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관의 끝단을 둥글게 가공하는 ‘핫 스피닝’ 공정이 진행 중이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밖은 완연한 가을이지만, 이곳 공장 안은 열기로 후끈하다. 바퀴가 달린 이동식 에어컨이 등 뒤에서 찬바람을 불어댄다. 귀마개를 뚫고 소음이 파고든다. 토치가 뿜어내는 1,000℃의 파란 열기에 강관은 붉게 닳아 있다. ‘열간 단조공정’으로 불리는 ‘핫 스피닝(Hot Spinning)’ 공정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는 곳은 부산 강서구 녹산산업단지에 있는 에테르씨티(AETHER CT)가 유일하다. 국내 유일 수소충전소용 초고압 강재압력용기(Type 1) 생산 기업으로 확고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스피닝 공정으로 990bar 고압용기 생산
에테르씨티는 조선기자재 업체인 엔케이(NK)에서 2020년 5월에 대형 고압용기 사업부가 물적분할해 설립한 회사로, 이후 국내 사모펀드(Ascent PE)가 인수해서 운영하고 있다. 지난 6월에 ‘엔케이에테르’란 사명을 ‘에테르씨티’로 변경하면서 용기 제작 기술력(CT, Container Technology)에 대한 명확한 정체성을 확립했다.

부산공장은 이번에 간판을 바꿔 달면서 이미지가 확 젊어졌다. 둘러보니 겉만 바뀐 게 아니다. 사무실, 식당 등을 새로 리모델링했고, 지난해에는 제조실행시스템(MES) 전산설비 설치도 완료했다. 품질 개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공장 내부의 세세한 부분까지 정비를 마쳤다.

▲ 에테르씨티 부산공장으로 최근 외부 인테리어 공사를 마무리했다.

“전국에 천 대 정도 되는 수소튜브트레일러가 운행되고 있죠. 모두 여기서 만든 겁니다. 에테르씨티는 이음매가 없는 심리스(Seamless) 강관의 끝단을 스피닝해서 타입1 탱크를 만드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죠. 작년 6월에 555bar 중압용기의 국산화를 완료했고, 올해 4월에 호주의 승인을 받아서 초도품 수출에도 성공했어요. 그리고 오는 11월에 990bar 고압용기(350L)의 출시를 앞두고 있죠.”

990bar 고압용기의 경우 미국 ASME 인증, 한국가스안전공사의 KGS 인증을 받았다. 에테르씨티 기술연구소의 지현준 소장은 “영월에 있는 KGS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에서 최근 플러그 모듈 6만 회 반복시험을 무사히 마쳤다”고 한다. 

국내에 들어온 타입1 고압용기는 미국산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중 미국 A사 제품은 고압용기 플러그(Bull Plug) 체결부에서 가스가 새는 바람에 전량 사용정지 명령을 받았다. 그 후로 고압용기 수요가 B사로 몰리면서 용기 대란이 벌어졌고, 납기가 1년 이상 늦어지면서 수소충전소 구축 일정에도 차질을 빚었다. 

“한국가스안전공사가 올해 초 KGS AC 111을 개정하면서 내년 7월부터는 플러그 모듈 6만 회 반복시험을 의무화하기로 했어요. 미리 검증을 받는 차원에서 이번에 시험을 진행했고, 별 문제없이 통과했죠. B사에 대응하기 위해 560리터급 990bar 용기는 내년 7월에 출시할 예정입니다. 제품의 길이만 늘리면 되기 때문에 어려운 건 없어요.”

990bar 타입1 고압용기 출시는 수소충전 시장에 큰 파급력을 불러올 수 있다. 수소 누출 문제로 A사 고압용기가 사실상 퇴출되면서 미국의 B사 용기가 국내 수소충전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체코의 비트코비체실린더즈, 이탈리아 파버 사가 대형이 아닌 소형 용기를 번들로 구성한 모듈 타입을 유통하고 있지만, 국내 충전소에서 선호하는 형태는 아니다. 

사실상 수소고압용기는 ‘B사 VS 국산’의 구도로 보면 된다. 에너진이 금속 실린더 외부에 강선을 감는 와인딩 방식을 세계 최초로 적용한 대형 초고압 저장용기를 개발해 비슷한 시기에 인증을 마쳤다. 다만 수소용기 시장에 처음 진입한 제품이라 신뢰성과 인지도를 쌓아가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심리스 강관은 대부분의 업체가 중국에서 수입을 해서 써요. 제철소급 규모의 큰 공장에서 대량생산 체계를 갖추고 생산하기 때문에 가격 경쟁이 안 됩니다. B사는 56mm(T) 강관을 쓰고 우리는 66mm(T) 강관을 써요. 우리가 10mm 정도 파이프 두께가 더 굵죠.”

관이 굵다 보니 끝단을 둥글게 가공하는 스피닝 공정에 더 높은 기술력을 요한다. 990bar 고압용기 제작에 맞춰 핫 스피닝 설비도 손을 봤다. 

▲ 강관의 끝단을 가공하는 핫 스피닝 공정.
▲ 퀜칭 퍼니스에서 진행하는 열처리 작업.

“토치로 열을 가해서 롤러로 강관의 살을 당기면서 둥글게 다듬게 돼요. 물레를 돌리면서 손으로 도자기를 빚는 것과 같죠. 스피닝 가공 전에 끝단을 예열하는 작업이 정말 중요합니다. 고주파 유도가열 방식을 적용해서 짧은 시간에 일률적인 온도로 올린 다음 바로 토치 성형에 들어가죠.”

이렇게 성형한 제품은 열처리를 진행한다. 퀜칭 퍼니스(Quenching Furnace) 안에서 벌겋게 달군 뒤 찬물에 식히는 담금질로 경도를 높이게 된다. 이후 개구부에 플러그를 체결하기 위한 나사선을 가공하고 수압테스트를 진행한다. 

▲ 표면에 쇼트 블라스트(Shot Blast) 처리를 한 용기들.
▲ 개구부에 나사선을 가공한 모습.

2개의 오링 적용해 이중으로 기밀 유지
분자가 작은 수소는 금속 내부로 파고들어 연성을 감소시키는 수소취성 문제가 있다. 특히 고압용기는 수소취성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내부에 가는 금(Crack)이 생기면 용기 수명은 카운트다운에 돌입한 셈이다. 

에테르씨티의 990bar 고압용기는 ‘ASME 섹션8 디비전3 KD-10’에서 요구하는 수소취성시험을 통한 수명평가를 완료했다. 저속변형률 인장시험(SSRT: Slow Strain Rate Tensile Test), 피로파괴시험(FCGR: Fatigue Crack Growth Rate Test) 등이 여기에 든다. 이는 KGS AC 111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KGS AC 111은 미국기계학회(American Society of Mechanical Engineers)에서 수소고압용기 제작을 위해 정한 ‘ASME 섹션8의 디비전1’에 ‘디비전3 KD-10’의 요구사항을 포함하고 있다. 국내에 관련 기준이 없다 보니 ASME 인증 기준을 참조해 국내용 타입1 고압탱크 인증 규정을 새로 만든 것이다.

“사실상 같은 인증을 미국과 한국에서 이중으로 받았다고 할 수 있죠. 용기 개발은 오래전에 마쳤고, 저장용기 규정을 마련하는 데 3년 정도 시간이 걸렸다고 보시면 됩니다. 수소 압력에 비례해서 강관의 두께가 결정이 되는데, 555bar 중압은 52T를 쓰고, 990bar는 66T를 쓰도록 하고 있는 ASME 섹션8 디비전1에 따라 설계를 진행했죠. 56T 정도 되는 강관을 쓰는 B사는 두께를 낮춘 대신 디비전3의 추가적인 비파괴검사를 수행해서 안전성을 보증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B사에 비해 10mm 남짓 두꺼워 무게가 더 나가지만 충전소 설비로 고정해서 쓰는 용도라 큰 영향은 없다. 다만 기체를 담는 체적이 줄어 길이는 조금 더 길다. 

▲ 11월 출시를 앞둔 66T 990bar 용기의 단면으로 H2 MEET에 전시됐다.

수소저장용기의 수명 기한은 20년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압력 사용 구간별 반복사용 횟수는 회사마다 다르게 정하고 있다고 한다. B사가 35만 회를 제시한 반면 에테르씨티는 66T 두께를 적용한 응력해석, 피로수명 계산 결과를 기반으로 100만 회 기준을 제시할 방침이다.

용기의 기밀도 매우 중요하다. 회사마다 플러그에 오링(O-Ring)을 적용하는 방식이 다르다. 미국 A사는 플러그의 나사 안쪽 끝단에 오링을 넣어 끝단에서 기밀을 잡는다. 그에 반해 B사는 나사 앞단에 오링을 적용해 수소 기체가 나사선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미연에 차단한다.

“B사가 안쪽에서 잡아주는 방식이라 수소가 용기 나사산에 닿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더 효과적이죠. 이 방식을 시도해본 적이 있는데 조립이 너무 까다롭더군요. 막음플러그(End Plug)와 용기의 나사 체결부에 가공 공차가 조금이라도 나면 체결과정에서 오링이나 백업링이 손상되거나 미세한 틈이 생길 가능성이 높죠. 지금은 이런 단점을 보완해서 에테르씨티가 이전부터 해오던 방식대로 나사 안쪽에 오링 2개를 써서 이중으로 기밀을 잡고 있어요.”

▲ 에테르씨티 기술연구소의 지현준 소장.

오링과 백업링은 모두 국산 제품을 쓴다. 수소전기차 개발이 진행되고 관련 산업에 대한 투자가 늘면서 국내 기술력도 많이 높아졌다. 

고압에 따른 오링의 변형을 잡아주는 용도로 고성능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인 PEEK 계열의 백업링을 적용하고 있다. 에테르씨티는 이 백업링을 오링 바깥뿐 아니라 안쪽에도 적용해 오링의 손상 위험을 최소화하고 있다.  

“플러그 모듈의 경우 이번에 6만 회 반복시험을 통과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오링이 버틸 때까지 끝까지 돌려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세계적으로 수소충전을 한국만큼 많이 하는 곳이 없죠. 시간이 지나면서 B사 용기에도 기밀 문제가 부각이 되고 있어요. 오링도 소모품이라 일정 기간이 되면 교체를 해야 합니다. 이런 현장의 데이터들이 쌓여가는 단계라 할 수 있죠.”
 

타입4 용기 개발에도 관심
도장을 마친 용기들이 공장 바닥에 일렬로 놓여 있다. 이들 용기는 튜브트레일러나 튜브스키드로 조립되어 납품이 된다. ‘스키드’는 트럭 위에 싣고 내릴 수 있는 분리형 제품이다. 화물컨테이너처럼 선박에 적재해 수출하는 용도로 주로 나간다. 

▲ 튜브스키드 후단의 매니폴드 배관작업을 하고 있다.
▲ 튜브트레일러에 용기 체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튜브트레일러는 수소충전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바퀴가 달린 섀시에 용기를 일체형으로 체결한 제품이다. 어프로티움(옛 덕양), SPG, 창신화학, SDG 등 수소를 유통하는 회사는 달라도 튜브트레일러 용기만큼은 모두 에테르씨티 제품이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디스플레이 강국이죠. 증착이나 식각, 세정 공정에 특수가스가 많이 쓰여요. 삼불화질소(NF3), 모노실란(SiH4), 육불화황(SF6), 아산화질소(N2O) 같은 기체가 여기에 들죠. 반도체 특수가스 충전용으로 튜브스키드나 Y톤 용기의 수요가 많아요. 매출로 보면 지금은 6대 4 정도로 수소가 많이 치고 올라왔죠. 유럽이나 호주 쪽으로 수요가 늘고 있어서 미래를 밝게 보고 있습니다.”

지현준 소장에게 수소운송 시장에 문을 두드리고 있는 타입4 수소저장용기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타입4는 플라스틱 라이너에 카본이나 유리섬유를 두툼하게 감아 보강한 제품을 이른다. 

200bar 타입1 트레일러 한 대당 수소공급량이 300kg 수준이라면, 450bar 압력을 적용한 타입4 용기는 40피트 트레일러 한 대당 수소공급량이 최대 1,000kg에 이른다. 차량 무게도 훨씬 가볍고 크기도 작아 수소운송에 유리하다. 

하지만 가격이 타입1에 비해 최소 두 배 이상 비싸고, 재검사를 통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타입1 제품과 달리 타입4 용기는 20년이라는 사용수명이 정해져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에 든다.

“금속 라이너에 탄소복합소재를 부분적으로 감아서 제작하는 타입2 용기를 개발한 적이 있어요. 실외에 장시간 노출이 되면 수지가 녹아내리는 경우가 생기더군요. 이럴 땐 수습이 불가능하죠. 타입4 용기가 개발되어 시중에 나와 있지만 트레일러 형태로 조립해서 운송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자외선이나 비, 도로의 진동 등에 노출됐을 때 검증이 필요해요. 향후 기술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 2대 8 정도로 일정 부분 시장을 가져갈 걸로 봅니다.”

회사 내부적으로도 타입4 저장용기 개발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관계사를 인수해서 추진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현준 소장은 액화수소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액화수소가 시중에 유통이 되더라도 이를 기화해서 쓰기 때문에 중압이나 고압 탱크에 대한 수요가 줄지는 않을 거예요. 일단 영하 253℃에서 일어나는 기화를 잡는 극저온 기술 확보가 쉽지가 않고, 이를 실현하더라도 대당 20억 원이나 하는 액체수소 탱크로리를 운용하기가 쉽지 않죠. 국내에 그만한 장거리 대량운송 수요가 있는지 잘 봐야 합니다.”

공장 뒤편 야적장에 중국에서 들여온 강관이 겹겹이 쌓여 있다. 개중에 눈에 띄게 두툼한 강관이 보인다. 길 건너에 있는 태웅에서 제작한 82T 심리스 강관이다.  

“포스코에서 개발한 합금강 빌릿(Billet)으로 태웅에서 금속단조 방식으로 제작했어요. 국책 과제로 진행 중인데, 11월에는 스피닝을 해서 압력용기를 만들 계획이죠. 일반 튜브트레일러는 단가가 안 맞지만, 고압용기 쪽은 빌릿을 일일이 쳐서 만드는 단조 작업으로도 경제성이 있다고 보고 있죠.”

▲ 에테르씨티는 타입1 수소 튜브트레일러 용기와 중고압 용기를 생산해 시장에 공급한다.

고압의 수소를 담으려면 용기가 특별해야 한다. 용접이 들어가선 안 된다. 이음매 없는 강관에 열을 가해 끝단을 둥글게 잡은 뒤 매끈하게 다듬어야 한다. 

에테르씨티는 스피닝 성형기를 자체 개발했고, 20년간 장비를 보완하고 보강해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2년 전 물적분할과 주주손바뀜이라는 큰 변화를 겪었지만, 초대형 압력용기 제조 전문기업의 위상에는 변함이 없다. 그 전문성을 살려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국산 고압용기의 출시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곳이 많다. 뛰어난 품질의 제품이 합리적인 가격에 나오면 충전인프라 구축에 큰 도움이 된다. 국산화 비율을 높일 수 있고, 외부요인에 휘둘려 충전소 구축 일정에 차질을 빚는 일도 피할 수 있다.

트랙터 트럭 한 대가 튜브트레일러를 달고 출고장을 빠져나간다. 가을 햇살을 받은 주황색 탱크가 홍시마냥 환하다. 여기가 타입1 수소저장탱크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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