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아이텍이 지난 6월 코멤텍에 납품한 MEA 슬롯다이 코팅 스테이션.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수도권에 물폭탄을 쏟아낸 비구름이 남쪽으로 내려앉았다. 충남 아산에도 온종일 비가 내렸다. 지아이텍(GITECH)은 아산테크노밸리에 있다. 수소 업계보다는 이차전지, 이른바 배터리 업계에 이름이 잘 알려진 곳이다. 

“디스플레이 쪽에선 슬릿노즐(Slit Nozzle), 이차전지 쪽에선 슬롯다이(Slot Die)라 부르는 초정밀 시스템 장비를 제작하고 있죠. 슬릿노즐이나 슬롯다이나 같은 제품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액상의 점도, 유량, 압력, 코팅 두께 등에 따라 내부 설계가 다를 뿐 기본 구조나 작동 원리는 같으니까요.”

슬롯다이는 이차전지 전극 소재를 머리카락 굵기 정도인 100~230마이크로미터(㎛) 두께로 알루미늄이나 구리 박막에 분사하는 장비를 말한다. 

정봉수 시스템사업본부장이 지난 6월에 코멤텍에 납품했다는 수소연료전지 MEA(막전극접합체) 코터 사진을 보여준다. 코터(Coater)는 코팅장비를 이른다. PEN 필름 위에 양극재나 음극재 슬러리를 코팅하는 정밀 장비다.

“수소연료전지 스택에 들어가는 MEA 제작에 슬롯다이를 활용하고 있죠. 슬롯다이 코팅 스테이션은 여기 앞단에 위치하고 있어요. 백업롤에 필름이 풀려 나갈 때 백금(Pt)이 든 촉매 슬러리를 얇게 코팅하는 역할을 하죠. 가운데 길게 놓인 설비는 드라이어예요. 일종의 ‘에어프라이어’로 촉매를 건조시킨 다음 마지막에 롤투롤로 필름을 다시 감아내게 되죠.” 
 

이차전지 ‘슬롯다이’ 기술에서 출발
사진만 봐서는 이해가 잘 안 간다. 본사에서 1km 정도 떨어진 2공장으로 향한다. 이곳에 시험용 코터 장비가 있다. 슬롯다이 시제품을 만들어 코터 앞단에 설치한 후 실제 코팅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코멤텍도 사전에 이 과정을 거쳤다.

“이 부분이 슬러리를 토출하는 슬롯다이, 여기가 필름이 지나가는 백업롤(‘코팅롤’이라고도 한다)이죠. 이차전지용 슬롯다이와는 밸브 쪽만 조금 틀리고 시스템적으로는 거의 유사해요.”

▲ 정봉수 시스템사업본부장이 슬롯다이와 백업롤 장비의 작동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2공장에 있는 시험용 코팅장비로 새로 개발한 슬롯다이의 테스트를 진행한다.

여기에 백금 촉매 슬러리 탱크가 포함된 펌프시스템을 탈착식으로 구성해 슬롯다이 옆에 배치하게 된다. 탄소지지체가 포함된 액상 슬러리를 코팅하고 난 뒤에는 탱크와 밸브뿐 아니라 슬롯다이를 모두 분해해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 

“코팅을 할 때마다 청소를 하기 때문에 한 번은 양극재 코팅, 한 번은 음극재 코팅 식으로 장비를 운전하게 되죠. 지금은 생산량이 많지 않아서 장비 한 대로 양극재, 음극재를 번갈아가며 코팅하고 있지만, 향후에는 구분해서 가는 게 좋다고 봅니다. 이차전지 생산라인처럼 양산 규모가 커지면 아마 그렇게 될 겁니다.”

현대차의 연간 수소전기차 생산 물량은 1만5천 대 수준이다. MEA 시장의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다. 정 본부장은 ‘도입기’로 본다. 

“작년에 업체 네다섯 곳에 처음 납품을 했고, 올해는 코멤텍에 납품을 진행했어요. 코터 앞단에 들어가는 핵심 장비인 ‘슬롯다이 코팅 스테이션’이 대부분이죠. 납품 규모만 놓고 보면 코멤텍이 30억 원으로 가장 큽니다. 코팅장비뿐 아니라 멤브레인(강화복합막)에 전극을 합치는 전사장비도 이번에 같이 납품했죠.”

▲ 코멤텍에 납품한 지아이텍의 MEA 코팅장비.

전사장비(Laminating machine)는 전극이 코팅된 PEN 필름을 박리시켜 양극재와 음극재만 강화복합막에 전사(轉寫)하는 장비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포켓몬 ‘판박이 스티커’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내부에 필름을 이동시키는 롤이 여러 개 설치돼 있다. 

▲ 코멤텍에 납품한 MEA 전사장비(위)와 내부의 롤투롤 설비(아래).

핵심 장비인 슬롯다이는 본사가 있는 1공장에서 생산된다. 상부 플레이트, 하부 플레이트 사이에 일종의 끼움쇠인 ‘심(Shim) 플레이트’가 들어 있다. 

정봉수 본부장을 따라 공장을 둘러본다. 스테인리스강 소재인 STS630을 열처리하는 것으로 작업이 시작된다. 업체별 슬롯 설계에 맞춰 가공, 연마, 세척, 3D 측정(검사) 순으로 공정이 이뤄진다. 정밀성을 요하는 가공, 연마 공정에 긴 시간이 소요된다. 

가공실에 발을 들이자 머시닝센터(machining center)라 부르는 복합공작기계들이 도열해 있다. 보링・밀링・드릴링 장비로 금속을 정밀하게 가공한다. 연마실에서는 연마석으로 금속 표면을 갈아내거나 매끈하게 다듬는 작업이 한창이다. 

지아이텍은 국내를 대표하는 배터리 제조사인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를 비롯해 스웨덴의 배터리 제조사인 노스볼트(Northvolt)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배터리 제조사에서 쓰는 전극재 성분의 해석부터 슬롯다이의 설계와 제작에 필요한 정밀가공, 연마, 도금, 조립 기술을 모두 확보하고 있다. 

지아이텍은 이차전지 전극 코팅 공정에 ‘패턴 밸브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이는 이차전지 스태킹(Stacking, 적층) 기술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차전지 배터리는 모양이 제각각이다. 파우치형, 원통형, 각형 등 각 회사별로 스태킹 방식에 차이가 있다. 코팅 공정 기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LG엔솔은 양극, 분리막, 음극을 먼저 라이네이션으로 붙이고 나서 한 장 한 장 쌓아올리는 ‘라미네이션 앤 스태킹’ 방식을 써요. 그에 반해 SK온은 ‘Z-스태킹’이라고 해서 양극과 음극을 낱장으로 재단한 다음 분리막을 Z 모양으로 접어서 번갈아 쌓는 방식이죠. 이차전지 업체들의 이런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패턴 장비 기술이 나왔다고 할 수 있어요. 이번에 코멤텍에 들어간 코터 장비에도 패턴 기술을 적용했죠.”
 
코일모터 밸브를 활용한 ‘패턴 코팅’
연료전지 MEA 제조사는 생산성을 높이길 원한다. 전극 촉매를 필름 위에 하나씩 코팅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크기대로 딱딱 끊어주면서 일정한 간격으로 패턴(간헐) 코팅을 하면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지아이텍 본사 회의실을 찾아 최한신 연구소장과 대화를 이어간다. 

“장비 개발자 입장에서는 연속으로 죽 코팅을 하는 게 쉬워요. 하지만 생산효율을 높이고 싶어하는 고객사는 격자(Stripe) 코팅이나 간헐(intermittent) 코팅, 이 둘을 혼합한 간헐격자 코팅을 선호하죠. 이렇게 패턴을 주는 코팅 기술을 MEA 제작에 적용할 수 있는 건 이차전지 일을 그만큼 오래 해왔기 때문입니다.”

패턴 코팅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부품은 두 개의 밸브에 있다. 밸브 하단에 보이스코일모터(Voice Coil Motor)를 달아 정밀하게 제어한다. 보이스코일모터는 전류가 흐를 때 생기는 전자기력으로 코일 안의 영구자석이 작동하는 정밀 모터다. 

작동법은 이렇다. 백금 촉매 슬러리를 펌프로 밀어 코일모터가 달린 두 개의 밸브로 보내게 되는데, 이 밸브가 정교하게 개폐되면서 슬러리를 회수하거나 일정량의 슬러리를 슬롯다이 쪽으로 토출하는 일을 하게 된다.  
“두 개의 밸브가 토출구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백업롤이 필름을 감아낼 때 압력센서가 달린 슬롯다이에서 슬러리를 고르게 분사하게 되죠. 슬롯다이는 액상을 정밀하게 분사해서 필름 표면에 코팅하는 일을 해요. 장비의 역사를 거슬러 오르다 보면 출판이나 직물 인쇄 장비에 이르게 되죠.”

▲ 지아이텍 최한신 연구소장은 “MEA 제작용 슬롯다이 양산기술은 이차전지에서 넘어왔다”고 말한다.

최한신 소장은 슬롯다이 기술의 DNA가 인쇄에서 시작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로 넘어왔다고 설명한다. 분리막과 양극재를 다루는 이차전지 양산기술을 연료전지 MEA 생산에 접목하면서 지금의 1세대 기술이 확립됐다. 

“통상 기존에 있는 장비 기술을 활용해서 새로운 기술에 적용하게 됩니다. 이 방법이 최고의 기술은 아닐지 몰라도 최적의 기술이기는 하죠. 지금은 폴리에틸렌 나프탈레이트(PEN) 필름에 먼저 코팅한 다음 전사장비로 박리를 해서 써요. 이게 간접코팅 방식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멤브레인(강화복합막)에 바로 전극을 올리는 것이죠. 결국에는 이 방향으로 갈 겁니다.”

핸드폰 액정필름을 생각하면 된다. 자리를 잘못 잡아 한 번 뗐다 다시 붙인 필름은 가장자리가 들뜨기 쉽다. 한 번 붙였다 뗀 테이프는 계면이 생겨 접착력이 떨어질 수 있고, MEA를 적층한 연료전지 스택의 전체 성능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멤브레인에 직접코팅으로 가야 공정이 단순해지고 MEA 성능도 좋아져요. 다시 말해 연료전지 MEA에 맞춘 최적화가 필요한데, 그러자면 연료전지 시장이 지금보다 더 커져야 합니다. 수소전기차만 해도 10만 대, 30만 대 수준으로 시장이 커지면 기업의 본격 투자가 진행되면서 MEA 생산에 최적화된, 더욱 세련된 기술을 적용하게 되겠죠.”

최한신 소장은 2세대 MEA 양산화 기술로 ‘스프레이 방식’에 주목한다. 강화복합막에 백금 전극을 스프레이로 뿌려 바로 올리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기술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스프레이건의 배열을 어떻게 가져갈지가 매우 중요하고, 나노입자 촉매가 스프레이건의 노즐을 막을 경우 해결책도 필요하다. 또 습식으로 갈지, 건식으로 갈지도 정해야 한다. 

연료전지 MEA가 어려운 것이 촉매나 멤브레인이 지나치게 고가라는 점이다. 너무 비싸 테스트조차 쉽지가 않다. 스프레이로 모양을 잡으려면 마스킹을 하면 되지만, 마스킹에 묻어나는 촉매의 손실을 방치할 수 없다. 

“고객사가 요구하는 점은 명확합니다. 높은 생산성을 위해 원하는 모양대로 패턴을 찍어낼 것, 일관된 두께로 코팅이 정확하게 이뤄질 것, 촉매와 멤브레인의 손실을 최소화할 것. 크게 보면 이 세 가지가 핵심입니다.”

직접코팅을 위한 2세대 기술로 강화복합막의 표면처리 기술도 주목받고 있다. 강화복합막은 수분 흡수력이 좋아 팽창하는 특징이 있다. 수분기가 있는 촉매 슬러리를 강화복합막에 바로 올릴 경우 건조 과정에서 수축하면서 촉매에 금이 갈 수 있다. 이는 연료전지의 성능과 내구성에 치명적이다.

“강화복합막에 코팅을 해서 습윤성을 해소한다면 전극 촉매를 바로 올려도 무방해요. 이 방식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죠. 다만, 멤브레인이나 촉매의 성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붙어야겠죠.”

▲ 3차원 측정기를 통한 리페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차선’을 잘해야 ‘최선’이 보인다
연료전지 MEA 사업에 진입한 업체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현대차나 도요타 같은 완성차 업체, 두 번째는 고어나 코멤텍 같은 멤브레인 제조사, 세 번째는 전극 촉매를 생산하는 업체라 할 수 있다. 
슬롯다이는 MEA 생산에 꼭 필요한 핵심 장비로, 연료전지 사업을 하는 특정 회사를 고객사로 두고 있다. 대중에 널리 알려진 기술이 아니라 디스플레이, 이차전지에서 파생된 시스템 장비 기술에 든다.

“수소모빌리티는 아직 도입기지만 그 전망은 밝아요. 수소선박을 비롯해 에어택시 같은 항공모빌리티까지 범위를 넓혀 보면 얼마나 시장이 커질지 가늠하기가 어렵죠. 저는 성장 가능성을 높게 봅니다. 현재 이차전지 기술이 아주 정교해지고 있고, 여기서 얻은 기술이 연료전지 쪽에 접목될 가능성이 커요. 또 자체 기술로 새롭게 진화하는 것도 가능하죠.”

최한신 소장은 “연료전지가 대중화되려면 MEA 단에서 가격을 크게 낮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촉매나 멤브레인의 성능을 개선하고 제조단가를 낮추면서 생산 공정을 단순하게 가야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정봉수 시스템사업본부장도 같은 의견이다. 

“지아이텍은 단순히 장비를 파는 회사가 아니라 시스템사업을 합니다. 디스플레이, 이차전지의 경험을 살려서 연료전지, 수전해 쪽으로 발을 넓혀가고 있죠. 시스템적으로 서로 연관되는 부분이 많다 보니 우리 쪽에서 역으로 새로운 해법을 제안할 여지가 많아요. 산업이 변화하는 흐름에 대처하는 적응력이랄까, 이런 부분에 잠재력이 있다고 봅니다.”

▲ 충남 아산에 있는 지아이텍 본사.

지아이텍은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의 ‘소부장 강소기업 100’에 선정됐다. 또 지난 4월에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는 ‘우수기업연구소 육성사업(ATC; Advanced Technology Center)’에 최종 선정되기도 했다.

올해 초에 진행한 중기부의 신기술 개발사업자로 최종 선정되어 ‘전기차용 이차전지 전극 공정용 능동형 슬롯다이 헤드 부품 및 유동제어 기술개발’이라는 5년짜리 과제를 수행하게 된 점도 눈에 띈다. 연구개발 역량을 높이기 위해 연구소 직원도 새로 충원했다. 

도입기의 초기시장은 ‘최선’이 아닌 ‘차선’에서 출발한다. 기존의 장비나 설비를 기반으로 시제품을 만들고, 시장이 확대되는 추이에 맞춰 성능과 효율을 개선한 정교한 형태의 양산화 설비를 갖춰가게 된다. 

이렇게 ‘차선’의 출발선에 선 기업들이 선두권에서 경쟁을 이어가기 마련이다. 지아이텍은 시스템장비 업체로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기회가 열려 있는 만큼, 준비를 잘해서 2세대, 3세대 MEA 코터를 내놓는다면 세계시장에서도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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