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오일씰의 직원이 수소 기밀 차단용 오링을 들고 있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수소는 대기압의 350배, 700배에 이르는 고압의 환경에서 충전이 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기밀이다. 수소는 분자량이 2.016에 불과할 정도로 작아 미세한 틈에도 누설이 일어난다. 수소충전소에 들어가는 압축기나 고압용기만 해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술력을 집중하고 있다.

평화오일씰공업이란 회사가 있다. 현대차그룹의 1차 벤더사로 차량에 들어가는 오일씰을 대량으로 공급한다. 또 현대차 넥쏘의 수소연료전지 스택 금속분리판에 일체화된 가스켓을 양산하고 있다.

“2005년부터 수소전기차 개발에 참여해 가스켓을 개발했어요. 개발 초기에는 얇은 고무시트를 접착제로 붙여 썼지만, 지금은 EPDM 소재를 사출기로 일체화해서 성형한 가스켓을 쓰고 있죠.”

평화오일씰 연구소에서 연구개발을 맡고 있는 강동국 이사의 말이다.

EPDM(Ethylene Propylene Diene Monomer)은 에틸렌, 프로필렌, 다인의 중합체로 내열성과 내노화성, 절연성이 뛰어나고 인장 강도가 매우 높다. 특히 저온에 강해 영하 40℃ 환경에서 구동되는 수소충전소 냉각기, 노즐과 리셉터클 등에 적용된다. 넥쏘용 타입4 수소탱크를 만드는 일진하이솔루스에도 평화오일씰의 EPDM 오링(O-Ring)이 들어간다.

“오일씰이나 오링을 공급하는 벤더사다 보니 업체 이야기를 할 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죠. 개발 과정에 있는 장비나 부품은 더욱 그렇고요. 이 회사 제품에 우리 씰이 들어갑니다, 라고 선뜻 말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평화오일씰을 찾은 이유는 분명하다. 기밀이 중요한 수소 기체의 특성상 가스켓이나 오링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제작되는 수소모빌리티용 연료전지 금속분리판의 대부분은 평화오일씰을 거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곳 대구 달성산업단지의 공장에서 가스켓을 체결한 후 납품이 된다. 스태킹을 위한 필수 공정이다.

▲ 일체형 가스켓이 적용된 금속분리판 내부의 구조.

넥쏘 양산 차량에 가스켓, 오링 공급
평화오일씰공업은 1977년에 설립됐다. 자동차 부품 전문기업인 평화홀딩스와 일본의 NOK가 지분 50%씩을 보유하고 있다. 오일씰·오링 부문에서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곳이다.

기름이나 수분 같은 외부 이물질이 기계 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일종의 고무제품인 씰(Seal) 기술은 일본과 독일이 세계적으로 앞서 있다. 이들 나라를 대표하는 업체가 NOK와 프로이덴베르크(Freudenberg)다.

“일본의 NOK만 해도 1939년에 설립됐어요. 프로이덴베르크는 그보다 훨씬 앞선 1849년에 설립이 됐죠. 프로이덴베르크가 NOK에 투자를 했어요. 오래전부터 서로 긴밀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죠. ‘프로이덴베르크-NOK 씰링 테크놀로지’란 합작사로 미국 시장에 진출해 있기도 합니다.”

프로이덴베르크는 송아지가죽 제품을 만들어 파는 제혁 사업장으로 출발해 고무를 적용한 씰을 생산하는 세계적인 ‘콘체른(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룹사 안에 FST(Freudenberg Sealing Technologies)를 비롯해 FPM(Freudenberg Performance Materials), FFT(Freudenberg FiltrationTechnologies) 등을 두고 있다. 씰, 소재, 여과기술 등을 두루 확보하고 있다.

“프로이덴베르크 퍼포먼스 머티리얼스(FPM)만 해도 FFT의 필터 기술을 적용해서 연료전지용 GDL(Gas Diffusion Layer, 기체확산층)을 개발했어요. 부직포를 기반으로 해서 종이처럼 얇게 만들었죠. 또 NOK가 빨대 모양의 중공사를 적용해서 개발한 수분제어장치 같은 경우에는 혼다의 클래리티 수소전기차에 들어갔어요. NOK 제품은 성능이 뛰어난 반면 가격이 비싼 편이죠.”

▲ 독일 프로이덴베르크 퍼포먼스 머티리얼스(FPM)의 GDL 제품으로 종이처럼 얇다.

평화오일씰은 오일씰, 오링 부문의 독자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프로이덴베르크의 GDL, NOK의 수분제어장치를 국내에 공급하는 영업망을 확보하고 있다.

현재 넥쏘의 연료전지 스택에는 독일 SGL카본의 GDL이 들어간다. 또 수분제어장치의 경우에는 코오롱인더스트리 제품을 쓰고 있다. 수소 부문에서 평화오일씰이 자체적으로 대응하는 주력 제품은 가스켓과 오링이다.

“현대차 넥쏘에 들어가는 제품 수만 해도 천 개는 될 겁니다. 95kW 연료전지 스택을 쌓는 데 900장 정도의 금속분리판이 들어가거든요. 가스켓 수만 해도 900개란 소리죠. 여기에 오링, 씰 제품을 모두 더하면 천 개는 될 거예요.”

강동국 이사가 전시회를 위해 투명 아크릴로 제작한 리셉터클을 보여준다. 리셉터클은 수소충전기의 노즐이 체결되는 부위로 차량의 수소탱크와 연결된다. 넥쏘의 경우 모토닉에서 리셉터클을 생산한다. 평화오일씰이 공급한 오링이 2개의 백업링과 함께 리셉터클 안쪽에 삽입이 되는 구조다.

▲ 수소 충전노즐이 체결되는 리셉터클에도 평화오일씰의 오링이 들어간다.

실제로 모토닉의 리셉터클에 적용된 백업링은 고무로 된 사각링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백업링은 오링을 양쪽에서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부산의 영도산업이 양산 중인 넥쏘용 실린더 밸브에도 EPDM 오링이 들어간다. 이 제품도 평화오일씰에서 공급하고 있다. 일진하이솔루스의 수소탱크와 붙어서 들어가는 중요한 밸브다.

“처음에는 불안한 마음에 값비싼 외국 제품을 그대로 들여와서 쓰게 되죠. 그러다 자체 개발로 국산화 비율을 높여가게 됩니다. 이미 20년 전부터 현대차의 수소차 관련 기술개발에 참여해왔고, 2018년 양산 차량부터 평화오일씰 제품이 적용되면서 시장의 신뢰를 얻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올해 KGS 인증을 받고 출시 준비를 마친 에테르씨티의 900bar 고압탱크 플러그 쪽에도 평화오일씰의 오링과 백업링이 들어간다. 에테르씨티 기술연구소의 지현준 소장은 “평화오일씰 제품을 적용한 플러그 모듈로 최근 한국가스안전공사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에서 6만 회 반복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고 말했다.

수소 기체의 기밀을 잡는 오링은 장치나 밸브에 꼭 필요한 요소 부품이다. 부품별로 크기나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각 제조사들의 제품 개발에 대응할 수 있는 국내 기업의 존재는 그 자체로 큰 힘이 된다. 양산 시 부품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고 서비스 대응 측면에도 이점이 크다.

친환경 미래차 전환은 ‘숙제’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은 최근 ‘G20 발리 정상회의’를 앞두고 열린 ‘B20 서밋’에 기조연설자로 나섰다. 그는 ‘에너지 빈곤,공정하고 질서 있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환 가속화’를 주제로 이런 말을 했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부품 구매부터 제조, 물류, 운행, 폐기 및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치 사슬에서 탄소중립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중략) 재생에너지에는 공급이나 저장에 대한 제약 등 여러 장벽이 있지만 수소는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수소 등 지속가능한 에너지 솔루션을 더 빨리 도입할수록 다음 세대에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의 의지는 확고하다. 현대차·기아는 2035년 유럽을 시작으로 주요 시장에서 2040년까지 탄소 배출이 없는 전동화 차량만 판매할 계획이다. 또 2045년까지 전 세계 사업장의 전력 수요를 100% 재생에너지로 대체할 방침이다.

현대차그룹에 부품을 납품하는 벤더사도 친환경 미래차 전환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 핵심은 전기차와 수소전기차다.

현대오일씰공업은 미래차 분야 연료전지 사업을 염두에 두고 지난 2020년 3월에 연료전지 부품 전문기업인 PFS(평화 퓨얼셀 솔루션)를 새롭게 설립했다. 넥쏘를 비롯해 수소버스, 수소트럭 등 현대차 수소전기차의 스택 가스켓 부품을 전량 공급하고 있다.

“수소차는 초기부터 대응을 해왔지만, 전기차 쪽은 여전히 고민이 많습니다. 전기모터나 배터리팩 쪽 부품 개발을 고민하고 있는데 쉽지가 않아요. 매출 부분에서 내연기관 차량에 들어가는 오일씰의 비중이 여전히 높기 때문에 계속 고민하면서 도전해야 하는 부분이죠.”

금속분리판에 들어가는 가스켓은 사출 성형을 통해 일체형으로 제작된다. 강동국 이사를 따라 공장을 둘러본다. 액상실리콘을 투입한 후 금속 틀로 눌러서 찍어내는 사출 성형기를 쓴다.

▲ 액상실리콘을 이용해 금속분리판용 가스켓 성형 사출을 진행하고 있다.
▲ 가스켓 사출 성형에 사용되는 액상실리콘.
▲ 일체형 가스켓이 적용된 금속분리판 샘플.

“국내에서 사용하는 모빌리티용 연료전지 가스켓은 대부분 액상실리콘을 베이스로 만듭니다. 범한퓨얼셀에서 생산하는 잠수함용 연료전지도 그렇고, 가온셀에서 만드는 지게차용 DMFC(직접메탄올연료전지)스택에도 이렇게 만든 가스켓이 들어가죠.”

액상이라 성형성이 좋다. 다만 현대차 연료전지는 지금도 여전히 EPDM 소재를 고집한다. EPDM 소재는 고체처럼 탄탄해 성형성이 안 좋다. 하지만 내구성에 이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 현대차 넥쏘용 가스켓 소재인 EPDM 합성고무로 액상에 비해 성형이 까다롭다.

평화오일씰은 지난 2011년부터 연료전지 추진 선박을 개발한 경험이 있다. 6kW급 연료전지 2개가 들어간 3톤급 선박을 먼저 개발했고,이어서 50kW연료전지가 적용된(배터리 45kW) 하이브리드 수소선박(50인승 유람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이력이 있다. 당시 만든 모형이 제품 전시장 한쪽에 놓여 있다.

“2012년 8월에 시작해서 2015년 4월에 끝난 정부 과제로 당시에는 GS칼텍스가 연료전지 개발을 주도했죠. 세월호 참사 이후에 개발이 완료됐는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주목을 덜 받았고 홍보도 잘 안 됐어요. 바로 그해에 범한산업이 GS칼텍스의 군수용 연료전지 사업부문을 양수하면서 지금은 연료전지 기술이 범한퓨얼셀로 넘어가 있죠."

▲ GS칼텍스의 50kW 연료전지가 적용된 하이브리드 수소선박의 모형.

안전과 직결되는 요소 부품
수소전기차 못지않게 고무 오링의 쓰임이 많은 곳이 수소충전소다. 실제로 수소를 고압으로 저장했다 700bar 충전이 이뤄지는 곳이라 기체의 기밀과 내구성이 매우 중요하다.

평화오일씰은 정부과제와 연계해서 지난 4월부터 ‘700bar급 수소충전소용 고성능 고무 소재 및 인증 기준 개발’ 과제를 진행하고 있다. 2024년 연말까지 진행되는 과제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주관한다.

오링은 고압으로 압축된 수소 연료를 전달하기 위한 부품의 연결 부위를 밀봉하는 역할을 한다. 수소압축기를 비롯해 중압·고압 저장용기의 플러그 모듈, 피팅 연결부, 밸브와 노즐 등에 쓰임이 있다.

“고압 환경에서 운영이 되다 보니 오링 부위에 고장이 생길 확률이 높죠.어떤 소재를 써야 내구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실제 테스트를 통해 국내 인증기준을 마련하는 방안까지 담고 있죠. 실증은 국내 업체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자동차연구원이 참여해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 응력완화시험기로 금속분리판 가스켓의 장기 탄성도를 측정하고 있다.

고압수소에 반복해서 노출되면 감압에 따른 기포가 발생해 내부 파열이 생길 수 있다. 또 수소 압력에 따른 부피 팽창 시 치구에 쓸려 오링의 표면이 닳거나 찢어지는 파손이 일어나기도 한다. 또 저온에서 고무가 응축해 탄성이 감소하면서 기밀 성능이 떨어질 수 있다.

“오링도 크게 고온 제품, 저온 제품으로 나눌 수 있어요. 영하 20℃에서 150℃사이에서 주로 운영되는 압축기에는 고온 제품이 들어가고, 프리쿨러(냉각기)나 900bar 고압용기처럼 영하 45℃에서 80℃ 환경에서 주로 운영되는 장비에는 저온 제품이 들어가죠. 이 둘을 구분해서 개발하게 됩니다.”

고온 제품의 소재로는 흔히 ‘불소고무’로 통하는 FKM(Fluorocarbon Rubber)을 쓴다. 불소 원자를 함유하고 있는 비닐리덴 플루오라이드(Vinylidene fluroride, VdF)와 헥사플루오르프로필렌(Hexafluoropropylene, HFP) 공중합체 합성고무를 이른다. 200℃에서도 물성의 변화가 적어 내열성이 좋고 내한성과 내약품성도 뛰어나다. 듀폰에서 분사된 케무어스의 등록상표인 바이톤(Viton) 고무가 대표적이다.

저온 제품에는 EPDM 소재를 주로 쓴다. 에테르씨티의 고압용기에 들어가는 오링의 소재이기도 하다.

▲ 평화오일씰 연구소에서 연구개발 업무를 맡고 있는 강동국 이사.

“FKM이나 EPDM에 카본블랙과 실리카 충진재 같은 약품을 어떤 비율로 언제 어떻게 섞어 쓰느냐에 따라 소재의 물성이 달라져요. 고무 소재의 자체 배합기술과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평화오일씰의 가장 큰 강점이죠.”

이번 과제에는 기본 물성평가, 고압수소 영향평가, 오링 성능평가, 부품 적용을 통한 실증평가가 들어 있다. 이를 기반으로 ISO/TC 197에 대응하는 국내 인증기준을 개발하고 향후 장비나 부품의 검사, 교체 주기 가이드라인을 정하게 된다.

“오링이라는 게 겉보기엔 작은 부품에 불과하지만, 기체의 누설을 막는 최전선에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안전과 직결되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 부품이죠.”

원료, 소재 단계에서 고민해야 한다. 결국 레시피(recipe) 싸움이다. 오랜 시간 동안 씰을 만지고 다뤄온 업체만이 숙련의 시간을 통해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다.

독일이나 일본 기업의 장인정신을 배울 필요가 있다. 수소의 기밀(氣密)을 잡으려면 ‘폭’이 아닌 ‘깊이’에 강해야 한다. 평화오일씰이 국내 수소산업에 깊이를 더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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