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신진우, 이생희 연구원과 강웅 책임연구원이 ‘수소유량 현장 교정시스템’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대전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문에서 god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같은 그릇을 쓰는 중화요리점이라면 자장면 곱빼기의 양은 같아야 정상이다. 혹여 ‘만리장성’에서 주문한 곱빼기가 ‘웅비성’에서 먹은 일반 자장면과 양이 같다면, 젓가락질을 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할 수 있다.

주유소마다 ‘정량 정품’이라는 문구를 붙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계량이 정확해야 상도(商道)가 바로 선다. 수소충전소도 마찬가지다. 충전소마다 수소 정량이 오락가락한다면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소비자의 신뢰와 직결되는 문제죠. 수소전기차를 모는 사람이 조금씩 늘고 있고, 몇 년 안에 어느 정도 수소충전 인프라가 갖춰지면 이게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때가 되면 수소도 석유류처럼 계량법 안에 들어오겠죠. 그 전에 준비를 하는 겁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하 표준연) 열유체표준센터 강웅 책임연구원의 말이다. 그렇다. 수치가 틀리면 바로잡아야 한다. 그 ‘표준’을 바로 세운 측정 기술이 궁금했다. 

넥쏘와 동일한 수소탱크 장착

표준연에는 ‘고압기체유량동’이 있다. 고압가스의 유량을 측정하는 위험시설(?)이라 그런지 연구원 단지 맨 안쪽 언덕배기에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수소유량 현장 교정시스템’이 한눈에 딱 들어온다. 배경에 암막을 두르고 LED 조명기구를 앞에 세워 놨다. 간이 스튜디오 같다.

▲ 수소충전기 노즐을 시스템에 물려 디스펜서에 달린 코리올리 유량계의 정확도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이번에 개발한 수소유량 교정시스템에 관심을 보이는 분이 많으세요. 사진을 찍어 보내면 주변 설비를 두고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아서, 일부러 구분을 하려고 암막을 쳤습니다. 앞에 있는 설비가 다라고 보시면 됩니다. 수소충전기에 달린 유량계의 오차를 검증하거나 교정하는 장치죠. 차에 싣고 다니면서 현장에서 교정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구조가 언뜻 복잡해 보이지만, 원리는 간단하다. 수소충전기의 디스펜서 노즐을 수소전기차 연료 주입구에 꽂아 수소를 충전하는 방식과 동일하다. 실제로 이 장비에는 현대차 넥쏘에 들어가는 700기압(bar) 52리터짜리 수소탱크 3개가 설치되어 있다. 

▲ 현대차 넥쏘에 들어가는 52리터까지 수소탱크 위에 5kg짜리 표준 분동을 올렸다.

수소유량 교정시스템의 탱크에 수소가 충전되면 무게가 변하고, 그 변화된 양을 탱크 하단에 설치된 정밀저울로 측정하게 된다. 이 수치를 디스펜서에 달린 코리올리 유량계의 수치와 맞춰보는 방식이다. 이때 오차가 있으면 시스템의 정밀저울을 기준으로 그 수치를 보정할 수도 있다.

“전국의 수소충전소 어디나 싣고 다니며 현장에서 바로 교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맞춰야 할 게 있죠. 세계시를 측정하려면 기준이 되는 표준시가 있잖아요? 그와 마찬가지로 이 정밀저울의 영점을 잡는 기준점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표준 분동을 함께 들고 다닙니다.”

수소유량 측정의 어려움

분동(分銅)은 무게의 표준이 되는 금속 추를 이른다. 옆에 있던 이생희 연구원이 흰 장갑을 낀 손으로 5kg짜리 분동을 집어 수소유량계 상단에 올린다. 메틀러 토레도 정밀저울의 수치가 4.9950을 가리킨다. “수소기체의 질량을 국가측정표준으로부터 소급된 정밀저울로 측정한다”는 말은 이를 뜻한다.   

“소급이라는 말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이잖아요. 국가측정표준이라는 기준을 현장에 소급해서 유량계의 정확도를 평가하게 됩니다. 이 시스템으로 수소충전기에 설치된 코리올리 유량계의 정확도를 바로 측정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개별 유량계를 시스템 내부에 물려서 평가할 수도 있죠.”

▲ 온도, 압력, 무게 등 수치 변화를 현장에서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수소의 양을 잴 땐 코리올리(Coriolis) 유량계를 쓴다. 진동이 질량에 비례하는 원리를 이용, 유체가 흐를 때 튜브에 일어나는 진동의 변화, 일종의 비틀림을 센서로 감지해 밀도와 유속을 동시에 측정하게 된다. 이 장비는 모두 독일산으로 가격이 비싸다.

바로 이 코리올리 유량계로 측정한 수소의 질량 값에 따라 금액이 부과되는데, 아직 그 정확도를 수소기체로 제대로 검증한 적은 없다. 수소유량계가 수소 거래 비용의 공정성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지만, 석유 등과 달리 수소는 고압·저온의 가혹한 충전 조건으로 유량 측정이 매우 어렵고 결과가 불확실했다. 

“현재 국내 충전소에서 사용하는 코리올리 유량계는 교정 시 상압, 상온에서 액체인 물을 이용해요. 그런데 수소는 대기압의 700배로 영하 40℃의 저온 상태로 충전이 되잖아요. 정확도 검증을 위한 교정이 실제와 전혀 다른 조건에서 이뤄지다 보니, 오차가 얼마인지를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2018년에 개정된 국제법정계량기구(OIML)의 규정을 보면, 수소유량계의 최대 허용오차를 1.5~2.0%로 정하고 있다. 정확도가 있는 기체 유량계의 허용오차가 0.1~0.5%인 걸 감안하면 허용 범위가 큰 편이다. 

“수소유량 측정이 그만큼 어렵다는 걸 OIML에서도 알고 있는 거죠. 사실 데이터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는 일본이에요. 정보를 외부에 잘 안 풀어서 그렇지. 계량에 신경을 쓴다는 건 인프라를 갖추고 상거래가 그만큼 활발하다는 뜻이에요. 수소경제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런 데이터가 정말 중요해집니다. 소비자 신뢰의 근간이 흔들려선 안 되니까요.”  

국내 현실에 맞춘 현장 교정시스템

강웅 박사팀이 개발한 ‘수소유량 현장 교정시스템’은 법적인 제약으로 현장 적용이 어렵다. 현재 국내법상 수소를 충전할 수 있는 것은 수소전기차만 허용하고 있다. 그래서 연구팀은 수소 대신 고압의 질소가스를 활용해 실험을 마쳤다. 100기압짜리 질소 봄베로 테스트에 성공했지만, 조건은 엄연히 다른 셈이다.

“관련 기관, 업체와 함께 정부에 법안 개정을 요청하고 있어요. 수소법이 얼마 전에 통과됐고, 정부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 조만간 현장 실험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게 되면 넥쏘의 차주 분들이 일단 기뻐하겠죠. 내 차에 수소 정량이 들어가는지, 궁금한 분들이 많을 테니까요.”

▲ 수소충전기의 노즐을 현장 교정시스템에 연결한 도식도.(사진=표준연 열유체표준센터)

▲ 수소탱크 앞쪽에 코리올리 유량계(4번)를 따로 물려 정확도를 함께 측정하는 법도 가능하다. 현장 교정시스템의 내부 구조도.(사진=표준연 열유체표준센터)

수소충전기의 계량 정확도 검증은 소비자뿐 아니라 수소충전소 운영자, 수소전기차 업체에도 중요하다. 고압, 저온의 수소기체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충전하기 위해 수소충전 프로토콜(SAE J2601) 검사를 진행하는데, 이런 데이터를 기반으로 국내 수소충전소의 성능을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소충전기 노즐에 장착된 적외선(IR) 신호는 ‘프로토콜’의 핵심이다. 충전기와 차량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차량 탱크 내 압력에 맞춰 수소를 얼마나 더 넣을지 정하게 된다. 하지만 수소충전기의 유량계가 지시하는 값과 수소전기차에서 보낸 값이 많게는 10%나 차이 날 때도 있다. 이런 문제를 조금씩 고쳐 나가고 교정해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데이터가 없으면 뭐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죠. 독일산 코리올리 유량계가 정확한지도 측정을 해봐야 합니다. 일본 후쿠오카의 하이트랙(HyTReC, 수소에너지제품연구시험센터)에는 700기압으로 수소를 보내는 시설을 갖추고 있어요. 그곳에선 이런 실험이 가능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죠.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으니, 현실에 맞게 현장에서 바로 교정할 수 있는 간이형 시스템을 만든 겁니다.”

이 분야에 가장 앞서 있는 일본은 데이터 공유를 꺼리지만, 같이 시작하는 단계인 유럽은 공유가 잘 되는 편이다. 강웅 책임연구원은 독일, 스위스, 프랑스 등이 속한 유럽측정표준협력기구(EURAMET)의 수소차 측정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해 협력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측정표준 정립은 시간과의 싸움

이번 기술은 표준연의 주요 사업인 ‘수소융복합스테이션 신뢰성 측정표준 기술개발사업’의 하나로 개발됐다. 수소유량 교정시스템을 비롯해, 수소가스의 순도 측정, 금속·비금속 소재 적합성 측정기법을 주제로 총 9년간 진행되는 장기 과제로, 표준연의 소재에너지융합측정센터가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3년 단위로 진행되는 사업 중 1단계가 막 끝났습니다. 2017년부터 시작해서 1단계 결과물로 내놓은 것 중 하나가 강웅 박사팀이 개발한 수소유량 현장 교정시스템이죠. 수소 인프라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부품이나 소재의 신뢰성 확보입니다. 연료전지의 핵심 부품인 스택만 하더라도 수소가스의 순도가 낮으면 수명이 확 떨어져요. 또 금속과 비금속 소재로 나눠 부품이나 소재의 내구성을 테스트하는 일도 아주 중요한 과제에 듭니다.”

▲ 이번 기술은 소재에너지융합측정센터 백운봉 센터장(맨 오른쪽)이 주도하는 ‘수소융복합스테이션 신뢰성 측정표준 기술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개발됐다.

소재에너지융합측정센터 백운봉 센터장의 말마따나 수소유량 측정만 중요한 게 아니다. 수소전기차 부품에 변형이 오거나 깨지는 일이 생기면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작은 결함으로 소비자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그와 반대로, 측정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재의 내구성을 높이면 제품에 경쟁력이 붙고, 관련 부품의 국산화율도 높일 수 있다. 

강웅 박사는 천연가스, 온실가스 같은 기체유량 표준 연구를 함께 수행하고 있다. 그는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재는 유량계의 측정 특성 등을 평가하는 인용색인(SCI)급 논문 2건을 발표한 바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측정표준협력기구(APMP) 총회에서 ‘젊은 과학자상’을 받기도 했다.

▲ 표준연 열유체표준센터 강웅 책임연구원은 작년 12월 APMP 총회에서 ‘젊은 과학자상’을 받았다.

“1년에 단 한 명, 그것도 만 40세까지만 받을 수 있는 상이라 저한테는 더 뜻깊은 상입니다. 그동안 측정표준 하면 질량·온도와 같은 기본 단위 분야에서 많이 받았지, 유체·유동 분야에서 받은 건 이례적이라 할 수 있죠. 수소나 온실가스 같은 친환경 이슈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는 반증입니다.” 

측정표준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시간과의 싸움, 지구전이다. 자장면 노래 하면 god의 ‘어머님께’가 떠오르듯, 수소유량 하면 ‘강웅’을 떠올릴 날이 머지않았다. 시장에서 말하는 ‘신뢰’란 과학에서 말하는 ‘표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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