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나시아가 개발을 완료한 30N㎥/h 파나젠(PanaGen) 수소추출기.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근 3년간 국내 수소시장의 흐름을 면밀히 지켜보면서 우리 나름의 준비를 해왔습니다. 연구개발에 적잖은 투자를 하고 신제품 개발에 매진하면서 이제는 우리가 가진 걸 공개해도 되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죠. 수소도 파나시아가 하면 다르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공장을 둘러보는 파나시아 이수태 회장의 얼굴에 단단한 자신감이 묻어난다. 이제는 수면 밖으로 어깨를 드러내고 ‘보이는 경쟁’에 뛰어들 시점이라고 판단한 모양새다. 그 자신감의 배경은 탄탄한 기술력이다. 

“제조업 하는 사람한테 가장 중요한 게 독자 기술입니다. 원천기술을 확보해서 조선기자재 산업의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고 자부하고 있어요. 그 자부심을 수소 쪽에도 실현해보자.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 파나시아의 이수태 회장.

수소추출기 ‘파나젠’ 개발로 수소사업 진출

부산 강서구 미음산단에 있는 파나시아 본사에서 차로 3분 거리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해양플랜트 기자재 R&D센터’가 있다. 마사회에서 운영하는 렛츠런파크 바로 옆이다. 생산기술연구원 초입에 ‘파나시아 수소 발전시스템 컨트롤&분석 센터’가 있다. 컨테이너 두 동을 겹쳐 쌓은, 일종의 간이 연구소인 셈이다. 

파나젠(PanaGen) 수소추출기를 실물로 처음 본다. 천연가스를 개질해 시간당 30N㎥, 그러니까 2.7kg/h 정도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실증 설비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9개월간 테스트를 거쳐 99.999%의 고순도 수소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파나시아는 이 제품의 크기를 키워 내년에 수소추출기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계획이다.

“내년 초에 시간당 250N㎥ 규모로 스케일업한 제품을 대전 낭월 (시내버스) 공영차고지에 설치할 예정입니다. 하루에 500kg 정도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로, 수소버스 20대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이죠. 실증 설비라 내부 공간을 넓게 잡고 일부러 크게 만들었습니다.”

이수규 연구개발본부장이 파나젠을 손으로 가리킨다. 수소 순도는 파이브 나인(99.999%)을 달성했고, CO 농도는 불검출 또는 2ppm 미만으로 나왔다. 6기압 정도로 운전되고, 120시간(약 5일) 연속운전 테스트도 무리 없이 통과했다. 현재 시스템 열효율 개선을 통해 수소생산 효율을 높이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천연가스 개질은 낯선 분야가 아닙니다. 그동안 선박의 제어계측 기술을 비롯해, 육상과 해상에서 기체와 관련된 친환경 기술을 오랫동안 다뤄왔으니까요. 과거 LNG 선박용 연료공급 장치인 FGSS(Fuel Gas Supply System)를 개발한 적이 있어요. 이 기술을 배경에 깔고 있죠.”

▲ 이수규 연구개발본부장이 새로 개발한 VPSA 설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수소추출기 파나젠의 메인 컨트롤 패널.

파나시아는 수소를 정제하는 VPSA(진공압력순환흡착) 설비를 이번에 새로 개발했다. 또 수소 개질에 필요한 니켈, 루테늄 촉매도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희성촉매, IAE고등기술연구원과 협력해서 자체 개발했다.

“촉매를 수입해서 쓰면 원가를 낮추는 데 한계가 있어요. 또 불안정한 수급으로 제때 대응을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죠. 외부 요인에 휘둘리지 않고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자체 기술로 승부해야 합니다.”

파나시아는 파나젠 제품에 맞춘 스마트 관제시스템도 준비하고 있다. 관리업체, 지자체 등이 인터넷 망에 접속해 수소추출기의 실시간 운전 현황을 바로 확인하는 통합관제시스템을 의미한다. 빅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통한 소모품 교체 알림 서비스, 고장 진단뿐 아니라 사전 예방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ICT 기반의 고도화된 관제시스템은 파나시아만의 큰 강점이죠. 파나시아의 선박평형수 처리장치나 탈황 스크러버를 탑재한 선박에 MSCS(Marine Satellite Control System)를 제공하고 있어요. 위성으로 각종 데이터나 제품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죠. 이 기술을 수소추출기와 탄소포집기에도 적용할 방침입니다.”

파나시아는 CCUS를 위한 탄소포집기도 개발 중이다. 육상에서 개별 부품의 테스트를 마쳤고, 회사가 보유한 바지선에서도 개별 성능 테스트를 완료했다. 전체 제어시스템의 마무리 통합 작업을 거쳐 9월 중에는 바지선에 설치를 완료해서 장기 실증에 나설 예정이다.

▲ 두 직원이 이산화탄소 포집을 위한 부품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습식 아민 방식과 함께 멤브레인(기체분리막) 방식을 병행해서 추진하고 있어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위치에 따라서 효율이 달라지는데, PSA 전단에서 70% 정도의 탄소만 포집할 경우에는 멤브레인 방식이 아주 효과적이죠. 현재 개발 중인 파나젠과 묶어서 갈 수 있는 기술로 접목 가능성이 높아요.”

습식 방식은 파나시아가 보유한 탈황 스크러버 기술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박 환경에 맞는 작은 크기의 시스템을 개발해 육상에도 적용하는 형태로 탄소포집기를 개발 중이다. 삼성중공업과 선박용 CCS 개발을 함께하기로 하면서 개발에 한층 속도가 붙었다. 

‘4先 경영’으로 3년 전부터 수소사업 준비

파나시아 1공장에 있는 본관에서 이수태 회장을 만나 인사를 나눈다. 파나시아는 1989년 10월에 범아정밀엔지니어링으로 출발했다. 파나시아(PANASIA)라는 사명도 ‘범아시아’에서 따왔다. 

사업 초기에는 수위계측제어장비(TLGS)를 주로 제작했지만, 선박에 대한 국제 환경규제 강화를 예측해 2004년 선박평형수 처리장치(BWTS) 개발에 나서며 친환경 선박 부품회사로 거듭났다. 지금은 일본과 중국, 네덜란드 등 3개의 해외법인과 43개 해외 네트워크를 둔 기업으로 성장했다.

“IMF 외환위기를 겪은 1997년에 암모니아를 분사해서 NOx(질소산화물)를 깨끗하게 처리하는 SCR(선택적촉매환원) 설비를 처음 개발하면서 환경기업의 이미지를 처음으로 내세우기 시작했어요. 그 후에 선박평형수 처리장치를 개발했고, 2014년에는 탈황 스크러버인 PaSOx를 출시하면서 글로벌 시장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죠.”

▲ 부산 미음산단에 있는 파나시아 제1공장.

파나시아는 세계적인 환경규제 움직임을 누구보다 앞서 읽고 미래를 준비해왔다.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 황산화물 규제가 본격화되면서 선박용 황산화물 저감장치인 스크러버의 수주가 크게 늘었다. 2018년 매출(647억 원)과 비교해 2019년에는 5배가 늘어난 3,284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3,558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고, 삼억 불 수출탑도 받았다. 

“2018년으로 기억합니다. 탈황 스크러버 사업이 한창 활황일 때 회사 내부적으로 신성장 동력을 찾기 시작했어요. 파나시아의 기업문화가 그렇습니다. 잘 나갈 때 한 발 앞서서 미래를 준비하자는 생각을 전체 임직원이 공유를 하고 있죠. 치열한 내부 논의를 거쳐 다음 사업을 ‘수소’로 정하고 3년간 연구개발을 이어왔습니다.”

이수태 회장은 4선(先) 경영을 중시한다. 선견(先見), 선수(先手), 선제(先制), 선점(先占)을 통해 시장의 흐름을 먼저 내다보고 한두 발 앞서서 준비해왔다. 누구보다 먼저 보고, 먼저 손을 쓰고, 먼저 만들어야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는 뜻이다. 

▲ 이수태 회장은 “3년을 준비했다. 수소도 파나시아가 하면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파나시아가 수소를 한다고? 과연 잘할 수 있겠어?’ 시장에서 이런 말을 듣지 않도록 잘 준비해서 대응할 생각입니다. 파나시아의 기술 기반이 케미컬 엔지니어링, 즉 화공(化工)이라 기술 진입에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수소가 청정에너지라는 점도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과 잘 맞는 부분이죠.”

파나시아의 수소 로드맵에는 수소추출기, 탄소포집 설비, 연료전지, 촉매가 들어 있다. 수소추출기 파나젠 개발에 맞춰 탄소포집기 개발도 병행하고 있다. 이는 천연가스를 개질할 때 나오는 다량의 이산화탄소, 즉 그레이수소 논란에 대한 비판을 염두에 둔 조치다. 여기에 그린수소 생산을 위한 수전해 기술개발도 이미 시작했다.

“어떤 장비든 육상에서 검증을 끝내고 나서 해상으로 들입니다. 망망대해에서 문제가 생기면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니까요. 그래서 검증을 마친 최고의 기술들을 선박에 적용하게 되죠. 파나시아는 이 같은 기준을 맞추면서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혁신 제품을 시장에 출시해왔어요. 그 역량을 수소에 접목시키겠다는 겁니다. 육상뿐 아니라 해상 선박에도 수소 기술이 접목되는 추세라 기술개발이 꼭 필요한 분야라 할 수 있죠.”

파나시아의 전 제품에는 디지털 개념을 접목한 ‘스마트 & 그린’ 기술이 들어간다. 장비의 성능은 비슷할지 몰라도, 운영 면에서 확실한 차이를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이 회장의 생각이다.

“내년 초에 대전의 버스차고지에 파나젠이 설치가 됩니다. 대전이 속한 중부권에 수소전진기지를 두고 제품 생산이나 부품 공급 등에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밑그림을 그려두고 있죠. 파나시아가 하면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드리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건물용 연료전지, 수전해 등 수소 밸류체인 관심

파나시아는 스마트공장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로봇 자동화 라인을 도입해 생산 효율을 높였고, ‘수주-설계-생산-납품’ 공정을 MES(제조실행시스템)로 운영하고 있다. 대량의 해수 처리용 자외선 살균장치인 MEGA UV 생산 라인만 해도 자동화 설비를 완비했다. 

MEGA UV는 기존 제품 대비 설치 면적을 크게 줄이면서 전력 소모를 44%나 감소시켰다. 2016년에 11주차 IR52 장영실상을 받은 혁신 제품이다. 

▲ 선박평형수 살균용 UV램프 제작을 위한 로봇 핀치 실링공정 현장이다.

▲ 로봇을 활용한 레이저 자동공정으로 스마트팩토리로 운영된다.

실제로 현장에는 한 명의 직원이 UV램프 제작을 위한 로봇 핀치 실링 공정을 맡고 있다. 스마트공장 구축 후 생산성과 매출이 크게 늘었다. 또 현장의 작업 환경이 개선되면서 직원들의 근무 만족도도 크게 올랐다.

Pan MSCS 스마트 컨트롤 센터에 들러 파나시아에서 개발한 ‘해상 위성관제 시스템’도 접한다. 파나시아의 제품을 탑재한 선박의 위치나 운항경로를 화면에 뜬 세계지도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문제가 생기면 본선에 해결 방안을 통보한다. 또 소모품의 교환 시기를 미리 안내해 유지보수에 도움을 주고 있다. 

▲ Pan MSCS 스마트 컨트롤 센터의 해상 위성관제 시스템.

“이 시스템을 수소추출기나 탄소포집기에도 적용할 방침입니다. 실시간으로 운전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통합관제시스템이라 할 수 있죠.”

이수규 연구개발본부장의 말이다. 

수소추출기 파나젠의 경우 SMR(스팀메탄개질) 방식뿐 아니라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과 협업을 통해 기술이전을 받은 팔라듐 분리막을 활용한 멤브레인 방식도 개발 중이다. 

“멤브레인 방식을 적용하면 500℃ 정도에서 수소 생산이 가능해요. 800℃의 고온으로 작동하는 SMR보다 훨씬 효율적이죠. 운전 온도가 낮으면 장비가 단순해지고 기계적인 내구성도 훨씬 좋아져요. 이 시스템도 지금 테스트 중에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개질 기술을 앞세워 건물용 연료전지 시장에도 진출할 생각이다. 5kW 건물용 연료전지는 이미 개발을 마치고 시험운전 중에 있다. 국내외 연료전지 업체와 손을 잡고 파나시아의 개질기를 적용한 제품을 선보이겠다는 전략이다. 내년 5월 제품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 이수규 연구개발본부장은 “팔라듐 분리막을 활용해 500℃에서 작동하는 수소추출기를 개발 중”이라고 한다.

마지막은 수전해 분야다. 이수규 연구개발본부장은 “알칼라인 방식의 수전해는 이미 개발에 착수했고, PEM(양이온교환막)과 AEM(음이온교환막) 방식의 기술도 심층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한다.

“각각의 기술이 장단점이 명확해요. 과거 선박평형수 처리를 위해 수전해시스템을 개발한 적이 있죠. PEM은 제조 단가가 너무 높고, 기술의 성숙도나 신뢰도를 보면 알칼라인이 경제적이긴 해요. P2G로 그린수소를 생산하려면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보급부터 늘려야 합니다. 지금은 이르지만, 향후에는 이렇게 가는 게 맞다고 봐요.”

선견, 선수, 선제, 선점. 미리 보고 준비해야 누구보다 앞장서서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파나시아는 ESG경영을 서둘러 도입했다. 회사 정문에는 ‘Happy Work Campus’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행복한 직장생활을 위한 지원, 학비 지원을 통한 스마트인재 양성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회사의 수익 일부도 직원들과 공유한다.

미음산단에 사옥을 완공한 게 2014년이다. 이 공장은 지붕과 벽에 낸 창 덕분에 조명을 켜지 않아도 내부가 환하다. 또 지붕 위에 태양광을 설치한 친환경 건물이다. 1공장과 똑같이 생긴 2공장이 1km 거리에 있다. 작년에 2공장을 증설하면서 크게 늘어난 스크러버 수주 물량을 안정적으로 소화하고 있다. 

▲ 파나시아 2공장의 PaSOx 스크러버 제작 현장으로 자연 채광을 활용한다.

파나시아에서 생산하는 제품들(GloEn-Patrol, PaSOx, PaNOx)은 세계일류상품에 든다. 세 번의 장영실상 수상, 고용노동부 강소기업, 우수 조선해양기자재업체, 가족친화우수기업, 소부장 강소기업 100 선정, 스마트팩토리 어워드 설비부문 제조혁신 대상 등 자랑거리가 많은 회사다.

이제 ‘4선 경영’을 수소에 접목하기 시작했다. 파나시아의 ‘선견’이 앞으로 수소시장에 어떤 활기를 불어넣을지 기대를 안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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