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버스의 조준서 대표.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서울시 송파구 남단에 있는 장지공영차고지로 쉴 새 없이 버스가 드나든다. 시내버스와 공항리무진 버스가 길게 늘어선 부지 뒤편에 서울버스 사무실이 있다. 서울특별시 버스운송사업조합에는 선진운수, 한성운수, 대원여객, 동아운수 등 61개에 이르는 회사가 속해 있다. 서울버스도 그 중 한 곳이다. 

“울산시와 울산테크노파크가 연료전지를 적용한 수소전기 하이브리드 버스 개발에 들어갑니다. 서울버스는 차파트너스와 함께 수요업체로 참여하고 있죠. 서울버스만 해도 수소버스 도입을 오랫동안 준비해왔어요. 현대차에서 수소버스를 내놨지만, 차종이 하나라 딱히 선택지가 없어요. 그래서 이번 사업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서울버스의 조준서 대표를 만나기 전 전화통화로 나눈 얘기다. ‘수소전기 하이브리드 버스 개발사업’은 울산테크노파크 주관으로 3년(2021.06~2024.05)간 23억 원이 투입된다. 이번 사업에는 서울버스의 자회사인 엔지브이아이(NGVI)도 참여하고 있다. 

▲ 조준서 대표는 수소전기차에 관심이 많다. 뒤쪽으로 서울공항리무진 사무실이 보인다.

맞춤형 ‘수소전기 하이브리드 버스’ 개발

서울버스는 1973년 상계운수로 출발했다. 이듬해 삼호운수로 이름을 바꿨고, 1975년에 지금의 서울버스란 사명을 얻었다. 2001년에는 리무진버스 운송 인가를 받아 서울과 인천국제공항을 오가는 리무진버스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현재 시내버스 104대, 공항리무진 88대 등 200여 대의 버스가 운행 중이다. 

“2014년 1월에 사업 투명화를 위해 기존의 서울버스를 서울버스, 서울공항리무진, 서울글로벌광고 이렇게 셋으로 법인분할을 했어요. 바로 그해 5월에 엔지브아이를 인수했죠. 현대자동차와 대우버스에 CNG버스용 핵심 부품인 용기(이탈리아 파버사)와 밸브(독일 VTI사) 등을 독점 공급하던 업체죠.”

엔지브이아이는 사명에서 보듯 천연가스차량(NGV)에 특화된 회사다. 이 분야에 ‘최초’의 타이틀을 다수 거머쥔 회사로 업계에 알려져 있다. 1996년에 차량용 압축천연가스(CNG) 연료저장·공급 시스템 모듈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고, 2000년에 현대차와 대우버스에 53대의 천연가스 자동차용 CNG 연료저장·공급 시스템을 납품한 것을 계기로 연간 최대 2,000개의 모듈과 각종 부속품을 국내 상용차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탄소중립이 화두가 되면서 버스 쪽도 g-모빌리티(gas-Mobility)에서 e-모빌리티(electric-Mobility)로 그 흐름이 넘어가고 있어요. 엔지브아이도 몇 해 전부터 이 부분을 준비해왔죠. CNG 경험을 바탕으로 수소용기와 연료전지, 배터리 관련 에너지 모듈화 기술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어요. 기술적인 부분은 엔지브이아이의 정수영 대표가 맡고 있고, 저는 운송사업자로서 큰 틀의 방향성을 잡아간다고 할 수 있죠.”

▲ 엔지브이아이의 울산공장에서 생산 중인 CNG 모듈.

조준서 대표는 지난해 현대차 넥쏘를 출고해 자차로 타고 있다. 하지만 수소전기차에 대한 관심은 지난 2009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현대·기아자동차는 그해 12월 자체 개발한 수소전기차의 시내 주행 모니터링을 위해 서초구 염곡동에 이동식 수소충전소를 설치한 적이 있다. 바로 그곳이 서울버스의 부지였다.

“보통 CNG를 하던 분들이 수소 쪽으로 넘어갑니다. 고압의 기체를 다뤄본 경험이 있으니까요. 저 또한 애초에 전기버스보다 수소버스에 각별한 관심을 두고 차량 도입 시점을 저울질해왔죠. 운송사업자는 시장의 경쟁을 반깁니다. 맞춤설계, 맞춤운전에 따라 버스시장이 나뉘면서 경쟁사들이 속속 시장에 진입하길 원하죠. 그 시장이 아직 열리지 않고 있어요.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순 없고, 이렇게라도 도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조 대표는 울산테크노파크 자동차기술지원단 차세대기술연구센터의 황현태 박사를 만나 실마리를 얻었다. 전기버스의 잦은 충전 문제(특히 겨울철)만큼이나 수소전기버스는 충전 시간이나 대량 충전에 한계가 있고, 상대적으로 비싼 연료비도 고민거리였다. 절충점이 필요했다. 두 가지 기술의 장점을 살린 ‘수소전기 하이브리드 버스’ 개발은 여기서 출발했다. 

전기버스와 수소버스로 양분된 시장에 수소전기 하이브리드 버스를 추가해 세 가지 미래형 모빌리티가 운영되는 버스시장을 그려보자는 것이 그의 목표다. 선택지는 많을수록 좋다. 운송사업자는 버스 노선이나 운행 형태에 맞는 맞춤형 차량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버스 기사는 안전운전과 서비스에 오롯이 집중해야죠. 전기충전이나 수소충전에 과도한 시간이나 에너지를 빼앗겨선 곤란합니다. 개인적으로 수소는 350bar 충전으로 10분 이내(1회), 전기는 운행 후 심야전력을 써서 완속으로 충전하는 방안을 최선으로 보고 있어요. 1km당 연료비를 계산해본 적이 있는데, 심야전력과 수소를 함께 쓰는 하이브리드 버스가 335원으로 수소연료전지 버스(601원) 대비 경제성이 훨씬 높게 나옵니다(9월 24일부터 수소버스에 3,500원/kg의 연료보조금이 지급된다. 이 제도가 시행되기 전 계산법이 적용됐다).”

▲ 조준서 대표는 심야전력을 활용하는 수소전기 하이브리드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루프에너지의 90kW급 수소연료전지 적용 

현대차는 지난 2019년 10월 15일 우진산전, 자일대우상용차, 에디슨모터스와 버스용 수소연료전지시스템 공급에 협력한다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맺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 협약은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에디슨모터스의 이호영 ICT 플랫폼본부장은 지난 8월 25일 한국자동차공학회 주최로 열린 모빌리티플랫폼 워크숍 행사에서 “현대차의 수소연료전지 스택은 국책과제를 통해 개발된 것이 많은 만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동으로 활용해 시너지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쓴소리를 내기도 했다. 

버스의 차령은 9년이다. 서울 시내버스의 경우 통상 2교대로 하루에 200~300km를 운행한다. 현대차가 지난해 양산형으로 내놓은 일렉시티 수소전기버스는 1회 충전으로 450km를 달릴 수 있다. 조준서 대표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고사양이다. 

“95kW급 연료전지 두 개가 들어가는데, 이걸 하나로 줄여도 시내버스 운행에는 크게 무리가 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죠. 700bar 1회 충전에 너무 긴 시간이 걸리는 것도 큰 문제예요. 350bar 충전이 훨씬 빠르고 압축기에 걸리는 부하도 적죠. 고속버스가 아닌 시내버스는 이 정도 사양이면 충분합니다. 운송사업자들은 노선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맞춤형 하이브리드 버스를 원하죠.”

울산에서 시작한 수소전기 하이브리드 버스 개발사업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이 사업은 울산에 있는 자동차 산업 관련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엔지브이아이(연료전지 발전, 수소저장시스템)를 비롯해 에이팸(와이어링 하네스), 케이에이알(자율주행), 성산브이씨씨(통합 소프트웨어), 오토렉스(전장 부품) 같은 회사들이 이름을 올렸다.

연료전지시스템은 이미 정해졌다. 캐나다 루프에너지(Loop Energy) 사의 90kW급 이플로우(eFLOW) 연료전지 1개가 들어가며, 연료전지에서 나온 전기를 배터리에 충전해서 차량을 구동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나머지 사양은 현대차의 일렉시티 수소전기버스와 동일하다. 배터리는 약 80kWh, 수소탱크는 타입4 175L 5개를 장착할 예정이다. 

루프에너지는 계약에 따라 연료전지 모듈, 냉각 시스템, DCDC 전력조절 장비로 구성된 연료전지시스템 통합 패키지를 엔지브이아이에 공급한다. 엔지브이아이는 이를 받아 연료전지시스템 구성 설계를 통해 350bar 충전용 파워팩을 제작하게 된다. 서울버스와 차파트너스가 수도권에서 1,200여 대의 버스를 운행하는 만큼 수요는 충분하다.

▲ 루프에너지의 이플로우 연료전지시스템으로, 스택과 금속분리판 모양이 기존 방식과는 다르다.

“루프에너지 사의 연료전지는 (엔지브이아이) 정수영 대표가 기술 검토를 했어요. 연료비가 전체 운영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연료 효율성에 중점을 뒀죠. 중국 난징에서 운영되고 있는 차량에서 매일 제공되는 현장 데이터가 도움이 됐어요. 유럽에서도 신규 계약을 체결하는 등 이플로우 연료전지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고 있죠.”

조준서 대표가 리튬이온 배터리 논문에서 발췌했다는 라이프사이클 그래프를 보여준다. 배터리 충전량이 70% 이하로 떨어지면 가득 충전해도 금방 방전이 된다. 이럴 땐 배터리를 교체하는 수밖에 없다. 

전기버스를 9년간 운행한다고 볼 때 하루 1.5회 충전(4,927회 충전)을 하면 9년 뒤에는 70% 이하로 뚝 떨어져 정상운행이 어렵다. 하지만 차량 운행 중에 연료전지로 전기를 충전해주면 배터리 성능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배터리 DOD(Depth Of Discharge, 방전 깊이)가 50%가 되면 수소연료전지를 돌려 배터리에 충전을 하는 거죠. 프로토콜을 이런 식으로 잡아가는 겁니다. 또 순간적인 출력은 슈퍼커패시터로 보완할 수 있어요. 차량에 들어가는 배터리가 비싼 만큼 9년 동안 문제없이 쓸 수 있어야 하죠.”

충전 인프라, 전기와 수소의 충전 비용 등을 따져 연료전지와 배터리의 구성비를 다르게 가져가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 조 대표의 생각이다. 이는 운송사업자의 요구이기도 하다. 수소전기 하이브리드로 가면 수소버스 완성차 대비 차량 가격을 20~30% 낮출 수 있는 점도 큰 장점이다.

카이스트·기계연과 액체수소버스 개발 추진

장지공영차고지에 있는 CNG충전소를 둘러본다. 서울버스의 차량뿐 아니라 인근 차고지 버스가 주기적으로 드나들며 충전을 한다. 충전 시간은 5~10분이다. 350bar로 가면 수소충전 시간을 10분에 맞출 수 있다고 본다.

조준서 대표가 CNG충전소 앞에 있는 너른 공간을 손으로 가리킨다.

▲ 장지공영차고지에 있는 CNG충전소로 10분 안에 충전이 완료된다.

“애초에 수소충전소 부지로 생각해둔 곳입니다. 당시만 해도 차고지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지금은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죠.”

그는 수소펌프를 활용한 액체수소충전소에 관심이 많다. 수소의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운송을 맞추려면 액화수소로 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충전소 부지도 작게 차지하고 수소저장도 용이하다. 

“CNG는 도시가스 배관으로 천연가스를 받아서 충전하기 때문에 연료 저장의 문제가 없어요. 하지만 수소는 다르죠. 튜브트레일러로 받아서는 수요를 맞출 수가 없어요. 2023년이면 두산중공업, 효성, SK에서 세운 액화수소플랜트가 돌아갈 거예요. 수소버스는 액화수소의 중요한 수요처가 될 겁니다.”

이 말을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문제가 있다. 강서나 진관 공영차고지만 해도 주민 반대로 수소충전소 구축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부터 370번 수소버스 4대를 정식 운행 중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H강동수소충전소를 이용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금은 안전 규정보다 주민 민원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죠. 시장이나 군수, 구청장이 받는 압박을 줄여줄 필요가 있어요. 허가제는 여론의 영향을 크게 받죠. 저는 이걸 신고제나 등록제로 가야 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고압가스 안전관리법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법에 들어요. 가스안전공사에서 요구하는 안전기준에 맞으면 CNG충전소가 들어선 곳에 ‘신고’만으로 수소충전소 설치가 가능하도록 법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지목한 법은 고압가스 안전관리법 제4조 1항을 말한다. ‘고압가스를 제조(용기 또는 차량에 고정된 탱크에 충전하는 것을 포함)하려는 자는 그 제조소마다 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나온다. 이 문구 뒤에 한 줄을 추가하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도시가스사업법 제3조 1항에 보면 도시가스 충전사업은 산업부장관의 허가를 득하면 된다고 나와요. 이 법을 근거로 해서 지금의 허가제를 신고제(또는 등록제)로 바꾸자는 것이죠. 도시가스사업법 제3조 1항에 의거해서 동일한 사업장 내 고압가스 충전소를 갖춘 곳에 한해 융복합으로 수소충전소까지 사업 범위를 넓히자는 겁니다. 수소충전소는 CNG충전소와 겹치는 부분이 많으니까요.”

▲ 조준서 대표가 현장을 둘러보며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충전 인프라 없이는 수소버스의 보급이 불가능하다. 수소경제가 로드맵대로 가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에는 안전관리에 대한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번에 울산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와는 별개로 ‘액체수소 버스·인프라 기술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요. 카이스트 기계공학과의 장대준 교수, 기계연(한국기계연구원)의 최병일 실장님을 만나서 대화를 나눈 게 좋은 계기가 됐죠.”

기계연은 하루 500kg의 액화수소플랜트를 개발 중이고, 카이스트는 래티스테크놀로지를 통해 격자형 액체수소 저장탱크의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서울버스는 지난 8월 17일 이들과 손을 잡고 액체수소버스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서울버스는 연료전지 공급과 전력공급 시스템 설계, 차량시스템 통합·설치를 수행하고 액체수소 기반 연료전지 버스의 실증과 운영을 맡게 된다. 

“연료전지 스택이나 파워팩 개발사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고, 수소탱크 제작사도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어요. 이런 업체들과 새로운 일을 벌이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소설가 중에는 남이 읽고 싶어하는 글을 쓰는 작가가 있고, 내가 쓰고 싶어하는 글을 쓰는 작가가 있다. 조준서 대표는 후자라는 생각이 든다. 하고 싶은 일은 끝까지 해보는 게 맞다. 누가 말려서 될 일도 아니다. 서울버스의 스토리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3년 뒤의 변화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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