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판 뉴딜이 시작되면서 수소 관련주에 대한 관심도 크게 늘었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증권가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전후로 투자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는 말이 나돈다. 뉴욕의 한 칼럼니스트는 기원전(BC)과 기원후(AD)란 말을 재치 있게 틀어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After Corona)’로 나누기도 했다. 그러니까 올해가 ‘AC 원년’이란 뜻이다. 

1년 전만 해도 리츠나 배당주 투자 등이 인기를 끌었고, ETF도 시장 전체에 분산 투자하는 걸 추천했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는 언택트 산업이나 기술주를 중심으로 자본시장이 선별적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요즘은 이삼십 대 젊은 세대도 주식에 관심이 많다. 월급만으로 내 집 마련은 어려우니, 주식으로라도 돈을 크게 불려보겠다는 것이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과 ‘빚투’(빚내서 투자)란 말이 유행이고, 국내파와 유학파를 나누듯 ‘동학개미’와 ‘서학개미’란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뉴딜펀드의 탄생은 이런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 이삼십 대 젊은 세대가 ‘영끌’과 ‘빚투’로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한국판 뉴딜펀드의 시작 

지난 7월이었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시작된 경제위기를 이겨내고 글로벌 경제를 선도하기 위한 국가발전전략으로 ‘디지털’과 ‘그린’ 산업을 양대 축으로 하는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금리인하로 풀린 시중의 유동자금이 부동산 같은 비생산 부문에 쏠리는 걸 막기 위한 조치로, 가계자산을 자본시장으로 꾸준히 유도해 경기를 살리고, 예·적금의 이자를 상회하는 수익을 가계에 환원하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이 전략의 핵심은 지난 9월 3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서 밑그림이 나왔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정부, 금융기관, 국민이 참여하는 170조+알파(α) 규모의 뉴딜금융을 조성하는 ‘국민참여형 뉴딜펀드 조성 및 뉴딜금융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펀드는 크게 ‘정책형 뉴딜펀드’ 신설, ‘뉴딜 인프라펀드’ 육성, ‘민간 뉴딜펀드’ 활성화 이렇게 세 가지 축으로 추진된다. 기존 인프라펀드와 민간에서 운용하는 민간 뉴딜펀드를 빼면 사실상 정책형 뉴딜펀드를 ‘한국판 뉴딜펀드’로 볼 수 있다.

▲ 정부는 5년간 총 20조 원 규모의 ‘정책형 뉴딜펀드’를 조성한다.

정부는 내년부터 공모에 들어가 5년간 총 20조 원 규모의 정책형 뉴딜펀드를 조성한다.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은행·연기금 등)이 향후 5년간 총 7조 원을 투입해 모(母)펀드를 조성하고, 이를 민간에서 출자한 13조 원과 매칭해 자(子)펀드를 구성해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정책형 펀드 밑에 여러 개의 자펀드를 두고, 그 자펀드가 사업 방향에 맞는 기업들을 선정해서 기업에서 이미 발행된 주식을 사거나 새로운 증자에 참여하거나 대출을 해주는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하게 된다.

국민들은 이 자펀드에 투자를 하게 되고, 정부는 후순위 출자를 맡아 펀드 손실을 우선 부담해 투자의 안전성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복안이다. 정부는 이 펀드 공모에 참여하는 국민에게 세제 혜택과 더불어, 펀드에서 손실이 날 경우 최고 10% 정도를 정부 재정으로 분담하겠다는 안을 내놓기도 했다.   

정부는 정책형 뉴딜펀드와 별개로 ‘인프라 뉴딜펀드’ 육성과 ‘민간 뉴딜펀드’ 활성화를 또 다른 두 축으로 내세우고 있다. 인프라펀드는 디지털 SOC(사회간접자본) 안전관리시스템, 신재생에너지 시설 등과 관련된 뉴딜분야 인프라 사업에 일정 비율 이상 투자하는 공모펀드다. 그동안 기관투자자 위주로 투자가 진행된 인프라 부문에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길을 열어주는 셈이다. 뉴딜 분야 인프라에 일정 비율 이상 투자하는 공모 인프라펀드가 대상이며, 정부는 투자금 2억 원 한도 내에서 투자에 따른 배당소득에 9%의 저율 분리과세 혜택을 적용할 방침이다.

마지막으로 민간 뉴딜펀드는 금융회사 등 민간에서 뉴딜 프로젝트를 발굴해 투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지난해 8월 일본의 수출 규제로 국내 기술개발 이슈가 한창일 때 생겨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펀드가 여기에 든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필승코리아 펀드’에 가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수소기술, 안정성·환경성 확보가 관건

대중의 관심은 정책형 뉴딜펀드에 쏠려 있다. 뉴딜펀드의 손실 보전 방안을 두고 시작 전부터 사업 전망의 불확실성이나 투자의 위험성 등을 들어 ‘관치펀드’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신재생에너지로 대표되는 풍력·태양광발전 사업의 주민수용성 문제, 수소 폭발에 대한 그릇된 인식 등으로 인프라 사업에 부정적인 인식을 보이기도 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이를 의식한 듯 “정부 재정이 자펀드에 평균 35%로 후순위 출자하는데 이는 펀드가 투자해서 손실이 35% 날 때까지는 손실을 다 흡수한다는 얘기”라며 “원금 보장을 명시하지는 않지만 사후 원금이 보장될 수 있는 충분한 성격이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가령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이 후순위로 350억 원을 출자한 1,000억 원 규모의 정책형 뉴딜펀드 자펀드의 경우, 펀드가 35%의 손실을 내더라도 투자자는 650억 원 원금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민간 뉴딜펀드의 경우에는 시장에서 이미 판매가 되고 있고, 투자자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지난 10월 7일 출시한 ‘TIGER K-뉴딜 ETF’ 시리즈의 경우 8거래일 만에 4,000억 원이 넘는 투자금이 몰렸다. 이 시리즈는 한국거래소가 9월에 처음 선보인 ‘KRX BBIG K-뉴딜지수’를 추종하는 유일한 상장지수펀드로, BBIG는 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 분야를 뜻한다. 사실상 수소산업과는 관련이 없다. 

NH아문디자산운용은 9월 초 ‘NH-아문디 100년 기업 그린코리아 펀드’를 출시해 한 달 만에 800억 원이 넘는 투자금을 모았다. 이 펀드는 5G 통신, 2차전지 외에도 수소·전기차·풍력발전 관련 기업 등에 투자한다. 삼성자산운용은 9월 중순 신재생에너지·친환경 미래차·디지털 플랫폼 기업 등에 투자하는 ‘삼성 뉴딜코리아 펀드’를 출시했고, 한화자산운용도 최근 재생에너지, 전기차, 수소 등 기후위험 완화산업에 투자하는 ‘한화 그린히어로 펀드’를 출시했다. 

▲ 투자는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 뉴딜펀드도 마찬가지다.

뉴딜펀드와 수소산업의 연관성은 ‘디지털’이 아닌 ‘그린’에서 찾아야 한다. 정부가 내놓은 정책형 뉴딜펀드의 40개 투자 분야 가이드라인을 보면 ‘디지털뉴딜’에는 로봇, 스마트팜, 맞춤형의료, 차세대 무선통신미디어, 차세대 반도체 같은 분야가 포함되어 있다. 앞서 말한 BBIG 업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수소는 ‘그린뉴딜’ 부문에 속한다. 신재생에너지, 친환경발전, 차세대동력장치, 에너지저장 등은 수소와 관련이 있다. 

수소연료전지로 구동하는 수소전기차나 수소선박, 연료전지를 활용한 발전 시장이나 보조전원 시장, 수소충전이나 수소추출을 위한 인프라, 액화수소 설비, 태양광이나 풍력의 미활용 전력을 활용한 그린수소 생산 설비 등 향후 그린뉴딜 부문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투자처라 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6월 에너지신산업펀드의 하위펀드로 ‘수소경제 및 e-신산업 초기기업 육성펀드(수소경제 육성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바 있다. 산업부는 이미 2016년부터 한국전력, 미래에셋 등과 함께 출자한 ‘에너지신산업펀드’를 활용, 수소경제와 에너지신산업 초기기업을 육성해온 바 있다. 

수소경제 육성펀드의 경우 간접투자 재원(289억 원)에 민간·정책자금(최소 51억 원)을 매칭해 340억 원 이상 규모로 조성되며, 투자기간은 펀드 결성일로부터 4년 이내, 존속기간은 펀드 결성일로부터 10년 이내로 잡고 있다.

수소경제 육성펀드는 수소경제 연관 산업 분야와 신재생에너지, 에너지저장 등 에너지신산업 분야의 기업(대기업 제외)을 대상으로 투자가 이뤄진다. 에너지인프라자산운용은 지난 8월 BSK 인베스트먼트를 위탁운용사로 선정했으며, 내년 2월 시행 예정인 수소법(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정되는 수소 전문기업을 적극 지원하게 된다. 수소 전문기업은 수소 분야 매출이 30% 이상이거나 수소 관련 연구개발에 20% 이상을 투자하는 기업을 뜻한다. 산업부는 수소경제 육성펀드를 통해 2030년까지 500개, 2040년까지 1,000개의 전문기업을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일관된 ‘수소 정책’이 중요

포털 검색창에 ‘수소’라는 단어를 치면 연관 검색어로 ‘수소 관련주’, ‘수소차 관련주’가 상단에 뜬다. 최근에는 ‘그린수소 관련주’, ‘액화수소 관련주’까지 생겨났다. 수소산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크게 늘었고, 실제로 현장 인터뷰를 다녀보면 시장의 관심이 투자로 이어진 사례를 종종 접하게 된다.

그 배경에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이후 지속돼온 정부의 일관된 ‘수소 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10월 15일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2차 수소경제위원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수소연료전지의 체계적인 보급 확대를 위해 2022년까지 ‘수소발전 의무화제도(HPS)’를 도입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 등이 모두 포함된 기존의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제도에서 연료전지만 분리해 별도의 의무 공급시장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 지난 7월 17일 전북 부안의 서남권 해상풍력 실증단지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

이를 통해 2040년 연료전지 보급량을 8GW까지 달성하고 향후 20년간 25조 원의 투자를 창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도시가스 사만 가능했던 천연가스 공급체계를 바꿔 한국가스공사가 대규모 수소제조사업자에게 천연가스를 직접 공급할 수 있도록 허용해 수소공급 가격을 떨어뜨릴 방침이다. 

친환경 그린수소와 달리 탄소를 배출하는 그레이수소(추출수소) 공급을 의무화하는 것은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2030년 수전해를 통한 그린수소 생산기술이 상용화되기 전까지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때까지는 부생수소나 추출수소를 활용해 연료전지를 발전하는 방식을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연료전지 보급 확대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 시장은 이런 ‘신호’를 정말 중요하게 본다. 시장이 확보되면 기업은 인력을 충원하고 관련 설비를 늘린다. 투자자들도 수익 실현을 위해 펀딩에 나선다. 내년에 수소법이 시행되고, 안전에 대한 우려로 막혀 있던 관련 규제들이 하나둘 풀리면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다.

나라별로 체감상 차이가 있지만,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태양광·풍력·수력 등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일은 시대의 화두가 됐다. 유럽연합은 27개 회원국이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제로화하는 탄소 중립 목표에 합의했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 주석도 UN총회 연설에서 “중국의 탄소 배출량이 10년 내 정점을 찍고 2060년까지 탄소 중립에 도달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또 스타벅스와 애플, 구글 등 글로벌 기업은 필요 에너지를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100% 대체하는 RE100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 태양광과 풍력은 대표적인 그린뉴딜 인프라에 든다.


시민 참여형 펀드

지난 2017년 2월 서울시는 상암동 노을연료전지 준공을 앞두고 ‘노을연료전지 발전 펀드’를 판매한 적이 있다. 총 사업비 1,219억 중 기관투자자가 1,105억 원을 부담하고, 약 9%에 이르는 114억 원을 시민펀드로 돌렸다. 1인당 투자금 한도를 1,000만 원으로 설정했고, 공모액 114억 원은 한 시간 반 만에 모두 팔려나갔다. 

3년 만기로 중도환매가 불가한 폐쇄형 펀드로, 기관 투자로 자금을 조달하던 기존 연료전지 발전사업과 달리 펀드 판매 방식으로 서울 시민을 참여시킨 것이 특징이다. 서울시는 지난 2월 펀딩을 한 시민 1,195명에게 투자원금과 연이율 3.9%에 해당하는 13억3,700만 원을 상환했다. 시민을 지역에너지 발전 사업에 참여시켜 수소에너지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그 수익을 공유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P2P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루트에너지’도 주목할 만하다. 루트에너지는 태양광, 풍력 발전소 건설을 위한 자금을 모아 공공기관이나 민간 발전사업자에 대출해주고, 수익금을 투자자에게 나눠주는 ‘커뮤니티 펀드’ 서비스를 제공한다. 루트에너지는 발전소가 들어서는 특정 지역 주민에게만 투자를 받거나 해당 지역 주민에게 더 많은 이자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참여를 유도한다. 태백에 풍력발전소를 세울 때 태백 주민에게 펀딩을 받고, 목표 금액이 차지 않으면 강원도나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식을 취한다.

“태백 가덕산 풍력발전소만 해도 강원도청, 한국동서발전 등 공공기관이 추진하는 사업에 지역 주민과 시민이 투자해 이익을 공유하는 대규모 주민 참여형 모델이죠. 공공기관이 차주(借主)로 20년간 전력 판매 계약이 완료된 상품이고, 금감원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투자금과 상환금을 NH농협은행이 신탁 관리해 투자자들이 장기간 안정적인 매출원을 확보할 수 있죠.” 루트에너지 윤태환 대표의 말이다.

루트에너지는 개인 투자자에게 평균 10% 수익의 상품을 제공한다. 리스크가 높은 개발이나 시공 단계 프로젝트는 10~13%가 넘는 수익률을 제시하고, 발전소가 준공되어 운영 중인 사업은 6~8% 수익률을 제공하는 식이다. 다만 윤 대표는 수소연료전지 발전사업에 일반 국민이 투자자로 참여하는 데는 몇 가지 도전 과제가 있다고 했다. 그는 K-뉴딜위원회 그린뉴딜분과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 SE그린에너지가 운영 중인 19.8MW의 화성 연료전지 발전소로, 블룸에너지의 SOFC가 설치되어 있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은 10년 정도 안정적으로 운영하면서 그동안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쌓아온 기술적, 사업적 신뢰 자본이 있죠. 연료전지는 그에 반해 운영 기간이 짧았고 기술적, 사업적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어요. 대부분 외국 기술인 데다 장기유지보수계약에도 어려움이 있었고, 천연가스 가격에도 변동성이 있죠. 또한 ESS처럼 안전에 관한 문제나 온실가스 배출을 오히려 증가시킨다는 한계점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수소 관련 기술이 안정화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연료전지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죠. 태양광, 풍력처럼 국산 기술을 적용하거나, 탄소인증제를 통해 그린수소처럼 탄소 배출이 낮은 경우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필요합니다.”

현재 국내 수소연료전지 기술은 초기 단계이고, 새로운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고위험 자본인 벤처투자가 활성화돼 신기술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는 것도 좋다고 본다. 하지만 수소연료전지의 대규모 상업용 프로젝트들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앞서 언급한 여러 이슈와 한계점들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래저래 넘어야 할 산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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