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는 올해 넥쏘 국내 누적 판매 목표를 1만대 이상으로 잡고 있다. 사진은 국회 수소충전소의 모습이다.(사진=현대자동차)

[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보물지도를 어렵게 손에 넣었는데, 길을 못 찾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지난해 1월 17일 정부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하고 1년이 지났다. 1주년은 의미가 크다. 연애를 이어가는 연인도, 결혼을 한 부부도 이날은 꼭 챙기고 본다. 

연초부터 기념일을 챙기느라 민관이 바빴다. 산업통상자원부 성윤모 장관은 지난달 13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수전해 시스템 제조사인 지필로스를 찾아 “2019년은 명실상부한 수소경제 원년으로 초기 시장과 인프라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산업의 기틀이 마련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얻었다”고 했다.

여기서 방점은 ‘가시적인 성과’에 있다. 일단 눈에 든 지표는 좋다. 세계 1등,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도 제법 챙겼다. 일본을 제치고 수소전기차 글로벌 판매 1위를 달성한 데 이어 국내 누적 수소전기차 보급 대수도 5,000대를 넘겼다. 현대자동차도 자신감이 붙었는지 올해 연말까지 국내 누적 판매량 1만대를 넘기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수소 인프라도 하나둘 갖춰가고 있다. 작년에만 20곳에 수소충전소를 세웠고, 세계 연료전지 시장에서도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정쟁으로 시끄럽던 여야도 ‘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법’(이하 수소법) 앞에서는 이견이 없었다. 지난달 9일 세계 최초로 수소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수소 생산시설과 공급시설 설치에 탄력을 받게 됐다. 

1주년이 막 지났다. 수소경제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얻은 성과를 찬찬히 짚어보며 미래를 준비할 때다. 지도상에 내가 있는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점검하는 차원에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다.

수소전기차 글로벌 판매 1위 달성

먼저 수소전기차를 살펴보자. 정부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에 따라 수소경제 표준화 전략 로드맵, 수소 인프라 및 충전소 구축방안, 수소 기술개발 로드맵, 수소시범도시 추진전략, 수소 안전관리 종합대책 등 범부처 분야별 후속 대책 6건을 세우고 수소전기차 보급 확대, 핵심기술 개발 등에 약 3,700억 원을 집중 지원했다. 그 결과 지난해 최초로 수소전기차 판매 1위를 달성했다. 

▲ 수출형 수소전기트럭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사진=청와대)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글로벌 수소전기차 판매량을 보면 현대차가 3,666대로 전체 판매량의 60%를 차지했다. 일본의 도요타(2,174대)와 혼다(286대)가 그 뒤를 이었으니 1등이 맞다. 다만 글로벌 완성차업체 가운데 수소전기차를 양산하는 곳은 현재 이 세 회사가 전부다. 또 국내 수소전기차 수요가 크게 늘어난 건 정부의 보조금 정책에 기댄 측면이 크다. 

어쨌든 현대차 넥쏘에 대한 평가는 좋다. 지난해 7월 독일의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모토&슈포트는 한국의 수소전기차 기술력이 독일차보다 앞선다고 평했고, 넥쏘의 파워트레인은 2018년 말 미국의 자동차 매체인 워즈오토로부터 ‘세계 10대 엔진’에 선정된 바 있다.

그래서인지 해외 수출도 꾸준히 늘어 누적 대수 1,700대를 넘어섰고, 유럽과 오세아니아 중심이던 수출국도 다변화됐다. 2018년 11개국에서 지난해 19개국으로 늘어 신규시장 개척 효과를 봤다.

올해는 넥쏘에 이어 10톤짜리 수소전기트럭이 해외 진출에 가세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스위스의 수소에너지 기업인 H2 Energy와 합작법인인 ‘현대 하이드로젠 모빌리티’를 설립했고, 올해 처음으로 수소전기트럭을 유럽에 수출했다. 2025년까지 총 1,600대 수출을 목표로 하는 등 현대차는 글로벌 수소전기차 리더십을 상용 부문으로 넓혀가고 있다.  

▲ 현대차가 스위스 합작법인에 공급 중인 10톤짜리 수소전기트럭.(사진=현대자동차)

유럽은 친환경차에 대한 관심이 높다. 주요 국가들이 수소전기차 보급의 확대를 위해 구매 보조금, 충전소 구축비 분담 등의 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스위스만 해도 총 중량 3.5톤 이상 화물차에 대해 도로통행료를 부과하고 있지만, 수소전기나 배터리전기를 쓰는 트럭은 이를 면제해주고 있다. 

현대차가 스위스 합작법인에 공급 중인 수소전기트럭은 기존 엑시언트를 기반으로 유럽 현지 법규에 맞춰 개발됐다. 신형 수소연료전지 시스템 2개가 병렬로 연결된 190kW급 수소연료전지 시스템과 7개의 대형 수소탱크를 탑재해 약 35kg의 수소 저장 용량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회 충전 시 약 400km의 주행이 가능하다.

수소충전소 20기로 세계 최다 구축

대중교통 분야에서도 수소전기차가 시범운행을 이어가고 있지만, 일상에서 체감하기엔 아직 그 수가 너무 적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서울시 수소택시 실증사업을 통해 수소택시 한 대당 평균 3만km를 운행하며 2만2,000여 명의 승객을 태웠다. 

수소택시는 승차감이 좋고 연료 효율도 좋아 고객이나 운전자의 만족도가 높다. 배기가스 대신 물을 배출하고, 도로의 미세먼지도 걸러준다. 문제는 충전소다. 수소택시의 경우 완충을 위해 국회충전소를 찾아야 하고, 수소 충전 시 충전기 노즐이 주입구에 얼어붙어 이를 녹이는 데 시간이 걸린다. 현실적으로 한 대 충전에 10분에서 15분은 잡아야 한다. 

수소전기차의 수요를 늘리고 충전 대기시간을 줄이려면 인프라 확충이 꼭 필요하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수소충전소를 가장 많이 세웠다. 작년만 놓고 보면 세계 1등이다. 2018년 14기에서 지난해만 20기를 새로 구축해 총 34기로 늘었다. 지난해 독일은 15기, 일본은 10기, 미국은 4기를 세우는 데 그쳤다. 

수소충전소는 착공부터 준공까지 통상 7, 8개월이 걸리고, 1기를 세우는 데 30억 원 가량이 든다. 큰돈이 드는 만큼 민간기업의 참여가 중요하다. 지난해 3월 한국가스공사, 현대자동차 등 13개 사가 참여한 민간 주도의 특수목적법인 ‘수소에너지네트워크(HyNet)’를 설립한 이유가 여기 있다. 하이넷이 수소충전소를 구축·운영하고, 환경부가 충전소 구축비의 절반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그 수를 늘려가고 있다. 

▲ 지난해 11월에 문을 연 H 인천 수소충전소.(사진=현대자동차)

정부는 올해 신규 충전소 설치 물량을 작년의 두 배인 40개로 잡았다. 이 중 28개는 지자체에 배정했고, 12개는 민간 물량이다. 통상 정부와 지자체가 비용을 절반씩 부담하거나, 정부와 하이넷 등 민간이 절반씩 부담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도심지, 공공청사 등에 수소충전소를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이를 통해 작년 9월 여의도 국회에 첫 수소충전소가 들어섰다. 그리고 올해에는 세종정부청사의 보건복지부 옆 부지에 수소충전소가 들어설 예정이다. 인프라가 갖춰지면 운전자의 불편이 줄고, 차량 수요도 크게 늘 전망이다.

세계 연료전지 시장 선점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쓰려면 이를 전기로 바꾸는 장치가 필요하다. 바로 이 연료전지 시장에서 우리나라는 글로벌 보급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의 연료전지 발전량은 408MW다. 이는 미국의 382MW, 일본의 245MW를 앞선 수치다. 

이 분야에선 두산이 잘 나간다. 두산퓨얼셀은 미국 코네티컷의 데이터센터에 세계 최대 규모인 44MW급 실내 연료전지를 공급하기로 하는 등 세계적으로 그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또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은 연료전지를 활용해 비행시간을 2시간 이상으로 늘린 ‘수소연료전지드론’으로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 전시회인 ‘CES 2020’에서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 평촌 GS파워 안에 설치된 두산퓨얼셀의 인산형 연료전지 시스템.(사진=두산퓨얼셀)

▲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의 수소연료전지드론은 ‘CES 2020’에서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연료전지는 연소가 아닌 화학반응으로 전기를 얻는다.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전해질의 재료나 주 연료에 따라 그 종류가 나뉘는데, 고분자 전해질형 연료전지(PEMFC), 인산형 연료전지(PAFC), 용융탄산염 연료전지(MCFC),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가 대표적이다.

한국 업체들은 2016년부터 수소화합물을 이용하는 연료전지 개발 쪽으로 연구를 집중해 PAFC, MCFC, SOFC 등 고온에서 작동하는 연료전지 시스템의 상용화에 힘써왔다. 연료전지의 전력 생산 효율은 40~50% 선이지만, 스택에서 발생하는 열을 난방이나 온수 등으로 활용할 경우 효율을 80% 이상 끌어올릴 수 있어 전 세계 발전시장의 블루칩으로 통한다. 

특히 3세대 연료전지인 SOFC는 700~1,000℃에 이르는 발전 온도로 연료 효율 면에서 큰 강점이 있다. SK건설이 세계적인 연료전지 제작업체인 미국의 블룸에너지와 합작법인(블룸 SK 퓨얼셀)을 세우고 SOFC 시장에 뛰어든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합작법인의 지분율은 SK건설이 49%, 블룸에너지가 51%다. 경북 구미의 공장에 생산설비를 갖추고 이르면 올해 안에 연료전지 생산에 들어갈 전망이다. 생산 규모는 연간 50MW로 시작해 향후 400MW까지 높여 간다는 계획이다. 

▲ SK건설이 KT 대덕2연구센터에 설치한 SOFC 연료전지 주기기.(사진=SK건설)

다만 미국의 퓨얼셀에너지와 손잡고 MCFC 사업을 진행한 포스코에너지의 사례는 염두에 둘 만하다. 국내외 MCFC 시장 개척을 위해 2008년부터 포항에 5,000억 원 규모의 생산시설을 구축했지만, 부실한 제작설비와 기술이전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법적인 다툼을 겪게 된 점은 아쉽다.

수소산업 육성 및 안전관리 대책 

지난달 15일 국회의원회관 2층에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1주년을 기념한 세미나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 이승훈 본부장이 첫손에 꼽은 현안은 ‘수소를 생산하고 충전하는 인프라의 확충’이었다.

그는 인프라 확충의 걸림돌로 ‘수소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들었다. 지난해 5월 강릉의 수소탱크 폭발 사고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서울만 해도 강북 지역의 공영 차고지 한곳에 버스 전용 수소충전소를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주민 반발을 넘지 못했다. 규제 샌드박스로 공공청사에 수소충전소를 짓고, 수소에너지의 안정성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는 것도 주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수소경제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제도를 하나둘 정비해왔다. 지난해 말 수소 전주기 안전관리체계를 글로벌 수준으로 선진화하는 내용을 담은 ‘수소 안전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달 9일에는 세계 최초로 ‘수소법’을 제정했다. 

수소법의 핵심은 수소산업의 육성과 안전관리 대책에 있다. ‘육성’은 제도로 뒷받침됐다.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국무총리 소속의 컨트롤타워인 수소경제위원회를 설치해 실무위원회와 실무추진단을 둘 수 있게 됐다.

또 정부가 수소 전문기업에 대해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고 수소사업과 관련한 기술개발, 전문인력 양성, 국제협력 등 비용을 보조하거나 융자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수소특화단지를 지정해 자금과 설비를 제공하고, 수소사업과 연계한 서비스 보급을 위한 시범사업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 지난달 1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1주년을 기념한 세미나가 열렸다.

수소산업의 육성만큼 중요한 일이 ‘안전관리’다. 고온에서 작동하는 수소추출기나 수전해 설비의 특성을 고려해 안전기준을 마련하고 제품 검사, 운영 중 정밀진단,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가정과 건물, 발전 등으로 쓰임새가 많은 수소연료전지도 수소 품질, 누수 등 안전관리가 중요한 만큼 각 부문에 대한 안전기준이 마련되고, 가스안전공사와 전기안전공사의 통합 안전 점검·관리도 실시된다. 

이와 더불어 국제표준을 마련하는 일도 시간을 두고 준비해야 한다.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는 우리나라에서 제안한 ‘마이크로 연료전지 파워시스템’ 표준안을 3년 만에 국제표준으로 인증한 바 있다. 

이를 주도한 이홍기 우석대 교수는 “국제표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미국이나 일본, 유럽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수소·연료전지 분야의 국제표준 활동이 이어져야 한다”며 “이 분야의 국내 전문가 양성이 꼭 필요하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지속가능한 수소경제 

올해 초 세계 주요 나라의 증시에 상장된 수소에너지 관련 종목들이 상승세를 탔다는 소식이 들린다. 미국의 블룸에너지, 캐나다의 발라드파워시스템즈, 스웨덴의 파워셀, 일본의 파나소닉 같은 회사가 여기에 든다.

가까운 일본은 올 7월 도쿄올림픽을 기점으로 수소사회 진입을 노리고 있고, 중국은 전기차에 이어 수소차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삼아 집중 육성하고 있다. 이제 수소경제는 세계 경제의 미래가 아닌 현재진행형이 됐다.

우리 정부의 수소경제 로드맵은 분명하다. 수소전기차와 연료전지, 수소충전소 보급 확대를 안정적으로 지원하면서 핵심 부품의 국산화율을 높여 비용을 절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와 더불어 그린수소의 경제성 확보를 위한 수전해 연구개발에도 집중 투자하고 있다.

지난 1월 13일 용인의 지필로스에서 제주에너지공사, 한국중부발전, 현대자동차, 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 등 4개 기관이 맺은 ‘제주 그린수소 전주기 실증 프로젝트를 위한 업무협약’은 좋은 본보기에 든다. 

▲ 제주에너지공사 등 4개 기관이 지난달 13일 ‘제주 그린수소 전주기 실증 프로젝트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사진=산업통상자원부)

협약에 따라 4개 기관은 제주도 내 미활용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그린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연료전지, 버스와 선박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는 프로젝트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풍력발전으로 생긴 전기로 수소를 생산·저장한 뒤 이를 연료전지 차량이나 배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풍력이나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전력 공급이 수요보다 많을 경우 그냥 버려질 때가 많다. 이런 유휴(예비)전력을 활용한 수전해 기술로 그린수소를 생산·저장해 모빌리티나 연료전지 발전에 활용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한 수소경제의 완성형 모델에 가깝다. 

수소경제는 한 나라의 노력만으로는 힘들다. 향후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어 대량의 수소가 필요해지면 이를 해외에서 수입해야 한다. 미흡한 기술을 보완하고 수소에너지의 대중화를 위해 해외 기업과의 협력도 필요하다. 정부가 해외 수소 도입과 수소 기술협력 등을 위해 지난해부터 호주, 사우디, 노르웨이, 이스라엘 등과 글로벌 협력을 강화해나가고 있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지도를 손에 넣었다고 보물을 찾은 건 아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하지만 계획대로 수소충전소가 하나둘 늘고 있고, 국토교통부가 주도하는 수소시범도시(안산, 울산, 완주·전주) 조성사업도 올해부터 본궤도에 오른다. 갈림길에서 갈피를 못 잡겠다면 지도(로드맵)를 펼쳐볼 일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 가다 보면 보물이 담긴 상자를 찾을 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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