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영암에서 올라온 빈센의 직원들이 소형 수소선박 하이드로제니아 호를 살펴보고 있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수소도시 울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울산공항 활주로에 내리자 기내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그로부터 딱 한 시간 후다. 장생포항 계류장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빈센(Vinssen)의 최열 기술고문이 핸드폰으로 위성사진을 확인한다. 일본 규슈에 큰 비를 뿌린 먹구름이 갈라져 대한해협을 건넌 모양새다.

“오늘은 시험 운항이 어렵겠는데요?” 

최열 고문이 천막 아래로 든다. 소형선박에 들어가는 25kW 연료전지를 개발한 범한퓨얼셀의 담당자도 표정이 어둡다. 전남 영암에서 올라온 빈센의 직원들이 방수포를 정비하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울산 규제자유특구에서 진행되는 수소선박 실증

오후 3시를 넘기자 빗줄기가 가늘어진다. 빈센의 울산지사가 있는 울산테크노산단을 떠나 다시 장생포항으로 향한다. 이곳은 울산 규제자유특구 수소선박 실증사업이 진행되는 현장이다. 전기·수소 소형선박 제작사 빈센이 이 사업을 주관하고 있다. 

울산은 지난 2019년 11월에 ‘수소그린모빌리티 특구’에 지정됐다. 이를 계기로 수소지게차, 수소무인운반차, 이동식 수소충전소, 수소튜브트레일러 실증사업 등을 추진해왔다. 이번 수소선박 실증도 그 일환이다. 빈센과 에이치엘비(HLB)에서 25kW 연료전지와 배터리 조합으로 각각 한 대씩 소형선박을 제작했다.

▲ 에이치엘비의 블루버드, 빈센의 하이드로제니아 호가 계류장에 나란히 정박해 있다.

수소선박을 띄우려면 수소충전소가 꼭 필요하다. 고정식 수소충전소 설치는 제이엔케이히터가 맡았다. 계류장 바로 옆에 패키지형 수소충전소가 있다. 이 충전소는 땅에 매설된 배관을 통해 23bar 정도의 압력으로 수소를 공급받는다. 그래서 튜브트레일러가 따로 없다. 

“선박 한 척당 수소 충전량이 10kg이에요. 향후 수소선박이 상용화될 경우 튜브트레일러로 대응하기에는 무리가 있죠. 울산시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배관을 연결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이엔케이히터 이승환 수석 매니저의 말이다. 수소 배관은 덕양에서 구축했다. 울산석유화학단지 내 수소 배관을 2.4km 연장해 안정적인 수소 공급이 가능하다. 

▲ 패키지형으로 설치된 울산 수소선박 충전소.

▲ 350bar 충전설비를 갖추고 있다.

충전소의 규모는 작다. PDC 사의 다이어프램 압축기와 343리터짜리 저장용기 두 기가 설치돼 있다. 이번 실증을 위한 맞춤형 벙커링인 셈이다. 제이엔케이히터에서 고용한 안전관리자 한 명이 상주하면서 현장을 관리하고 있다.

울산 수소선박 충전소 바로 앞에 두 대의 배가 나란히 정박해 있다. 구명정 전문업체인 에이치엘비에서 제작한 블루버드(Bluebird), 빈센에서 제작한 하이드로제니아(Hydrogenia)다. 하이드로제니아는 지난 부산국제보트쇼에서 올해의 보트상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블루버드는 FRP(섬유강화플라스틱)로 만든 선외기고, 하이드로제니아는 알루미늄으로 만든 선내기죠. 모터가 외부에 달린 걸 선외기라고 해요. 보시다시피 블루버드가 조금 더 크지만, 무게는 하이드로제니아가 1톤가량 더 나가요. 선체가 금속이라 아무래도 더 무겁죠.”

빈센의 성일혁 이사가 말한다. 범한퓨얼셀에서 개발한 25kW 연료전지, 일진하이솔루스에서 제작한 타입4 연료탱크 8개가 들어간 건 동일하다. 다만 보조배터리 용량은 하이드로제니아가 50kW 정도 더 많다. 


“수소연료전지로만 6시간 운항이 가능해요. 보조배터리로 2시간을 갈 수 있으니 8시간 동안 운항할 수 있죠. 수소충전은 블루버드가 있는 안쪽 자리에서 이뤄져요. 350bar로 10kg의 탱크를 40분 안에 채우는 걸 목표로 하고 있죠. 아직 풀 충전을 해보진 않았어요. 충전기와 수소탱크 간에 주고받는 프로토콜을 맞춰가면서 시스템 밸런스를 잡아가는 단계에 있죠.”

울산에서 진행되는 이번 실증의 목표는 국내 기술로 개발한 연료전지 파워팩을 소형선박 두 척에 탑재해 성능과 안전성을 검증하고 형식승인을 받을 수 있는 안전기준(안)을 마련하는 데 있다.

선박용 수소충전소 구축에 필요한 안전기준은 한국가스안전공사와 협의해 수립했고, 지난 1월에는 규제 소관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 또 안전사고에 대비해 소화설비와 방호벽 설치를 지난 6월에 완비했고, 안전관리자 1인도 현장에 상주하고 있다.

한국선급, 가스안전공사 참여

울산광역시는 수소그린모빌리티 규제자유특구 사업으로 지난 3월 중순에 연료전지가 장착된 지게차와 무인운반차의 실증을 시작했다. 여기에는 700bar급 복합용기가 적용된 이동식 수소충전소 실증도 포함된다. 

이동식 수소충전소에서 수소지게차(총 8대), 수소무인운반차(총 3대)에 충전을 하고 실제 운행을 통해 확보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안전성을 검증하게 된다. 이는 수소연료전지가 적용된 실내물류운반기계의 상용화 인증에 꼭 필요한 과정이다. 

이번 수소선박 실증의 목적도 동일하다. 장생포항 계류장 옆에 패키지형 수소충전소가 완공된 6월 말부터 본격적인 실증에 나섰다. 

“규제자유특구 실증사업은 올해 12월까지 잡혀 있어요. 이건 지게차나 무인운반차도 마찬가집니다. 수소선박의 경우 이곳 장생포항 인근과 연근해를 운항하면서 테스트를 진행하고, 마지막 3단계로 태화강 일대를 운항하게 되죠. 일반 화물선이 다니지 않는 시간대에 해양경찰의 지도를 받아 10노트(시속 18.52km) 정도로 안전하게 운항하게 돼요.”

▲ 빈센의 성일혁 이사는 “규제자유특구 실증사업은 올해 12월까지 일정이 잡혀 있다”고 한다.

성일혁 이사가 핸드폰으로 하이드로제니아 호의 실제 운항 모습을 보여준다. 지난 7월 28일에 촬영한 영상이다. 디젤 엔진과는 소리부터가 다르다. 훨씬 조용하다. 

“배의 속도를 높이는 일은 어렵지 않아요. 연료전지나 배터리의 용량을 늘리면 되죠. 자체 제작한 전기추진선박의 경우 28노트 이상 속도가 나옵니다.”

성 이사는 “지금부터 하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한다. 연료전지 선박의 상용화에 필요한 기준이 울산에서 만들어지는 셈이다. 연료전지 선박의 건조 가능 여부, 안전성 평가를 위해 한국선급과 가스안전공사가 참여하고 있다. 에이치엘비나 빈센은 안전성 평가를 받으면서 그 기준에 맞춰 작업을 해왔다. 

“이번 실증 운항 과제를 통해 선급에서 필요로 하는 관련 규정을 만들게 돼요. 이 규정은 향후 법제화에 중요한 토대가 되죠. 실증 선박의 운항 데이터, 연료전지 가동 데이터 등을 모두 공유하게 됩니다.”

빈센의 최열 기술고문이 선박 후단을 열어 파워모듈유닛(Power Module Unit; PMU)을 보여준다. 공간 최적화 설계로 전자제어장치(ECU), 인버터, 전동추진기 등을 모듈화해서 설치했다. 한눈에 봐도 깔끔하다.   

“전자파 간섭(EMI) 차폐 기술을 적용해서 설계했어요. 파워모듈유닛 안쪽에 수소탱크가 들어 있고, 연료전지는 그 안쪽에 있죠. 수소를 연료로 하지만 결국엔 전기로 구동되는 선박이라 전자제어장치가 아주 중요해요. 전기에너지는 열을 발생하기 때문에 모터와 인버터, 배터리의 열관리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 빈센의 최열 기술고문이 EMI 차폐 기술을 적용한 파워모듈유닛 앞에 앉아 있다.

최열 고문은 대우조선해양을 나와 2019년 말 빈센의 기술고문으로 합류했다. 그는 한국형 전략 잠수함 1호인 장보고함의 설계와 건조에 참여하기도 했다. 

“연료전지의 특성상 배터리 발전기와 병렬운전을 하기가 어려워요. 배터리 전력으로만 가든지, 연료전지로만 가든지 해야 하죠. 짧은 시간이든 긴 시간이든 연료전지와 배터리를 함께 써서 가는 기술이 아직 없어요. 여기에 대한 알고리즘 개발이 필요하죠. 내부적으로 이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소형선박 중심으로 연료전지 적용

국제해사기구가 온실가스 저감기술이 적용되지 않은 선박의 건조와 운항을 단계별로 불허하면서 그 대안으로 수소선박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만 해도 올 아메리칸 마린(All American Marine)에서 건조한 ‘씨체인지(Sea Change)’ 호가 미국 최초의 수소연료전지 선박으로 캘리포니아만에서 운용될 예정이다.

씨체인지 호는 21m급 75인승 페리로, 최근 진수식을 마치고 워싱턴주 벨링햄에서 시험 운항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 배에는 커민스의 360kW급 연료전지와 헥사곤의 246kg 수소탱크로 구성된 연료전지 파워팩이 설치되어 있다. 

빈센은 하이드로제니아와는 별개로 현대차 넥쏘에 들어가는 95kW급 연료전지 2기를 탑재한 12m급 단속정을 자체 개발 중에 있다. 이 말은 빈센의 울산지사 사무실에서 이칠환 대표에게 들었다. 

▲ 빈센 울산지사에서 회의 중인 이칠환 대표.

“서해어업관리단을 통해 수요 조사를 했어요. 그 자료를 기반으로 디자인 개발이 들어간 제품이죠. 또 영암군 지원 사업으로 현대차 연료전지 4기를 탑재한 16m급 레저선박도 개발 중에 있어요. 현재 설계까지 끝낸 상태죠.”

에이치엘비만 해도 지난해 12월 에스퓨얼셀과 168kW, 252kW급 수소연료전지선박 공동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에이치엘비가 선박의 설계와 제작, 전기추진체 개발을 맡고, 에스퓨얼셀이 선박용 연료전지시스템, 동력변환시스템(PCS), 배터리관리시스템(BMS) 등이 포함된 파워팩 개발을 맡는다. 에스퓨얼셀은 최근 에스모빌리티솔루션을 설립해 지게차, 선박, 드론 등에 들어가는 연료전지 파워팩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양사는 2023년 상용화를 목표로 수소선박을 개발 중이다. 

독일 지멘스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잠수함용 연료전지 상용화에 성공한 범한퓨얼셀도 선박용 PEM(고분자전해질막) 연료전지 개발을 비롯해, 소형선박용 SOFC(고체산화물 연료전지)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울산시가 수소선박의 벙커링에 배관을 적용한 건 미래를 염두에 둔 조치라 할 수 있죠. 선박의 경우 연료 충전량이 차량에 비해 훨씬 많아요. 바지선만 해도 50~60개의 수소저장탱크가 필요하죠. 배관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 울산석유화학단지 내 수소 배관을 2.4km 연장해 충전소를 구축했다.
▲ 안전관리자가 상주하면서 관리와 운영을 맡고 있다.

이칠환 대표의 말에 따르면 연료전지 스택이나 주변장치는 공간을 별로 차지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건 연료탱크다. 레저용 소형선박에 탱크를 넣는 건 일도 아니지만, 메가와트 단위로 가는 중대형 선박은 수소탱크 공간을 따로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한다. 

“소형선박은 기체 수소를 압축해서 가고, 중대형 선박은 암모니아 연료로 가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어요. 대형으로 갈수록 수소저장탱크가 너무 커지고, 벙커링 시설을 갖추기도 어렵죠. 기술 검토를 해본 바로는 암모니아를 분해한 수소로 연료전지를 운영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 면에서 효율적이라고 보고 있어요.”

암모니아를 그대로 연소하는 선박 엔진 개발이 해외에서 진행 중이지만, 암모니아는 열량이 낮아 연소시키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추가로 수소를 넣어 열량을 높이는 방법이 있지만, 이 경우 질소산화물(NOx) 배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또 열량 보존을 위해 탱크에 수소를 따로 싣고 다녀야 한다. 

“액화수소선박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액화수소라고 저장탱크의 크기를 무작정 크게 줄일 순 없어요. 액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영하 253℃의 온도를 유지하는 극저온 설비가 필요하고, BOG(Boil Off Gas, 증발가스) 발생도 문제가 되죠. 지금은 현실적으로 시중에 나온 연료전지의 용량에 맞춰서 배를 건조하는 수밖에 없어요. 메가와트 단위의 전력이 필요한 중대형 수소선박이 나오려면 연료전지가 됐든 수소엔진이 됐든 기술 확보가 선행돼야 하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퍼스트 무버’에게 쉬운 길은 없다. 탄소중립의 목표는 분명하다. 정부도 여기에 지원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다. 힘들어도 가야 하는 길이라면 서둘러 나선 쪽이 유리하다. 성공하면 그만한 보상을 손에 쥘 수 있다. 

노란 페인트칠이 된 탱크로리가 계류장에 들어와 주유를 한다. 중유를 태울 때 나오는 온실가스와 대기오염물질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배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울산 규제자유특구에서 올해 말까지 진행되는 수소선박 실증은 해양 부문 탈탄소화의 단초가 된다. 무슨 일이든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그래야 옷을 다시 추스를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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