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드넥 기술연구소의 김종범 선임연구원과 박종수 책임연구원.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이게 롤 타입으로 만든 GDL입니다.” 가드넥의 박기호 대표가 말한다. 언뜻 보면 오븐용으로 나온 얇은 종이호일 같다. 다만 숯처럼 색이 검다. 이는 열처리를 하는 연속로 안에서 탄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부식성이 좋고 전기도 잘 통한다.  

“탄소종이가 아니라 탄소나노섬유로 만들었죠. 기존 방식과는 생산 공정이 전혀 달라요. 우리는 탄소종이를 잘라서 GDL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나노섬유를 방사한 후 고온 열처리를 해서 얇은 박막 형태로 만듭니다. 경쟁사와 비교해서 제작 공정이 단순하고 두께도 훨씬 얇죠.”

▲ 롤 형태로 제작된 가드넥의 KINECS NF-GDL 시제품.

여기서 경쟁사란 독일의 SGL 카본, 일본의 도레이를 가리킨다. 두 곳 다 현대차 넥쏘와 도요타 미라이의 연료전지에 들어가는 GDL(Gas Diffusion Layer, 기체확산층) 납품업체로 유명한 곳이다.

나노섬유를 ‘전기방사’하는 신공법 적용 

수소전기차의 연료전지 3대 핵심기술로는 MEA(막전극접합체), GDL, 분리판이 있다. 분리막 앞뒤에 양극과 음극의 촉매를 바른 걸 CCM(Catalyst Coated Membrane)이라 하고, 여기에 기체확산층(GDL)까지 붙인 걸 MEA로 보는 게 정석이지만, 편의상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GDL 생산업체는 손에 꼽는다. 앞서 말한 SGL과 도레이가 대표적이다. 

연료전지 스택 안에서 산소와 수소가 만나 전기를 만든다. 이때 기체확산층은 수소와 산소가 잘 만나도록 반응 면적을 넓혀준다. 겉보기엔 만질만질한 종이 같지만,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해보면 탄소섬유가 수세미처럼 얼기설기 얽힌 3D 구조다. 기체가 빠져나갈 틈도 그만큼 많다. 

▲ 가드넥의 KINECS NF-GDL을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한 사진이다.

GDL은 수소전기차의 연료전지 스택 안에서 많은 일을 한다. 막전극접합체의 바깥에 위치해 MEA를 기계적으로 지지하면서, 반응 기체인 산소나 수소가 분리판의 유로(流路)에서 촉매층으로 넘어가는 통로, 수소와 산소의 반응으로 생성된 수분이 촉매층에서 유로로 빠지는 통로, 촉매층과 분리판을 전기적으로 연결해 전자가 흐르는 통로가 된다. 또 전기화학 반응으로 발생한 열을 분리판으로 전도한다.

“여기 있는 박종수 책임연구원이 처음에 아이디어를 내고 제품 개발을 주도했죠. 어떻게 하면 공정을 간소화하면서 얇게 만드느냐가 핵심입니다. GDL이 얇으면 얇을수록 그만큼 공간이 더 나고, 그렇게 되면 같은 면적에 여러 장의 MEA를 넣을 수가 있죠. 당연히 출력도 높아지고요.” 

가드넥은 산업용 방열테이프 전문기업으로 그라파이트를 비롯해 동박 테이프, 알루미늄 테이프, 열가변 점착테이프 등을 생산한다.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LED 등 방열 소재로 쓰임이 많은 그라파이트 제조시설을 갖추고 있어 이번 연구개발에 큰 도움을 받았다. 

박종수 책임연구원이 독일 SGL사의 제조방식을 두고 설명에 들어간다.

▲ 박종수 책임연구원이 1공장 내 전기방사실에서 리와인더를 조작하고 있다.

“PAN(폴리아크릴로나이트릴)을 원료로 만든 탄소종이에 슬러리 형태의 입자를 코팅해서 미세기공층(MPL)을 형성하게 됩니다. 보통 이 방식으로 GDL을 만들죠. 일단 베이스가 되는 탄소종이 자체가 두껍기 때문에 박막화가 불가능해요. 탄소섬유의 두께가 50μm(마이크로미터, 1미터의 100만분의 1) 정도 되는데, 이걸 잘라서 다시 얇게 만든다 해도 200μm 밑으로 맞추기가 쉽지 않죠. 여기에 또 코팅을 하는 방식이라 시간이 지나면 입자가 떨어질 수 있어요.”

가드넥은 생산 공정이 전혀 다르다. 애초에 PAN계 나노섬유를 노즐로 뿌리는 ‘전기방사공법’을 적용했다. 200~400nm(나노미터)의 나노섬유 수십 겹을 쌓아도 두께는 채 100μm가 안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나노섬유를 고온 열처리를 통해 50~100μm 두께의 박막 GDL을 생산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샘플을 통한 평가에서도 우수한 성능을 확인했다. 

“초박막으로 얇게 가려면 나노섬유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 회사가 그라파이트 생산에 대한 원천 기술력과 제조 설비를 갖추고 있고, 나노섬유 설비가 시중에 나와 있다는 점이 큰 도움이 됐죠. 기술적으로는 원료 배합 때 들어가는 고분자 선정, 두 번에 걸쳐 이뤄지는 열처리 과정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런 데이터를 확보하면서 롤 타입 방식의 대량생산 기술 방식을 적용했죠.”

▲ KINECS NF-GDL의 샘플을 놓고 전기저항을 측정하는 중이다.
▲ KINECS NF-GDL의 샘플을 놓고 전기저항을 측정하는 중이다.


1, 2차로 나눠 연속로 안에서 고온 열처리

가드넥에는 1공장과 2공장이 있다. 지난 2017년에 2공장을 세우고 인조 그라파이트 필름 생산라인을 증설했다. 여기에만 200억 원이 들어갔다. 박막 GDL 개발에 나선 것도 바로 그 해다. 2017년부터 지금까지 5년째 개발을 이어왔고, 제품 성능이나 내구성 면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

박종수 책임연구원을 따라 공장을 둘러본다. 전기방사공법을 적용한 1단계 공정은 1공장 안에서 이뤄진다. 롤투롤(Roll-to-Roll) 설비 안쪽에 나노섬유를 뿌리는 전기방사 설비를 갖추고 있다. 기술 보안상 안쪽은 사진을 찍을 수 없어 눈으로 보기만 했다. 상단의 주사기(syringe) 노즐에서 나노섬유가 하얗게 날리며 떨어진다. 솜사탕 기계 안에서 흩날리는, 실 모양의 가느다란 설탕을 닮았다.

나노섬유를 20~30겹 정도 쌓아 흰 도화지에 얹어 감아내는 작업이 이어진다. 기계 설비를 책임지는 김종범 선임연구원이 매의 눈으로 쏘아보다 이상을 발견하고 곧바로 장비를 멈춰 세운다. 이런 점검과 운전을 반복하며 공정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 흰 도화지에 얹힌 나노섬유 시트가 와인더에 감기고 있다.

“여기까지가 1차 공정입니다. 나노섬유를 종이에서 박리한 다음 고온의 연속로 안에 넣고 두 차례에 걸쳐 열처리를 진행하게 되죠. 이 작업은 2공장에서 이뤄집니다.”

건물을 나서 2공장으로 향한다. 천장이 높은 공장 안에 9대의 연속로가 놓여 있다. 그라파이트 생산을 위해 공장을 새로 지으면서 구축한 설비들이다. 인조 그라파이트는 폴리이미드(PI)를 고온으로 소결해서 생산한다. 연속로 내부에서 2,800~3,000℃로 소결하는 초고열 공정을 거치는데, 이 연속로 설비를 GDL 공정에도 활용하고 있다.

“연속로 몇 대를 공정에 맞게 튜닝해서 쓰고 있죠. 1차 열처리는 공기로 산화시켜 구조적으로 안정화시키는 단계죠. 그러고 나서 더 높은 온도로 2차 열처리에 들어갑니다. 질소가스를 주입해서 탄화 과정을 거치고 나면 숯처럼 색이 까맣게 변하게 되죠.”

▲ 그라파이트 제작을 위해 도입된 2공장의 연속로로 GDL 열처리 공정에 활용된다.

소결 시 온도 설정이 아주 중요하다. 연속로 안에서 레일을 따라 이동할 때 온도를 조금씩 높여가며 굽게 된다. 이 부분의 기술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큰 노력이 들었다. 이제 마지막 공정으로 발수처리를 마치면 KINECS NF-GDL이 완성된다. 키넥스(KINECS)는 가드넥이 생산하는 수소·친환경 제품에 붙는 브랜드명이다. 

전체 공정은 전기방사, 박리 과정, 1·2차 열처리, 발수처리 순으로 보면 된다. 발수처리를 하는 이유는 기체확산층 안에 물이 가득 차는 플러딩(flooding) 현상을 억제하기 위해서다. 기공에 물이 차면 기체가 통과하지 못해 연료전지의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50~100μm 두께의 초박막 GDL 생산

가드넥이 개발한 GDL의 특징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연료전지 내 화학반응 중에 일어나는 수분이나 열 등에 의한 산화방지를 위해 탄화 과정을 거쳐 내부식성이 뛰어난 건 기본이다. 기체의 확산력을 높인 3D 네트워크 형태로 수평, 수직 방향의 투과성이 좋고, 기공률은 75% 이상이다. 또 전기저항의 경우 2옴(Ω) 이하로 전기전도성이 높고, 발수성도 갖췄다.

무엇보다 두께를 100μm 이하로 조절할 수 있어 무게와 부피에 장점이 크다. 탄소종이로 만든 경쟁사 제품의 두께는 두 배나 두꺼운 200μm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높은 성능을 유지하면서 초박막이라는 점이 KINECS GDL의 가장 큰 강점입니다. 경쟁사 제품과 비교해서 성능도 떨어지지 않죠. 롤 타입의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두께 조절도 가능해요. 가격 경쟁에도 자신이 있습니다.”

박기호 대표의 말에 자신감이 묻어난다. 그는 2017년부터 3년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 최대 연료전지 전시회인 FC EXPO에 3년 연속 제품을 출품하며 회사의 기술을 알려왔다. 그라파이트 외에도 서브 가스켓, GDL을 출품했고, 특히 전기방사공법을 적용한 박막 GDL 샘플은 수소전기차 미라이를 생산하는 도요타자동차 임원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 경기도 용인에 있는 가드넥의 2공장.

“2019년 8월에 국내 특허등록을 완료했고, 미국과 중국, 일본에도 특허를 출원한 상태입니다. 작년에 출원했으니 올해 상반기에는 등록이 완료될 거예요. 2010년에 가드넥을 설립해서 소재 부문에 집중해왔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직원들 덕분에 신기술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품의 부피를 줄이면서 성능을 높이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이 기존의 사업을 영위하면서 신제품 개발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이어오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초격차(超格差)’라는 말이 있다. ‘넘볼 수 없는 차이를 만드는 격(格)은 비교 불가한 절대적 기술 우위와 끊임없는 혁신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대화를 하다 보니 ‘초박막’이 ‘초격차’로 들린다. 가드넥이 개발한 초박막 GDL은 연료전지 시장의 확장과 더불어 그 성장 가능성이 큰 기술이다. PEM 연료전지가 들어가는 수소드론만 해도 GDL의 두께가 얇을수록 상품성이 높아진다. 박막 GDL은 수소전기차뿐 아니라 건물용·발전용 연료전지, 향후 PEM 수전해의 수요에도 대응할 수 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눈독을 들이는 ‘초격차’ 기술인 셈이다. 

연료전지 스택에서 MEA가 가장 중요한 건 사실이다. 이 MEA 안에 GDL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다. 가드넥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의 길을 바르게 걸어왔다. 이제 그 인내를 보상받을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독일이나 일본 제품이 아닌 가드넥의 GDL을 장착한 수소전기차를 볼 날이 머지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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