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비행기 한 대가 김해국제공항으로 내려앉는다. 낙동강 다리를 건너 한국마사회에서 운영하는 렛츠런파크를 가로지르는 길이다. 한국해양대학교에서 버스로 한 정거장 거리에 있다. 1005번 급행버스에서 내려 조금만 가면 미음산단3로에 있는 주식회사 대하를 만날 수 있다.

미음산단에는 외국계 기업이 많다. 조선·해양 고압가스 압축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부르크하르트 컴프레이션(스위스), 세계적인 산업용 유압기기 전문회사인 보쉬렉스로스(독일)도 이곳에 있다. 대하의 주 업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압력시험장비, 잭업시스템, 볼팅솔루션. ‘대하’라는 회사는 이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CNG 용기 시험으로 고압기체 입문

“대하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초고압’입니다.” 허기 대표이사가 첫 만남에서 꺼낸 말이다. 대하는 지난 15년간 유압, 수압, 기체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고압테스트 장비를 납품해왔다. 또 유압잭과 유압공구, 전동펌프 등을 공급하면서 장치 국산화에도 노력을 기울여 조선, 중공업, 건설업, 방위산업 분야에서 든든한 파트너 사로 자리매김했다. 

▲ “대하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초고압입니다.” 허기 대표의 말이다.

“수소와의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0년에 가스안전공사가 버스용 CNG 용기를 의뢰하면서 고압기체 분야에 처음 발을 들였죠. 신뢰성 평가를 위해 하루 스무 시간 넘게 시험기를 돌리면서 압력 상승, 복귀를 1만 회 이상 반복하다 보니 장비에서 문제가 생겼어요. 용기는 멀쩡한데 밸브가 압력을 못 견디는 거죠. 그때 공부를 제대로 했습니다.” 

주객이 전도되어 용기 시험은 어느새 장비 시험이 되어버렸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 이런 고압, 고유량의 압력시험기에 대한 규격이나 실적이 전무했다. 내구성이 좋다는 선진국의 밸브란 밸브는 그때 다 구해서 써봤다. 품질에서 확연한 차이가 났다. 결국 스위스와 미국 업체 부품을 구해 시험장비를 완성했다. 수주 금액의 30%나 적자를 봤으니 값비싼 수험료를 치른 셈이다.

대하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CNG에 집중하면서 고압 시험기 분야에 실력을 다졌고, 이를 바탕으로 2015년부터 지금까지 900bar가 넘는 초고압 수소 분야에 진출해 한국가스안전공사, 한화솔루션, 롯데케미칼, 모토닉, 유니크 같은 업체에 수소 압축기와 시험기를 납품하고 있다. 허기 대표가 카탈로그 사진을 손으로 가리킨다.

“여기 있는 수압반복 시험기, 가스리크 시험기, 내압팽창 시험기, 파열 시험기는 모두 현대차 넥쏘를 개발할 때 사용된 것들입니다. 넥쏘 안에는 52리터짜리 수소 용기 세 개가 들어가는데, 그 용기의 시험도 이런 장비를 통해서 했죠. 현대차가 개발하고 있는 수소전기버스에 들어갈 용기의 시험장비도 우리 회사에서 만들 예정입니다.”

▲ 롯데케미칼에 납품된 수압반복 시험기.(사진=대하)

지난 2016년 10월에 문을 연, 강원도 영월의 가스안전공사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에도 대하의 시험기가 들어가 있다. 특히 내부 압력과 온도를 변환할 수 있는 ‘수소용기 반복시험기’는 대하가 공을 들여 직접 개발했다. 수소 관련 부품에 대한 KS인증 시험과 검사를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에서 수행하는 만큼, 초고압 시험기에 대한 대하의 기술력은 ‘국가 공인’을 받은 셈이다. 

경험·아이디어 풍부한 설계팀이 강점

지난해 정부의 수소경제 로드맵이 발표되고, 올해 ‘수소법’이 제정되면서 확실히 시장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업 초기에는 가스안전공사, 기업이나 대학 연구소, 시험대행기관에 주로 납품을 했다면, 지금은 자동차 관련 업체나 드론 업체, 밸브 제작사 등 납품처가 다양해졌다. 

대하의 제품으로는 유압왕복동식 수소압축기와 에어구동 수소부스터 시스템이 있다. 구동 방식에 차이가 있지만, 왕복동식 수소압축기는 충전소와 대형용기 시험에 주로 쓰이고, 에어구동 수소부스터는 소형으로 각종 시험이나 가스누출(Leak) 시험기로 주로 쓰인다.

“우리가 납품하는 제품은 똑같은 모델이나 사양이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기성품이 아니라 오더메이드(order made)죠. 대부분 고객의 사용 환경, 시험 방식, 요구 조건에 맞게 수작업으로 설계와 제작이 이뤄져요. 본관 3층에 기술연구소가 있는데, 설계 일을 하는 직원만 여섯입니다. 이 정도 인력을 갖추고 고객의 요구에 맞는 품질의 제품을 설계해서 직접 생산하는 회사는 드물다고 자부합니다.”

▲ 본관 3층 기술연구소에서 설계팀이 회의를 하고 있다.

수소충전소에 들어가는 고압의 압축기만 해도 현장에 맞게 설계를 해서 설치에 나선다. 수소용 고압 압축기의 경우 외국산은 PDC, 린데, 호퍼, 하이드로팩 등이 있고, 국산으로는 광신기계공업과 지티씨의 제품이 있다. 대하는 이중 하이드로팩(Hydro-Pac) 제품을 취급한다.

“40년간 고압 수소용 가스 압축기를 만들어온 미국 업체입니다. 독일의 호퍼사와 같은 피스톤 타입이죠. 하이드로팩의 압축기와 어셈블리만 수입을 해서 모터, 안전밸브 등을 현장에 맞게 설계해서 설치합니다. 작년 10월에 가스안전공사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에 납품을 해서 가동 중이고, 올해는 대전 테크노파크에 있는 시험센터에도 납품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극한의 조건에서도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는 제품이죠.”

수소는 700bar의 압력, 영하 40℃의 저온 상태로 충전이 된다. 고장률이 낮다는 건 그만큼 제품의 내구성이 좋다는 뜻이다. 하이드로팩 압축기의 경우 대하의 AS팀에서 대응하기 때문에 수리 시간이나 비용 면에 장점이 있다.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리거나, 볼트를 조였다 푸는 장비를 잘 갖추고 있어 언제든 현장 대응이 가능하다. 

 

▲ 미국 하이드로팩의 FLEXI-POWER 고압가스 압축기로 700~4,150bar의 압력을 제공한다.


헤비리프팅을 위한 유압 제어시스템

헤비리프팅과 볼팅솔루션은 대하의 전문 분야다. 헤비리프팅(Heavy Lifting)은 말 그대로 무거운 걸 들어 올린다는 뜻이다. 대하는 유압을 활용한 ‘스트랜드 잭(Strand Jack)’과 ‘고압 갠트리 크레인’ 작업을 통해 굵직굵직한 현장을 소화했다. 서울만 해도 서울월드컵대교, 잠실 올림픽 체조경기장, 서울복합화력발전소(당인리발전소) 건설에 대하의 리프팅 장비가 쓰였다. 또 서울역 KTX와 경의선·인천공항선을 연결하는 환승통로 확장 공사에도 이름을 올렸다.

“조선업이 활황일 때 삼성중공업과 협력해서 BOP 테스트 유닛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BOP(Blow out Preventer)가 바다 밑에서 오일을 끌어올릴 때 폭발을 방지하기 위한 핵심장비예요. 이걸 테스트하는 장비를 대하가 만들었죠. 노르웨이의 국영 정유사인 스탓오일(Statoil)의 메이저 선주 승인 하에 BOP 테스트 펌프 개발에 성공해서 납품을 했습니다. 그전에는 수입에만 의존하던 장비죠.” 

GS건설과도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왔다. 수서·평택 간 수도권고속철도를 건설하면서 기존 경부고속철도가 지나는 팽성1고가 하부에 세계 최초로 적용한 ‘유압 제어시스템’도 대하의 기술이 있기에 가능했다. 경부선 KTX 고가 선로가 수도권고속철도 터널 공사 현장 위를 가로지르는 바람에 지반 침하의 우려가 있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8,000톤의 하중을 견디는 유압잭을 팽성1고가 하단에 설치, 기차 운행에 따른 흔들림이나 충격을 자동으로 지탱하게 만들어 큰 화제가 된 공사다. 

▲ 대하는 스트랜드 잭을 활용한 유압 제어시스템에 큰 강점이 있다.

울산화력본부 내 노후 기력발전 연돌 해체공사도 빠뜨릴 수 없다. 주 연료 연소에 꼭 필요한 연돌 내부의 연통을 해체·철거하는 작업에 스트랜드 잭 유압시스템이 투입됐다. 환경오염, 소음 문제가 있는 기존의 폭파 방식 대신, 연돌을 층층이 절단해 스트랜드 잭으로 하나씩 옮겨서 철거했다. 

“볼트와 너트의 인장시험, 용기시험 정도는 어디나 다 해요. 하지만 유압과 압력으로 이를 핸들링하는 회사는 드물죠. 초고압, 그리고 헤비리프팅. 우리는 이 분야에 강점이 있습니다.”

대하는 스트랜드 잭을 인류 최대 ‘인공태양’ 프로젝트로 불리는 국제 열핵융합 실험로(ITER) 프로젝트의 하중시험(Load Test)에도 적용한 바 있다. 


이동식 수소충전소에 관심

대하는 올해로 창립 15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CNG로 ‘고압’의 기술력을 쌓은 업체들의 행보를 대하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수소로 대표되는 ‘초고압’ 시장에 거는 기대는 상당하다. 창립 15주년을 맞아 제2의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삼겠다는 각오와 자신감이 허기 대표의 표정에서 묻어난다.

“압력에 대한 고객의 요구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초고압으로 갈수록 안전을 위한 내구성이 더 중요해지죠. 수소산업이 발전하면서 관련 업체들이 제품 개발 경쟁에 뛰어들고, 연구와 실증이 더 활발해지면 시험장비의 수요는 더 커질 겁니다. 우리는 그 요구와 눈높이를 맞출 수 있습니다.”

대하는 지역의 테크노파크에 수소 관련 제품과 개발 장비를 납품하고 있다. 또 한국자동차연구원 같은 기관과 수소 관련 시험장비 구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만든 시험장비와 시험규격에 대한 자료를 토대로 극한 조건의 시험이 가능한 다양한 장비를 구축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대하는 이동식 수소충전소와 수소충전 검증장비에 관심이 많다. 이동식 수소충전소는 고압의 수소탱크를 창작한 컨테이너 차량으로, 냉각기와 디스펜서를 함께 달아 현장에서 바로 충전이 가능하다. 이 방식은 수소전기차뿐 아니라 수소연료전지 드론의 충전에도 활용될 수 있다.

▲ 드론용 수소연료 충전 부스터.

또 수소충전소의 유량 검증장비 개발에도 일찌감치 나서 지난해 수소충전 검증장비 1기를 고객에 공급한 바 있다. 이는 수소의 무게로 충전량을 계산하는 방식으로, 향후 수소충전소가 늘면 검증을 위한 수요가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단 향후 5년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정부 정책에 따라 수소충전소도 많이 생겨나고, 수소전기 상용차 시장도 확대되면서 수소경제에 큰 변화가 있겠죠. 그때를 보고 묵묵히 나아가겠습니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