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우 포항공과대학교 교수.
[월간수소경제] 예술, 문학작품 등 창작활동의 산물을 제외하면 시장에서 유통되는 모든 산업제품(서비스 제품도 포함)은 그것의 생산과정을 포함해 소비자에 의해 사용되고 폐기 혹은 재활용되는 전 과정에서 그 성능이나 호환성, 안전성 및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들을 자발적으로 혹은 강제적으로 규정하기 위해 국가 혹은 국제적 기구는 그 제품에 관련된 RCS(Regulations, Codes and Standards)를 정하고 있다.

표준이란 포괄적인 개념에서 ‘사물, 개념, 방법 및 절차 등에 대해 합리적인 기준을 설정하고 다수의 사람들이 그 기준에 맞추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국제 무역 거래상 부적절한 장애물을 해소해 자유시장에서 정당한 거래를 가능하게 하고 기업에서는 신기술의 개발, 제품의 호환성, 생산의 효율화를 꾀하는 동시에 소비자는 제품의 품질 및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약속된 합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수소’에 대한 표준과 의미를 들여다보자.

수소를 에너지 매개체로 이용하는 신에너지 기술은 초기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단계라 국제적으로 합의된 여러 가지 RCS가 빠르게 제정되고 있다. 현재 수소 기술의 보급은 주로 연료전지자동차(FCEV, 수소전기차)의 보급을 위한 연료공급 기반설비를 구축하는 산업분야와 열병합발전(CHP)을 목적으로 하는 분산전원설비 혹은 가정용 소형 CHP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관련 산업분야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있는 일본의 경우를 들여다 보자. 지난해 발표된 ‘Japan’s Council for a Strategy for Hydrogen and Fuel Cells’에 따르면 2016년말 현재 도심에 약 80여개소의 수소충전소를 운영 중이고 2020년에는 약 160개소로 늘어나 수소전기차 약 4만대가 보급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경우 DOE의 시범사업으로 주로 미국 동북부에 25개의 충전소를 구축해 180여대의 수소차를 시험 운행한다는 계획아래 현재까지 주행거리 250마일 이상을 실현하고 있다.

독일을 포함한 유럽의 수소 인프라 구축은 수소산업 관계자들의 연합체인 H2 Mobility, EU 주관의 연료전지 버스 실증 및 인프라 구축 사업인 CUTE(Clean Urban Transport for Europe), 그리고 북유럽 연합 프로젝트로 북유럽 해안지역의 수소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HyTrEc(Hydrogen Transport Economy for the North-Sea Region) 등을 통해 관련 산업의 초기시장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 2016년 부산에서 개최된 ‘제1회 수소연료전지 표준포럼’에서 최재우 포항공대 교수가 주제발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현재까지 국가사업으로 15개소의 충전소(연구실증용을 제외하면 총 10개소)를 구축해 실증,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금년 중 광주와 울산, 창원에 각각 1개소가 추가 구축돼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수소전기차의 경우 2016년 말 160대가 정부 보조금 지원을 받아 보급돼 있으며 2020년까지 1만대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수소전기 버스는 현재까지 4대 시험 운행을 통해 12만7,000여 km를 운행 중이며 내년에는 차세대 수소버스의 실증이 예정돼 있다. 

수소기술에 관한 국제표준은 1990년에 처음으로 조직된 ISO(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의 기술위원회, TC197(Technical committee)에서 다루고 있다. 단체 활동의 주목적은 수소의 생산과 저장, 수송, 측정 및 사용을 위한 시스템과 설비, 부품에 대한 국제표준을 제정하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ISO/TC197 정회원 멤버 20개국 중 총 8개국이 주로 참여하고 있으며 북미에서는 미국과 캐나다가, 아시아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대표적인 참여국이다.

TC197 활동이 시작된 초기단계인 2004년까지는 4개의 표준이 만들어졌으나 2005년 이후 기술분과위원회 내 여러 개 작업반(Working Groups, WG)의 활성화로 매년 2건 이상의 표준이 제정되면서 2017년 7월 현재까지 전체 18건의 표준문서가 발간(published)되는 성과를 이뤘다. 이들은 주로 국제표준문서, ISO 13984, ISO 14687, ISO 16110, ISO 22734 및 ISO 19880 등의 시리즈로 발간되고 있다. 이들 표준문서와 현재 활동 중인 모든 작업반과 프로젝트들은 ‘ISO TC197 Committee’ 홈페이지에서 직접 확인도 가능하다. 

TC197 내 6개의 작업반, WG19~24는 소위 ‘Hydrogen Fueling Family’라고 불린다. 이들 작업반은 수소전기차 충전을 위한 수소스테이션 설비의 안전과 환경에 관한 일반적인 요구사항 및 충전소를 구성하고 있는 디스펜서, 밸브, 압축기, 호스, 피팅 등 부분설비에 대한 표준을 제정한다.

특히 공급 수소연료의 품질기준과 품질관리에 대해서는 과거에 제정된 연료전지 용도별 기준을 통합하는 새로운 국제표준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안전문제와 관련된 설비 간의 이격거리, 안전거리 및 위험성 평가는 이 분야에서 선도적인 산업체의 전문가에 의해서 정리되고 또 각국의 현황이 적극 반영되고 있다.

2017년 6월 현재 TC197 내 총 14개의 활동적인 작업반이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활발한, 그리고 국내 현황을 고려할 때 가장 중요한 작업반은 역시 Fueling Family와 수소 품질을 다루는 작업반이다. 이들이 제정하는 표준들은 최근 3~4년 동안 여러 번의 대면 회의와 원격 회의를 통해 각 회원국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결과 거의 완성단계에 접어 들고 있어서 2018년 말까지는 대부분 발간될 것으로 기대된다.

발간되는 이들 모든 국제표준은 소위 부합화(adoption) 과정을 거쳐 국가표준 즉 KS로 채용되어지는데 수소 기술 분야에서는 2016년말 현재 7개의 부합화 국가표준이 채택된 바 있다.


국제표준은 국제표준화 기구가 승인해 발간되는 문서이다. ISO/IEC 지침서(directives)에 부합되는 회원국 즉 국가 위원회의 승인을 받고 합의 및 승인절차(Consensus and vote)를 거쳐 정해지는 규범적 문서로 대부분의 국제표준은 초기 제안단계부터 최종 발간되기까지 통상적으로 약 3년의 시간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각 회원국의 적극적인 참여와 의견개진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국내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우리나라의 국가기술표준원은 국제표준화기구(ISO, IEC, ITU 등)의 대표기관이고 무역기술 장벽(TBT) 대응을 총괄하는 국가기관으로서 국가표준을 제정하고 국제표준을 부합화해 인증 제도와 소비제품 안전정책을 총괄 운영,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국표원 표준정책국은 표준에 관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부서로 여러 개의 ‘표준개발 협력기관’ 즉 ‘COSD(cooperative organization for standards development)’를 운영하며 국제표준 활동에 전문가를 파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수소 및 연료전지,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는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으로 해당 사업의 실무는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에서 책임지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센터는 수소 기술 분야에 대한 국제 표준화 참여 체계를 구축한 후 그 결과를 국내에 보급하기 위해 ISO TC197 총회 및 WG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국제표준화 동향을 추적하고 표준문서 재·개정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국내외 수소 연료전지 분야 표준화와 산업화, 업계 동향, 기술개발, 인증, 보급 현황 등에 대한 최신 정보를 조사, 분석하는 대외 정보활동을 통해 그 결과를 국제표준에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표준화 기구 작업반 회의참석 등을 포함해 직접적인 활동을 하는 국내 전문가는 센터가 선발하게 된다. 이러한 활동을 위해 필요한 전문가의 역량으로는 언어소통 능력, 관련 기술의 국내 보급 및 시장동향에 대한 정보와 지식, 그리고 국제적 활동을 위한 인적, 사회적 교류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에는 현재 수소기술과 연료전지기술 분야에 각각 약 50명의 국제표준화 전문가 pool(전문가 협의회)이 구성되어 있으며 언급된 기본 역량을 갖췄다고 판단 시 전문가 pool 참여에 대한 특별한 제한사항은 없다.

우리나라는 정보통신 및 특수 신산업 분야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산업분야에서 소위 선진국의 기술을 추종하고 따라가는 상황이다. 국제표준에서도 이미 선진국이 국가별, 지역별 혹은 국제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반영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신규로 제정되는 국제표준 논의에 빠른 대응이 쉽지 않은 상황으로 매우 안타깝다.  

이러한 태도와 대응은 변해야 한다. 어느 기술 분야이든 그러하겠지만 수소·연료전지 업계가 좀 더 관심을 갖고 대처할 것을 요구한다.

국제표준화 활동은 관련 산업의 확장에 매우 중요하다. 국내 기술을 국제표준으로 이끌 수 있다면 선도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다. 특히 미래기술로 인정받고 있는 수소·연료전지 시장은 그 가능성이 매우 크다.

관련 기술 개발 시 국제표준을 고려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략적으로 재정과 인력을 투입해 접근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이를 위해 산업계는 현재 국제표준화 되고 있는 기술들의 제정단계부터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표준화 활동에 적극 참여해 국내 기술에 선반영하는 노력을 함으로써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산학연 전문가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상시 운영체계를 마련해 자유롭고 활기찬 협의가 진행될 수 있는 여건 마련이 우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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