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장맛비가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흐리다. 비나텍(VINATech)의 전주 본사는 큰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국탄소융합기술원 상용화기술센터와 마주하고 있다. ‘열정, 소통, 나눔’이라는 글귀가 붙은 지원동 건물을 따라 물기를 머금은 잔디밭을 지난다. 4층 높이로 올린 R&D 센터는 비나텍의 ‘두뇌’에 해당하는 곳이다. 

수소연료전지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로 탄소(Carbon)를 들 수 있다. 탄소 분야에만 근 20년을 집중해 소재 부품 쪽으로 이만한 기술력을 갖춘 업체는 손에 꼽는다. 비나텍은 연료전지 스택의 핵심 소재인 지지체와 촉매를 생산한다. 여기에 MEA(Membrane Electrode Assembly)라는 막전극접합체도 생산한다. 이 세 가지를 모두 하기가 정말 어렵다.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 비나텍은 탄소 지지체, 촉매, MEA를 모두 생산한다.

이차전지 기술 토대로 카본나노섬유 개발

비나텍은 지난 1999년 성도경 대표가 설립했다. 탄탈륨 커패시터 유통업을 시작으로 연료전지 기초 소재 연구개발을 지속해왔다. 지금은 슈퍼커패시터와 더불어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의 기초 소재인 탄소 지지체와 촉매를 기반으로 MEA를 생산하고 있다.

비나텍의 주력 제품은 역시 ‘슈퍼커패시터(Super-capacitor)’다. 작년 전체 매출의 87%를 수출로 벌어들였고, 그중 대부분을 슈퍼커패시터가 차지하고 있다. 사실상 소형 슈퍼커패시터 부문에선 글로벌 1등 기업이다. 2010년에 세계 최초로 3V 슈퍼커패시터를 개발했고, 2004년부터 R&D 센터의 전신인 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해왔다. 또 올해는 대한민국 코넥스 대상을 비롯해, 국가산업대상 연구개발 부문 대상도 받았다.

슈퍼커패시터는 커패시터의 성능 중에서 전기 용량의 성능을 중점적으로 강화한 제품이다. 일반 커패시터보다 단위 부피 또는 질량당 10~100배 많은 에너지를 저장하고, 반복되는 충방전 사이클에도 무리 없이 작동한다. 슈퍼커패시터는 원격 측정이 가능한 수도·가스 미터기, 메모리 백업, 차량용 에어백 안전장치, 블랙박스 등에 쓰임이 많다. 스마트 그리드, 태양열·풍력 발전기에도 활용도가 높아 사업 전망이 밝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불화수소 문제가 불거졌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소재 의존도 낮추기’와 ‘기술의 독립’이다. 비나텍은 이 점에서 본보기가 되는 회사다. 대외적으로 슈퍼커패시터에 가려 잠잠해 보이지만, 수소연료전지의 기초 소재 부문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다. 

R&D 센터 3층에서 만난 정한기 부사장은 “비나텍의 핵심 기술은 카본(탄소)에서 출발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현역 중에서 이차전지를 가장 오래 연구한 초창기 멤버로, 1985년부터 이 분야를 연구해왔다. 

▲ 비나텍 R&D 센터 정한기 부사장.

“1991년에는 소니가 리튬이온 배터리 상업화에 성공하면서 북미와 유럽을 제치고 배터리 산업의 종주국으로 치고 나갔죠. 당시만 해도 카본(흑연)을 도입해서 안전성을 크게 높였다는 걸 몰랐어요. 일본을 들락거리며 소재 분야를 공부하면서 ‘카본’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카본 연구의 길에 뛰어들었죠.”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카본나노튜브(CNT)에 쏠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기전도도는 구리와 비슷할 정도로 좋은 데다 강도는 강철보다 100배나 우수했다. 

“기술이전을 받으려 했는데, 카본나노튜브를 생산하는 미국의 하이페리온이 부른 특허료만 천억 원이었어요. 중소기업이 엄두를 낼 수 있는 돈이 아니었죠. CNT를 대체할 소재를 찾느라 고민했고, 그렇게 해서 카본나노섬유(CNF: Carbon Nanofibers)를 개발하게 됐죠. 고전압에서 내산화성에 탁월한 특성을 발견하고 CNF 지지체 연구를 지속했어요. 그전에는 카본블록이란 걸 사다 썼죠.” 

비나텍은 2002년에 이미 CNF에 대한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국제 특허를 냈다. 현대차가 연료전지 개발 조직을 사내에 신설한 게 1998년의 일이다. 2000년에 싼타페에 기반 한 현대차 최초의 수소전기차 모델을 개발했다. 투싼ix 수소전기차를 내놓기 전이다. 비나텍은 2000년대 초반 현대차의 카본 지지체 개발에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 탄소 지지체와 촉매.

탄소 지지체, 촉매, MEA의 경쟁력 

“슈퍼커패시터의 음극과 양극에 모두 카본이 들어가요. 연료전지에 들어가는 지지체나 촉매는 말할 것도 없고요. 탄소 지지체는 결정성이 좋을수록 내구성이 좋아요. 표면이나 에지(Edge, 가장자리)를 매끈하게 처리하는 기술이나, 백금을 지지체 위에 균일하게 올리는 기술, 연료전지의 음극과 양극의 카본 특성을 다르게 가져가면서 효율과 내구성을 동시에 높이는 기술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가 않죠.”

비나텍의 강점은 여기에 있다. 촉매가 아니라 지지체(담지체) 단위의 소재 연구에서 출발해 물리·화학적 열처리, 고온 열처리를 진행하면서 결정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냈다. 에지를 정렬해 표면 특성을 변화시키는 형상제어 기술, 단일 소재의 장점을 결합해 전기전도성, 방열 특성, 분산성, 비표면적을 개선하는 복합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촉매로는 값비싼 백금을 쓴다. 2~3나노로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게 가공해서 쓰는데, 이때 균일한 간격으로 백금을 올려 표면적을 최대한 높이는 정밀한 기술이 요구된다. 촉매인 백금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지지체의 내구성과 내식성은 연료전지의 수명과 직결된다. 비나텍은 2002년에 지지체 기술을 개발했고, 2007년에는 촉매 기술, 2012년에는 MEA 기술을 단계적으로 확보하면서 수소연료전지 스택의 핵심 기술을 섭렵했다. 

이중 MEA는 수소와 산소의 화학반응으로 전기를 생성하는 연료전지의 핵심 소재이자 부품이다. 수소로 전기를 만들어내는 연료전지 셀을 직렬로 연결해 층을 이룬 스택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며, 값도 가장 비싸다. 

▲ PEMFC용 MEA.

“밸류체인을 지지체, 촉매, MEA 세 가지로 가고 있어요. 그래서 가격 경쟁에서 우위에 있을 수 있고, 기술 면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죠. 외국에서 소재나 부품을 들여와서 쓰면 생산 공정의 문제인지, 사용상의 문제인지 사실상 잡아내기가 어렵죠.”

에스퓨얼셀의 건물용 PEM 연료전지, 가온셀이 개발한 DMFC(직접메탄올 연료전지)용 지게차에 비나텍의 MEA 제품이 들어간다. 수소전기차로 보면 상용차 부문에 요청이 많다. 국내뿐 아니라 유럽이나 중국, 인도에서 트럭이나 버스를 중심으로 수소연료전지의 수요가 늘고 있다. 

“유럽이나 중국의 동향도 유심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중국은 ‘수소 굴기’를 통해 상용차 시장에 집중하고 있고, 유럽도 정책상 승용보다는 일정 거리의 예측 운행이 가능하고 탄소 배출 저감도 확실한 상용 쪽에 집중하고 있죠. 중국은 전기차에서 수소차로 보조금이 넘어가는 추세고, 유럽만 해도 상용차 쪽으로 MEA의 수요가 많아요. 주로 제품의 공급 여력과 가격에 대한 문의죠. 내부적으로 가격을 맞추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소재와 기술로 진검승부

정한기 부사장을 따라 건물 1층으로 내려간다. 수소연료전지 관련 공장은 R&D 센터 1층에 마련되어 있다. 공장 안쪽은 보안상 개방하지 않는다. 입구 쪽에 놓인 생산 장비들을 둘러본다. 정 부사장이 카본나노섬유 합성장치를 손으로 가리킨다. 그러고 나서 두 직원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PEMFC 테스트 스테이션 앞에서 모니터에 뜬 그래프와 수치를 살피는 중이다. 

▲ 비나텍이 개발한 CNF 합성장치.

“이 장비로 지지체나 촉매, MEA를 테스트할 수 있죠. 테스트는 정말 많이 하고 있습니다. 지지체나 촉매 단계에서 테스트 결과가 좋게 나온다고 해서 그 결과가 MEA로 그대로 이어지는 건 아니에요. 소재의 비율과 조합, 가공법 등에 변화를 주면서 테스트를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제품을 최적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죠.”

베트남에도 공장이 있다. 슈퍼커패시터의 경우 2018년 7월 베트남 박닌에 새 공장을 열고 글로벌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지금은 연료전지 분야가 슈퍼커패시터에 비해 상대적으로 파이가 작아 보이지만, 수소전기 상용차를 중심으로 해외시장이 열릴 경우 그 파급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연료전지 관련 소재와 부품의 생산은 해외시장 진출 시점에 맞춰 투자를 저울질하고 있다. 

“인근에 새 공장 자리를 알아보고 있어요. 이르면 올해 안으로 일이 추진될 겁니다.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관련 특허와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경쟁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시간, 그 골든타임이 딱 2년이라고 봅니다. 그 안에 승부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죠. 기술적인 대응력을 갖추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야 해요. 그래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 PEMFC 테스트 스테이션에서 검사를 진행 중이다.

▲ 모니터의 수치를 통해 테스트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

정한기 부사장은 MEA 가격이 지금의 25% 수준으로 떨어져야 수소연료전지 시장이 크게 열린다고 본다. 글로벌 경쟁시장에서 소재와 기술로 진검승부를 펼쳐야 하는 시기가 다가온 만큼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중국을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 정책적 전략을 세우고 수소 쪽에 엄청난 재정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죠. 우선은 상용차로 해서 물량 공세를 하겠다는 전략이에요. 시장도 있고, 가격 경쟁도 되고, 여기에 기술력까지 뒷받침이 되면 MEA 쪽으로 따라잡히는 건 시간문제죠. 이건 배터리 시장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활성탄소 처리 기술로 필터 개발 나서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쉬 흔들리지 않는다. 비나텍은 카본이라는 소재로부터 출발해 수소경제가 주목받기 전부터 긴 시간을 버티며 준비해왔다. 그리고 코스닥 상장 예비심사도 통과했다. 국내외 특허출원만 232건에 달하는 탄탄한 기술력, 여기에 독서와 마라톤, 나눔 활동 등으로 대표되는 특별한 기업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정 부사장이 책 두 권을 내민다. 한 권은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고, 한 권은 <비나가족 독서문집>이다. 독서문집은 벌써 11권째다.

▲ 임직원의 독후감이 담긴 <비나가족 독서문집>.

“사장님이 독서광이에요. <인간관계론>은 이 달의 책이고, <비나가족 독서문집>은 임직원들이 책을 읽고 쓴 독후감을 모아서 펴낸 책이죠. 전 임직원이 매달 한 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내요. 그걸 모아서 연 2회 문집을 만들고 있죠.”

매주 수요일에는 한 시간씩 수요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강연이나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사회적인 책임도 중시한다. 전 직원이 연 24시간의 봉사 시간을 채우고 급여의 1%를 기부하는 지속적인 나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력은 슈퍼커패시터고, 수소연료전지는 승부사업으로 보시면 됩니다. 여기에 미래사업으로 환경소재 분야에 주목하고 있어요. LG전자에 들어가는 냉장고 탈취제도 환경소재라 할 수 있죠.”

비나텍은 활성탄소 처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회사가 LG전자에 독점 납품하고 있던 냉장고 탈취제에 비나텍의 촉매 기술을 접목, 더 나은 성능의 제품을 납품하면서 1차 공급사로 바로 등록이 됐다. 이 기술은 자동차 에어 필터나 정수기 필터, 공기청정기 필터 등에 쓰임이 많다.

책 두 권을 받아들고 건물을 나선다. 잠잠하던 하늘에서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다. 정 부사장이 입구의 우산 하나를 건네며 차가 있는 곳까지 배웅을 한다. 시동을 걸고 와이퍼로 빗물을 쓸어내자 푸른 잔디가 눈에 든다. 그 위로 R&D 센터가 당당히 서 있다. 2년 후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런 기대를 안고 작별 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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