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요타 미라이의 연료전지를 기반으로 개발된 BMW의 iX5 수소전기차가 도로를 달리고 있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전기차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2년 국내에서 판매된 전기차 대수만 16만 대가 훌쩍 넘는다. 지난해 전 세계 수소차 판매대수가 2만 대 정도에 불과한 걸 감안하면, 비교 대상에 올리기도 민망하다. 

테슬라를 선두로 비야디, 니오, 샤오펑 등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약진 중이고, 국내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벤츠, GM(제너럴 모터스) 등 글로벌 업체의 전기차 출시가 줄을 이었다. 글로벌 자동차 판매대수 1위를 놓치지 않은 도요타도 올해 경영진 교체를 통해 전동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 와중에 혼다가 ‘수소사업 미래전략’을 내놨다. 이 소식은 뜻밖이었다. 혼다는 2021년 8월 말에 수소전기차 클래리티(Clarity)의 생산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그런 혼다가 GM과 손을 잡고 차세대 연료전지시스템 공동 개발을 선언했다. 

양산 시기는 2025년으로 잡았다. 다른 자동차 회사에 이 연료전지를 공급하고 배터리와 연계한 시스템 제어까지 지원하게 된다.
 
혼다, GM과 차세대 연료전지시스템 개발
혼다의 수소 전략 핵심은 연료전지시스템의 활용에 있다. 혼다는 크게 운송, 산업 부문으로 나눠 네 가지로 제시했다. 운송용에는 수소승용차와 수소상용차, 산업용에는 연료전지 발전소, 건설기계가 있다. 이렇게 네 곳의 활용처에 차세대 연료전지를 공급하게 된다.

신차 출시 계획도 내놨다. 미국 오하이오주 메리스빌에 있는 성능제조센터(PMC)에서 5인승 SUV인 CR-V를 기반으로 한 신형 수소전기차를 2024년에 선보일 계획이다. 80kW급 연료전지시스템에 다이렉트 전기충전을 함께 제공하기로 한 걸 보면, 충전 편의성을 높인 ‘수소전기 하이브리드’ 차량일 가능성이 높다. 

▲ 혼다는 80kW급 연료전지시스템을 적용한 CR-V 기반 신형 수소전기차를 내년에 선보일 계획이다.

이 전략은 새롭지 않다. 스텔란티스 산하 오펠에서 지난 2021년 5월에 공개한 플러그인 연료전지 상업용 밴인 ‘비바로(Vivaro)-e 하이드로젠’과 닮아 있다. 차량 하단의 배터리 칸에 700bar 수소탱크 3개를 장착했고, 앞좌석 밑에 10.5kWh 리튬이온배터리를 추가해 다이렉트 전기충전도 가능하다. 총 주행거리는 400km로 배터리 충전만으로 50km 정도를 주행할 수 있다.

▲ 오펠에서 양산 중인 플러그인 수소전기차량 ‘비바로-e 하이드로젠’.

다만 비바로-e에 들어가는 심비오(Symbio) 사의 연료전지는 45kW급으로 배터리 충전 용도에 맞춘 ‘주행거리 연장형(Range Extended)’에 가깝다. 그에 반해 혼다의 연료전지는 80kW급으로 충분한 출력을 내면서 가격경쟁력과 내구성을 확보한 제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혼다는 수소상용차용 연료전지 실증 사업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이스즈자동차와 제휴해 지난 2021년에 중형트럭 시제품을 완성했고, 내년 3월 공동연구 프로젝트가 끝나는 시점에 앞서 도로실증에 나설 계획이다. 또 세계 최대 상용차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에서 둥펑자동차와 함께 중형 수소트럭 실증도 시작했다. 

혼다는 수소차뿐 아니라 고정식 연료전지 발전분야 진출도 공식화했다. 혼다 클래리티에 들어간 연료전지를 병렬로 연결해 미국 공장의 데이터센터에 백업 전원으로 실증운전을 진행해 가능성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 재생에너지 기반 청정수소 생산을 염두에 둔 혼다의 수소사업 전략.

이 전략도 새로울 건 없다. 수요처를 늘리기 위해 연료전지 포트폴리오에 공식처럼 들어가는 항목이다. 현대차그룹만 해도 지난 2018년 12월에 공식 발표한 ‘FCEV 비전 2030’을 통해 차량, 선박, 철도 등 운송분야, 전력 생산과 저장 등 발전분야에 연료전지시스템을 공급한다는 신사업 내용을 적시했다. 

현대차는 일찌감치 울산테크노파크 수소연료전지실증화센터에서 500kW급 연료전지 발전시스템 실증을 진행했고, 이를 보완하고 개선해서 2021년부터 2년간 동서발전 울산 화력발전소에서 1MW급 연료전지 발전시스템을 시범 운영한 바 있다. 

하지만 PEM 연료전지에는 고순도 수소가 필요하고, 전기 효율이 낮아 대규모 발전용으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미국처럼 땅이 넓어 송배전 인프라를 갖추기 힘든 지역에 수소저장탱크를 두고 전기차에 충전하거나 비상발전용으로 쓰는 방식이 잘 맞을 수 있다. 

운송용이든 발전용이든 크게 상관없다. 연료전지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스택의 성능과 내구성을 높이면서 양산 가격을 낮춰야 한다. 이보다 큰 숙제는 없다. 혼다는 2025년까지 2019년 클래리티 연료전지시스템 대비 비용을 두 배 줄이고 내구성을 두 배로 높인다는 목표를 내놨다. 연료전지시스템 가격도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뜨릴 계획이다.

혼다는 이 과업을 GM과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 혼다가 개발 중인 80kW 연료전지시스템.

이 소식은 기시감이 들게 한다. GM과 혼다는 2013년부터 제휴를 맺고 연료전지 기술팀을 합쳐 특허를 공유하고 연료전지 자동차 개발을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1월에는 연료전지시스템 대량생산을 위한 합작투자 회사를 세우기도 했다. 혼다는 미국에 생산 거점을 확보하고, GM은 혼다가 2016년 3월에 출시한 클래리티의 양산 기술을 자사의 차량 생산에 접목할 수 있는 기회로 봤다. 

미라이와 같은 중형 세단으로 나온 클래리티는 최대 130kW로 출력이 높고 충전 후 최장 589km를 주행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충전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했고 판매실적은 처참했다. 

신차가 출시된 이듬해인 2017년 판매실적을 보면 미라이가 2,700여 대, 클래리티는 1,000대에 불과했다. 가격도 좋고 연비도 뛰어난 하이브리드 차량 천국인 일본에서 수소전기차는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다. 

시장이 열리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도요타가 ‘연료전지 인사이드 전략’으로 중국시장에 진출한 계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중국, 도요타 손잡고 연료전지 기술 내재화
도요타는 일찌감치 중국 연료전지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도요타는 외국 업체로는 최초로 2017년 10월에 수소전기차 미라이를 중국에 도입해 3년간 실증을 진행했다. 완성차 수출 정책을 버리고 연료전지의 핵심 부품을 판매하는 전략을 취하면서 광저우자동차(GAC), 디이자동차(FAW), 포톤 등과 손을 잡았다. PC가 아닌 CPU 판매에 주력하면서 전성기를 맞은 ‘인텔 인사이드’ 전략을 그대로 따른 셈이다.

도요타는 2020년 6월에 시노하이텍, 디이자동차, 둥펑자동차, 광저우자동차그룹, 베이징자동차그룹(BAIC)과 FCRD(United Fuel Cell System R&D)를 설립했다. 또 이듬해 4월에는 시노하이텍과 지분을 절반씩 보유한 FCTS(Toyota SinoHytec Fuel Cell)를 설립했다. FCRD는 연료전지 기술개발과 연구, FCTS는 제품 개발과 생산, 마케팅에 주력하는 회사로 보면 된다. 

FCTS는 중국 현지에서 ‘화펑연료전지’로 불린다. ‘화펑연료전지’는 지난해 10월 약 80억 엔을 투자해 베이징 경제기술개발구의 11만㎡ 부지에 연료전지 생산라인, 실증시설, R&D센터를 짓기 시작했다. 이 공장에는 ‘도요타 생산방식(Toyota Production System)’이 그대로 적용된다. 말 그대로 도요타의 중국 현지 연료전지시스템 생산기지인 셈이다.

현대차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현대차는 중국 광둥성 광저우시를 해외 첫 수소연료전지시스템 생산기지로 정하고 지난 2021년 3월에 착공식을 열었다. 20만7,000㎡ 부지에 건설 중인 공장으로 연간 6,500기의 시스템을 생산할 수 있다. 

이 공장은 현대차그룹이 지분 100%를 보유한 ‘HTWO 광저우’ 법인이 운영하게 된다. 초기에는 핵심 부품 대부분을 한국에서 들여와 중국에서 조립하는 형태로 가고, 차츰 현지 부품 조달을 늘려갈 계획이다. 

▲ 현대차는 HTWO 브랜드로 다양한 연료전지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중국 연료전지 시장에서 ‘도요타 vs 현대차’의 대결 구도가 전개되더라도 연료전지 기술이나 시장 상황을 놓고 보면 도요타 쪽이 좀 더 유리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도요타는 시노하이텍과 함께 ‘TL 파워 100’과 ‘TL 파워 80’이라는 두 가지 제품을 이미 시장에 출시했다. 지난해 선보인 ‘TL 파워 80’은 도요타 미라이2에 들어가는 연료전지 스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제품은 외부 가습 없이 스택 내부 멤브레인(강화복합막)의 수분 함량을 독립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시스템 효율은 최고 60%이며, 연속 작동 전력은 90kW, 정격 전력에서 발전 효율은 45% 이상이다. 차량 모델이나 작동 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나 기본적으로 3만 시간의 내구성을 보증한다. 중국은 기술 내재화를 통해 도요타의 뛰어난 연료전지 기술을 받아들여 양산 단계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완성차 업계와의 관계도 중요하다. 도요타의 기술이 들어간 연료전지시스템을 탑재한 4.5톤 냉동물류 차량, 8.6미터·12미터 버스, 18톤 물류트럭·청소차량이 이미 출시됐다. 또 시노하이텍은 지난 1월 홍콩증권거래소에 공식 상장됐다. 기술을 공유하거나 이권을 나누지 않으면 중국시장에서 힘을 쓸 수가 없다. 

현대차는 중국에서 고전하고 있다. 사드(THAAD) 배치를 문제 삼은 중국의 한한령 보복 조치도 컸지만, 중국 자동차 시장을 한 수 아래로 보고 전 세대 차량으로 현지 공략에 나서 소비자 신뢰를 저버린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5년 전 80만 대 수준이었던 현대차의 중국 연간 판매량은 지난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2021년에는 베이징 1공장 매각을 결정했고, 지난해에는 충칭 공장도 멈춰 세웠다. 현재 현대차·기아의 중국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1%대에 불과하다. 

현대차그룹은 수소차 시장에서 반전을 꾀하고 있다. 광저우 황푸구의 에너지 기업인 헝윈그룹과 수소연료전지차 합작사를 세웠다. 헝윈그룹은 지난 2월 3일 이사회에서 HTWO 광저우, 광저우개발구교통투자와 합작사 설립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헝윈그룹·HTWO 광저우가 각각 45%, 광저우개발구교통투자가 10%의 지분을 보유한 구조다. 

합작사가 들어서는 광둥성은 중국 최대 자동차 부품 생산기지에 든다. 현대차는 이 지역에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 수소차 시범구를 조성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미 로보택시 업체인 위라이드(WeRide)와 업무협약도 맺었다. 광저우시 황푸구를 중심으로 전개될 HTWO 광저우의 사업을 눈여겨봐야 한다.

중국은 전기차를 중심으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지리자동차만 봐도 알 수 있다. 볼보, 폴스타, 로터스 등을 소유한 지리는 유럽의 자동차 기술을 현지화해서 가격경쟁력을 갖춘 뛰어난 차량을 내놓고 있다. 전기차 전용 SEA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전기차 브랜드 지커(Zeekr)가 여기에 든다. 볼보가 출시하는 소형 SUV 전기차 모델 EX30도 SEA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다.

중국은 전기차 부문에서 일군 성과를 수소전기차 부문으로 확장해왔다. 전기차는 ‘승용’, 수소차는 ‘상용’에 집중해 간섭을 피하면서 친환경차 시장의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다. 차량의 엔진에 해당하는 연료전지는 부가가치가 높다. 도요타의 ‘퓨얼셀 인사이드 전략’은 중국의 수소차 시장이 커질수록 재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다시 혼다와 GM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클래리티 출시 후 진행된 양사의 합작투자 건은 실행되지 않았다. 약혼식만 올리고 시간을 흘려보낸 셈이다. 그러다 GM이 한눈을 팔았다. GM은 ‘제2의 테슬라’로 불리던 니콜라의 지분 11%를 인수하기로 했고, 이 소식이 발표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니콜라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인 트레버 밀턴의 사기 의혹이 불거졌다. 

수소전기차 역사에 길이 남을 스캔들이었다. 언덕에서 굴린 트럭에는 연료전지 기술이 적용되지 않았다. 의혹은 사실로 굳어졌고, GM은 깨끗한 ‘손절’로 대응했다. 2020년 11월 말의 일이다.

GM이 니콜라 지분 인수 계획을 철회하면서 수소전기 픽업트럭 ‘뱃저(Badger)’의 공동 생산 계획은 무위로 돌아갔다. 그러나 GM은 연료전지 사업에서 발을 뗀 적이 없다. 니콜라 손절 후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내비스타인터내셔널과 수소트럭 개발 소식을 전했다. 

▲ GM의 하이드로텍 연료전지가 탑재된 미군용 콜로라도 ZH2로 2017년에 공개됐다.

GM은 2024년까지 자사의 연료전지를 장착한 수소연료전지 트럭을 선보이기로 했다. GM은 이 트럭의 목표 주행거리를 500마일(약 800km), 수소충전 시간은 15분 내로 잡았다. 물론 이 배경엔 오래된 약혼자인 혼다가 있다.

GM은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개발한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인 얼티엄(Ultium) 배터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하이드로텍(Hydrotec) 연료전지 기술을 접목해 상용차 전동화에 나설 계획이다.  

GM은 수소연료전지를 활용한 발전기 사업도 추진한다. 전기차에 급속충전 기능을 제공하는 이동형 발전기인 MPG(Mobile Power Generator), 기존의 주유소나 충전소 공간을 활용해 DC 급속충전 기능을 제공하는 엠파워(Empower) 급속충전기, 소음 없이 효율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팔레트형 MPG 등 3개 모델을 제안했다.

GM은 리뉴어블 이노베이션(Renewable Innovations)과 협업해 엠파워 급속충전기를 개발 중이다. ‘파워 큐브’로 불리는 연료전지 8개가 들어간 급속충전기로 100대 이상의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다.

▲ GM의 하이드로텍 연료전지를 활용한 이동형 발전기(MPG).
▲ GM의 하이드로텍 연료전지 기술을 접목한 엠파워 급속충전기.

2025년 이후 수소차 시장 준비
현대차그룹은 올해 내놓기로 했던 3세대 연료전지 시제품 공개를 2027년으로 미뤘다. 그 계기는 도요타 미라이2의 출시와 관련이 있다. 연료전지시스템의 성능과 내구에서 기술적으로 ‘퍼스트 무버’의 행보를 이어가기가 힘들다는 판단 아래 사업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졌다. 

글로벌 소형차 시장이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돈이 안 되는’ 수소차 개발에 투자를 이어가는 일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충전인프라 확보가 어렵고, 수소생산과 유통의 경제성, 그레이수소에 대한 비판 등 여러 요인으로 국내 수소차 시장이 예상보다 느리게 성장하면서 발목을 잡았다. 그린수소 밸류체인을 염두에 두고 수소생태계 조성에 앞장서온 유럽과는 순서가 뒤바뀐 행보라 할 수 있다. 

BMW만 해도 지난해 12월 ‘iX5 수소전기차’ 테스트 차량을 뮌헨의 연구센터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차량의 연료전지도 도요타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BMW는 iX5의 판매시기를 2025년으로 잡고 있다.

▲ BMW의 iX5 수소전기 테스트 차량으로 도요타의 연료전지가 들어간다.
▲ 독일의 BMW 뮌헨 연구센터 직원들이 iX5 차량에 수소탱크를 장착하고 있다.

글로벌 수소연료전지 시장의 변곡점은 2025년으로 볼 수 있다. 다임러트럭이나 볼보트럭도 개발 중인 수소트럭의 도로실증 시점을 이때로 잡고 있다. 양사는 셀센트릭(Cellcentric)이라는 연료전지 합작회사를 세우고 ‘패스트 팔로어’로서 수소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힘쓰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3세대 연료전지 출시 시점은 이보다 늦다. 이는 세계시장에 수소생산시설이나 충전인프라가 깔리고 연료전지시스템의 경쟁력이 살아나는 시점을 2025년 이후로 본다는 뜻이다.

현대차는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3 수소·연료전지 세미나(HFCS)’ 한국 홍보관에 북미형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 트랙터를 전시하면서 ‘자원순환형(Waste-to-energy) 수소생산 콘셉트’를 함께 소개했다.

이 개념은 충주에서 운영 중인 온사이트형 ‘충주바이오 그린수소충전소’를 떠올리면 된다. 음식물쓰레기에서 나온 바이오가스를 배관으로 받아 현장에서 수소를 생산해서 공급하는 ‘마더스테이션’이 있는 곳이다. 수소를 개질할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서 활용하는 CCUS를 적용할 경우 탄소중립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현대차는 올해부터 엑시언트 수소트럭 30대를 오클랜드항에 공급하는 ‘캘리포니아 항만 친환경 트럭 도입 실증사업’에 나선다. 또 하반기에는 미국 퍼스트엘리먼트 퓨얼사에 엑시언트 수소트럭 5대를 공급해 수소운반용 디젤 트럭을 대체하게 된다. 수소차를 보급하려면 수소충전소부터 확보해야 한다. 또 여기에 어떤 ‘색깔’의 수소를 공급하느냐에 따라 보조금의 액수가 달라진다.

수소는 에너지 정책 시장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혼다와 GM이 수소전기차뿐 아니라 연료전지 발전을 수소사업 포트폴리오에 넣는 것도 지난해 나온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한 대응 차원으로 볼 수 있다. 

테슬라 ‘모델3’에 앞선 가장 중요한 전기차 양산 모델 중 하나로 GM의 ‘EV1’을 들 수 있다. 크리스 페인 감독의 2006년 다큐멘터리 영화 ‘누가 전기차를 죽였나’는 이 비운의 차량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90년대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무공해 자동차 보급 확대를 위해 ‘배기가스 제로법’ 도입을 공표했고, GM이 이 분위기에 편승해 1996년에 내놓은 전기차가 EV1이다. 1회 충전으로 약 160km를 달릴 수 있었고, 최고속도는 시속 130km였다. 리스 형태로 보급됐지만 인기가 꽤 좋았다.

EV1의 시작은 캘리포니아의 태양처럼 화려했지만, 그 끝은 사막의 폐허처럼 허망했다. EV1은 정유업계와 자동차 업계에 눈엣가시였다. GM은 사용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3년 만에 EV1의 생산을 중단했고, 2002년에는 전기차 개발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EV1은 사막의 고철로 폐기됐고, 2003년에는 캘리포니아의 ‘배기가스 제로법’도 폐지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해에 테슬라가 창업했다. 테슬라는 한때 GM 소유였던 캘리포니아 프리몬트 공장을 도요타로부터 헐값에 인수하면서 새 역사를 써왔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처럼 들리겠지만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일들이 전기차 역사에도 그대로 재연됐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은 준비가 덜된 기존 자동차 업계에 큰 위협이었다. 부품 수가 훨씬 적고 자동화 공정이 많아 대규모 고용을 유지할 수 없다. 도요타의 아키오 회장이 수소엔진 개발에 매달리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수소연료전지와 비교해서 수소연소엔진은 기존 내연기관 플랫폼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고, 오래된 차량의 리트로핏(Retrofit, 개조) 적용도 쉽다. 100만km 이상 또는 8~10년 이상의 장기 내구성이 우수하고, 공사장이나 험지 같은 극한의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도요타는 수소엔진이 들어간 코롤라 크로스 차량을 테스트 중에 있다. 또 이스즈, 히노 같은 상용차 회사와 손을 잡고 고출력 수소엔진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커민스도 지난해 9월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국제 상용차박람회(IAA)에 메르세데스-벤츠의 아테고 트럭을 기반으로 한 수소연소엔진 트럭 콘셉트를 공개했다. 6.7리터 B6.7H 수소엔진을 적용하고, 40kg의 수소를 저장할 수 있는 2개의 수소탱크에 10kg짜리 보조탱크를 추가할 경우 최대 500km를 달릴 수 있다.

▲ 메르세데스-벤츠 아테고 트럭을 기반으로 한 커민스의 수소연소엔진 트럭 콘셉트.

내연기관 엔진이 수소에 적응할 경우 연료전지와 직접 경쟁할 수 있다. 국내로 보면 HD현대의 건설기계부문 계열사인 현대두산인프라코어가 정부 과제를 통해 수소연소엔진 개발에 뛰어들었다. 

현대두산인프라코어의 HX12 수소연소엔진은 300kW 출력, 11리터 급으로 향후 11톤 카고트럭과 34톤 크롤러 굴착기에 우선 탑재될 예정이다. 효율 면에서는 수소연료전지에 비해 다소 열세지만, 고순도 수소를 쓰지 않아도 되는 점, 연료전지 대비 저렴한 생산 가격은 강점이 될 수 있다. 

‘연료전지 vs 수소엔진’의 대결 구도만 해도 향후 어떤 기술이 수소차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지 섣불리 판단하기가 어렵다. 지금은 맞는 일이 나중엔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던 니콜라만 해도 전기트럭을 내놓고 수소충전 인프라 확보에 집중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스캔들’은 시장의 관심을 대변한다. 니콜라가 연료전지 기술력을 확보하면서 미국이라는 탄탄한 내수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혀간다면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다. 

바야흐로 ‘수소차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진짜 싸움은 아직 치르지도 않았다. 2025년까지 아직 2년이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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