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경화학의 허승식 공장장(좌)과 유재준 본부장(우)에게 ‘수전해 평가장비’의 작동법에 대해 들었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의 김창희 박사 연구팀이 수전해 장치의 성능을 평가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했다는 소식을 접한 게 지난 7월이다. 수전해는 물에 전기를 흘려 수소와 산소로 분해하는 방법이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그린수소 생산 방법으로 오래전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그런 수전해가 요즘 ‘핫’하다. 지난 7월에 발표된 ‘유럽 수소전략’만 하더라도 2030년까지 역내에서만 최소 40GW의 수전해 장치를 설치하고, 최대 1천만 톤의 청정수소 생산을 지원하는 등 ‘수전해’에 대한 투자가 집중될 전망이다. 이래저래 에기연에서 개발한 ‘수전해 장치 성능 평가장비’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하지만 이 장비를 만드는 기술은 이미 팔렸다. 수경화학이란 업체가 작년 10월에 기술이전을 받았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하 에기연) 김창희 수소연구단장에게 연락처를 수소문했고, 그는 김문언 대표를 연결해줬다. 여기까지가 천안 풍세산업단지에 있는 수경화학 본사를 찾은 사연이다. 

▲ 천안 풍세산업단지에 있는 수경화학 본사.


에기연 통해 수전해 평가장비 기술이전

“재작년 8월에 정부가 수소경제를 3대 전략 투자 분야로 선정하고 작년 1월에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공개했죠. 그때부터 관심을 두고 ‘수소’ 쪽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한 세미나에서 에기연 김창희 수소연구단장이 한 발표를 듣고 수전해 평가장비에 매력을 느껴 기술이전을 받게 됐죠.”

수경화학 김문언 대표이사의 말이다. 사실 그는 수소에 대한 기억이 별로 좋지 않다. 노무현 정부 때 ‘친환경 수소경제 구현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발표한 적이 있고, 2005년을 전후로 수소가 반짝 주목을 받다 흐지부지된 기억을 안고 있다. 당시 수소 사업에 뛰어들었던 지인들은 결말이 좋지 못했다.

“수소경제로 넘어가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랄까, 5년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는 긍정의 신호를 봤다고 해야겠죠. 사실 R&D에 집중하는 연구소와 달리, 기업을 운영하는 대표 입장에서 장밋빛 전망만 쫓기는 어려워요. 이 분야 또한 중소기업이 뛰어들어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면 고비를 몇 번은 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하고 있죠.”

김문언 대표가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는다. 수경화학은 지난 2007년에 설립됐다. 건축물이나 냉장고, LNG선 등에 들어가는 단열재용 폴리우레탄을 중심으로 냉매가스, 식각제, 세정제 등을 생산하고 있다. 이차전지(배터리) 쪽으로는 전해액이나 양극재를 오래 했고, 여기에 태양광과 수소에너지를 묶어 ‘그린 케미컬 사업부’를 작년에 신설한 바 있다.

▲ 수경화학 김문언 대표는 수전해 시스템 개발에도 관심이 있다.

“수소만 놓고 보면, 향후 시스템 개발과 관련 고분자 소재 개발을 같이 할 생각입니다. 에기연 기술이전을 통해 그만큼 시간을 벌었다고 할 수 있죠. 수전해 평가장비 기술을 바탕으로 연료전지 쪽과 연계한 정부 과제 등에 참여하면서 비즈니스에 대한 방향을 잡아나갈 생각입니다. 수전해 시스템 평가를 넘어 그린수소 생산 시스템 개발까지 한번 가보자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죠.”

수경화학은 소재 분야에 강점이 있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의 기술혁신개발사업 과제에 선정된 ‘이온교환용 불소수지가 코팅된 알칼라인 수전해용 다공성 하이브리드 분리막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제는 올해 7월부터 2022년 6월까지 2년간 진행된다.

수경화학은 또 지난 2월 전라북도가 추진 중인 ‘새만금 그린수소 생산 클러스터 조성사업’에 이름을 올렸다. 전북테크노파크, 새만금개발청 등을 중심으로 새만금을 재생에너지의 메카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로, 현재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이다.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단지와 연계한 수전해로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대규모 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라 기대가 크다.

수소와 산소의 유량·농도를 실시간 측정

서두가 길었다. 그린 케미컬 사업부 유재준 본부장과 연구소 소속의 이병용 이사를 따라 본사 1층에 있는 ‘그린 케미컬 랩’으로 향한다. 이병용 이사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수소·연료전지연구단 소속으로 있다 최근 수경화학에 새롭게 영입됐다. MCFC와 SOFC, 천연가스 개질을 통한 수소 생산 쪽 연구를 오래 했고, 수소산업 기술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사업이나 연구 방향성을 잡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유재준 본부장이 수전해 평가장비 앞에서 작동 원리를 설명한다. 통상 국내 평가 장비는 전류를 흐르게 했을 때 나타나는 수전해 셀의 전압만으로 성능과 효율을 평가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실제 수소와 산소가 생산된 양을 정확히 검증할 수 없다. 이를 보완한 것이 에기연의 수전해 평가장비다. 산소의 양은 전기화학 센서로 측정하고, 수소는 열전도도 방식의 센서로 측정한다. 

“수전해 셀을 운전할 때 생성되는 수소나 산소 기체의 유량과 농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어요. 통상적인 전압 효율뿐 아니라, 수소나 산소의 혼합 정도, 인가되는 전류 대비 생성된 수소의 양(전류 효율)까지 동시에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죠.”

▲ 허승식 공장장이 수전해 평가장비에 로드셀을 연결하고 있다.

간헐성과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수소를 생산할 경우, 불안정한 전력 부하로 수전해 시스템 성능이 크게 떨어지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 특히 기상 조건의 변화로 재생에너지가 수전해 시스템에 부하 대비 0~20% 정도로 적게 공급되면 수소와 산소가 섞일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날씨에 따라 전기 생산량이 변하는, 즉 부하변동성이 큰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수전해 시스템의 운전 환경에서 흔히 겪는 일이죠. 수전해 셀 개발 단계에서 이런 정확한 데이터를 받아볼 수 있어야 신뢰성 있는 셀을 만들 수 있어요.”

제주의 풍력발전과 연계한 PEM 수전해 장비를 만든다고 가정할 경우, 셀 크기를 축소해 실시간 운전으로 정확한 성능을 평가할 수 있다. 스택이 아닌 셀 단계에서 부하변동에 따른 배출가스의 농도 변화와 유량 측정을 동시에 진행해, 연구개발 단계에서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일이 가능하다. 

평가장비 시연을 위해 수전해 평가장비 제조 파트를 총괄하는 허승식 공장장이 수전해 평가장비에 로드셀(Load Cell)을 연결한다. 로드셀은 수전해용 셀을 조립할 때 가해지는 힘이나 하중을 정밀하게 제어한 셀을 말한다. 수경화학의 수전해 평가장비는 로드셀뿐 아니라 일반 셀이나 스택도 바로 연결해서 측정할 수 있다. 

“여기 위쪽을 보면 아시겠지만, 채널이 두 개예요. 셀 두 개를 연결해서 동시에 측정하는 것도 가능하죠. 제가 지금 들고 있는 싱글 셀도 바로 연결해서 측정할 수 있습니다.”

▲ 두 개의 채널로 구성되어 셀 두 개를 동시에 측정할 수 있다.

▲ 저항과 전압을 측정하는 장비.

수전해 셀의 경우 그 크기를 규정한 표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수전해 연구가 활발한 독일이나 미국은 가로세로 각각 2cm 또는 5cm 크기의 로드셀을 기본으로 쓰고 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 독일의 프라운호퍼(Fraunhofer)나 율리히(Jülich) 연구소와 교류할 때 2×2cm 크기의 로드셀을 썼다. 이는 국제에너지기구(IEA) ANNEX 30 수전해 분과에서 논의를 통해 제정한 측정 방법으로, 이 크기를 표준셀로 보는 곳이 많다.

이병용 이사의 말에 따르면 “연구자들이 데이터 검증을 위해 교차 측정을 할 때 기본이 되는 표준이 필요한데, 이 부분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가 독일”이라고 한다. 셀이 체결된 압력에 따라서도 셀 성능이 다르게 나올 수 있는 만큼, 소재에 대한 성능만 놓고 보면 표준셀로 측정을 해야 데이터의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 

“에기연이 충남대와 교차 측정을 통해 데이터상에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걸로 알아요. 향후 5×5cm 크기의 로드셀이 표준이 될 확률이 높다고 보고, 이 크기에 맞춰 셀 어셈블리 장치를 제작한 셈이죠.”

▲ 수전해로 생산된 수소와 산소의 양을 정확히 알 수 있다.

▲ 5×5cm 크기로 제작된 로드셀을 모두 연결한 상태다.


알칼라인·PEM 대응 가능한 다채널 평가장비

수소는 자연에 존재하는 가장 풍부한 원소지만 석유·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나 물 같은 화합물로 존재하기 때문에 따로 추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개질을 통해 화석연료에서 수소를 추출하는 방식은 온실가스가 다량 배출돼 일명 ‘그레이(Grey)’ 수소로 불린다. 친환경 에너지를 표방하는 수소의 생산 방식으로는 맞지 않다는 지적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이유다. 

진정한 의미의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재생에너지와 연계해 전기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방식이 꼭 필요하다. 바로 이 ‘그린’ 수소를 생산하는 핵심기술이 수전해다. 상용화된 가장 대표적인 기술로는 알칼라인(Alkaline) 수전해, PEM(Proton Exchange Membrane, 양성자교환막) 수전해를 들 수 있다.

“이 장비는 PEM뿐 아니라 알칼라인에도 적용할 수 있어요. 알칼라인 수전해의 경우 다공성 막을 쓰는데, 산소와 수소의 압력 차이를 제어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죠. 수소와 산소가 섞일 수 있고, 이 경우 작은 불꽃만으로 폭발이 일어날 수 있어요. 크기가 작은 시스템은 별 문제가 안 되지만, 향후 100kW 정도 되는 실증 사이트의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죠. 물론 이런 문제를 제어하는 기술은 에기연에서 전수를 받았습니다. 시스템 안에서 어떤 부분을 조정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죠.” 

▲ 허승식 공장장이 싱글 셀을 들고 있다.

▲ 싱글 셀을 수전해 평가장비에 바로 물려 성능을 측정할 수 있다.

이병용 이사는 1~2kW 이하의 작은 셀에서 시작해 100~300kW에 이르는 큰 용량의 스택을 평가하는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 소재 분야의 장점을 살려 ‘수전해 시스템’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수경화학의 목표다.

“수소를 하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전해를 빼고 가기는 어려워요.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분야죠. 이번에 기술이전을 받은 수전해 평가장비의 경우, 여러 수요처의 다양한 요구에 기술적으로 바로 대응하는 경험이 아직은 부족한 게 사실이에요. 이런 요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연구개발을 통해 기술적인 완성도를 높여가야죠.”

수경화학의 수전해 평가장비는 벌써 두 대가 팔렸다. 대학교와 연구소에 판매가 됐고, 기업체나 기관에서도 꾸준히 의뢰가 들어오고 있다. 향후 수전해 연구가 활발해지면 그 수요가 늘 것으로 전망된다. 

제품의 성능과 완성도는 올바른 평가에서 시작된다. 셀의 성능이 좋으면, 부피를 키운 스택의 성능도 좋을 수밖에 없다. 수경화학의 평가장비를 통해 앞으로 어떤 수전해 장치가 개발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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