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수소경제 박상우 기자] 수소는 생산 방식과 친환경성 정도에 따라 그레이수소, 블루수소, 그린수소로 구분된다. 이 중 그린수소는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전혀 없어 ‘궁극적인 친환경 수소’로 불린다.
그린수소를 생산할 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에너지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는 기상조건에 따라 들쭉날쭉하게 전력을 생산하는 간헐성 문제가 있다. 그래서 재생에너지 업체들은 최적의 조건을 갖춘 용지를 찾고 있지만 쉽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의 ‘2017~2022년 발전사업 허가현황’에 따르면 2019년 3,963MW였던 신규 태양광 발전 허가 설비용량은 2020년 1,045MW, 2021년 326.09MW로 급격히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경제성이 나올 만큼 일조량이 적절해야 하는데 산지가 많은 한국 특성상 최적의 장소를 찾기가 어려운 데다 2018년부터는 환경 파괴와 안전 우려로 산지 태양광 건설을 제한하면서 용지 확보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육상풍력의 경우 일 년 내내 일정 이상의 바람이 부는 장소를 찾기 어려운 데다 전력 수요가 있는 곳까지의 접근성, 소음과 경관에 따른 주민 수용성 등을 고려하면 최적의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입지제약이 비교적 자유로운 해상풍력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으나 설계, 설치, 운전 등 제반 비용이 육상풍력보다 많이 들고 전력망이 육상에서 멀어질수록 설치, 보강 비용도 커져 경제성이 낮다.
또 지난 2020년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 평균 풍속은 적정 풍속인 초속 7m보다 느린 초속 6.03m에 그쳤으며 해상풍력 이용률은 정부 예상치인 30%보다 적은 22%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새롭게 주목받는 재생에너지가 있다. 바로 물의 힘, 수력이다.

활용법이 무궁무진한 수력
수력발전은 주로 하천이나 호수에 인위적으로 댐을 설치해 상류의 물을 막은 후 수문을 제어해 물을 하류로 거세게 흘려보내는데 이때 물이 흐르는 통로에 수차를 설치해 물의 힘을 통해 교류발전기를 작동시킨다. 이때 얻은 전기는 다시 변압기를 통해 고전압으로 변환된 후 송전선을 통해 배전된다.
수력발전은 부지매입, 댐 건설 등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어가고 상당 부분의 지형을 침수시켜야 하는 문제점이 있으나 연료비가 매우 적게 들어가기 때문에 발전생산원가가 매우 저렴하고 수력발전에서 생산된 전력량만큼 화력발전소를 돌리지 않아도 돼 전력요금 안정화와 탄소중립 실현에 도움을 준다.
여기에 수력발전은 전력을 생산하는 시간이 5분 이내로 짧아 전력 수요량 변화에 가장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어 전력 수요가 최고조에 달한 시간대에 전력을 공급하기 적합하고 수차가 돌아가는 속도가 일정하고 발전 전력의 주파수가 균일해서 전력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
수력발전은 크게 △인공호를 축조해 물의 낙차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댐식 △댐을 축조한 후 낙차가 큰 지점으로 물을 유도해 발전하는 수로식 △댐의 낙차가 작은 경우 댐 아래에 발전기를 설치하고 유량의 압력에 의해 발전하는 저낙차식 △주간에만 발전에 이용하고 남은 물을 보조댐에 저장했다가 야간에 전력을 다시 사용해 본댐으로 양수해 발전하는 양수식으로 나눠진다. 이 중 국내 대부분의 수력발전소는 댐식이다.
최근에는 양수식발전이 주목받고 있다. 양수발전은 3분 이내의 빠른 기동과 넓은 범위의 출력조절로 대규모 전력을 신속히 생산할 수 있으며 장시간 안정적인 운전이 가능하다. 또 양수운전을 통한 부하 평준화 효과로 원자력 등 저원가 발전소의 이용률 증가에 기여하고 발전운전을 통해 값비싼 발전원 투입을 대체할 수 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양수발전은 원자력, 화력 등 기저부하의 보조전원 역할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 증가에 따른 간헐성과 변동성 보완을 위한 보조전원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가동 중인 양수발전소는 청평(400MW), 무주(600MW), 산청(700MW), 예천(800MW) 등 총 7곳이며 총 설비용량은 4.7GW다. 이 중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양양으로, 250MW급 발전기 4대가 설치돼 총 설비용량이 원전 1기와 맞먹는 1GW다.
양수발전소 7곳 모두 한국수력원자력이 운영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는 처음 보일러에 불을 붙인 후 오랜 시간이 지나야 제 능력을 발휘하는 만큼 가동을 하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운전해야 한다. 그래서 낮 시간대는 수요가 많아 생산한 전기를 모두 사용하나 수요가 적은 심야에는 생산된 전기가 남는다.
이에 한수원은 심야에 생산된 전기 중 일부를 양수발전소로 보내 물을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데 사용한다. 이렇게 끌어올린 물은 전력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양수발전소를 가동할 때 사용된다. 이 때문에 한수원이 국내 모든 양수발전소를 운영하는 것이다.
한수원은 약 4조 원을 투입해 충북 영동군에 2030년까지 500MW급, 강원도 홍천군에 2032년까지 600MW급, 경기도 포천시에 2034년까지 700MW급 양수발전소를 건설할 예정이다. 여기에 약 10억 원을 투입해 내년 6월까지 400MW급 양수발전소 개발이 가능한 후보지를 물색한다.
양수식과 함께 주목받는 것이 바로 소수력발전이다. 소수력발전은 출력 규모가 10MW 이하인 수력발전을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1MW~10MW까지 소수력발전, 10MW~100MW까지 중수력발전, 100MW를 초과하면 대수력발전으로 분류한다.
소수력발전은 규모가 작은 만큼 초기 비용이 다른 수력발전보다 적고 농업용 저수지, 하수처리장, 정수장, 다목적댐 용수로 등 물이 흐르는 곳에 대부분 설치가 가능하므로 분산전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여기에 수몰이 필요 없어 주변 생태계를 보전할 수 있고 1kWh의 전력을 생산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11.3g밖에 되지 않으며 질소산화물과 유황산화물을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도 있다.
소수력발전까지 포함해 현재 가동 중인 수력발전기 수(양수발전 제외)는 222개이며 총 설비용량은 1,811MW다. 주요 수력발전소 설비용량은 충주 412MW, 소양강 200MW, 청평 140MW, 팔당 120MW, 화천 108MW, 합천 100MW이다. 또 연간 발전량은 충주 844GWh, 소양강 353GWh, 팔당 338GWh, 청평 271GWh이다.
물의 나라 스위스
수력발전은 태양광, 풍력 등과 함께 재생에너지로 정의되고 있다. 즉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그린수소 생산에 적합한 발전방식이다. 무엇보다 수력발전의 에너지 효율성은 태양광, 풍력보다 높다. 수력의 효율성은 50~60%지만 풍력이 20~25%, 태양광이 15~20%이다.
이 때문에 소수력발전으로 전기를 만들어 수소를 생산하면 생산비가 1kg당 1만 원 수준이다. 이는 1kg당 약 1만5천 원인 풍력보다 저렴하다. 이런 이유로 세계 곳곳에서 수력발전을 활용한 그린수소 생산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이 바로 ‘물의 나라’ 스위스다.

스위스는 유럽 전역의 담수 중 6%가량을 저장하고 있다. 이는 지형 때문이다. 스위스는 국토의 60% 이상이 산악지형이다. 이 중 산지가 높은 곳에는 빙하가 형성돼 있다. 이 빙하는 물의 증발을 막으면서 고원지대에 있는 호수를 1년 내내 마르지 않도록 유지해준다. 여기에 연평균 강수량이 한국의 2배가 넘는 2,600mm인 데다 강수량이 연중 고르게 분포된 편이다.
이같이 물이 풍부한 스위스는 1910년대부터 수력발전을 시작했다. 스위스 연방 에너지청에 따르면 현재 스위스에는 682개의 수력발전소가 있으며 평균 설비용량은 약 300kW, 연간 평균 발전량은 3만7,172GWh다. 방식은 48.3%가 유입식, 47.5%가 댐식, 4.2%가 양수식이다.
2020년 스위스에서 사용된 전력의 약 76%가 재생에너지이며 이 중 66%가 수력발전, 20%가 원자력, 10.3%가 태양광・풍력・소수력・바이오매스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스위스 내에서 생산된 전력의 58%가 수력발전이며 32.9%는 원자력발전, 2.3%는 화력발전, 6.7%가 수력 이외의 재생에너지다.
이 때문에 스위스에서 그린수소 생산 사업이 잇따라 추진되고 있다.
스위스 국영 전력회사 알픽과 스위스 수소 전문기업인 H2 Energy(H2E)가 설립한 합작법인인 하이드로스파이더(Hydrospider)는 지난 2020년 상반기부터 스위스 취리히 서쪽 아레강(Aare River)에 있는 괴스겐(Gösgen) 수력발전소에서 그린수소 생산시설을 가동하고 있다.
이 생산시설은 수력발전소의 잉여전력으로 2MW급 수전해시스템을 가동해 연간 최대 300톤의 그린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이는 연간 40~50대의 수소전기트럭 또는 1,700대의 수소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는 양이다.
스위스 최대 재생에너지 전문기업인 악스포(Axpo)는 지난해 4월부터 스위스 북쪽 라인강에 있는 43MW급 에글리소-글랫펠덴(Eglisau-Glattfelden) 수력발전소에 2.5MW급 그린수소 생산시설을 짓고 있다. 이 시설은 이르면 올가을부터 가동될 예정이며 연간 350톤의 그린수소를 생산해 인근 수소충전소에 공급할 예정이다.
악스포는 이를 통해 연간 150만 리터 이상의 디젤 연료를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그린수소 수요가 증가하면 시설용량을 5MW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악스포는 또 스위스 취리히 서쪽 아레강에 있는 와일더그-버그(Wildegg-Brugg) 수력발전소에 그린수소 생산시설을 구축할 계획이다. 시설 규모는 15MW이며 가동은 2024년 봄에 시작될 예정이다.
악스포는 이곳에서 연간 약 2,000톤의 그린수소를 생산해 파이프라인으로 인근 충전소에 공급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수전해시스템 가동 시 발생하는 폐열을 인근 산업단지에 공급하는 계획도 추진한다.
스위스 전력 생산・유통업체인 그룹 E(Groupe E)는 독일의 H-TEC SYSTEMS와 스위스 베른 서쪽에 있는 시펜 댐(Schiffenen Dam) 수력발전소에서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H-TEC SYSTEMS는 그룹 E가 운영하는 시펜 댐에 2MW급 PEM 수전해시스템 기반 그린수소 생산시설을 설치해 연간 약 300톤의 그린수소를 생산해 인근 충전소에 공급할 계획이다. 가동은 2023년에 시작된다.
그룹 E는 현재 운영 중인 신재생에너지 발전소를 기반으로 그린수소 생산 사업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그룹 E는 현재 스위스 베른 남쪽에 있는 조네강(Jogne River)에서 7개의 댐과 수력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룹 E가 생산하는 전력의 61.5%가 수력발전에서 생산된다.
독일의 린데는 지난해 9월부터 미국 뉴욕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 옆에 있는 산업단지에 PEM 수전해시스템 기반 그린수소 생산시설을 세우고 있다. 1,730만 달러(약 226억 원)가 투입되는 이 프로젝트는 나이아가라 수력발전소에서 만든 전력으로 PEM 수전해시스템을 가동해 그린수소를 생산할 예정이다.
본격적인 가동은 이르면 내년 하반기에 시작될 예정이나 정확한 수전해시스템 용량과 연간 그린수소 생산량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린데가 지난달 뉴욕주로부터 22MW의 발전량을 배정받음에 따라 생산능력을 현재 목표보다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또 인도 국영석유천연가스공사(ONGC)는 인도 최대 신재생에너지 전문기업 중 하나인 그린코(Greenko)와 그린수소 전문 합작법인을 설립한다. 이 합작법인은 그린코의 양수발전소 등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1.4GW의 RTC(24시간 운영) 전력을 생산해 연간 18만 톤의 그린수소를 생산할 예정이다.

첫발 뗀 한국
국내에서도 수력발전으로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7월 21일 한국수자원공사와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에 있는 성남 광역정수장에서 정수장의 소수력발전을 이용해 수소를 만드는 ‘그린수소 실증시설 착공식’을 개최했다.
이 사업에는 환경부 기후대응기금 30억8,000만 원과 그린수소 실증시설 및 수전해 설비 테스트베드를 구축・운영할 한국수자원공사의 13억2,000만 원을 합쳐 총 44억 원이 투입된다.
성남 광역정수장에는 팔당호 취수원에서 정수장까지 물이 보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압을 활용하는 700kW 규모의 소수력 발전기가 있다. 이 발전기가 만든 전기로 정수장의 물을 전기분해하면 연간 약 69톤의 그린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이는 하루에 약 188kg의 수소를 공급하는 것으로 하루 동안 수소승용차 38대를 충전할 수 있는 양이다.
이와 함께 정수장 유휴부지에 무공해버스 전용 차고지를 조성할 예정이다. 이 차고지에 현대자동차와 협력해 이동형 수소충전소 1기와 급속 전기충전기 15기를 설치할 계획이다. 여기에 성남 광역정수장 인근에 있는 사송공영차고지 내 시내버스 450대를 2030년까지 무공해(수소・전기) 버스로 전환한다.
또 국내 수전해 기술 연구 기업, 연구소, 대학 등이 참여해 실증할 수 있도록 그린수소 생산설비 시험 공간도 조성한다.

이번 그린수소 실증시설과 수전해 설비 테스트베드의 구축과 관리를 주관하는 한국수자원공사의 관계자는 “성남 소수력발전소의 가동률이 대략 60~70%인데 용량 대비 가동률이 높은 편이어서 꾸준히 수소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라며 “이번 실증을 통해 소수력발전으로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일에 대한 사업성 등을 확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환경부는 충주 조정지댐에 있는 6MW급 수력발전소와 밀양댐에 있는 1.3MW 소수력발전소에서도 해당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내년 예산안에 두 곳의 설계예산이 반영될 수 있도록 기획재정부에 신청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수중보, 정수장 등에 있는 소수력발전을 활용해 해당 사업을 추진하고자 충주댐과 밀양댐에 설치할 실증시설 설계예산을 내년 환경부 예산안에 포함하고 기재부에 관련 예산이 반영될 수 있도록 신청했다”라며 “다른 곳에서도 해당 사업을 추진할지 내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또 국내 주요 수력발전소와 양수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도 수력으로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한수원은 수력발전을 활용한 그린수소 생산 실증 및 사업화 모델을 개발해 MW급 수소생산 플랜트 구축 및 운영기술을 확보하고 해외시장 진출을 모색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6월 정부 과제로 ‘해외 진출용 수력 활용 수소 인프라 구축 및 운영기술 개발사업’을 제안했으며 지난 5월까지 기획보고서를 작성해 지난 6월 공청회를 열고 과제 기획안을 발표했다.
한수원은 이같이 수력발전으로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사업을 계획하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확정되지는 않았다. 한수원 관계자는 “관련 계획은 있으나 현재 진행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그린수소를 2030년 25만 톤, 2050년 300만 톤 생산・공급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또 EU는 지난 2020년 7월 ‘기후중립 유럽을 위한 수소전략’을 통해 2030년까지 최소 40GW 규모의 수전해 설비를 구축해 최대 1만 톤의 수소를 공급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여기에 미국, 중국, 일본 등도 그린수소 생산・공급 로드맵을 공개했다.
이 때문에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가 지난해 발표한 ‘세계 에너지 전환 시나리오’에 따르면 2050년 세계 수전해 설비용량이 1,700GW에 달할 것으로 보이며 현재 세계 전력량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7,500TWh 이상의 재생에너지 전기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 약 13%인 1,000TWh가 수력발전을 통해 공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