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림테크의 이덕재 대표가 액화수소용 밸브 본체의 조립법을 설명하고 있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영하 253℃에서 액체가 되는 액화수소 기술은 극저온 분야의 정점에 있는 기술이다. 독일 연방정부가 수소액화설비를 수출규제대상 품목에 넣어 엄격히 관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기술을 이전받으려면 독일 수출통제 연방사무소인 BAFA로부터 특별허가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일을 수림테크가 해냈다. 

“BAFA의 기술수출 특별허가 최종 승인을 받기까지 5개월이 걸렸어요. 수소기술은 독일 경제에너지부(BMWi)의 추가 승인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됐죠. 수소나 헬륨을 액화하는 기술은 국가 전략 기술이라 이전을 받기가 어려워요. 그동안 독일의 밸브 업체와 쌓아온 신뢰가 큰 도움이 됐죠.”

▲ 경기도 안성 미양면에 있는 수림테크.

독일 ILK에서 액화수소플랜트 기술이전

수림테크는 경기도 안성에 있는 극저온 분야 전문업체다. 이덕재 대표가 2002월 3월에 창업한 회사로, 산업용 극저온 설비를 비롯해 액화수소용 극저온 설비, 방위산업 분야의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초기에는 CFC(염화불화탄소, 일명 프레온가스)를 대체하는 친환경 냉매를 개발해 일본에 수출하는 일을 했어요. 에어컨 오일 검진기를 개발해서 독일 웨코(WAECO)사에 수출하기도 했죠. 그러다 2007년에 CIK(Cryogenic Industries Korea)를 통해 미 ACD(A Cryogenic Industries)사에 극저온펌프용 증속기어를 공급했어요. 이후 펌프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진행하면서 극저온 사업에 처음으로 입문하게 됐죠.”

▲ 이덕재 대표가 액체헬륨용 대용량(100A) 진공단열밸브를 살펴보고 있다.

2007년 6월에는 독일의 밸브 전문회사인 스퇴아 아마투른(Stöhr Armaturen)사에서 나로호 발사대용 극저온 밸브를 수입해 납품했다. 스퇴아와의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이번에 독일의 국영연구소인 ILK Dresden으로부터 액화수소플랜트 기술을 이전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회사다.

수림테크는 지난 2012년 스퇴아와 함께 해군의 안창호급(함수량 3,000톤급) 잠수함에 적용할 수소연료전지용 밸브 개발에 참여했고, 4번째 잠수함에도 이를 공급하고 있다. 또 2013년부터 손원일급(함수량 1,800톤급) 잠수함의 수소연료전지 계통 정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어떤 회사보다 극한의 수소기술을 일찍 접한 셈이다.

“극저온 진공단열배관이나 밸브의 설계, 제작, 시공을 주력으로 하고 있어요. 자체 수리해석이 가능하고, 특히 대형 방사선 비파괴검사시설을 공장 안에 보유한 유일한 회사라 할 수 있죠. 진공단열배관 검사에 꼭 필요한 분자식 터보 진공펌프를 13대 갖추고 있어요. 헬륨누설 검사기 등 국제규격에 맞는 생산 설비를 갖추고 있죠.”

수림테크는 나로우주센터에 진공단열 극저온밸브를 공급했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에서 국내 대기업, 다국적기업과 함께 극저온 프로젝트를 다수 수행했다. 독일 현지에서 받은 전문교육을 통해 극저온 진공단열배관과 밸브의 설계 능력을 확보했고, 국제규격에 맞는 작업절차서를 보유하고 있다. 

에어프로덕츠 코리아가 진행한 삼성전자 천안 탕정, 평택 고덕 현장에 극저온밸브와 진공단열배관, 6인치 극저온 이송시스템을 설계·제작해 시공한 경험도 있다. 또 최근에는 대전 신동지구에 건설 중인 중이온가속기 사업에 액체헬륨용 진공단열 자동밸브(4인치)를 공급한 바 있다.

“한국의 수소 산업이 제대로 가겠구나, 라는 확신을 지난해 처음으로 했어요. 스퇴아의 요하임 뢰디거 대표에게 액화수소 사업의 가능성을 제안했고, ILK 드레스덴의 극저온 분야 책임자인 카데 안드레아스 박사를 소개받았죠. 작년 10월 초부터 협의에 나서서 12월 18일에 업무협약을 맺었어요. ILK이 비영리 공공기관이라 이사회 통과까지 두 달이 걸렸죠.”

이덕재 대표는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맺은 신뢰가 큰 바탕이 되었다”며 “스퇴아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애초에 진행이 어려웠던 사업”이라고 한다. 

▲ 한 직원이 진공단열밸브 TIG용접을 하고 있다.

▲ 125A 대용량 ‘밸브 본체’로 금속괴를 깎아서 가공했다.

국내 대기업들이 해외 선진사와 손을 잡고 2023년까지 액화수소플랜트를 완공할 예정이지만, 엄밀히 말해 기술이전과는 무관하다. 주요 핵심 설비를 구매해 국내에 시공하는 형태로 사업이 진행될 뿐, 액화수소기의 핵심 기술이나 세부 자료에 대한 접근은 허용하지 않는다. 독일의 린데, 미국의 에어프로덕츠, 프랑스의 에어리퀴드 등 어디나 마찬가지다. 극저온이나 초저온 기술은 우주항공, 방산 부문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기술 유출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액화수소 기술은 독일 연방정부의 수출규제 품목이라 BAFA의 기술수출 특별허가가 필요해요. 회사 소개, 사용 목적, 사용할 장소, 사용자 등 자세한 내용을 수출 회사인 ILK가 BAFA에 접수를 하고 인증을 받는 데까지 5개월이 걸렸죠.”

수림테크는 올해 5월 12일 액화수소플랜트 기술 관련 기본설계, 제작도면, 세부도면, 설비제작, 수리해석, 기술자교육과 시운전교육, 최종검사 리포트, 주요부품 사양서 등 기술 전반을 담은 본 계약 체결에 성공했다. 수소액화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이번에 들여오는 건 수소 냉매를 활용한 최신 ‘클로드 사이클’ 방식이다.

‘클로드 사이클’ 적용한 최신 기술

수림테크는 2018년 10월에 ‘RT룸’이라는 방사선 비파괴검사시설을 갖췄다. 물론 다른 회사의 검사 의뢰도 받아서 처리한다. 이날도 검사를 마친 배관을 트럭에 옮겨 싣는 작업이 한창이다. RT(Radiographic Test)는 방사선을 투과시켜 용접부나 주조품 등의 결함을 검출하는 비파괴검사법 중 하나다. 배관의 품질관리를 위해 꼭 필요한 검사다.

▲ RT룸에서 비파괴검사를 마친 배관을 옮기는 중이다.

RT룸 왼쪽에 진공작업실이 있다. 생산을 마친 진공단열배관은 분자식 터보 진공펌프를 일일이 연결해 진공 여부를 확인하게 된다. 2인치 굵기의 배관을 기준으로 일주일에 생산할 수 있는 최대 길이는 80m에 이른다. 국제기준에 맞는 절차서에 따라 엄격한 품질관리를 적용하고 있다.

“해외 선진사와 비교하면 국내 액화수소 기술이나 액화플랜트 기술은 초보 단계라 할 수 있죠. 수소액화기의 설계 즉, P&ID(배관과 계장도)를 포함해 수리해석이나 세부 설비용 부품의 선정, 효율을 시뮬레이션하는 부분이 취약해요. 액화수소 쪽은 이제 막 상업용 설비를 도입하는 단계니까요. 다만 국내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 활발하게 사업을 추진 중이라 그만큼 빠른 성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 분자식 터보 진공펌프를 연결해 진공단열배관의 진공 검사를 진행 중이다.

국내에선 하루 30kg 이하 소량의 액화수소 생산에 ‘G-M 쿨러’라는 직냉식 냉동기를 주로 쓴다. 하지만 상용급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루 5톤급 액화수소설비에는 터보팽창기를 활용한 헬륨 브레이튼 사이클(Brayton cycle)이나 수소 클로드 사이클(Claude cycle) 방식을 주로 적용한다. 

“한국기계연구원이 김해에 구축 중인 액화수소플랜트(500kg/day)는 헬륨 냉매를 적용한 브레이튼 사이클 기술을 적용하고 있죠. 우리가 ILK로부터 이전받는 기술은 린데나 에어리퀴드 같은 회사들이 주로 쓰는 수소 클로드 방식이에요. 이 방식으로 하루 100kg급 액화기를 설계해서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게 되죠. 9월 중에 ILK에서 세부설계가 나오게 돼요.”

▲ 한국기계연구원의 하루 500kg급 액화수소플랜트에 납품 중인 수동밸브.

도면만 봐서는 알 수가 없다. 기초설계, 세부설계를 토대로 실물인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봐야 명확한 기술 습득이 이루어진다. 수림테크의 기술진은 ILK의 세부설계를 토대로 독일 현지에서 이론 교육, 조립, 시운전 교육을 받게 된다. 또 현지에서 분해한 제품을 그대로 한국에 들여와 조립과 시운전을 진행하게 된다. 

“하루 100kg급 수소액화기로 스터디를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용량을 작게 가다보니 효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죠. 액화수소 1kg당 전력효율을 14kWh에는 맞춰보자는 말을 하고 있어요. 국내에서 프로토타입이 완성돼서 제대로 돌아가야 기술이전을 받았다고 할 수 있죠. 이후에는 스케일업을 통해 하루 5톤 또는 하루 15톤 규모의 플랜트 구축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뜻이 맞는 파트너사와 함께 민관에서 투자금을 지원받는 형태로 사업을 추진하게 되겠죠.”

하루 5톤 또는 15톤 규모의 ‘한국형 액화수소플랜트’. 수림테크는 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단순히 설비를 들여오는 형태가 아니라 최신 설계기술을 반영한 진정한 의미의 액화수소플랜트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술이전에 액체수소충전소 기술도 포함

ILK 드레스덴은 1964년 동독 시절에 설립된 비영리 공공 유한책임회사다. 연구 인력은 약 150명 규모로 5개 과학부서가 속해 있다. 수림테크는 이 중 ‘극저온·저온물리학 연구부서’와 관계를 맺고 있다. 수소액화기, 액체수소 충전설비, 극저온냉동기, 극저온 유지장치, 극저온 생명과학 분야 연구에 집중하는 곳이다.

“린데, 스퇴아, CERN(유럽 입자물리연구소), DLR(독일항공우주센터) 같은 곳과 연구개발을 진행해온 곳이죠. 독일 정부에서 받는 연구기금이 예산의 55%, 나머지 45%는 민간에서 조달하고 있어요. ILK은 지난 2012년에 이미 액화수소를 1,000bar 압력에서 10K(-263℃) 온도까지 실험을 완료했죠. 또 기체수소를 75K(-198℃) 이하에서 750bar 이상으로 압축하면 액체보다 더 높은 밀도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이덕재 대표는 “국내 기업들이 2023년을 목표로 액화수소 생산에 나선 만큼 관련 기술이 들어오는 건 시간문제”라는 말로 설득에 나섰다. 이번 기술이전에 드는 비용은 40억 원 정도에 이른다. ILK 입장에서도 기술 수출이 실적으로 잡히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ILK를 통한 기술이전은 국내 업체가 독립적으로 액화수소플랜트를 설계하고 건설해 운용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액화수소 설비와 정비 기술을 국내 회사가 보유하게 되면 해외 선진사와 계약 시 더 유리한 조건을 확보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국내 액화수소 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진공작업실 안쪽에 납품을 위해 포장된 수동밸브가 나란히 놓여 있다. 한국기계연구원이 김해에 구축 중인 500kg급 액화수소플랜트에 들어갈 제품이다. 또 한쪽에는 경기테크노파크의 지원을 받아 개발 중인 진공단열밸브와 안전밸브의 설계도가 놓여 있다. 안전밸브는 상업화가 임박한 제품으로 두산중공업이 창원에 구축 중인 5톤급 액화수소플랜트 사업에 경쟁사 6개 회사 중 유일하게 기술 검토와 기술 확인을 완료했다고 한다. 

▲ 경기테크노파크의 지원을 받아 개발한 액체수소용 안전밸브로, 노란색 부분이 특허를 낸 히트 브리지다.

“다만 크게 염려가 되는 건 저가 입찰입니다. 정말로 이 시스템을 다시 들여다봐야 해요. 전통 산업의 저가 경쟁 입찰을 수소사업에 그대로 적용하면 안전에 큰 구멍이 날 수 있어요. 원칙을 저버린 가격 경쟁은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오죠. 한번 사고가 나면 돌이킬 수가 없으니까요. 수소경제 자체의 존립 기반이 흔들리게 될 겁니다.”

이덕재 대표는 피라미드의 비유를 든다. 피라미드에는 사면이 있다. 한쪽 면에 문제가 있으면 다른 쪽 면에서 대안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액화수소는 피라미드의 꼭짓점에 있는 기술이다. 대안이 없다. 기준에 맞게 생산된 부품이나 설비를 쓰지 않으면 꼭 문제가 생긴다.

“린데나 에어리퀴드, 에어프로덕츠는 고가의 부품을 꼭 쓰죠. 한마디로 규정을 지켜서 갑니다. 독일에선 긴급 차단밸브를 아주 튼튼하게 가요. 화재 시에도 이것만큼은 안전하게 작동을 해야 하니까요. 밸브 하나가 1억이라고 하면 다들 비싸다고 고개를 가로저어요. 하지만 이 기술을 아는 분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 대표가 진공단열배관의 설계도를 보여준다. 파란색 관은 액체수소가 지나는 길이다. 기화된 수소는 위쪽에 달린 벤트 라인을 따라 자동으로 빠지게 돼 있다. 퍼지 작업을 위해 헬륨가스가 지나는 관도 있다. 액체수소(-253℃)는 온도가 낮아 질소나 아르곤을 넣으면 바로 얼어버린다. 수소보다 끓는점이 낮은 헬륨가스(-269℃)를 꼭 써야 하는 이유다. 

“안전밸브는 기화한 수소를 밖으로 빼주는 일종의 안전장치죠. 극저온 가스의 영향으로 위쪽 스프링이 얼면 장력이 변하게 돼요. 그래서 스프링 아래쪽에 특수 플라스틱 소재로 된 히트 브리지를 넣었죠. 경기테크노파크의 지원을 받아 개발했는데, 이번에 특허출원까지 완료했습니다.”

함께 진행 중인 액체수소용 자동밸브와 수동밸브 개발은 80% 정도 진척이 됐다고 한다. 늦어도 11월 중에는 공장 안에서 액체헬륨으로 직접 밸브 작동 시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 테스트용으로 제작한 액체헬륨용 진공단열배관과 수동밸브.

수림테크가 ILK와 맺은 업무협약에는 액체수소충전소 관련 기술도 포함돼 있다. 현재 ILK에서 사업제안서를 작성 중이며, 내년에 설계와 제작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반 수소충전소가 냉각기를 써서 영하 40℃로 온도를 낮춰 700bar로 충전한다면, 액체수소충전소는 액체수소를 고압펌프로 가압해 기체수소를 섞어 기체 형태로 충전하는 방식을 취한다. 

“ILK 드레스덴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액체수소 고압펌프 기술을 도입해서 독일에서 생산하는 방안, ILK의 설계를 토대로 국내에서 생산하는 방안, 이 두 가지를 놓고 검토 중입니다.” 

국내 기업들이 수소의 운송, 저장, 활용 측면에서 액화수소의 장점에 크게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기술 도입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CNG버스 2만 대가 액체수소버스로 바뀐다고 생각해보세요. 여기에 들어가는 액체수소 양만 상당하죠. 올해 4월까지만 해도 이런 말을 하면 냉대를 받았어요. 그러다 5월로 넘어오면서 분위기가 바뀌더군요. 어쨌든 우리는 기본 기술을 가지고 일을 해보겠다는 거예요. 주변에 관심을 보이는 곳이 늘면서 자신감도 붙었죠. 액화수소를 아는 분이라면 수소를 냉매로 하는 클로드 사이클에 관심이 클 테니까요.”

기체수소에서 액체수소로 넘어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극저온 기술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치밀한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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