해 재생한 다음 사이클론을 통해 배기가스와 분리해서 타르개질기로 다시 보내게 된다. 고온의 촉매가 반응기 안에서 폐기물을 만나 열분해와 가스화를 촉진하게 된다. 

“타르개질기를 내부에 넣는 게 가장 분해 효율이 좋아요. 이 부분을 빼면 오스트리아 현지의 설비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죠. 오랫동안 검증이 된 설비라 무리 없이 작동하리라 보고 있어요.” 

▲ 경국현 대표가 핵심 설비라 할 수 있는 가스화 반응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내부에 타르개질기가 들어 있다.

플라젠의 설비는 오스트리아 빈공대에서 개발한 ‘이중 유동층(Dual Fluid) 기술’에 기반하고 있다. 유동층 기술은 구현이 쉽지 않다. 촉매 자체를 반응로 안에서 붕 띄운 상태로 분해한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이때 폐플라스틱의 타르가 촉매와 접촉하면서 분해와 기화가 진행된다. 

촉매는 올리바인(Olivine)이라 부르는 감람석을 0.8mm로 가공해서 쓴다. 감람석은 마그네슘과 철이 들어 있는 규산염 광물로, 우드칩을 연료로 한 이중 유동층 가스화로에 쓰인다. 플라젠은 건국대 환경공학과, 화학공학과와 손을 잡고 촉매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연구를 추가로 진행 중이다. 

분해가 되지 않은 타르는 후단에서 스크러버로 처리한다. 타르는 물에 녹지 않기 때문에 스크러버 용매로 오일(바이오디젤)을 쓴다. 고순도 수소를 생산하려면 ppm 단위로 타르 농도를 낮춰야 한다. 오일의 성상에 따라 녹는 정도가 다른 만큼, 향후 최적화된 오일을 찾기 위한 후속 연구를 진행할 방침이다.

▲ 후단에 설치된 타르 제거용 오일 스크러버.

“제가 2016년도부터 이중 유동층 기술로 필리핀 발전사업이나 국내 폐목 발전사업에 도전했어요. 폐플라스틱은 타르 때문에 가스화에 한계가 있다는 걸 그때 알게 됐죠. 우드칩이나 폐목보다는 폐플라스틱에 대한 수요가 많아요. 여기에 대한 개선점을 찾아낸다면 승산이 있다고 봤죠.”

경국현 대표는 지난 2017년 9월에 ‘나선형 가스화로를 포함한 이중 유동층 반응기’란 특허를 출원하고 2019년에 이레플라젠이란 회사를 설립했다. 빈공과대학과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인도의 폐플라스틱 처리 설비를 설계하기도 했다. 플라젠으로 사명을 바꾼 건 지난해 일이다.

실증 플랫폼에는 우드칩을 연료로 하는 오스트리아 오버바르트(Oberwart) 가스화기보다 진일보한 타르프리(Tar-free) 공법이 적용됐다. 실제 연구실 실험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했고, 기술 증명이 가능한 최소 규모의 파일럿 플랜트를 중부대 고양캠퍼스에 세웠다.

“폐플라스틱을 넣고 타르개질을 진행해서 우드칩 정도의 타르 농도만 낼 수 있으면 성공이라고 봅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후 공정은 오스트리아 현지의 설비와 동일해요. 현재 설비로는 합성가스 생산까지만 가능하죠. 조만간 여기에 PSA 설비를 붙여서 그린수소를 생산할 겁니다.”

플랜트 설비만큼 중요한 것이 운영 매뉴얼이다. 경국현 대표는 오스트리아 귀싱의 운영 매뉴얼을 구해 현재 설비에 맞게 적용했다. 자동운전 세팅 등 운영 노하우를 확보하는 데 많은 노력이 들었다고 한다.

“상업용 설비로 확장할 경우 수소보다는 메탄올 생산이 더 유리할 수 있어요. 합성가스의 주요 성분인 수소와 일산화탄소를 합성하면 메탄올(CH3OH)을 쉽게 얻을 수 있거든요. 현재 천연가스 공장 인근에서 대규모로 생산한 메탄올을 수입해서 쓰고 있죠. 이게 그레이 메탄올이에요. 하지만 폐플라스틱을 써서 만든 메탄올은 그린 메탄올에 들죠. 메탄올 가격이 톤당 400달러 정도라면, 그린 메탄올은 2,000달러로 5배 정도 비싸요. 그래도 사겠다는 곳이 많습니다.”

바야흐로 환경·사회·지배구조를 고려한 ‘ESG 경영’이 화두가 됐다.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인 원료나 소재의 사용을 독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메탄올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의 원료가 된다. 핸드폰과 노트북을 만드는 애플은 탄소중립 플라스틱 소재에 관심이 많다. 명품 패션업계 또한 그린 메탄올로 만든 폴리에틸렌(PE)이나 폴리프로필렌(PP) 섬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메탄올은 수소보다 운송이나 저장이 쉽고 용처가 다양하죠. 그래서 이 시장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원료 측면에서 음식물쓰레기, 하수슬러지, 폐목재(폐가구)를 가스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어요. 여기서 뽑아낸 합성가스로 수소, 메탄올, 암모니아 이렇게 세 종류의 결과물을 얻는 하루 50톤 규모의 상용 플랜트를 구상하고 있죠.”

폐플라스틱 1톤으로 수소 60kg을 생산할 수 있다. 하루 50톤이면 수소 3톤을 얻을 수 있다. 이 정도면 중규모의 분산형 수소생산기지에 든다. 이번 실증 플랜트가 제대로 돌아간다면 올해부터 바로 사업화가 가능해진다.

  

▲ 플라젠의 경국현 대표.

폐기물 처리, 에너지 회수를 ‘한번에’

폐플라스틱이나 음식물쓰레기를 폐기물로 보는 시대는 지났다. 기술만 뒷받침된다면 그린수소의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대량의 원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원료비가 거의 들지 않아 수소생산 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다.

플라젠의 기술은 해외에서도 관심이 많다. 실증 플랜트가 완공된 지난해 12월에는 벨기에 유니트(UNIT)그룹의 오스만 트루크멘 CEO가 방한해 합작사 설립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1974년에 설립된 유니트그룹은 터키, 불가리아, 동유럽, 중동지역에서 전력 프로젝트 개발과 투자, 발전소 EPC, 전력·가스 거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폐기물을 처리하면서 에너지를 회수한다는 점이 큰 장점이죠. 유니트그룹의 경우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3개국에 라이센스를 주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어요. 100톤 규모의 플랜트로 타당성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늦어지고 있네요. 올해 상반기에는 시작해야죠.”

최근에는 유진자산운용과 투자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산업단지에 스마트팩토리 형태로 수소생산시설을 접목할 수 있다. 또 폐플라스틱뿐 아니라 해양수거 플라스틱으로 수소를 생산하거나, 온사이트 분산형 수소충전소와 패키지로 묶어서 가는 것도 가능하다.

기후변화, 탄소중립, ESG 경영, RE 100…. 지구 환경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원유정제 산업에 기반을 두고 있는 국내 화학·정유사들도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SK지오센트릭은 아시아 최초로 울산에 재생PP 공장을 짓기로 했다. 자체 기술은 아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2’에서 퓨어사이클 테크놀로지와 주요 조건 합의서(HOA)를 체결했다. 퓨어사이클 테크놀로지는 솔벤트를 활용해 폐플라스틱에서 오염물질과 냄새, 색을 제거한 초고순도 재생PP를 생산하는 재활용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대오일뱅크도 폐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해 친환경 나프타(납사) 생산에 나서고 있다. 나프타는 원유를 35~220℃로 가열할 때 LPG와 등유 유분 사이에서 유출되는 탄화수소 혼합물로 석유화학산업의 중요한 원료로 쓰인다. 현대오일뱅크는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원유정제 공정에 투입하는 방식으로 친환경 나프타를 생산하는 실증 연구를 수행 중이다.

“국내 기업들은 원유 기반이라 화석연료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죠. 열분해(300~500℃)는 온도가 낮기 때문에 기름 안에 포함된 오염물질을 깨끗이 제거하기가 어려워요. 800℃ 이상으로 기화해서 제거하는 방식으로 가야 하죠. 나프타만 해도 염소나 올레핀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데 이를 정제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 경국현 대표가 오스트리아 ‘이중 유동층 기술’에 기반한 플라젠의 3세대 가스화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가스화는 일반적인 연소와는 관계가 없다. 무산소 조건에서 유기성 폐자원이 800~850℃에서 수증기와 반응해 분해되면서 합성가스가 된다. 플라젠의 파일럿 플랜트는 현재 여기까지 실증이 가능하다. 무산소 조건이라 다이옥신이 발생하지 않고, 합성가스는 고효율로 정제해서 청정가스로 사용할 수 있다. 

수소,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메탄 등으로 구성된 합성가스는 쓰임이 많다. 수소만 따로 분리할 수 있고, 메탄올로 만들 수도 있다. 질소를 더해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후단에 어떤 설비를 붙이느냐에 따라 나오는 결과물이 달라진다.

“날이 풀리면 설비를 점검해서 가동에 들어가야죠. 아쉽지만 명확한 데이터는 그때 보여드릴 수 있겠네요.”

아무래도 메탄올보다는 수소가 ‘핫’하다. 경국현 대표는 PSA 설비를 옆에 붙여 합성가스로 그린수소를 생산할 방침이다. 이때도 연료가 중요하다. 우드칩이 아닌 폐플라스틱이나 고형의 음식물쓰레기로 소기의 성과를 올렸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외부 자금 조달 없이 직접 투자로 이만 한 설비를 갖췄다는 건 의미가 있다. 언 땅이 녹고 고로쇠나무에 수액이 돌 즈음, 반응기와 연소로에서 뿜어낸 열기로 철제 빔이 훈훈하게 데워져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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