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비에이치아이의 수소 사업을 이끄는 기술본부 이상직 이사, 기술연구소 장계환 소장, 기술본부 조덕현 차장이 BHI 모로공장을 찾았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경남 의령의 관문공원을 차로 지난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크게 활약한 홍의장군 곽재우의 동상이 남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여기서 남쪽으로 조금만 달리면 비에이치아이(BHI)의 모로공장과 함안공장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본사는 함안군 군북면에 있는 함안공장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17년에 발전 플랜트가 최대 호황을 누렸어요. 그 후로 탈원전, 탈탄소에 대한 요구가 이어지면서 발전시장에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죠. 화력발전만 해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석탄에서 LNG로 바꿔가는 추세입니다. 2050 탄소중립 선언을 계기로 암모니아나 수소를 혼소해서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쪽으로 발전 정책이 크게 바뀌었죠.”

비에이치아이 기술본부 신재생에너지팀 이상직 이사의 말이다. 정부의 제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라 수명이 다한 석탄화력발전소는 LNG발전소로 대체될 전망이다. 비에이치아이는 이런 변화를 현장에서 체감하면서 ‘사업 전환’을 발 빠르게 준비해왔다.

▲ BHI 본사가 있는 함안군 군북면의 함안공장.

안산 시화호서 그린수소 생산에 도전

1998년 6월 창업한 비에이치아이는 제철소용 산업설비를 납품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2005년 12월 코스닥에 상장했고, 그 해 미국의 아멕 포스터휠러로부터 HRSG 라이센스를 획득했다. 또 2008년에는 PC(미분탄) 보일러 라이센스를 얻어 사업 영역을 발전 분야로 확장했다. 

비에이치아이는 HRSG(Heat Recovery Steam Generator), 즉 배열회수보일러 시장의 세계 1위 수주 기업으로 통한다. 세계발전백서인 맥코이파워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부터 3분기까지 줄곧 1위를 유지했다. 이 부문 1위에 오른 건 지난 2014년 이후 7년 만이다.

비에이치아이는 아랍에미리트의 이말(Emal) 2단계 복합화력발전을 비롯해 이스라엘 하데라(Hadera), 사우디아라비아 쿠라야(Qurayah), 미국의 요크(York), 태국의 카놈(Khanom), 파주 복합화력발전소 등 전 세계 40여 개국에 27GW의 발전설비를 공급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 페루의 칼파(Kallpa) 복합화력발전소에 세워진 HRSG 플랜트 현장.

“작년 기준으로 회사 매출 비중을 보면 HRSG가 64%, 보일러 24%, 콘덴서·히터 같은 발전 보조설비 비중이 12% 정도 됩니다.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HRSG는 가스터빈을 돌리고 나오는 배가스의 열에너지를 회수해서 다시 고온, 고압의 증기로 만든 다음 스팀터빈을 돌리는 LNG복합화력발전의 핵심 설비라 할 수 있죠. 2020년 11월에 해당 기술을 인수하면서 원천기술을 확보했어요.”

HRSG 설비는 함안공장에서 북서쪽으로 4km 남짓 떨어진 모로공장에서 주로 생산된다. 본사가 있는 함안공장에서는 보일러와 열교환기를 주로 생산하고, 항구와 인접한 사천공장에서는 해상운송을 위한 대규모 설비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발전 분야는 정부 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아요. 2020년 연말에 수립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면 화력, 원자력 발전을 축소하면서 신재생에너지와 LNG발전을 확대하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죠. LNG는 수소에너지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라 할 수 있어요. LNG발전소에 필요한 HRSG 부문에 사업 역량을 집중하면서 수소 관련 연구개발이나 실증 사업으로 사업화 기반을 다지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죠.”

비에이치아이는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수소경제의 핵심인 ‘그린수소’에 주목했다. 알칼라인 수전해 전문회사인 하이젠테크솔루션(HTS)과 업무협약을 맺고 대형화 기술을 개발하는 와중에 ‘안산 수전해 수소생산 실증시스템’ 사업 공고를 접했다. 이 사업은 국토부의 수소도시 시범사업 내 안산시 특화모델인 ‘그린수소 생산’을 위해 한전KPS가 발주한 사업이다.

▲ 하이젠테크솔루션의 알칼라인 수전해 설비.

비에이치아이는 하이젠테크솔루션, 수소가스 압축·저장기기 전문기업인 광신기계공업, 전력 제어와 전력변환기 전문업체인 와이피피(YPP)와 컨소시엄을 꾸려 공개 입찰에 응했다. 전력계통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순환전류 문제를 원천 차단하는 방식을 제안해 높은 점수를 받으면서 경쟁사들을 따돌렸다.

“안산 시화호에서 올해 그린수소 생산에 처음으로 도전합니다. 수자원공사가 건설한 1.5MW급 시화 방아머리 풍력터빈 2기와 태양광 1MW에서 생산된 잉여전력을 활용해 하루 100kg 이상의 그린수소를 생산하게 되죠. 풍력으로 생산한 전기,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가 서로 섞이지 않도록 구분해서 제안을 한 게 주효했어요. 재생에너지 발전원에 따라 RPS가 다르게 적용받기 때문에 생산된 전기가 섞이면 곤란하죠. 또 전류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면 차단기가 수시로 작동하면서 설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BHI컨소시엄은 풍력발전으로 수소 200N㎥/h(약 18kg/h), 태양광발전으로 50N㎥/h(4.5kg/h)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250N㎥/h의 수전해 설비를 제안했다. 이는 경쟁사보다 50N㎥/h가 많은 양으로 넥쏘 한 대 정도를 더 충전할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는 간헐성 때문에 전기를 쓸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죠. 풍력발전, 태양광발전의 1년 치 운전 데이터를 받아 수치를 일일이 계산한 다음 전력량에 맞춘 수전해 설비를 제안했어요. 스택의 효율도 국내 타사 제품보다 높은 편입니다. 하이젠테크솔루션의 알칼라인 수전해는 수소 1N㎥를 생산하는 데 4.7kWh의 전기가 들죠. 해외 선진사의 수전해 장비와 비교하면 80% 수준이지만, 국내 수전해 공급사 대비 5% 이상 높은 효율입니다. 해외 선진사 수준의 고효율 수전해 스택 개발은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죠.”

연료전지·수전해 등 수소 연구에 집중 

비에이치아이 기술연구소 장계환 소장을 따라 본사 4층에 있는 기술연구소로 향한다. 한 직원이 법랑 코팅이 된 탈황설비용 핀튜브(Fin Tube) 타입의 열교환기를 보여준다. 배가스가 지나는 파이프에 열교환 면적을 넓히기 위해 ‘회오리감자’ 모양의 핀이 달려 있다. 여기에 전체적으로 법랑 코팅을 해 내구성을 크게 높인 제품으로, 2017년에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된 바 있다. 

▲ 환경설비에 들어가는 탈황설비용 법랑 코팅 핀튜브로 2017년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됐다.

▲ 기술연구소 장계환 소장이 SOFC용으로 개발 중인 금속분리판을 들고 있다.
▲ 실증 과제용으로 제작된 SOFC 셀 스택.

바로 옆에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 셀 스택이 놓여 있다. 비에이치아이는 SOFC 스택에 들어가는 금속분리판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SOFC가 700℃ 이상의 고온에서 작동하는 만큼 고열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금속에 기체가 지나는 유로를 새기는 정밀성형 기술, 내식성 향상을 위한 코팅 기술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함안공장 안쪽에 있는 연구1시험동에 3kW급 SOFC 스택 평가장치를 새로 설치했다. 또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에서 들여온 연료전지 평가장치를 ‘20kW급 수전해 스택 평가장치’로 개조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기술연구소 연구1시험동에 3kW급 SOFC 스택 평가장치가 설치돼 있다.
▲ RIST에서 들여온 연료전지 평가장치로 ‘20kW급 수전해 스택 평가장치’로 개조할 예정이다.

“발전플랜트 설비를 제공하는 게 주된 업무다 보니 에너지 시장의 흐름을 누구보다 빨리 캐치하게 되죠. 2018년 당시 RPS 제도 등 발전사가 의무적으로 추진해야 되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관심 있게 지켜봤어요. 국내외 에너지 산업이 수소 쪽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경영진을 설득해서 수전해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죠. 비에이치아이는 고온 열관리에 특화된 회사라 스팀을 활용한 고온수전해인 SOEC가 잘 맞을 수 있어요. SOEC와 SOFC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이쪽 기술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부터 케이세라셀을 주관사로 포항산업과학연구원, 에너지기술연구원(KIER), 기계연구원(KIMM) 등이 참여하는 20kW급 SOEC(고체산화물 전해조) 스택 모듈과 시스템 개발 신규과제가 진행되고 있다. 비에이치아이는 이 과제에 포스코, 두산중공업과 함께 수요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SOFC나 SOEC의 사업화에는 기술적으로 좀 더 시간이 필요한 반면, 그린수소 생산을 위한 저온수전해 방식인 알칼라인이나 PEM 수전해 쪽은 초기사업 전개가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죠. 국내 수전해 원천기술 회사와 접촉하면서 하이젠테크솔루션과 업무협약을 맺은 데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현재 제주에 있는 행원풍력발전단지에서 3MW급 수전해 시스템으로 하루 200kg의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그린수소 생산·저장·활용 실증사업’이 진행 중이다. 풍력발전과 연계해 알칼라인 1MW, PEM 수전해 1MW로 구성해 두 가지 수전해 방식의 운영 효율성을 검증하게 된다. 여기서 생산된 그린수소는 제주의 수소버스 운행에 사용될 예정이다.

올해 비에이치아이가 안산 시화호에서 추진하는 그린수소 생산 사업에는 태양광발전도 포함된다. 풍력·태양광 복합으로는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 사업에 든다. 비에이치아이는 이를 위해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회사들로 ‘원팀’을 꾸렸다. 

하이젠테크솔루션은 2001년에 설립된 1세대 알칼라인 수전해 회사다. 대량의 수소기체 발생장치 연구와 개발, 고순도 수소발생기 등 수소 분야에 집중해왔다. 또 와이피피는 1982년에 영풍물산으로 출발한 40년 업력의 회사로, 국내 전력계통 분야에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에너지저장장치(ESS) 설계부터 배터리 시스템 제작과 공급, 계통 연계, 설치·시운전까지 전체 프로젝트를 턴키로 수행한 다수의 경험을 확보하고 있다. 

“황화나트륨이 들어간 NAS전지가 일본에서 폭발 화재로 이슈가 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삼성SDI의 배터리 제품이 ESS로 들어갑니다. 발전이 잘 돼서 ESS가 풀 충전일 때는 수전해 설비를 100% 로드로 운전하고, 재생에너지 공급이 안 될 때는 부하를 낮춰 최대한 오래 수전해 장비를 돌리는 식으로 로직을 구성하게 되죠.” 

‘안산 프로젝트’는 재생에너지의 잉여전력을 활용한 비에이치아이의 첫 번째 그린수소 사업으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고, 여기서 쌓은 경험을 기반으로 전국 지자체의 그린수소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겠다는 의욕을 숨기지 않는다. 또 하이젠테크솔루션 등 원천기술사와 파트너십을 이어가면서 기술력 향상을 도모하게 된다.

발전시장의 ‘탁월함’을 수소시장에 접목

함안공장을 나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모로공장으로 향한다.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그 규모에 압도가 된다. 기차 선로가 지나는 유럽의 어느 중앙역 역사를 찾은 기분이 든다. 용접사들이 곳곳에 쪼그리고 앉아 HRSG에 들어가는 설비를 용접하고 있다. 

▲ 모로공장의 용접사들이 용접 작업을 하고 있다.

비에이치아이는 지난 2005년에 포스터휠러 사와 기술제휴로 HRSG의 설계와 생산에 입문했다. HRSG는 스팀발생기, 화학공장, 제철소, 소각로 등 산업 플랜트 분야의 폐열회수 공정에 꼭 필요한 핀튜브 타입의 열교환기를 말한다. 가스터빈 배출가스의 여열을 회수해 발전용, 공정용 증기를 발생시켜 다시 전기를 생산한다. 비에이치아이의 HRSG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 연속 지식경제부 세계일류상품에 선정된 바 있다. 

“석탄화력발전에서 터빈을 돌리고 나온 배가스의 온도가 100℃ 정도라면, H급 LNG가스터빈을 돌리고 나온 배가스는 500~600℃로 온도가 아주 높아요. 열효율이 높으니 스팀으로 발전을 하기가 좋죠. H급 가스터빈의 경우 60%에 이르는 에너지 효율을 냅니다. LNG가 발전효율은 높으면서 온실가스 배출은 석탄보다 절반이 낮아요. 그러니 석탄발전이 밀릴 수밖에요.”

기술본부 이상직 이사의 말이다. 비에이치아이는 바로 이곳 함안 모로농공단지에 20MW급 발전용 연료전지발전소 사업을 추진해왔다. 지난 2018년에 사업인가를 받아놓은 상태로 수소법 개정을 통한 청정수소발전의무화제도(CHPS) 시행 추이 등을 지켜보면서 사업화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그리드에 신재생에너지를 물리는 양이 늘수록 그린수소 생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겁니다. ESS 충전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재생에너지가 많이 깔리면 잉여전력을 싸게 공급받을 수 있고, 이 전기로 수소를 만들어 공급할 기회도 늘어나겠죠. 그 시장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습니다.”

▲ HRSG 설비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모로공장 전경.

비에이치아이 같은 대형 플랜트 기술을 갖춘 중견기업이 그린수소 사업의 상용화, 대형화를 목표로 수소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술력과 자본을 갖춘 중견기업들이 대기업과 스타트업 사이에서 허리를 탄탄히 받치며 국내 수소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장에 설치된 태양광의 잉여전력을 활용한 수소생산 사업, 소각장 등에서 쓸모없이 버려지는 폐열로 수소를 생산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개별 기업, 지자체 등과 협업을 검토하고 있어요. 지자체 소각장에 저온 폐열회수를 위한 ‘ORC(Organic Rankine Cycle: 유기랭킨사이클) 발전시스템’ 같은 걸 붙여서 전기를 생산한 다음, 그 전기로 수소를 생산하는 것도 가능하죠.” 

정부의 탄소중립 선언 이후로 수소생산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다만 같은 수소라도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 유무에 따라 한우처럼 등급이 달라진다. 한눈에 알기 쉽게 그레이, 블루, 그린 같은 색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린수소를 중심으로 한 수소 사업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CHPS 같은 제도적 지원이 명확히 제시되어야 한다. ‘환경’을 위한 정책과 더불어 ‘사업성’을 보장해주는 제도적 안전장치가 갖춰지면 기업들은 과감히 지갑을 연다.  

비에이치아이 본사 입구에는 ‘탁월함의 추구’라는 사훈이 큰 돌에 새겨져 있다. 그리스 아테네의 리더들이 지켜야 하는 덕목으로 제시한 아레테(Arete), 즉 탁월함을 추구한다는 의지를 담은 말이다. 이 탁월함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용기와 지혜, 실천이 필요하다. 

비에이치아이는 수소 사업에 도전하는 용기를 냈고, 그간 복합화력발전 시장에서 쌓은 경험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안산 그린수소 프로젝트’에 나설 기회를 얻었다. 이제 그 탁월함을 증명할 실천의 시간이 왔다. 시화호의 방아머리를 지나는 바람으로 수소전기차를 움직이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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