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수소엔진에 대한 관심은 도요타에서 출발했다. 벌써 2년 전 일이다. 도요타 아키오 사장(당시만 해도 사장이었다)이 ‘모리조’란 가명으로 1.6리터 3기통 터보엔진을 단 코롤라 차량을 몰고 ‘후지 24시간 내구레이스’에 참가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당시 모리조 씨가 몬 차량은 수소엔진을 장착한 ‘코롤라 GR’이다. GR(Gazoo Racing)은 도요타에서 나온 고성능 모델에 붙는 브랜드명으로 현대차의 ‘N’ 시리즈를 떠올리면 된다. 향후 이 수소엔진을 단 코롤라, 프리우스 모델을 출시한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아직은 잠잠하다.
아키오 사장은 올해 초 도요타 회장 자리에 올랐고, 지금도 여전히 레이싱을 즐긴다. 그는 올해 액체수소탱크를 단 코롤라 GR을 몰고 후지 스피드웨이를 달렸다. 또 지난 6월에는 올해 100주년을 맞은 ‘르망 24시간 레이스’를 앞두고 연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GR H2 레이싱 콘셉트카’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차량에도 액체수소탱크가 들어갈 예정이다.


수소엔진·연료전지 아우르는 리카르도의 전략
도요타는 올해 초 사토 코지 사장이 새로 취임한 후 전기차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도요타가 전기차 전환에 한 발 늦었다는 비판을 듣긴 해도, 여전히 수소연료전지 부문에서는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코롤라 GR로 대표되는 수소엔진 차량을 개발하면서 수소차 개발에 고삐를 당기고 있다.
친환경 차량의 주도권은 확실히 전기차가 쥐고 있다. 충전과 화재, 급발진 이슈가 있긴 해도 그 인기는 여전하다. 가격 인하를 통한 치킨게임이 시작되면서 보조금 없이 경쟁할 수 있는 자생력을 갖춰가고 있다. 그에 반해 2025년에나 신차가 출시될 예정인 넥쏘(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한 해 판매량이 1만 대에도 못 미친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650마력이라는 엄청난 성능을 내는 현대차 ‘아이오닉 5N’(전기차)이 제공하는 가상사운드 중에서 ‘이그니션’이라는 내연기관 엔진음을 대중이 가장 선호한다는 점이다. 전기차가 쌩쌩 달리는 포뮬러 원 레이싱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대중은 내연기관의 레트로 감성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경제적인 면도 중요하다. 자동차는 제조업의 중심으로 국가 기간산업에 든다. 소재, 화학, 전자 등 관련 산업에 많은 인구가 종사하고 있다. 제주만 해도 전기차가 늘면서 정비사 일자리가 크게 줄었다. 차량의 전동화는 부품 수를 줄여 일자리 창출을 어렵게 한다.

소형 스포츠카로 개발된 코롤라 GR에는 가솔린 직분사 엔진이 적용됐다. 덴소의 엔지니어들이 개발한 혁신적인 인젝터(연료분사노즐) 기술 덕분에 빠른 적용이 가능했다. 최근 한국기계연구원과 현대자동차그룹이 함께 개발했다는 수소엔진도 연소실 내부에 수소를 바로 불어넣는 ‘직접분사’ 방식을 적용했다.
이 엔진은 현대차그룹의 2.0리터 직렬 4기통 가솔린 누우 엔진을 기반으로 한다. 2세대 세타 엔진을 대체할 목적으로 개발된 엔진으로 ‘연속 가변 밸브 리프트(CVVL)’ 방식이 처음 적용됐다. CVVL은 밸브 타이밍과 흡기밸브의 높이를 제어해 흡입 공기량을 최적화하고 엔진의 연비와 성능을 끌어올리는 고난도 기술에 든다.
리카르도(Ricardo)라는 엔진 회사가 있다. 영국의 슈퍼카 맥라렌에 들어가는 엔진을 설계한 곳이다. 포니를 출시한 현대차가 1991년 1월에 국내 최초로 독자 개발에 성공한 알파 엔진의 기본설계를 맡은 곳이기도 하다.
리카르도는 영국 브라이턴대학의 엔진개발실에서 프로토타입 엔진의 연소 연구를 진행했다. 대형트럭이나 소형선박의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수소엔진을 개발해왔고, 지난 2021년 4월에 프로토타입 엔진 테스트 소식을 전한 바 있다.
당시 리카르도의 아드리안 그리니(Adrian Greaney) 이사는 “그린수소는 미래 에너지와 운송 시스템, 특히 장거리 트럭, 해양 선박 등 탈탄소화가 어려운 부문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수소엔진 기술에 관한 브라이턴대학과의 이 흥미로운 프로젝트는 수소연료전지 시스템 개발과 병행해 글로벌 고객에게 비용 효율적이면서 청정한 솔루션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리카르도는 2025년경에 펼쳐질 수소 파워트레인 부문의 경쟁, 즉 ‘내연기관 vs 연료전지’의 대결 구도를 미리 예견하고 준비해왔다. 연료전지시스템이 에너지 효율, 배기가스 배출, 소음 측면에 우위에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연소 엔진의 장점도 분명하다. 일단 비용이 저렴하고 안정적이다. 연료나 흡입공기의 불순물에 내성이 있어 기본적으로 내구성이 뛰어나고 열 관리도 한결 수월하다.
리카르도는 연료전지 기술 확보에도 힘쓰고 있다. 도요타의 연료전지 모듈을 적용한 수소전기 픽업트럭 하이럭스(Hilux) 프로토타입이 지난 9월 처음 공개됐다. 리카르도는 영국 정부가 지원하는 이 프로젝트에 컨소시엄 파트너로 참여해 프로토타입의 제작 준비, 설계, 부품 조달 등 전 과정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하이럭스 FCEV는 미라이2에 들어가는 연료전지 모듈을 파워트레인으로 장착했으며, 3개의 고압 연료탱크를 적용해 600km 이상 주행할 수 있다. 기존 하이럭스 모델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올해 말까지 총 10대를 생산하게 된다.
수소엔진트럭 실증 나선 커민스와 웨스트포트
커민스의 전략도 주목해야 한다. 커민스는 2021년 9월에 ‘H2-ICE’라는 수소연료 내연기관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디젤엔진 플랫폼을 기반으로 6.7리터, 15리터의 수소엔진 2종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6.7리터 수소엔진은 중형트럭, 버스를 비롯해 굴착기, 휠로더 같은 건설기계에 쓰임이 있고, 새로운 15리터 엔진 플랫폼은 장거리용 대형트럭에 수소 연소 기능을 더하는 잠재력을 제공한다.
커민스는 1년 만에 결과물을 공개했다. 독일 하노버 국제상용차박람회(IAA)에 처음 공개된 차량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아테고(Atego) 4×2 트럭을 기반으로 한다. 기존 디젤엔진 대신 6.7리터 B6.7H 수소엔진을 적용했다.
700bar 수소저장 시스템을 통해 개당 약 40kg의 수소를 저장할 수 있는 탱크 2기를 장착했다. 또 10kg의 보조탱크를 따로 설치할 수 있는 공간을 섀시 안에 확보했다. 최대 주행거리는 500km에 이른다.
커민스의 수소엔진은 테렉스 어드밴스의 믹서트럭에도 들어간다. 분진이 많은 건설 현장에 투입되는 믹서트럭의 특성상 연료전지보다는 수소엔진 차량이 더 유용하다.

커민스의 수소엔진 총괄책임자인 짐 네버걸(Jim Nebergall)은 “열악한 작업 환경과 험한 지형에서 운용되는 콘크리트 믹서트럭과 같은 높은 토크를 필요로 하는 고출력 차량에 실행 가능한 탄소 제로 연료 옵션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커민스는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확보하고 있지만, 사업 측면에서는 그린수소 생산에 더 집중하는 모양새다. PEM 전해조 기업인 캐나다 하이드로제닉스의 지분을 인수해 PEM 수전해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3월에는 탄소배출 제로 기술 브랜드인 ‘액셀레라(Accelera by Cummins)’를 내놓기도 했다.
앞으로 수소차 운행을 위해서는 청정수소 확보가 꼭 필요하다. 인플레이션 감소법(IRA)에 따른 인센티브로 미국 내에서 수소 시장이 크게 열릴 전망이다. 최근 바이든 정부는 미 전역을 대상으로 7곳의 청정수소 허브를 지정, 70억 달러(약 9조5천억 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커민스도 이 시장에 대응하고 있다.
지난 3월 도쿄에서 열린 ‘FC 엑스포’ 현장에서 처음 본 웨스트포트(Westport Fuel Systems)의 H2 HPDI 엔진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 엔진은 고압 직분사 기술이 적용된 HPDI 엔진에 수소연료를 적용했다.

웨스트포트는 캐나다 밴쿠버에 기반을 둔 내연기관 엔진 제조사로 천연가스, 프로판, 수소 같은 저탄소·무탄소 연료를 위한 연료공급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웨스트포트는 10월부터 스페인을 대표하는 마트 체인인 메르까도나(Mercadona)를 상대로 H2 HPDI 엔진을 적용한 수소트럭 실증에 참여하고 있다.
냉장 화물 운송서비스 회사인 디스프리머(Disfrimur)가 차량 운행을 맡고, 에너지 인프라 회사인 에나가스(Enagas)의 자회사인 스케일가스(Scale Gas)가 마드리드의 충전소에 수소를 공급한다. 또 수소·재생에너지 서비스 컨설팅 회사인 베르살리스(Versalis Tech Services)가 운영에 대한 기술 지원, 조정 업무를 맡게 된다.

수소엔진 개발을 거쳐 현장 실증에 나선 시점만 놓고 보면 HD현대인프라코어보다 1년 정도 앞서 있다고 볼 수 있다. HD현대인프라코어 엔진사업본부는 버스용으로 개발된 CNG엔진(GX12)을 기반으로 11리터급 수소엔진(HX12)을 개발해왔다. 내년에 타타대우상용차의 맥쎈 카고트럭에 장착해 실증에 나서고, 2025에는 HD현대인프라코어의 34톤 크롤러 굴착기를 대상으로 실증에 나선다.
국내는 현대차 덕분에 수소전기차 밸류체인을 잘 갖추고 있다. 기존 수소전기트럭에 들어가는 연료공급 시스템을 수소엔진차에 바로 적용할 수 있다. 또 액체수소충전소, 대용량 수소충전소도 빠르게 구축되고 있다. 이런 이점을 살려간다면 향후 수소엔진 시장의 경쟁에서도 충분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수소전기차 vs 수소엔진차 vs 수소엔진 레트로핏
수소전기차 vs 수소엔진차. 이 둘의 대결에서 어느 쪽이 우위에 있는지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확실한 것은 완성차 업계가 대형트럭 부문의 탈탄소화를 위해 이 두 가지 기술을 모두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 대표 사례가 포드트럭이다. 미 포드트럭의 튀르키예 합작사인 ‘포드 오토산(Ford Otosan)’은 지난 8월 캐나다 연료전지 회사인 발라드파워시스템과 수소전기트럭 개발을 위한 투자의향서(LOI)를 체결했다. 44톤급 F-맥스(MAX) 트럭에 발라드의 120kW급 FCmove-XD 연료전지를 장착한 수소전기트럭을 개발하게 된다.

포드트럭은 튀르키예에서 F-맥스 FCEV를 제작할 계획이다. EU의 무공해 화물운송 차량 플랫폼 개발 프로젝트인 ZEFES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사업이다. ‘ZEFES 프로젝트’에는 르노트럭, 볼보트럭, 스카니아, 리카르도, AVL, 플라스틱옴니엄 등이 참여하고 있다. 수소전기차, 배터리전기차를 개발해 2025년에 유럽 횡단 운송 네트워크(Ten-T)에서 시연하게 된다.
포드트럭은 이보다 앞선 지난 6월, 이중연료(디젤, 수소) 엔진 기술을 보유한 벨기에 회사인 CMB.TECH와 손을 잡고 F-맥스 신규 트럭을 이중연료 수소트럭으로 개조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CMB.TECH는 수소 연소 시 소량의 디젤을 엔진 내부 연소실로 분사해 자동 점화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디젤을 쓰기 때문에 100% 탄소 제로 기술은 아니다. CMB.TECH는 이중연료 수소엔진 기술을 선박, 굴착기, 농업용 트랙터, 대형트럭 등에 적용해왔다.
포드트럭의 디젤엔진을 그대로 활용한다는 점이 이 기술의 큰 장점이다. 기존 엔진에 수소를 분사하는 인젝션 링을 설치하고 엔진 제어장치를 추가하게 된다. 여기에 타입3 수소탱크를 새로 창작하게 된다.
이중연료 수소트럭은 기존 디젤엔진 차량 대비 탄소배출량을 최대 80%까지 줄일 수 있다. 또 수소연료가 떨어지면 디젤로 운행할 수 있어 연료에 대한 유연성이 뛰어나다. 이중연료를 적용한 첫 번째 포드트럭의 고객(물류기업) 인도 시점은 내년 3월로 잡혀 있다.

CMB.TECH는 한 달에 20대 정도의 디젤트럭을 수소엔진트럭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기존 자동차산업을 보호하면서 점진적으로 환경 규제의 강도를 높여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소엔진 레트로핏(Retrofit, 개조)’ 시장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수소전기차 vs 수소엔진차’의 기술 우위에 대한 평가는 파워팩의 성능, 내구성에 한정되지 않는다. 정부 정책과 규제, 인센티브, 차량 가격, 연료에 대한 유연성, 충전 인프라 등에 두루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완성차 업계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어떤 기술이 시장을 주도할지 단언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술개발이나 투자에 나서려니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기에는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요구가 거세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고, 환경 이슈를 해결하면서 기존 내연기관 차량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성능을 내는 친환경 차량을 시장에 선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터닝 포인트는 ‘2025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수전해를 통한 그린수소 생산이 가시권에 들고, 수소충전망이 갖춰지면서 글로벌 수소차 시장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충전 인프라 쪽은 액화수소가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독일, 중국을 중심으로 액화수소를 연료로 하는 수소전기 대형트럭 주행 실증이 막 시작됐고, 국내에서도 일진하이솔루스가 국제표준으로 제정되고 있는 ISO TC197 과냉각 액화수소 충전 프로토콜을 반영한 액체수소탱크를 개발 중이다.
독일 다임러트럭은 지난 9월 말에 프로토타입으로 개발한 ‘GenH2 수소전기트럭’ 섀시 양쪽에 40kg의 액체수소탱크 2개를 장착하고 1,047km의 거리를 주행하는 데 성공했다. 이 탱크는 수소엔진트럭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현 시점에서는 ‘수소전기차 vs 수소엔진차’의 대결 구도보다는 수소연료를 활용한 모빌리티 분야의 탈탄소 노력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대형트럭, 건설장비 쪽에 수요가 있고, 이동형 발전기로도 쓰임이 있다.
이와 별개로 e메탄올 등을 활용한 이퓨얼(재생에너지와 연계한 그린수소로 만든 합성연료) 생산 움직임도 살펴야 한다. 사우디 네옴에서 추진 중인 이퓨얼 생산 실증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기존 내연기관 차량의 수명이 크게 연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고민이 많은 시기이다. 뻔한 말로 들리겠지만, 여러 가지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면서 시장의 요구와 변화에 대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