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상암 수소충전소에 설치되어 있는 샘찬에너지의 700bar 디스펜서.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서울 상암충전소에서 처음 봤다. 국산 디스펜서라 했다. 민트와 하늘색의 조합이 산뜻했다. 디스펜서 옆에 붙은 큼직한 냉각기 뒷면에 ‘SaemChan’이란 글자가 찍혀 있었다. 수소추출기(개질기)를 만드는 제이엔케이히터의 협력사로, 샘찬에너지란 회사가 만든 제품이었다. 이름이 낯설었다. 알아보니 2018년 6월에 설립된 신생 회사였다. 

그러고 나서 한 달이 지났다. 상암충전소 운영을 맡고 있는 에코바이오 측에 연락해서 이것저것 물었다. 정식 개장을 앞두고 넥쏘 동호회 회원들을 상대로 충전 테스트를 자주 진행한 터라 샘찬의 디스펜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초기라 내구성을 논하긴 그렇고, 충전기 성능만 놓고 보면 좋습니다. 1시간 20분(80분) 만에 11대를 연속으로 충전한 적도 있으니까요. 동호회 분들 차가 죽 늘어서니까 그대로 갔는데, 별 문제 없이 작동하더군요.”

현장에 처음 설치했다는 700바(bar)짜리 충전기가 잘 돌아가는 게 신기했다. 설립 후 채 두 돌이 안 된 회사가 수소충전기 개발에 뛰어들어 이만한 결과물을 내놓기란 쉽지 않다. 대체 어떤 회사인지 궁금했다.

▲ SAE J2601이 적용된 충전기 옆에 커다란 냉각기가 붙어 있다.


국내 최초 상용 CNG충전소의 주역

샘찬에너지 본사가 있는 서울 마곡동을 찾아 안광찬 대표를 만났다. 큰 키에 온화한 미소가 시선을 끌었다. 이름 끝 자를 회사명에 슬쩍 넣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샘물 할 때 ‘샘’에 가득 차다는 뜻의 ‘찬’을 붙인 이름이었다. 샘찬. 어디서 맑은 샘물이 풍풍 솟는 그림이 머리에 그려졌다.

“효성에 들어가서 22년 7개월을 일하다 2018년 7월에 퇴사했어요. ‘샘찬’은 사업자등록을 내면서 하루 만에 지은 이름이죠. 나이 마흔이 되면서 회사를 차려 내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던 것 같아요. 그 꿈을 이제 이룬 거죠.”

20년 넘게 몸담은 효성 시절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신입으로 들어가 처음 맡은 일은 국방과학연구소에 풍동(wind tunnel)이라는 시험설비를 설치하는 일이었다. 비행기 모델을 앞에 두고 송풍기로 120m/s로 바람을 날려 비행체의 양력이나 공기저항계수를 측정하는 장비였다. 이 일을 3년 정도 하고 나서 CNG에 입문했다.

“회사에서 CNG충전소 연구개발 과제 후, 버스 차고지에 CNG 압축기와 충전기를 구축하는 사업 초기 TF팀을 꾸릴 때 합류했죠. CNG 충전이 수소 충전이랑 비슷해요. 천연가스를 압축해서 저장한 다음 충전기로 버스에 연료를 주입하죠.” 

▲ 샘찬에너지의 안광찬 대표.

누구나 자전거를 타고 나서 오토바이에 입문한다. 보통 CNG를 전공한 분들이 수소에 입문한다. CNG와 수소의 차이라면 단연 압력이다. CNG가 200바라면 수소는 700바로 압축한다. 세 배가 넘는 압력을 견뎌야 하는 만큼 밸브 하나부터 저장용기, 압축기까지 수소가 훨씬 다루기 어렵고 까다롭다. 

국내 최초 상용 CNG충전소가 2000년 여름, 서울 수색에 있는 은평공영차고지에 들어섰다. 바로 그 작업을 안광찬 대표가 했다. 미국의 에어리얼(Ariel)사 압축기를 들여와서 패키징을 한 후 현장에 설치했다. 충전기는 캐나다 제품을 썼고, 저장용기는 국산 엔케이(NK) 제품을 썼다. 엔케이는 부산에서 수소충전소를 운영하는 바로 그 회사다. 

“현장 공사, 시운전을 했는데, 인허가부터 AS까지 도맡아서 고생을 무진장했죠. 오후 8시까지 일하다 퇴근해서 눈 좀 붙이려고 하면 전화가 와요. 버스가 10시쯤 들어오는데 기계가 말썽이라면서요. 그럼 택시를 타고 가서 새벽 두세 시까지 또 고치는 거죠. 그 생활을 3년은 한 것 같아요.” 

2018년 퇴사 후 수소산업에 주목

경기도 화성에 있는 ‘현대기아차 남양기술연구소’ 입구 쪽에 수소충전소가 하나 있다. 지난 2008년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개발을 위해 국내 최초로 세운 수소충전소로,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이 충전소도 효성에서 지었다.

“그 일을 제가 했습니다. 압축기로 미국 PPI 제품을 썼는데, 이게 문제가 많았어요. 필드 엔지니어가 입국을 해서 보더니 압축기 후단에 완충용기가 없다고 미국으로 바로 돌아가겠다고 하더군요. PPI에서 필요하다고 사전에 말을 안 해주니 패키징 시 빠뜨린 거죠. 부랴부랴 용기를 설계해서 문래동 철공소 골목을 찾아갔어요. 그렇게 이틀 만에 만들어서 달았던 기억이 나네요.”

세계 최초 수소전기차 타이틀을 얻은 현대의 ‘투싼ix’ 개발에 작게나마 힘을 보탠 셈이다. 이때만 해도 수소는 사람들 관심 밖이었다. CNG는 잘 나갔다. 도심을 오가는 버스가 디젤에서 CNG로 바뀔 때였다. 그 흐름은 2013년까지 죽 이어졌다.

“CNG의 한계는 딱 버스까지였어요. 택시의 문턱을 못 넘었죠. 이게 충전소와 연관이 있어요. 버스 차고지와 달리 택시회사는 보통 주거지 인근에 있거든요. 법적인 문제도 있고, 주민들 반대도 심하다보니 CNG충전소를 세우질 못하는 거죠. CNG는 그때부터 하향세를 그렸다고 봅니다.”

▲ 충전기 개발, 특허 인증 관련 서류가 사무실 책장에 꽂혀 있다.

안광찬 대표는 2012년부터 퇴사 전까지 인도네시아에서 세계 최초로 시작한 피커(Peaker)발전소의 압축가스 공급설비 일을 했다. 피커발전은 전력 수요가 급증할 때를 대비한 일종의 소규모 분산발전이다. 밤새 도시가스를 200바로 압축해서 저장용기에 채워둔 뒤, 전기 수요가 늘어나는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발전을 하는 방식이다.

“수소는 2018년부터 뜨기 시작했어요. 공교롭게도 제가 회사를 나온 해였죠. 창업자금이 부족해서 제조업으로 방향을 잡고 기술보증기금을 알아봤어요. 상담을 하던 자금 대출 담당자가 ‘수소 디스펜서’를 품목으로 정해주더군요. 솔직히 그때만 해도 제가 이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운명이라면 운명이죠.”

SAE J2601이 적용된 국내 최초의 디스펜서 

2018년 10월부터 수소충전기 개발에 들어갔다. 후배의 소개로 인연을 맺은 제이엔케이히터가 도움을 줬다. 조달청을 통해 받은 시험설비 수주를 빼면, 여전히 제일 큰 고객사이자 협력사다. 여기에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TIPA)에서 충전기 개발 과제로 받은 지원금(1억2,000만 원)도 큰 힘이 되고 있다. 

“SAE J2601에 제시된 기본 코드가 300페이지 정도 돼요. 그걸 보면서 공부를 했죠. 안에 들어가는 부품은 외국산 몇 가지로 극히 제한적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핵심은 컨트롤러예요. 차량 탱크의 압력, 외기 온도에 맞춰 최종 충전 압력을 정해서 최적의 값으로 수소기체를 주입하게 하는 장치죠. 프로토콜 신호에 맞게 압력을 제어하면서 기체를 보내는데, 이게 현장에서 실제로 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미세한 조정이 필요하죠. 이걸 잡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샘찬에너지는 디스펜서의 핵심인 컨트롤러를 국내 업체와 함께 개발했다. 물론 다른 부품은 대부분 미국산을 수입해서 썼다. 또 노즐 같은 경우는 전량 독일산이다. 수소충전소 관련 부품의 국산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제 막 첫 걸음을 뗐다고 할 수 있다.

“안산의 공장에서 질소 충전시험 정도만 해보고 바로 현장에 설치했어요. 현장에서 테스트를 진행한 셈이죠. 이것 때문에 구박을 좀 받았습니다(웃음). 지금은 법적으로 수소전기차가 아니면 수소 충전을 할 수가 없어요. 제이엔케이히터에 넥쏘 두 대가 있는데, 그중 한 대로 테스트를 하다 보니 연료가 떨어질 때나 겨우 상암수소충전소에서 약속을 잡아서 시운전을 진행했죠. 이 부분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 안산 공장을 찾아 김우중 사원과 대화 중인 안광찬 대표.

이후 넥쏘 카페에 가입해서 테스트 차량 신청 접수를 받으면서 하루 스무 대 넘게 충분한 테스트를 할 수 있게 됐다. 11대 연속 충전도 그때 해봤다. 

“충전율이 높게 나온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만큼 제어가 잘 된다는 소리죠. 디스펜서의 경우 일본 다쓰노 제품을 많이 써요. 저는 우리 제품이 다쓰노에 밀리지 않는다고 봅니다. 가격 경쟁력도 앞서고요.”

수소충전 프로토콜 표준인 SAE J2601이 적용된 디스펜서 개발은 샘찬에너지가 처음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가스안전공사(KGS)는 얼마 전 디스펜서 인증 관련 검사 장비를 발주했다. 안광찬 대표는 “인증 합격에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안산 공장에서 키워가는 수소의 미래

샘찬에너지의 공장은 안산 시화공단에 있다. 고속도로를 타고 차로 달리면 딱 1시간이면 도착한다. 공장은 임대를 해서 아웃소싱 형태로 운영 중이다. 현장이 어수선하다며 낯을 붉히지만, 민낯 그대로 활기가 돈다.

금속을 깎아내는 밀링머신 소리가 공장 안에서 울린다. 용접을 하느라 하얀 불꽃이 번쩍인다. 미국에서 들여온 두 대의 압축기 패키징을 의뢰받아 작업이 한창이다. 번듯한 공장을 올리기 전에 누구나 거치는 과정이다. 다들 이렇게 시작한다. 

▲ 용접을 하느라 하얀 불꽃이 번쩍인다. 샘찬에너지가 수소의 꿈을 키워가는 곳이다.

정부 지원에 힘입어 수소전기차의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고, 수소충전소 시장도 커지고 있다. 확실한 품질과 서비스로 승부한다면 승산이 있다. 샘찬에너지는 그만한 실력과 기술, 아이디어를 갖췄다. 실제로 수소충전소뿐 아니라 연구소나 수소 관련 업계에서 알음알음으로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수소가 저나 우리 직원들에겐 기회입니다. 수소충전소에 들어가는 장비를 비롯해서, 가스설비 중 핵심 기기들을 개발해서 사업화하겠다는 꿈을 품고 있죠. 이와 관련해서 특허 몇 개는 접수를 하거나 등록을 마친 상태고요. 샘찬이 앞으로 어떤 길을 가는지 지켜봐주십시오.”

디스펜서는 시작이다. 샘물이 모여 시내가 되고 강이 된다. 샘찬에는 그만한 저력과 기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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