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택 성능 평가 작업 중에 만난 두 연구원.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엘켐텍(Elchemtech)은 양이온교환막(PEM) 수전해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쌓아온 국내 기업이다. 회사 설립 이듬해인 2003년부터 그동안 정부 과제와 자체 투자를 통해 연구개발에 들인 돈만 100억 원이 넘는다. 수전해에 대한 수요가 전무하다시피 한 악조건에서 수소경제에 대한 비전을 보고 묵묵히 한 길을 걸어왔다. 

엘켐텍 사옥은 서울식물원이 있는 마곡지구에 있다. 랜드마크로 통하는 코오롱 원앤온리 타워에서 도보로 5분 남짓 떨어진 곳이다. 가산디지털 쪽에 있던 사무실을 정리해서 이곳 마곡의 신사옥으로 이전한 때가 2017년 12월이다. 연구실이나 생산 시설은 돌아보지 못했다. 전체 직원의 40% 정도가 연구원일 정도로 연구개발 중심이다 보니 기술 유출이나 보안에 아주 엄격했다. 1층 회의실에서 기술영업팀 문창환 과장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 엘켐텍은 전 직원의 40%가 연구원인, 연구개발 중심 기업이다.


‘소금물 전기분해’ 통한 차염발생기로 수익 창출

엘켐텍은 카이스트 화학공학 박사였던 문상봉 대표가 2002년에 설립했다. 창업 전에는 한화종합화학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수전해는 탈탄소를 위한 에너지 전환의 핵심 기술에 들지만, 2년 전만 해도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기술이 널리 쓰이려면 관련 수소 산업이나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일정 수준에 올라야 하고, 수전해 설비의 경제성이 일정 부분 뒷받침되어야 한다. 

“2003년도부터 수전해 연구에 뛰어들어 촉매, 전극, MEA 등 원천기술을 하나씩 확보해왔죠. 아무래도 중소기업이다 보니 재정 면에서 한계가 있어요. 그래도 지금껏 한눈팔지 않고 꾸준히 해온 덕에 국내에서 이만한 입지를 다질 수 있었죠.”

2003년에 21세기 프런티어사업단이 생기면서 수전해에 대한 기초 연구에 뛰어들었고, 15년 넘게 정부 R&D 과제를 지속하면서 관련 기술을 개발해왔다. 2018년에는 고효율 나노 다공성 수소 발생 촉매를 개발하고 이를 대용량 수소발생기에 적용해 ‘대한민국 10대 나노기술’에 선정되기도 했다. 

“수전해에 대한 관심과 변화를 피부로 느낍니다. 물론 시기별로 다르지만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발표를 앞두고 기획재정부 부총리가 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어요(2018년 9월 7일). 그때 주목을 받았고, 작년에 로드맵이 발표되면서 이제 정말로 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또 최근에 정부가 그린뉴딜을 발표하면서 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회사의 전략이나 운영 방향에 당장 바뀐 점은 없다. 이엠코리아가 2008년 4월에 엘켐텍 지분 51%를 취득하면서 계열사로 편입이 됐지만, 지난해 말 지분(48%) 전량을 매입하면서 깨끗이 정리가 됐다. 엘켐텍은 홀로서기를 통해 본연의 사업에 더욱 매진하고 있다.

▲ PEM형 수전해 스택의 내부 구조.

“회사의 사업 구조로 보면 크게 ‘소금물 전기분해’와 ‘PEM 수전해’로 나눌 수 있죠. 회사 수익은 소금물 전기분해를 통한 살균·위생 분야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어요. 수영장 살균 설비가 대표적이죠. 제가 어릴 땐 액화염소를 물에 풀어서 눈도 따갑고 약품 냄새도 심했던 기억이 있어요. 요즘은 현장에 설치된 장비로 직접 락스를 만들어서 자동으로 공급하죠. 소금(NaCl)이 녹은 물을 전기분해하면 수소랑 차아염소산나트륨(NaOCl)이 생기는데, 이 성분이 바로 락스예요. 살균을 위해서 최소량을 투입하죠.”

엘켐텍은 ‘현장형 차염발생기’로 부르는 HyGenon F시리즈를 창업 초기부터 판매했고, 2012년에는 차염 농도를 높이면서 시스템 효율을 80% 이상 개선한 M시리즈를 내놓았다. 

엘켐텍이 개발한 DSA 전극을 응용한 제품인 HyGenon 시리즈는 국내외 180여 곳의 수영장이나 식품가공 공장에서 가동되고 있다. 인천아시안게임 수구경기장,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 주경기장, 잠실 제2타워 수영장, 김해워터파크 같은 곳이 여기에 든다.

DSA(Dimension Stable Anode)는 루테늄 같은 백금족 산화물을 이용한 전해용 전극으로, 염소가 생기는 양극을 이른다. 물론 음극에선 수소가 발생한다. 수전해가 전기 물분해로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인 만큼 연관성이 큰 기술이다.

3,000㎠ 대형 스택, 1MW 수전해 기술 확보

아무리 보안이 중요하다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만 나눌 순 없다. 엘켐텍은 지난 7월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수소모빌리티+쇼’에 부스를 얻어 참가했다. 그날 본 PEM 수전해 스택 샘플 이야기를 하자 문창환 과장이 그건 보여줄 수 있다며 5층으로 안내한다.

“이 공간도 외부에 공개한 적이 없어요. 기자님이 처음이죠.”

▲ 5층 선반에 그동안 개발한 수전해 스택이 놓여 있다.

창가 선반에 그동안 연구개발을 위해 만든 소형 스택이 놓여 있다. 지난 전시회에서 본 그린수소 키트도 보인다. 풍력이나 태양광에서 나온 여유전력을 활용해 PEM 수전해로 수소를 만드는 원리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장치다. 투명한 수소통 왼쪽에 소형 PEM 연료전지를 달아 수소로 다시 전기를 만들어 쓰는 법도 알려준다. 탄소 배출 없이 재생에너지만으로 수소와 전기를 얻는 순환 사이클인 셈이다.

바로 옆에는 팔각형의 두툼한 플레이트가 체결된 대형 스택이 놓여 있다. 엘켐텍은 수전해 원천기술인 막전극접합체(MEA) 개발을 시작으로 셀의 대면적화, 수소 가압 등 PEM 수전해의 최신 기술을 확보했다. 단일 스택으로는 국내 최대 면적인 3,000㎠ 대형 스택 개발을 마쳤고, 시간당 200N㎥의 수소(약 18kg)를 생산하는 1MW급 수전해 기술도 확보했다. 원형 셀의 크기로 보면 지름 60cm가 넘는다.

▲ 메가와트 규모의 수전해를 위해서는 셀의 대면적화가 꼭 필요하다.

“PEM 수전해는 반응 면적, 그러니까 사이즈의 싸움이에요. 캐나다의 하이드로제닉스는 셀을 여러 장 두툼하게 쌓아서 3MW짜리 스택을 개발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1, 2MW 규모로 가죠. 우리는 해외 선진사 대비 효율이 조금 낮은 대신 크기를 크게 갔어요. 대면적화로 효율을 맞춘 셈이죠. 작은 셀을 나중에 크게 키우는 것보다는 큰 셀의 효율을 높여가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어요. 셀 크기를 줄이는 건 쉬우니까요.”

수전해 기술은 유럽과 미국이 선도하고 있다. 대표 기업으로는 노르웨이의 넬, 영국의 ITM 파워, 미국의 텔레다인, 프랑스의 맥피, 덴마크의 그린 하이드로젠 시스템, 캐나다의 하이드로제닉스 등이 있다. 수전해 업체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작년 초에는 에어리퀴드가 하이드로제닉스에 1,800만 유로를 투자해 지분 18.6%를 확보했다. 하이드로제닉스는 캐나다 퀘백주 베칸쿠흐(Bécancour)에 세계 최대인 20MW 규모의 PEM 기반 수전해 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또 린데는 작년 10월 영국의 ITM 파워 지분 20%를 확보하고 조인트 벤처를 설립해 10MW급이 넘는 수전해 생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유럽연합에서 펀딩하는 걸 보면 수전해 쪽은 PEM이 1순위, AEM(음이온교환막 수전해)이 2순위죠. 유럽은 PEM이 우세한 대신, 일본은 알칼라인이 우세해요. NEDO의 리포트를 보면 본인들이 잘하는 알칼라인 분야에서 우위를 가져가는 편이 유리하다고 보고 있죠. 후쿠시마의 나미에에 설치한 아사히카세이의 10MW 알칼리 수전해 설비가 대표적이죠.”

▲ PEM 수전해의 작동 원리를 알 수 있는 그린수소 키트.


350bar 가압 기술…수소차 충전 가능 

바로 옆방에서 두 연구원이 스택 성능 평가 작업을 하고 있다. 허락을 받고 들어가 안을 둘러본다. PEM 수전해 스택은 원형을 하고 있다. 양성자교환막에 촉매를 바른 걸 CCM(Catalyst Coated Membrane)이라 하고, 여기에 기체확산층(GDL)까지 붙인 걸 MEA로 본다. 가장자리에 바이폴라 플레이트를 붙여 하나의 셀을 만들고, 이 셀을 층층이 쌓아 스택을 완성한다. 

“분리막(양성자교환막)은 구매를 해서 써요. 분리막은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불소계와 탄화수소계가 있는데, 이 둘의 성질이 다르죠. 탄화수소계는 내구성이 조금 약하고 수분에 취약해요. 연료전지에 쓸 수 있겠지만, 수전해로는 적합하지 않죠.”

나피온은 불소계 분리막이다. 값도 더 비싸다. PEM은 백금족의 값비싼 귀금속 촉매를 쓰기 때문에 몸값이 비싸다. 하지만 전류밀도에서 알칼라인과는 큰 차이가 나고, 이는 전기 소비량이나 사이트 설치 면적에 영향을 미친다.

“알칼라인의 전류밀도는 0.2~0.6A/㎠, PEM은 1~3A/㎠예요. 최대치로 놓고 비교를 해도 답이 나오죠. 알칼라인을 0.6A/㎠, PEM을 3A/㎠로 잡았을 때 딱 5배 차이잖아요. PEM은 셀 한 장이면 되지만, 알칼라인은 다섯 장의 셀을 쌓아야 한다는 뜻이죠. 티센크루프의 20MW 알칼리 전해조를 보면 아시겠지만, 그 크기가 압도적으로 커요. 알칼라인은 가압이 안 되고, 수소의 순도를 잡기 위한 스크러버도 필요하죠. 그에 반해 PEM은 수분 제거만으로 99.99%의 고순도 수소를 얻을 수 있죠.”

PEM은 한쪽에서 기체만 나오기 때문에 가압이 가능하다. 수전해 스택의 수소 발생 시 수소를 가압하면 수소정제 유닛으로 이동하는 수소 내 수분량을 줄일 수 있다. 수소 발생 압력을 350bar 수준으로 유지할 경우 10bar 발생 압력과 비교해서 수소 중 수분 함량을 10,000ppm에서 100ppm 수준으로 낮출 수 있어 후단 공정의 제습과 압축에 드는 에너지를 20% 이상 아낄 수 있다.

▲ 성능 분석을 위해 스택을 체결 중이다.

엘켐텍은 2016년 9월에 소규모 스테이션 적용을 목표로 소형 가압 PEM형 스택(50㎠, 350bar, 1일 3kg 수소 생산)을 개발했고, 2017년 11월에는 대형 PEM형 스택(3,000㎠, 200bar, 1일 10kg 수소 생산) 개발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350bar 가압 기술을 현장에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압력은 높을수록 좋죠. 350bar면 수소전기차에 바로 충전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직 시기상조죠. 수전해는 저압과 고압 모두 수소안전법의 적용을 받아요. 방폭 위험성 때문에 법이 시행된 후에나 현장 적용이 가능해지겠죠. 그전에 안전 기준을 갖춰야 하는데, 세계적으로 전해조 기술에 대한 안전성을 승인하는 기반이 아직은 없어요.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죠.”

수전해는 현재보다 미래를 위한 기술

<월간수소경제>는 지난 5월호 커버스토리를 통해 국내 수전해 실증사업을 다룬 적이 있다. 현재 강원도 동해바이오화력본부의 2MW급 P2G 실증단지, 울산테크노파크 마이크로그리드 실증사업(1MW) 등을 통해 알칼리와 PEM 수전해를 활용한 실증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 두 곳에서 이뤄지는 실증사업에 엘켐텍도 참여하고 있다. 

알칼리 수전해와 PEM 수전해가 하이브리드로 같이 가는 이유를 두고 동서발전 동해바이오화력본부 김주헌 사업개발파트장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태양광은 초기에 전압이 오락가락해요. 부하변동이 심하죠. PEM 수전해 장치는 부하추종 능력이 우수하기 때문에 초기 대응에 좋아요. 전력변동성이 상대적으로 덜한 시간대에는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하면서 용량이 큰 알칼리 수전해 장치를 써서 재생에너지의 이용을 극대화하는 방식이죠. 이렇게 두 가지 수전해를 하이브리드로 가게 돼요.”

▲ 수전해 스택의 분석 데이터를 컴퓨터로 확인하고 있다.

수전해 분야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지역은 전북 새만금이다. 재생에너지의 유휴전력을 활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만큼 ‘새만금 그린수소 클러스터 조성사업’이 확정되어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수소에너젠, 엘켐텍, 이엠솔루션, 한화솔루션 같은 수전해 기업들의 역할이 커질 전망이다.

수전해는 현재보다 미래가 밝은 기술이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자 그린수소 생산의 핵심 기술이다. 독일의 경우 아프리카에서 수전해로 생산한 그린수소를 암모니아로 합성해 수입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영국의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인 ‘우드맥킨지’가 지난 8월에 열린 온라인 간담회에서 “친환경 수소생산비용이 10년 뒤인 2030년에는 절반 아래로 떨어지고 재생에너지 발전 가격도 석탄, 화력발전과 비슷하거나 더 낮아질 것으로 전망한다”는 발표를 한 적이 있다. 문창환 과장의 예측도 이 전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량생산으로 가면 양산 가격이 크게 떨어지게 돼 있어요. 10년 뒤면 수전해 효율은 또 크게 올라 있겠죠. 2030년에는 SMR(증기메탄개질)보다 수전해를 통한 수소생산비용이 더 싸질 거예요. 추출수소에는 탄소세가 붙을 테니까요. 이게 싫으면 CCU(이산화탄소 포집·재활용) 장비를 붙여야 하는데, 기술의 완성도를 떠나 이 장비가 아주 비싼 걸로 알아요. 멀리 갈 것도 없이, 2025년에는 승부가 나 있을 거예요.”  

그의 말투에서 금속 플레이트 같은 단단한 확신이 느껴진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수전해 기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현대자동차, 한화, 두산 같은 대기업들이 수전해 기술을 눈여겨보고 있고, 실제로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인 곳도 있다. 

엘켐텍의 PEM형 수소발생기에는 ‘H2Gen’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엘켐텍은 ‘소금물 전기분해’가 아닌 ‘PEM 수전해’ 분야에서 수익이 날 날을 고대하고 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했던가. 엘켐텍에도 수확의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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