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남 판교 사무실 입구에 ‘당신의 성공을 위한 엔지니어링’이란 문구가 붙어 있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집에 오래된 은색 만년필이 있다. 파카(Parker) 제품이다. 그래서 유독 친근했다. 산업용 모션제어부품을 만드는 제조사인 파카하니핀을 만나러 성남 판교로 향하는 길이다. 파카하니핀그룹은 포춘 250대 기업에 드는 글로벌 업체로, 2017년에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한국에는 지난 1986년에 진출했다.

파카하니핀코리아 인스트루멘테이션 프로젝트팀의 심창수 상무가 반갑게 악수를 청한다. 파카 만년필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전기밥솥으로 응수한다.

“전기밥솥 뚜껑에 있는 증기 배출밸브 아시죠? 그것도 파카 제품입니다. 잠실 롯데월드에 있는 놀이기구에도 우리 제품이 들어가 있고, LPG 충전소나 CNG 충전소에서 쓰는 호스나 밸브 중에도 파카 제품이 많죠. 아마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을 겁니다. 유압이나 유체를 다루는 부품들이라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안 띄니까요.”

Autoclave사 밸브로 KOLAS 시험 신청

파카코리아를 찾은 건 밸브 때문이다. 파카코리아는 수소충전소용 니들밸브와 체크밸브로 한국가스안전공사 에너지실증연구센터의 KOLAS 시험을 통과했다. 수소와 관련한 부품으로는 국내 최초에 든다. 이번에 시험을 통과한 밸브류는 파카 오토클레이브 엔지니어(Autoclave Engineers)에서 수소충전소용으로 특별히 개발한 제품들이다.  

▲ 파카코리아 심창수 상무가 이야기 중에 웃고 있다.

“파카하니핀에서 8년 전에 인수한 오토클레이브 사의 밸브들이죠. 오토클레이브 엔지니어는 1945년에 설립되어 지금까지 75년간 고압산업 분야에서 신뢰할 만한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왔죠. 1만5,000psi(1,000bar)부터 15만psi(1만bar)에 이르는 초고압까지 대응을 해요. 콘앤스레드 방식의 연결 부품을 공급하는 회사들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됐다고 보시면 됩니다.”

콘앤스레드(Cone and Thread)는 유체가 지나는 관을 조립하는 튜빙의 핵심 작업에 든다. 튜브 끝을 연필심처럼 경사지게 깎고 나사를 체결하기 위한 골을 낸 뒤 칼라와 글랜드를 끼우고 렌치로 조여 피팅 작업을 마무리하게 된다. 석유화학이나 가스 설비 등 고온의 액체나 고압가스 분야에 꼭 필요한 작업이다.

“오토클레이브에서 수소충전소 전용으로 제작한 니들밸브는 영하 73℃에서 영상 316℃까지, 최대 2만psi(1,379bar)의 압력을 견딜 수 있죠. 실험 결과에 따르면 경쟁사 대비 4배 이상 긴 수명을 자랑하죠.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걱정을 했어요. 사실 밸브 쪽으로 해서 이런 가혹한 시험을 실시한 예가 없거든요. 해외도 마찬가지고요. 가스안전공사에서 처음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국가기술표준원은 지난 2018년 12월 26일 수소충전소용 밸브 KS 표준(KS B ISO 19880-3)을 제정하고, 2019년 7월 밸브 3종(수동·체크·유량조절밸브)을 KS 인증 품목으로 지정했다. 또 그해 10월에 인증 심사기준을 마련하고 가스안전공사에 KOLAS 공인시험기관 자격을 부여했다. 가스안전공사에서 수행하는 시험을 통과하면, 국제시험기관인정협력체(ILAC)의 상호인정협정에 따라 미국·유럽 등 주요 국가 시험기관이 발행한 공인성적서와 동일한 효력을 갖게 된다.

니들밸브, 체크밸브로 수소충전소 시장 진출

심창수 상무가 KOLAS 밸브 시험 항목을 보여준다. 수동밸브는 7개, 체크밸브는 4개 항목이 있다. 시험 비용이 상당했다. 마지막 시험은 검사비가 1억 원 가까이 들었다.

“2월 초에 시작해서 3개월 이상 걸렸습니다. 시험 비용은 50% 할인을 적용받았지만, 샘플 준비부터 해서 이것저것 따지면 2억 정도 들었을 겁니다. 시험 신청을 한 밸브는 두 종류지만, 크기로 보면 1/4인치, 3/8인치, 9/16인치, 3/4인치, 1인치 등 각각 다섯 가지가 해당되죠. 니들밸브는 대중소 3개 치수에 모두 21개, 시험 항목이 조금 적은 체크밸브는 12개 정도 샘플이 들어간 걸로 기억해요.”

밸브는 크기별로 나눠 시험을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 5월에 결과가 나왔다. 수소가스 압력 반복시험, 외부 누출시험과 내부 누출시험, 가혹 조건 압력 반복시험, 기밀시험, 내압시험, 수압시험 등 까다로운 시험을 거쳐 ISO 19880-3 제품 심사를 통과했다. 파카코리아의 SM 니들밸브(수동밸브)와 CXO 체크밸브는 시장에서 안심하고 써도 좋다는 국제 공인인증을 받은 셈이다. 

▲ 이번에 KOLAS 시험을 통과한 밸브 2종이 포함된, 파카 오토클레이브 엔지니어의 밸브 제품들.

수동밸브는 핸들을 조정해 가스 흐름을 제어하고, 체크밸브는 한쪽 방향으로 가스를 흐르게 하는 역할을 한다. 두 제품은 수소충전소용으로 1,000bar나 1,379bar의 압력에 대응하는 연결 부품으로 쓰임이 많고, 분자 크기가 아주 작은 수소기체를 효율적으로 밀폐하는 특수 기능을 갖추고 있다.

수소충전소용 밸브는 설계단계검사와 생산단계검사를 받는 기존 가스용품과는 달리 가스안전공사의 KOLAS 시험에 통과하거나 KS 인증을 받게 되면 바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 다만 KS 인증은 KOLAS 시험과는 또 달라서 다시 비용을 들여 절차를 밟아야 한다. 

“수소는 700bar가 넘는 고압으로 다루기 때문에 안전이 가장 중요합니다. 부품의 내구성도 중요하고, 콘앤스레드만 해도 현장의 작업자가 매뉴얼대로 정확하게 작업하지 않으면 안 되죠. 밸브 인증과 관련해서는 그동안 혼선이 있기도 했고, 현장에선 지금도 인증 밸브를 써야 하는지 헷갈려 하는 분들이 많아요. 시간이 흐르면 이런 부분들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될 거라고 봅니다.”

파카코리아는 KS 인증도 준비하고 있다. KS 인증기관에서 실시하는 제품심사와 공장심사를 통과해야 인증을 받을 수 있다. KOLAS 시험을 통과한 만큼 3개월 이상 소요되는 시험 항목에 대해서는 면제를 받아 인증에 드는 시간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3개 공장으로 이뤄진 파카하니핀코리아

파카하니핀코리아의 법인은 3개다. 경기도 화성 장안첨단산업단지에 있는 파카코리아, 경남 양산의 파카하니핀커넥터, 경기도 시흥의 파카한일유압의 3개 공장으로 이뤄진다. 또 부산에 기술 서비스센터를 따로 운영해 조선소나 해양 플랜트 쪽 설비에 대응하고 있다. 

화성 장안산단에 있는 파카코리아는 전동제어, 인버터, 공압, 유압, 계장(計裝) 기기와 필터 제품을 생산한다. 자동화 설비, 건설 중장비, 자동차 제조 설비, 산업용 공조 시스템, 반도체 설비 등 그 분야가 넓다. 

▲ 경기도 화성 장안 공장 1층 쇼룸에 밸브 제품이 진열되어 있다.

경남 양산에 있는 파카하니핀커넥터는 유체 제어를 위한 호스나 피팅 제품을 주로 생산한다. 건설 중장비, 특장차, 농기계, 전동차, 자동차에 연간 천만 단위의 피팅과 호스를 공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시흥에 있는 파카한일유압은 중장비용 유압 제품 전문 제조사로 굴착기와 지게차, 특장차의 메인 유압 컨트롤 밸브나 펌프 등을 생산한다. 

“현대중공업이나 볼보, 두산인프라코어 같은 중장비 업체가 주요 고객사죠. 현대중공업이나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같은 조선 3사의 경우에는 LNG선이나 플랜트 쪽으로 수요가 많습니다. 반도체 쪽은 아시다시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요 고객사죠. 제품의 생산 비중을 보면 70% 남짓 국내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죠.”

수소 분야로 한정하면 파카 오토클레이브 엔지니어의 제품을 쓴다고 보면 된다. 미국 펜실베니아 공장에서 해양, 식음료, 시험기기 같은 분야에 들어가는 초고압 밸브, 피팅, 튜빙 제품을 설계하고 제조하는 회사로 잘 알려져 있다. 극한의 압력과 온도에서 작동하는 제품을 개발하면서 75년간 쌓아온 기술력이 큰 자산이다.

“축적된 시간이 필요해요. 제품을 현장에 적용해서 긴 시간을 두고 미세한 교정을 거쳐 확보한 자료들이 꼭 필요하죠. 이런 건 함부로 모방할 수 없으니까요. 안전이 가장 중요해요. 실제로 현장에서 그런 위험한 상황을 자주 맞닥뜨리기도 하고요.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고객을 상대로 튜브안전설치 교육을 진행하고 있고, 가스안전공사와 협의 하에 배관 설치·유지·보수 교육 과정을 마련하는 방안을 찾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심창수 상무는 ‘수소산업’에 대한 의견을 묻자 15년 전 이야기를 꺼낸다. 현대차가 마북리 연구소에서 수소연료전지차를 개발할 때만 해도 상용화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수소전기차 한 대를 만드는 데 10억 원이 들었다.

▲ 파카하니핀그룹은 포춘이 선정한 250대 기업에 드는 글로벌 업체다.

“그동안 기술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거죠. 넥쏘가 나오면서 대중화의 길을 열었고, 지금은 수소충전소 인프라를 빠르게 갖춰가고 있으니까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이후로 정부 정책이나 의지가 명확해서 그 변화를 피부로 실감하고 있습니다.”

파카코리아는 수소전기트럭이나 버스에 사용할 수 있는 EHP(Electro-Hydraulic Pumps)를 개발했다. 수소연료전지로 움직이는 트럭이나 버스에 꼭 필요한, 배터리의 발열을 식혀주는 쿨링 시스템에 적용된다. 디젤 엔진 버스에서 쓰던 대형 팬을 대신해 유압 모터를 전기드라이브로 제어하는 방식으로 쿨링 시스템을 완성했다.

당신의 안전을 위한 엔지니어링

당신의 성공을 위한 엔지니어링(Engineering Your Success). 장안 공장의 1층 쇼룸에서 본 캐치프레이즈가 판교 사무실 입구에도 붙어 있다. 파카하니핀그룹의 비전을 담은 성공 전략(Win Strategy) 목표도 어디를 가나 빠지지 않는다. 직원의 몰입도와 참여도를 담은 첫 번째 목표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안전’과 ‘무사고’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안전이 가장 중요합니다. 현장에서 고압의 기체를 접해본 작업자라면 이 말의 중요성을 절감할 겁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안전사고 앞에서는 맥을 못 추죠. 시간이 들고 돈이 들더라도 절차를 하나하나 밟아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파카코리아는 오토클레이브 엔지니어의 밸브나 피팅 제품 외에도, 고압용 호스 판매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미 양산 공장에서 LPI(액화석유가스 분사) 호스를 생산해 LPG 차량에 공급하고 있고, CNG 버스의 경우에는 200bar CPI 피팅, 튜빙, 밸브 관련 제품을 오래전부터 납품해왔다. 

▲ 작업자의 숙련도와 함께 안전을 중시한다.

“수소충전소에 쓰는 호스는 더 높은 사양을 요구해요. 수소충전소만 놓고 보면 노즐과 연결된 호스 쪽에 가스가 새는 고장이 잦은 편이죠. 이번에 파카 독일공장의 폴리플렉스(Polyflex Division)에서 새롭게 출시한 수소충전소용 호스는 ISO 19880-5를 만족하는 제품이죠. 제품이 출하되기 전에 100% 수소로 실험과 검사를 거쳐 공급이 돼요. 영하 40℃ 환경에서도 급속 충전이 가능한, 가장 안전한 제품으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업계에서는 LPG나 CNG에서 수소 쪽으로 넘어가는 시장의 흐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 있다. 그에 따라 압력이 크게 오르면서 안전 기준도 훨씬 높아졌다. 파카코리아는 두 가지 밸브의 KOLAS 시험 통과를 계기로 수소충전소 인프라 구축 시장에 전략적으로 뛰어들었다. 반가운 건 ‘성공’ 이전에 ‘안전’을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문으로 보면 성공(Success)이나 안전(Safety)이나 같은 이니셜을 쓴다. Engineering Your Safety. 이렇게 읽어도 이상하지가 않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면 ‘성공’도 없다. 비단 파카코리아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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