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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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수소경제 주목되는 기술·제품 57. 지티의 ‘Metal-CO2 수소생산 시스템’

‘수계금속 이산화탄소 시스템’ 상용화에 도전
수소 생산은 기본, 탄산염 판매로 부가수익
10kW 표준 셀 최적화에 집중
김포서 현대엔지니어링과 실증 준비 ‘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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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3년 만에 김건태 대표를 다시 만났다. 그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교수라는 타이틀 대신 지티(GT)의 대표이사 직함으로 기자를 맞았다.


“3년 전에 본 그 기술이 맞습니다. 제품 상용화에 나서면서 이런저런 문제에 부딪혔고, 그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가는 과정을 지금도 겪고 있죠. 대학에 있을 때 논문은 써볼 만큼 써봤고 ‘네이처’에 실리기도 했지만, 회사 운영은 또 다른 세계라는 걸 실감하고 있어요. 팔리는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 위한 단가 싸움, 성능 싸움을 벌이고 있죠. 정글이 따로 없습니다.”

건즈 앤 로지스의 ‘웰컴 투 더 정글’ 가사가 잠깐 귀를 스친다. 


김 대표는 대학이라는 ‘상아탑’에서 내려와 인천 송도에 있는 ‘갯벌타워’에 들어왔다. 갯벌은 생존의 터전이다. 발이 푹푹 빠지는 펄을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 널배가 밀어낸 진흙의 흔적, 이 사업을 꼭 성공시켜야 한다는 다짐과 압박감 같은 것이 그의 표정에 묻어난다. 
 

분리막 적용한 수소생산 시스템
지티는 2020년 12월에 설립됐다. UNIST에 있을 때 회사를 설립했고, 이 회사는 이듬해에 울산·울주 강소연구개발특구 1호 연구소기업에 등록됐다. 


당시 이만큼 ‘핫’한 기술이 없었다. 이산화탄소를 녹인 물로 그린수소와 전기를 동시에 생산하는 기술이었다. 수소생산 과정에 이산화탄소 배출은 ‘제로’였다. 부산물로 나온 탄산염을 판매해 부가수익도 올릴 수 있다고 했다. 


회사 설립 반 년 만에 100억 원에 가까운 투자금을 유치하면서 큰 화제가 됐다. SK지오센트릭(옛 SK종합화학)이 산학연공동투자자로 참여했고, 2021년 7월에는 현대엔지니어링이 전략적 투자자(SI)로 참여해 현대제철 인천공장에 실증 부지를 제공한 바 있다.


“현대제철 부지에 Metal-CO2 실증 설비(이산화탄소 자원화 설비)를 두고 1년 반 정도 테스트를 진행했어요. 처음으로 양산화에 도전하는 기술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죠. 그때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알게 됐고 지금은 그 부분에 대한 개선이 많이 이뤄졌어요. 우리 시스템에 적합한 분리막을 구하는 일이 힘들었죠. 무엇보다 랩(연구소) 스케일을 뛰어넘은 상용화 사이즈에 맞는 크기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 막이 셀의 핵심 부품이라 할 수 있죠.”


국내 업체를 수소문한 끝에 분리막을 구했다. 지티의 셀 안에는 가로세로 70×60cm 정도 크기의 분리막이 들어간다. 


“셀을 더 크게 키워서 가고 싶지만, 지금은 여기에 맞출 수밖에 없어요. 분리막 양산 기술이 더 올라가는 시점에 맞춰서 두 번째 버전을 내게 되겠지만, 현재로서는 이 크기가 최선입니다. 분리막을 중심으로 양쪽에 전극을 설치해서 하나의 셀을 만들게 되죠. 표준 셀의 성능을 최적화해서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을 밟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무실을 나서 한 건물에 있는 부설연구소로 향한다. 입구 쪽 선반에 그동안 개발한 셀이 겹겹이 쌓여 있다. 큰 테이블 위에 셀을 하나씩 내려놓자 그동안 겪은 시행착오의 시간들이 정강이에 난 상처 딱지처럼 눈에 잡힌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춘기를 건너뛴 어른은 없다. 하나의 제품을 시장에 내기 위한 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성장통을 겪어야 한다. 


“세상에 없는 기술을 처음으로 구현하다 보니 힘이 드는 거죠. 분리막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면서 힘든 고비를 하나 넘었다고 볼 수 있어요. 목표를 정해서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가는 과정에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지고, 그러면 또 이걸 해결하느라 궁리를 하고…. 이 과정에서 나온 최종 버전이라 할 수 있죠.”


수소가 나오는 양극 쪽에 귀금속 계열 촉매를 코팅한 메쉬(그물망) 전극을 체결하고, 음극 쪽은 아연(Zn) 전극 2개를 꽂아서 쓴다. 음극 쪽에는 수산화칼륨(KOH) 용액이 들어가고, 양극 쪽에는 이산화탄소를 물에 녹인 용액을 공급하게 된다. 두 용액은 분리막 덕에 섞이지 않는다.

 

3년 전 기억을 떠올려본다. 이산화탄소(CO2)를 물(H2O)에 녹이면 양성자(H⁺)와 탄산수소염(HCO3⁻)으로 변한다. 바로 이 화학반응에 전기화학반응을 더한 기술이다. 이산화탄소 용해 반응으로 만들어진 탄산수소 이온은 비교적 쉽게 다른 물질로 전환할 수 있다. 

 


양성자가 많아져 산성을 띠는 물은 금속에 있던 전자들을 도선으로 끌어당겨 전기를 만들고, 수소이온(H⁺)은 전자를 만나 수소기체(H2)로 변한다. 여기까지는 양극의 반응이다.


음극의 금속은 아연을 쓴다. 전기화학적 평형을 맞추기 위해 칼륨이온(K⁺)이 분리막을 통해 양극으로 넘어가게 되고, 이 칼륨이 탄산수소염과 반응해 탄산수소칼륨(KHCO3)이 된다. 


알칼리 용액으로 KOH 대신 수산화나트륨(NaOH)을 쓰면 나트륨이온(Na⁺)이 양극으로 넘어간다. 나트륨이온이 탄산수소염과 반응하면 탄산수소나트륨(NaHCO3)이 된다. 탄산수소나트륨은 과일을 씻을 때 자주 쓰는 베이킹소다를 말한다. 


“이런 셀 100개를 설치해서 10kW 시스템을 만들게 됩니다. 10kW로 하루 최대 100kg까지 수소를 생산할 수 있죠. 탄산수소염과 반응해서 나오는 부산물을 회수해서 판매하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어요. 그러자면 순도 100%의 이산화탄소를 써야 합니다. 전단에 불순물이 섞여 들어가면 반응 후 부산물에 섞여 나오기 때문에 이를 처리하는 데 또 설비와 비용이 들어가요. 순도가 떨어지면 부산물의 수요처가 달라지게 되죠.”

 

연구용 초기 버전은 아크릴로 제작했지만, 이후 상용화를 위한 시제품 작업에서는 금형을 활용하고 있다. 케이스 안쪽에 적힌 펜글씨는 수정의 흔적이다. 셀의 무게를 줄이면서 유지보수의 이점을 살리기 위해 기존의 볼팅 방식을 클립 방식으로 변경했다. 그래서 별다른 도구 없이 손으로 쉽게 셀을 여닫을 수 있다. 

 


“셀 시스템이 잘 구동되려면 모든 구성품이 제자리를 찾아야 하고, 이를 위한 부품 가공에 많은 노력이 들어요. 금형으로 찍어내는 방식이라 작은 걸 하나 바꾸는 데도 큰돈이 들죠. 그동안 내부 설계를 최적화하는 과정을 밟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양산 공정에 들어가는 원가절감 고민을 제품 개발 단계에서 하는 거죠.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고민이라 할 수 있어요.”


학교에서는 해본 적이 없는 고민이다. 어떤 개념을 증명하는 것과 이 개념을 구현해서 하나의 제품으로 세상에 내놓는 일은 지구와 화성만큼 다르다. 김 대표의 말마따나 “또 다른 세계의 일”이다. 
 
CO2 3.2톤으로 수소 72kg, 탄산염 7.2톤 생산
지티의 ‘이산화탄소 자원화 설비’는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수소, 전기, 탄산염을 생산한다. 이산화탄소는 물에 잘 녹는 성질이 있다. 바다만 해도 공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30%나 흡수한다. ‘수계금속 이산화탄소 시스템’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도 여기서 출발했다. 


‘수계(Aqueous)’라는 말은 물을 전해질로 쓴다는 뜻이다. 이산화탄소를 물에 바로 불어넣는 것보다 물에 완전히 녹여서 가야 전환효율이 95% 이상 높게 나온다. 시스템 자체에서 나오는 전기를 활용하기 때문에 전력 소모는 아예 없다. 


여기에 알칼라인 수전해, PEM 연료전지용 분리막 등 당대의 기술을 응용해 조합하면서 지티만의 독창적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탄생했다. 


“현대제철 인천공장에 있던 설비는 모두 김포에 새로 마련한 공장으로 옮겼어요. 스택의 앞단과 후단에 들어가는 BOP(주변장치)를 파트너사인 현대엔지니어링에서 개발하고, 지티는 여기에 들어가는 셀을 개발하고 있죠. 큰 문제는 대부분 잡았고, 현재 약간의 수정만 남아 있는 상태예요. 셀이 1차로 나오는 대로 이 달(9월) 안에 현장 테스트에 들어갈 예정이죠.”


플라스틱 케이스에 든 셀 하나의 무게는 20kg 정도로 가벼운 편이다. 내부 구조는 단순하다. 분리막을 사이에 두고 양극과 음극에 두 종류의 전극이 들어간다. 책장에 책을 꽂듯 100개의 셀을 선반에 설치하고 BOP를 연결해 10kW 시스템을 완성하게 된다. 

 


“20피트 컨테이너 하나당 10kW씩 해서 모듈형으로 설치할 수 있죠. 제철소, 발전소처럼 CO2를 많이 배출하는 현장에 두고 수소를 생산하면서 부산물까지 활용할 수 있어요. 침전물 형태로 나오는 반응물의 경우 이산화탄소의 순도가 높을수록 좋죠. 탄소포집 단계에서 순도를 최대한 높여서 넣으면 화학이나 의약품, 생활용품 등에 쓰는 원료로 사용되는 고부가 탄산염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수소생산에 초점에 두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산화탄소 광물탄산화’ 기술이 접목돼 있다. 이는 대표적인 CCU(탄소 포집·활용) 기술이다. 다만 부산물로 나오는 탄산염의 양이 상당하다. 지티는 2년 전 현대제철 인천공장에 실증 설비를 설치하면서 “하루에 3.2톤의 이산화탄소를 투입할 경우 수소 72kg과 탄산염 7.2톤(1일) 생산이 가능하다”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한 바 있다.


이 실증은 현대엔지니어링과의 파트너십으로 시작됐다. 현대엔지니어링은 2년 전 친환경·그린에너지 사업 확장을 위해 G2E(Green Environment & Energy) 사업부를 신설했다. ‘수계금속 이산화탄소 시스템’뿐 아니라 ‘암모니아 분해 수소생산 시스템’에도 관심이 많다. 김건태 대표는 이 두 가지 사업에 모두 관여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과 지티는 김포에서 실증사업을 완료한 후 300kW급 이상 상용화 플랜트 건설에 나설 계획이다. 300kW급의 경우 하루에 이산화탄소 96톤으로 수소 2,160kg, 탄산염 216톤을 생산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1MW급으로 확장하는 것이 목표다.
 
김포에 실증 사이트 열고 셀 테스트 나서
세계적으로 에너지 기업에 대한 탄소중립 요구가 거세다. SK E&S만 하더라도 CCS(탄소 포집·저장) 기술을 적용한 블루수소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천연가스를 개질해 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CO2를 포집해 지중에 저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수소생산기지에 설치된 수소추출기만 해도 그레이수소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도시가스(천연가스)를 개질할 때 나오는 CO2에 대한 비판이 일면서 정부의 지원도 ‘수전해 기반 그린수소 생산시설’에 맞춰져 있다.

 

그린수소 생산에는 여전히 큰 비용이 든다. 재생에너지 확보가 쉽지 않고 수전해 기술도 여물지 않았다. 화석연료에 크게 의존하는 현실에서 CCU 기술을 외면하기가 어렵다. CCU 혁신 기술에 시장과 정부는 큰 기대를 걸고 있고, 지티의 기술이 주목을 받은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티의 ‘수계금속 이산화탄소 시스템’은 일찌감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공공연구성과기반 BIG선도모델’ 사업에 선정되어 2021년 1월부터 4년간 총 46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받고 있다. 과제명은 ‘CO2 배출저감 장치 및 수소·전기 생산시스템 개발사업’이다.


“투자를 받으면 하이 리스크(High Risk)가 생겨납니다. 교수로 재직할 때와는 분위기나 마음가짐이 다르다고 봐야죠. 투자에 대한 압박이 있지만, 이걸 이겨내야죠. 뻔한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지구에 도움이 되는 환경산업 제품을 상용화한다는 보람이 있어요. CO2 활용이 꼭 필요하고, 그 명분을 쫓다 보면 돈은 저절로 따라붙는다고 생각합니다.”

 


탄소를 포집해서 처리하는 CCUS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제도적인 걸림돌도 조금씩 해소되는 분위기다. 이산화탄소를 탄산칼슘 형태로 포집해서 활용할 경우 폐기물관리법상 ‘이산화탄소전환탄산화물’ 폐기물로 분류된다. 이에 따라 지정된 폐기물재활용업자가 아니면 탄산칼슘의 재활용이 불가능했다.


그러다 환경부가 지난해 폐기물관리법의 규제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로 골재, 시멘트, 콘크리트 등 건설용 소재를 만들거나 고무나 섬유, 합성수지 제품을 제조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환영할 만한 움직임이죠. 일명 ‘CCUS 산업 지원법’이 국회에서 계류 중인 걸로 알아요. 이 법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관련 사업에 대한 지원이 활발해지면서 CCUS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되겠죠.”


법적 규제뿐 아니라 인증도 넘어야 할 산이다. 물건을 시중에 팔기 위해서는 제품 인증을 받아야 한다. 고압가스안전관리법, 화학물질관리법 같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여야 하고, 방폭 인증도 받아야 한다. 이런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을 감안해서 제품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몸으로 부딪쳐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김포에 있는 ‘Metal-CO2 실증 사업장’은 이날 보안 때문에 방문하지 못했다. 현대엔지니어링과 함께 실증을 준비하는 현장이다. 대신 사진을 받았다. 공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장 건물 안에 압축기, KOH 용액, 이산화탄소를 물에 녹이는 BOP 설비 등이 설치되어 있다. 

 


갯벌타워의 연구실을 돌아본다. 지티라는 회사는 여전히 연구소 기업에 가깝다. 금형 작업, 전극 코팅은 모두 외부에서 이뤄진다. 셀 시제품을 확정해서 최소한의 설비로 양산에 나서기까지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목표 성능을 확보하면서 분리막이나 전극의 내구성이 검증돼야 양산라인을 깔 수 있다. 


현장의 기업을 돌아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 돈벌이가 되는 캐시카우(Cash Cow), 즉 본업에서 얻은 이윤을 기반으로 미래를 위해 수소 신기술에 도전할 때가 많다. 


수소 시장이 열린 건 분명한데, 성장 속도가 생각보다 더디다. 그래서 마음이 조급해질 때가 많다. 에너지 시장의 전환은 인프라 확보에 시간이 걸린다. 밸류체인 전반의 기술이 뒷받침되면서 시장이 천천히 열린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맞는다. 


지금의 투자는 그 시점을 대비한 것이다. 시장에서 수소생산과 CCU를 동시에 접목한 사업모델은 극히 드물다. 하나만 해도 벅찬데, 이 둘을 한 번에 해결하는 기술이라 희소성이 있다. 


지티는 그 희소성을 무기로 투자와 지원을 이끌어냈다. 스타트업으로서 이보다 좋은 출발은 없다. 숙제의 난이도와 압박감은 ‘하이 리스크’에 비례한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지티는 이제 그 가능성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정글에 온 걸 환영해. 이곳에선 하루하루가 바쁘게 흘러가. 네가 무언가를 원한다면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해.”

 

건즈 앤 로지스의 노래에 담긴 한 구절이다. ‘정글’의 일상이라는 것이 이렇게 팍팍하다. 그 팍팍함을 이겨내야 큰 보상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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