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 ‘솔라·H2 페스티벌’에서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의 드론 비행 시연을 하고 있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일본의 도쿄 이케가미에 있는 이와타니 수소충전소는 편의점과 붙어 있다. 또 편의점 2층에 보육원을 마련해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유리를 통해 밖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사정은 좀 다르다. 지난 5월 부산의 한 주민센터에서 열린 ‘찾아가는 수소충전소 주민설명회’ 자리에선 충전소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설전이 벌어졌다. 

이때도 어김없이 수소의 위험성을 알리는 근거로 강릉 수소저장탱크 폭발 사고와 노르웨이 수소충전소 화재 사고가 언급됐다. 정부가 수소경제홍보 태스크포스 팀을 꾸려 ‘찾아가는 설명회’를 열고 있지만, 한번 각인된 사고의 인상을 지우기란 쉽지 않다. 규제 샌드박스로 여의도 국회 앞에 수소충전소가 운영 중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안전한 것’과 ‘안전을 납득하는 일’이 별개의 문제로 여겨지기도 한다. 

▲ 도쿄 이케가미에 있는 이와타니 수소충전소 앞에는 편의점과 보육원이 자리하고 있다.(사진=이와타니)

8대 1의 경쟁률 뚫은, 충북 음성

대중의 선입견을 없애는 데는 긴 시간과 노력이 든다. 홍보와 설득이 필요하고, 체험과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지난 5월이었다.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지자체를 상대로 ‘수소 가스안전 체험교육관’ 건립 모집 공고를 냈다. 경쟁률은 8대 1이었다. 충남 천안에 있는 가스안전교육원과의 연계 운영을 감안해 신청 지역을 충청도와 경기도, 대전광역시, 세종특별시로 한정한 걸 감안하면 유치 열기가 뜨거웠다.

수원, 아산, 안산, 안성, 음성, 제천, 충주, 홍성에서 신청서를 냈다. 충북만 해도 음성, 제천, 충주가 참가했고, 이중 음성이 최종 선정됐다. 가스안전공사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은 이미 나와 있었다. 2년간 국비 63억 원의 예산이 지원되는 사업으로 수소안전체험관과 수소미래기술관, 수소 인력양성 교육관, 수소기술전시관, 가스안전체험관, 4D 영상체험관 같은 공간을 갖추게 된다.

수소 가스안전 체험교육관은 친환경 에너지인 수소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되고 활용되는지, 수소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 나갈지를 알아보는 체험 공간으로 꾸려진다. 또 수소를 비롯해 도시가스, LPG 등 일상에서 접하는 가스의 안전을 체험하고 교육하는 시설을 갖추게 될 전망이다. 

사실 ‘수소 홍보’의 필요성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이 발표되기 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 2017년 12월 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에서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30%가 ‘수소’ 하면 ‘수소폭탄’이 떠오른다고 답했다. 또 지난 2018년 10월 국회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 국정감사 자리에서는 김관영 의원(바른미래당)이 도쿄의 수소에너지 정보관인 ‘스이소미루’를 거론하며 수소 홍보와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스이소미루는 도쿄환경공사가 2016년 7월에 세계 최초로 세운 상설 수소 홍보·교육관으로, 아이들이 수소에너지를 이해하도록 하는 체험시설을 잘 갖추고 있다. 자전거 페달을 밟아서 만든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해서 수소를 만들고, 그 수소를 주입해 연료전지 장난감 자동차나 잠자리의 날개를 움직이는 식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부산, 동탄에 ‘수소전기하우스’를 열어 한시적으로 부스를 운영한 바 있다. 다만, 현대차 넥쏘의 홍보에 초점을 맞춘 수소전기차 쇼룸 형태로 운영되어 수소의 생산과 저장, 활용 등 전주기의 특성을 알리고, 수소의 특성과 안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는 목적과는 거리가 있었다. 

지리적 이점, 혁신도시의 장점 부각

수소 가스안전 체험교육관은 충북혁신도시가 있는 음성군 맹동면 두성리 1525번지 일원에 조성된다. 2022년 개관을 목표로 대지면적 10,697㎡(약 3,200평), 건축 연면적 2,500㎡ 규모의 2층 건물로 조성될 예정이다.

▲ 수소 가스안전 체험교육관이 들어서게 될 대상지로, 가스안전공사와 1km 거리에 있다.

충북혁신도시는 세종시를 닮았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에 있던 11개 공공기관이 충북 음성과 진천군 일원으로 옮겨가면서 조성됐다. 2013년 12월 한국가스안전공사가 처음 이전했고, 지난해 12월 과학기술평가원이 옮겨오면서 이전을 완료했다. 

“우리 군은 올해 5대 신성장동력 산업 중 하나로 수소에 적극 투자하기로 하고 혁신전략실을 만들어 신사업발굴팀에 6명의 인원을 별도로 배정했습니다. 여기서 전략적으로 준비를 해서 우리만의 장점을 드러냈죠. 수도권과 중부권 어디든 1시간대 접근이 가능한 지리적 이점을 부각시키고, 국가균형발전에 맞는 혁신도시의 장점과 인프라를 내세운다면 승산이 있다고 봤습니다.”

충북 음성군 혁신전략실 신사업발굴팀 홍태경 팀장의 말이다. 가스안전공사 본사가 충북혁신도시 안에 있고, 음성군이 제안한 수소 가스안전 체험교육관 부지는 여기서 북쪽으로 1km 남짓 떨어져 있다. 이는 교육사업 등 프로그램 개발과 시설 관리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요인이다. 또 예산 부문에서도 토지 구입 지원을 포함해 70억 원을 제안하는 등 열의를 보였다. 

▲ 충북혁신도시 안에 있는 한국가스안전공사 본사.

“가스안전공사나 천안의 가스안전교육원과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좋고,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이나 법무연수원 등 혁신도시 안에 있는 공공기관과 연계한 사업을 만들기도 좋죠. SK D&D에서 금왕산업단지에 건설 중인 20MW 연료전지(SOFC) 발전소를 견학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도 되고, 충북의 ‘솔라·H2 페스티벌’과 연계해서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도 있죠. 어떤 시설을 만드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시설을 어떻게 운영하느냐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죠.”

작년 9월 충북혁신도시에 있는 진천 친환경에너지타운에서 사흘간 열린 ‘솔라·H2 페스티벌’의 경우 수소관을 따로 만들어 관련 부스를 열고 체험 행사를 진행했다. 현대차의 넥쏘,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의 수소드론이 전시됐고, 가스안전공사와 한국동서발전 같은 공기업, 지필로스와 지티씨 같은 업체들이 전시 부스를 마련해 참여했다. 태양광에 이어 새롭게 떠오른 ‘수소’에 대한 지역민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학생들이 2019 ‘솔라·H2 페스티벌’에 마련된 수소관을 둘러보고 있다.

주민 수용성을 위한 노력

수소 가스안전 체험교육관은 정부의 수소경제 활성화 추진에 따른 대국민 수용성 향상, 취급 부주의 사고 예방, 수소산업 확대에 따른 수소충전소 등 시설의 안전관리자 법정교육, 수소경제의 안전한 정착을 위한 전문가 육성 등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지상 1층 체험교육관은 친환경 미래 에너지인 수소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수소미래관, 수소산업 분야 종사자에 대한 전문 교육을 할 수 있는 수소교육관이 들어선다. 또 2층에는 일상에서 접하는 가스시설을 직접 사용해보고 위기대응 훈련을 할 수 있는 가스체험관, 가스폭발 영상을 통해 가스의 위력을 체험하고 가스 안전교육의 중요성을 전하는 가스교육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다만 가스안전공사가 6월 말부터 ‘수소 가스안전 체험교육관 전시, 체험기획 및 콘텐츠 개발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만큼 세부 시설이나 콘텐츠는 이 과정을 거쳐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4년 이후로 가스사고는 해마다 120건 내외로 정체 중이다. 최근 3년간 가스사고 내역을 봐도 취급 부주의나 과열로 인한 화재 같은 인재(人災)가 전체 사고의 약 34%를 차지한다. 선진국 수준의 가스사고 감축을 위해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체험이나 홍보 활동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 충북은 수소에너지를 지역경제 활성화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고 있다.

사고는 한순간이지만, 그 기억은 화상을 입은 상처 자국처럼 오래 남는다. 강릉 R&D 시설의 폭발사고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소경제의 미래 비전은 자칫 잘못하면 주민 수용성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4월 현대차와 수소전기차 보급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2022년까지 수소전기차를 4,000대 이상 보급하고 수소충전소를 15개 이상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지만, 인프라 구축은 더디기만 하다.

서울시가 강서공영차고지에 짓기로 한 온사이트형 수소생산기지가 주민 반발에 막혀 무산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수소버스를 운행해 수소에너지에 대한 선입견을 줄이고, 미세먼지를 줄여 도심 대기질 개선에도 앞장서겠다는 비전은 ‘민원’과 ‘님비(NIMBY)’에 걸려 넘어졌다. 결국 대체 장소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어쨌든 서울시가 가칭 ‘수소에너지 체험관’ 건립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수소 관련 캠페인을 통해 수소전기차 전시와 시승 기회를 늘리고, 수소에너지의 원리와 수소전기차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수소를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수소시범마을을 조성하는 등 새로운 밑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가스안전 확보와 주민 수용성 없이는 ‘수소경제’가 빛을 보기 어렵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안전’이라는 수소경제의 토대

수소 가스안전 체험교육관의 총 사업비는 국비 63억 원, 가스안전공사 20억 원, 음성군이 제안한 70억 원을 합쳐 총 153억 원이다. 음성군은 이제 충북혁신도시 내 클러스터 용지에 수소 가스안전 체험교육관을 유치하겠다는 구상을 현실로 옮길 수 있게 됐다. 향후 가스안전공사 본사가 있는 혁신도시를 거점으로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육성할 계획이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음성군은 수소와 연계한 신에너지 산업에 관심이 많다. ‘음성군 5대 신성장 동력산업’의 맨 첫 번째 항목에 ‘수소’가 올라 있다. 수소연료전지 발전소를 비롯해 이차전지 관련한 기업의 유치와 에너지저장장치(ESS) 활용, 수소와 태양광을 활용한 스마트 그린 빌리지 구축에 관심이 있다. 또 연료전지 스택을 만드는 현대모비스를 비롯해 37개의 수소 관련 업체가 충북에 입주한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는다는 도쿄의 가스과학관까지는 아니어도, 관람객과 교육생 등을 합쳐 연간 9만 명이 넘는 이용자가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지역 활성화에 거는 기대가 크다. 

“지난 5월을 기준으로 충북혁신도시의 인구가 2만6,500명을 넘어 그 수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또 교육과 문화, 복지 등 정주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죠. 이번 수소 체험교육관 사업이 도약의 발판이 되리라 봅니다. 충청북도와 협의해서 충북혁신도시를 국내 유일의 ‘수소에너지 기반 에너지 안전교육 특화지구’로 만들 계획이죠. 충북의 다른 지자체들과도 협력해서 수소와 관련된 새로운 사업을 벌일 기회가 생긴 셈입니다.”

▲ SK D&D에서 금왕산업단지에 건설 중인 20MW 연료전지발전소 조감도.

협력은 신뢰에서 온다. 홍태경 팀장의 말마따나 신뢰가 쌓이면 일을 풀기가 한결 쉬워진다. 수소 분야의 신뢰란 ‘안전’에 다름 아니다. 안전이 바탕에 깔려야 수소경제의 토대가 무너지지 않는다. 

주민 수용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수소 안전’을 강조하지 않을 때 완결된다. 수소의 위험성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안전장치를 차근차근 준비하다 보면, 수소에너지가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바꿔가는 순기능에 더 주목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전까지는 알리고 보여줘야 할 것들이 많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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