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루에프씨의 모빌리티용 20kW 연료전지 시스템.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블루에프씨(BlueFC)는 지난 3월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린 ‘FC 엑스포’에 20kW급 연료전지 시스템을 출품했다. 바로 그곳에서 황용신 대표이사를 만났다. 그는 과거 연료전지 스택을 개발·제작하는 스타트업을 운영한 이력이 있다.

“2021년에 PHC그룹의 투자를 받아서 연료전지 시스템 사업에 새롭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10kW급 건물용 연료전지는 1차 개발을 마치고 KC 인증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번에 모빌리티용 20kW급 제품 개발을 완료해서 FC 엑스포에 처음 공개한 셈이죠. 향후 계획은 100kW급 시스템 개발입니다. 귀국해서 열심히 해야죠.”
 

▲ 도쿄 FC 엑스포에 전시된 20kW급 연료전지 시스템.

탄소분리판 적용한 20kW급 연료전지 시스템
황용신 대표를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있는 블루에프씨 기술디자인센터에서 다시 만났다. 20kW급 연료전지 시스템은 일본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대신 10kW 정치형 스택(최대출력 20kW급)이 입구에 전시돼 있었다. 

같은 급의 금속분리판 스택에 비해 크기가 크다. 탄소분리판이 들어가는 정치형 스택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블루에프씨는 그라파이트(흑연) 계열의 탄소분리판을 쓴다. 카본 파우더, 수지, 컴파운드를 넣고 압착해서 찍어낸 분리판으로 금속분리판보다 확실히 두껍다. 

“자동차용 스택에 들어가는 금속분리판에 비해 우리 제품은 1.2~1.4T(mm) 정도로 거의 두 배가 두꺼워요. 대신 금속분리판은 부식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탄소분리판은 소재의 내구성이 좋아서 발전용 연료전지나 공간의 제약이 적은 선박이나 상용차에 쓰임이 있죠. 캐나다의 발라드(Ballard Power Systems) 사도 탄소분리판을 적용하고 있어요.”

‘금속분리판 vs 탄소분리판’의 해묵은 논쟁을 상기해본다. 소재별로 장단점이 분명하다. 연료전지 수명을 충족하는 전기화학적 안정성 면에서는 부식 위험이 없는 탄소분리판이 우위에 있지만, 스택 부피가 커져 세단이나 SUV에는 적합하지 않다. 대신 정치형으로 들어가는 건물용이나 발전용 연료전지에는 확실한 이점이 있다. 

금형으로 찍어서 굳히는 데 시간이 걸리고, 소재의 특성상 열 배출에 약하지만, 소재의 재활용 면에는 아주 유리하다. 금속분리판은 귀금속 촉매만 재활용할 수 있지만, 탄소분리판은 소재의 재활용률이 80%를 넘는다. 시중에 유통되는 물량이 크게 늘 경우 순환경제 측면에서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 탄소분리판은 두께가 두꺼운 대신 소재의 내구성이 뛰어나다.

블루에프씨의 스택은 코멤텍이 개발한 10kW 건물용 연료전지에 들어간다. 코멤텍이 생산한 막전극접합체(MEA)를 블루에프씨가 받아서 스태킹 작업을 했다. 코멤텍의 10kW 건물용 연료전지는 현재 KC 인증 절차를 밟고 있다. 전기효율은 41% 이상, 열효율을 포함한 전체 효율은 93% 이상이다.

“코멤텍과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협업 관계라 할 수 있어요. 코멤텍이 강화분리막을 직접 생산해서 MEA를 만들기 때문에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받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죠. 국내 모빌리티용 연료전지 시장이 아직 작아요. 지금은 시장을 공유하면서 기술력을 높이고 생산능력을 키워가는 시기라 할 수 있죠. 10kW 정치형 시스템과 20kW 이동형 시스템에 들어가는 부품을 동일하게 개발해서 호환성을 높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양산에서 일정 수준의 물량 확보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제품 생산단가를 떨어뜨릴 수 있다. 연료를 수소로 한정했을 때 PEM(고분자전해질막) 연료전지 스택은 발전용과 모빌리티용의 차이가 크지 않다. 부품과 장치의 호환성을 살려가야 양산 시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다. 

“모빌리티 쪽은 현대차가 주도하고 있다고 봐야죠. 연료전지 스타트업이 시장을 확보하면서 몸집을 불려가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연료전지 판로를 놓고 업계 분들의 고민이 참 많습니다. 시장 진출은 아무래도 발전용이 훨씬 수월하죠. 우선 전기 사용량이 많은 공장에 연료전지를 설치해서 실증하는 방식으로 활로를 찾아갈 생각입니다.”

황 대표는 대구에 있는 PHC 사업장에 발전용 연료전지를 설치할 계획이다. 향후 50kW급을 기반으로 250~500kW급 발전설비를 구성한다는 전략이다. 도시가스를 개질해서 쓰는 건물용과 달리 순수수소 연료를 쓰기 때문에 탄소배출이 없다. 올해 준비를 잘해 내년에는 실증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 박마중 이사가 연구개발본부 직원들과 100kW급 제품 개발 일정을 논의하고 있다.

“지자체에서 설치 허가를 받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앞으로 가능성을 보면 도전할 가치는 충분합니다. 유럽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수소생산이 늘고 있고, 이렇게 생산된 수소로 전기를 만들어 쓰는 데 PEM 연료전지가 역할을 할 수 있죠. PEM은 상시운전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필요할 때마다 껐다 켰다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죠.”

국내는 산업용 전기료가 너무 저렴해서 경제성을 확보하기가 어렵지만, 유럽은 수요도 있고 경쟁력도 있다는 것이 황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발전과 모빌리티 투트랙으로 가면서 부품의 호환성을 높인다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 그룹 계열사 중 하나인 평화발레오가 주변기기(BOP) 양산에 특화된 회사라는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PHC그룹 자회사로 2021년에 창업
PHC그룹은 대구를 대표하는 자동차 부품회사다. 블루에프씨 본사도 대구 중리동에 있다. PHC그룹은 현대차그룹의 1차 협력사로 PHA(옛 평화정공), 평화발레오, 카펙발레오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이름에서 보듯 프랑스의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회사인 발레오 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 

PHA는 래칭 시스템, 힌지 같은 도어무빙시스템 제품을 전문으로 생산한다. 평화발레오는 클러치, 액추에이터, 전기모터 같은 파워트레인 관련 부품이나 장치에 특화되어 있다. 또 카펙발레오는 자동변속기, 토크컨버터, 트랜스미션 부품 등을 생산하는 전문회사다.

완성차 업체들이 내연기관차의 전동화에 나서면서 협력사들도 관련 기술 개발에 주목해왔다. 계열사로 보면 평화발레오가 수소전기차, 카펙발레오가 전기차 기술에 대응하고 있다. 특히 평화발레오는 수소전기차의 압축기나 밸브류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 황용신 대표이사는 “PHC그룹의 투자를 받아 연료전지 시스템 사업에 도전하고 있다”고 한다.

PHC그룹은 황용신 대표의 경력, 연료전지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2021년 6월 블루에프씨에 대한 투자를 결정했다. 

황 대표는 지난 2003년 퓨얼셀파워(두산퓨얼셀에 인수)에 입사해 연료전지 관련 업계에 입문했다. 뒤늦게 유학길에 올라 2010년부터 미국 코네티컷 주립대에 속해 있는 ‘청정에너지공학센터(Center for Clean Energy Engineering)’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신개념 연료전지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2012년부터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연료전지를 개발한 경험이 있고, 이후 건설기계부품연구원에 들어가 세계 최초로 연료전지 건설기계 과제를 진행하기도 했다.

PHC그룹은 연료전지 시스템 개발사인 블루에프씨를 그룹사에 편입시켜 전동화의 한 축인 수소전기차 기술 확보에 나서고 있다. 

두께의 단점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분야에서는 탄소분리판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 100kW를 기본 모듈로 하는 상업용 발전 분야뿐 아니라 배터리와 조합한 하이브리드 형태로 수소전기 시내버스에 무난하게 들어갈 수 있다. 포클레인 같은 건설기계 분야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 액상 개스킷을 탄소분리판에 사출하는 테스트용 디스펜서 장비.

“최근에는 스택의 제작 공정비를 낮추기 위해서 탄소분리판 금형을 추가로 개발하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어요. 스택 조립 시 기존에 사용해오던 서브개스킷을 없애서 공정을 줄이는 방향으로 디자인을 바꿔가고 있죠. 작업 공정이 하나라도 줄면 재료비도 덜 들고 양산 시간도 빨라집니다. 스택 단가를 상당 부분 낮출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꼭 필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죠.”
 
각종 주변장치, 모듈 개발
기술디자인센터를 서울에 둔 이유는 연구 인력을 구하기가 좋고 파트너사와 관련 기술을 논의하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이공계생의 취업이나 이직을 두고 ‘판교 남방한계선’이란 말이 돌 정도로 수도권 쏠림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블루에프씨는 PHC그룹의 계열사로 투자와 지원을 받고 있다. 프랑스 발레오 사를 통해 유럽의 영업망을 활용할 경우 판로 확보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완성도 높은 연료전지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연료전지 스택을 구동하려면 각종 주변장치와 모듈이 필요하다. 블루에프씨는 막가습기를 비롯해, 스택의 강건성을 모니터링하는 장치인 ‘셀 전압 모니터링 유닛’, 스택 안에서 산소와 반응하지 않은 수소를 재공급해 수소 이용률을 높이는 장치인 ‘수소 재순환 이젝터’의 개발을 완료했다. 

“DC-DC 컨버터, 제어기만 아직 개발이 안 됐어요. 시스템 모듈에서 빠져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죠. 이런 점을 보완해서 유럽, 북미, 중국 등 세계시장 진출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BOP 양산의 경우 그룹사인 평화발레오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배터리 기술은 카펙발레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PHC그룹 전체로 봐도 연료전지 시스템의 핵심인 스택 기술을 보유함으로써 시장 변화에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 블루에프씨는 협력사와 함께 ‘코리아 하이드로젠’ 부스로 도쿄 FC 엑스포에 참가했다.

블루에프씨는 탄소분리판에 상당한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분리판 기술은 매우 중요하다. 현대차 넥쏘만 해도 연료전지 시스템 하나당 440세트, 약 900장의 금속분리판이 들어간다. 분리판은 스택 원가의 약 30%를 차지하는, 스택의 뼈대가 되는 핵심 부품이자 모듈이다. 

내부식성과 내구성이 좋은 탄소분리판은 건물용이나 발전용 연료전지에 확실한 이점이 있다. 블루에프씨의 20kW급 클래스 PEMFC 스택의 목표 내구는 5만 시간 이상이다. 이런 경쟁력을 살려가면서 공간의 제약이 비교적 덜한 상업용 발전기 시장이나 선박 같은 대형 모빌리티 시장을 준비하고 있다. 

“시장이 열리기 전까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아요. 한 회사가 움직인다고 될 일은 아니죠. 규모의 경제를 갖출 때까지 협력사를 중심으로 밸류체인을 잘 꾸려가야 합니다. MEA는 코멤텍이 맡아서 하고 있고, 수분제어장치는 수처리 회사인 필로스(Philos)와 함께 개발하고 있죠. 수분제어장치의 경우 기본 성능은 경쟁업체와 대등하지만, 압력이 적게 걸려서 공기공급장치의 전기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어요. 고효율 시스템 개발의 관점에서 좋은 특성을 보유하고 있죠.”

현재 필로스와 협력해 200kW급 대용량 수분제어장치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또 출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기액분리기도 개발 중이다.

▲ 필로스와 개발 중인 200kW급 수분제어장치(왼쪽).

정부는 현재 3만 대 수준인 수소전기차 보급대수를 2030년에는 30만 대로 늘려갈 계획이다. 조금 더디긴 하나 액체수소충전소를 비롯해 충전 인프라를 구축해가고 있고, 안전 확보를 위해 막혀 있던 고압가스 관련 규제도 조금씩 해소되고 있다. 

전기차가 모빌리티 시장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지만, 수소생산이 늘고 충전 인프라가 갖춰진다면 수소상용차나 발전용 연료전지의 수요가 크게 늘 가능성이 있다. 

PHC그룹은 작은 회사가 아니다. 내연기관 차량의 전동화 전환 흐름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대응 전략을 고심해왔다. 이는 석유로 부를 일군 중동의 국가들이 에너지 전환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과도 맥이 통한다.

기후위기는 에너지 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한다. 그 변화의 흐름에 과감히 뛰어들어 해법을 찾아가야 한다. 블루(Blue)라는 이름은 그 전망을 담고 있다. 블루에프씨의 50kW, 100kW 제품이 시장에서 빛을 볼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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