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9월 22일부터 23일까지 이틀간 열린 ‘제17회 밸브 아카데미’의 참가자들이 피케이밸브앤엔지니어링 창원공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피케이밸브앤엔지니어링(PK Valve & Engineering)은 1946년에 창업했다. ‘PK’는 설립 당시 사명인 ‘부산포금공업사’에서 포금(砲金)을 의미한다. 지난 1974년 창원국가산단에 1호 기업으로 입주했고, 산업용 밸브 전문 메이커로서 국내 최고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회사 연혁이 76년입니다. 밸브 전문 엔지니어링 업체로 창원을 대표하는 원조 뿌리기업이라 할 수 있죠. 내부에 주물공장을 두고 밸브 제작의 전체 공정을 컨트롤하는 회사는 세계적으로 드물어요. 우리가 생산한 밸브의 70%가 글로벌 시장에 납품이 됩니다. 품질관리는 기본이요, 생산의 전 과정을 내부에서 처리하는 일관생산체계를 갖추고 있죠.”

2021년 4월에 새로 부임한 전영찬 대표이사의 말이다.

그는 회사의 엔지니어링 역량 강화에 중점을 두고 올해 5월 피케이밸브앤엔지니어링(이하 ‘피케이밸브’)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또 코로나의 영향으로 잠정 중단됐던 ‘밸브 아카데미’를 지난 9월에 다시 열기도 했다.

엔지니어링 역량 강화…극저온밸브 개발
피케이밸브 뒤에 ‘엔지니어링’을 붙인 데는 이유가 있다. 피케이밸브는 1986년에 초저온밸브 국산화에 성공했고, 경쟁력 확보와 지속성장을 위해 지난 1994년 11월에는 밸브 업계 최초로 부설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에너지의 변천 과정을 보면 나무에서 출발해 석탄, 오일, 가스로 넘어가고 있어요. 매장량으로 보면 석탄, 가스, 오일 순인데, 그동안 가스가 널리 쓰이지 못했던 이유가 핸들링이 쉽지 않아서죠.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대응이 가능해졌어요. 천연가스와 수소가 대표적이죠. LNG(액화천연가스) 시장이 커지면서 초저온밸브의 수요가 크게 늘었어요. 수소는 LNG보다 온도가 훨씬 낮은 영하 253℃의 극저온에서 액화가 됩니다. 여기에 대응하려면 기술연구소의 역량이 높아야 해요. 사명에 ‘엔지니어링’을 추가하면서 연구개발에만 집중하는 조직으로 재정비했죠.”

신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안착하기까지 5~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앞서 준비하지 않으면 대응 시기를 놓치게 된다. 전영찬 대표는 회사의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면서 ‘체질 개선’에 나섰다. 그는 LNG와 수소, 소형모듈원전(SMR) 시장을 눈여겨보고 있다.

“어떤 기업이든 앞으로는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제품을 만들어 팔 수 있어야 합니다. 선박시장만 봐도 그 추세를 알 수가 있죠. IMO(국제해사기구)가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규제에 나서면서 친환경 선박의 수요가 늘고 있어요. 여기에 맞는 새로운 밸브와 엔지니어링 기술이 필요하죠.”

▲ 액체질소로 48인치 버터플라이밸브 초저온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피케이밸브 기술연구소는 국내 최초로 ‘액화수소용 3인치 글로브밸브’ 개발에 성공했다. 개념을 잡고 준비에 들어간 건 3년 전이지만, 시제품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지난해 12월이다. 단열성능 확보를 위한 장치설계, 열전달 시뮬레이션 등을 거쳐 지난 7월에 시제품을 내놓았다. 이 제품은 하이리움산업의 액화수소 저장 탱크에 납품되어 미국으로 수출될 예정이다.

“이 탱크가 내년 초에 미국에서 실증이 되면 국내에도 본격적으로 공급이 될 걸로 봅니다. 아직 액화수소 밸브 쪽으로는 명확한 규정이 없어요. 해외에서 사용한 이력이 있으면 국내에서 쓸 수 있도록 하고 있죠. 이와 관련해서 기술연구소에서 인증 방법에 대한 연구를 함께 진행하고 있는 걸로 알아요.”

피케이밸브의 3인치 글로브밸브는 독일 시험인증기관인 TÜV SÜD(티유브이슈드)로부터 초저온(-196℃) 시험을 완료했다. 지난 9월 14일에 받은 인증서를 보면, 유체 누설과 차단 정도를 점검하는 셸 테스트(Shelltest)와 시트 테스트(Seattest)를 통과한 걸로 나온다.

“밸브 회사는 기본적으로 벤더사라 할 수 있죠. PK 제품을 쓰는 최종 사용자와 협력해서 제품 개발을 진행하고, 이 제품이 실제 구매로 이어져야 매출의 선순환이 일어납니다. 하이리움과 진행한 3인치 글로브밸브 개발도 여기에 들죠.”

전영찬 대표는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나온 엔지니어 출신의 회계사로 사업 기획과 경영에 남다른 식견을 갖추고 있다. 대림코퍼레이션, 남강그룹, STX영양풍력, STX에너지(현 GS E&R), 우덕회계법인 등을 거쳤으며 대림에너지에서 해외사업개발을 맡기도 했다.

그는 공장 입구 쪽에 주차장을 새로 짓고 기존 부지에 초저온밸브 2공장을 증설했다. 올해부터 운영에 들어간 이 공장에서 현재 LNG운반선에 들어가는 ‘저압식 LNG이중연료엔진(ME-GA)’의 가스밸브 유닛을 생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영향도 있겠지만, LNG운반선 시장의 성장을 예측해서 대응한 탁월한 경영 감각을 엿볼 수 있다.

▲ 피케이밸브 전영찬 대표는 “76년 밸브 엔지니어링 역량을 집중해 극저온 액화수소 밸브 시장 공략에 나섰다”고 말한다.

“신규 사업 쪽 일을 오래 해왔어요. 기업은 안정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목표를 정하고 최소한의 수정을 거쳐 시행착오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죠. 국내에서도 액화수소 플랜트를 시작으로 액화수소 저장시설 등 기업의 수요가 일기 시작하는 만큼 시장 전망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피케이밸브는 지난 10월에 열린 ‘2022 한국산업대전’에서 국내 밸브산업의 발전과 국산화에 기여한 공로로 산업포장을 받았다. 국내 최고의 초저온 기술을 보유한 피케이밸브가 액화수소 시장 진입을 선언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액화수소용 2인치 긴급차단밸브 개발 중
기술연구소의 김상민 소장을 따라 공장을 돌아본다. 공장의 규모는 6만6,229㎡로 약 2만 평이다. 피케이밸브의 일관생산체계는 독보적이다. 제품 설계를 거쳐 모형제작, 주형제작, 주조, 열처리, 가공, 조립, 검사, 도장, 포장, 출하까지 전 과정이 이곳 창원공장에서 이뤄진다.

“고객사에서 정말 좋아하는 점이죠. 공장 안에 이런 주조설비를 갖추고 대응하는 곳이 드물어요. 어느 한 공정이라도 외부에서 처리하면 예기치 않은 일로 납기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죠. 또 밸브 제조업의 특성상 ‘다품종 소량생산’이 많습니다. 피케이밸브가 보유하고 있는 밸브 금형만 10만여 종에 이르죠. 다양한 크기와 종류의 제품을 생산한 이력이 회사의 자산입니다.”

▲ 주조실의 용해로에 쇳물을 녹이고 있다.

나무를 다듬어 실제 크기의 밸브 모형을 만든 다음 주형(거푸집)을 제작한다. 주조장 안은 생각보다 먼지가 적고 내부도 잘 관리되고 있다. 직원들이 바닥에 거푸집을 늘어놓고 사전작업으로 도형제를 바르고 있다. 용해로에서 펄펄 끓는 쇳물을 이 틀에 부어 밸브 바디를 만들게 된다.

“쇳물 시편을 분석기로 돌려서 기준에 맞는 성분이 나와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요. 창원에 이런 시설을 갖춘 곳이 두 곳밖에 안 됩니다. 주조를 직접 한다는 건 가격 경쟁력 확보에도 큰 힘이 되죠.”

▲ 쇳물을 붓기 전 거푸집에 도형제를 바르는 사전작업을 진행한다.

피케이밸브는 한국가스공사, 삼성중공업, 포스코,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기업뿐 아니라 BP, GE, 엑손모빌, 토탈에너지, 셰브론,사우디 아람코 등 해외 메이저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거나 적격 공급업체로 등록이 돼 있다.

지난 9월 22일부터 23일까지 이틀간 열린 ‘제17회 밸브 아카데미’에는 국내 30여 개 기업에서 관계자 130여 명이 참석했다. 일관생산체계를 갖추고 있어 기본 개념을 숙지하고 공장을 한 바퀴 돌아보기만 해도 밸브 제작 전반에 대한 이해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

공장 안쪽에 있는 시험실로 향한다. 덮개를 벗겨내자 액체질소가 든 수조에 LNG용 글로브밸브가 꽂혀 있다. 바로 뒤에 있는 컴퓨터에 시험 데이터가 기록되게 된다.

▲ 시험실 직원이 초저온 시험 데이터를 살펴보고 있다.
▲ 액체질소에 담긴 글로브밸브.

“질소는 영하 196℃에서 액화해요. 기화가 일어나지만 그 속도가 액화수소에 비하면 느리다고 봐야죠. 액화수소 밸브는 영하 253℃의 극저온 환경에서 쓰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검사 장비를 필요로 합니다. 현재 액화수소 밸브 쪽은 세계적으로 관련 검사기준이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아요. 해외 사용 실적을 근거로 제품 사용 허가를 내주고 있죠.”

수소는 폭발의 위험이 있다. 기체수소용 밸브만 해도 통상 질소로 사전 테스트를 진행한다. 이번에 개발한 액화수소용 3인치 글로브밸브도 액체질소로 초저온 테스트를 거쳤다. 완벽한 유체 누설, 차단 테스트를 위해서는 액화수소 또는 액화헬륨을 활용한 테스트가 필요하다.

“헬륨은 액체수소보다 낮은 영하 269℃에서 액화가 돼요. 헬륨은 질소처럼 폭발의 위험이 없어 검사에 유용합니다. 하지만 액화헬륨 가격이 정말 비싸고 수급도 어려워요. 상온에 부우면 밀도가 낮아서 금방 기화가 되어 날아간다고 봐야죠. 현재 액화수소용 긴급차단밸브를 개발 중인데, 이 제품의 인증 문제를 풀어내기 위한 고민을 병행하고 있어요.”

액화수소용 일반 밸브는 해외 사용 실적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긴급차단밸브는 예외다. 화재나 누설 등 긴급 상황에서 스프링의 기계적인 힘만으로 밸브가 자동으로 닫혀야 한다. 매우 중요한 안전밸브로 한국가스안전공사(KGS)의 인증을 필히 받아야 한다.

▲ 한 직원이 밸브 연마를 진행하고 있다.
▲ 다양한 밸브의 조립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2인치 긴급차단밸브의 경우 공압으로 작동하는 액추에이터가 상부에 붙게 되죠. 제품 설계는 이미 끝이 났고, 내년 1월 정도에 시제품을 내놓는다는 목표로 개발을 진행 중이죠.”

문제는 시제품을 시험할 장비가 없다는 점이다. 김상민 소장은 헬륨 기체를 냉각시키는 ‘헬륨 액화기’를 함께 개발하고 있다. 헬륨을 냉매로 한 일종의 극저온 냉동기라 할 수 있다. 수급이 용이한 헬륨가스를 밸브 검사에 필요한 양만큼 액화해서 테스트에 활용할 계획이다. 창원대학교와 협업으로 개발을 진행 중이다.

“시장이 형성된 다음에 들어가면 늦다고 봐야죠. 액화수소용 긴급차단밸브의 경우 검사 방법을 정리하지 않으면 돌파구가 없어요. 테스트 설비를 갖추는 데 초기비용은 들겠지만, 시장이 활성화되면 그 비용은 금방 회수가 될 겁니다. 이 또한 일종의 투자라 할 수 있죠. 우리가 개발한 방식이 표준화된 검사로 채택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액화수소 시장, 예상보다 빨리 열려”
피케이밸브가 제작한 ‘액화수소용 3인치 글로브밸브’는 영하 253℃ 환경의 액화수소 저장용기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316L 스테인리스 스틸단조로 제작됐다. 제품 설계에 깊이 관여한 기술연구소 정창우 차장의 말을 들어보자.

“하이리움산업의 의뢰를 받아서 제품 개발에 들어갔어요. 작년 12월에 구두로 처음 이야기를 나눴고, 올 2월에 설계도면을 들고 바로 찾아갔더니 깜짝 놀라더군요. 액화수소 밸브는 내부 형상이나 특징을 공개한 자료가 거의 없어요. 그동안 초저온밸브를 개발하면서 얻은 경험을 모두 반영했다고 할 수 있죠.”

▲ 액화수소용 3인치 글로브밸브 개발의 주역인 기술연구소 정창우 차장, 김상민 소장, 최지원 과장.

정창우 차장은 도쿄가스, 도호가스 등 일본의 까다로운 가스회사 관계자들을 10년간 상대하면서 실력을 쌓아왔다. 일본에서 수소사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가와사키중공업 관계자들과 미팅을 앞두고 있기도 했다.

정 차장이 밸브 내부의 구조를 담은 단면도를 보여준다. 진공단열이 적용된 하단의 ‘바디’에 기화된 수소기체의 누설을 막고 역류를 최대한 방지하는 ‘보닛’이 체결된 형상을 하고 있다.

“보닛 부분을 뽑아도 하단의 진공이 깨지지 않도록 설계가 되어 있죠. 이 점이 정말 중요합니다. 소량의 수소액화기나 저장탱크 같은 경우에는 큰 상관이 없겠지만, 몇십 미터, 몇백 미터의 배관 라인이 깔리는 플랜트 규모에서는 유지보수 시 큰 문제가 되죠. 이 제품은 밸브 상단을 뽑아내서 부품을 교체할 수 있고, 다른 제품으로 갈아 끼우는 것도 가능합니다.”

아코디언 모양의 주름이 있는 금속벨로즈를 보닛 안쪽에 삽입해 기밀성을 높였고, 바디 쪽 배관에는 비파괴검사가 가능한 완전침투용접을 기본으로 적용했다.

액화수소 기술은 일본이 몇 걸음 앞서 있다. 가와사키중공업은 세계 최초로 고베에 액화수소 인수기지인 ‘하이터치 고베(Hytouch Kobe)’를 올해 초에 완공했다. 향후 상업용으로 규모를 확대할 예정이다. 또 액화수소운반선인 ‘스이소 프론티어’ 호로 호주의 갈탄에서 추출한 수소(액화수소)를 고베 항으로 운송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열린 제5차 수소경제위원회에서 나온 액화수소 관련 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 4만 톤 규모의 액화수소 플랜트 구축을 추진하고, 2030년까지 LNG발전소 밀집 지역에 연 10만 톤급 액화수소 인수기지와 수소 전용 배관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액화수소운반선 건조는 2029년으로 잡혀 있다.

민간 기업이나 기관의 움직임은 이보다 빠를 수 있다. 한국가스공사만 해도 지난 8월에 미국의 매트릭스(Matrix Service Company) 사와 ‘대형 액화수소탱크 및 화물창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2, 3년 전만 해도 고압기체 중심으로 봤지, 액화수소 시장이 이렇게 빨리 열리리라고는 예상을 못했어요. LNG용 초저온밸브를 개발해서 LNG인수기지에 납품했듯이 극저온밸브를 개발해서 시장에 공급하는 준비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김상민 소장은 “올해 들어 확실히 분위기를 탔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움직임은 해외영업 부서를 통해서도 감지되고 있다.

“수요 기업을 통한 제품 개발을 포함해서 정부과제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입니다. 다양한 지원이 주어지는 ‘소부장 으뜸기업’에도 지원해서 선정이 되도록 힘쓰고 있죠. 정부의 정책 지원을 바탕으로 기업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액화수소 시장에서도 우리나라가 두각을 보일 수 있습니다.”

피케이밸브는 LNG용 버터플라이밸브가 주력이지만 최근 글로브밸브, 체크밸브 개발을 끝내고 내년부터 영업에 들어간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한 단계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영하 253℃라는 극저온 환경에서 운영되는 액화수소는 ‘정점’의 기술로 불린다.

오랫동안 초저온의 봉우리를 탐색해온 피케이밸브가 정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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