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척시 전경.

[월간수소경제 장성혁 기자] 지난 6월 18일 자정을 기점으로 국내 첫 상업용 원전인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 1호기(58만7,000㎾급)가 40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고리 1호기 운영 중지는 원전 가동을 종료하는 국내 첫 사례로 향후 원전정책 수정의 첫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작지 않다.

 

일본 후쿠시마 사태가 발단이 됐다. 이후 원전 불안은 기존 노후 원전뿐만 아니라 신규 원전 건설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신정부 출범 이후 탈 원전 기조와 맞물리며 신규 원전 건설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반면 신재생에너지가 주목을 받으며 반사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 한 지방자치단체의 행보가 눈에 띈다. 특히 신규원전 후보지라는 타이틀이 여전하기에 변화의 바람과 강도는 확연하다.

 

정부는 삼척시 근덕면 동막·부남리 인근을 신규원전 건설지로 확정한 바 있다. 이 지역을 원전 예정 구역으로 지정 고시하고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시켜 확정 공고했다. 그러나 일본 후쿠시마 사태와 최근 신정부의 등장으로 삼척시는 지역 에너지산업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수소에너지를 중심에 놓고 신재생에너지산업의 메카로 거듭나기 위한 움직임이 분주하다. 특히 김양호 삼척시장의 적극적인 신재생에너지 정책에 힘입은 수소산업단지 조성안이 탄력을 받고 있어 향후 결과에 이목이 집중된다.

 

▲ 원전백지화 결의대회
 

脫 원전 바람, 경제성 넘어 현실로

지역경제 활성화 등의 이유로 원전 유치에 나섰던 삼척시가 탈 원전 드라이브를 가속화하고 있어 주목된다. 불과 수년 전만하더라도 삼척시의 이 같은 변화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삼척시는 도심에서 10㎞ 남짓 떨어진 근덕면 동막·부남리 지역을 원전 예정 부지로 선택했다.

 

이후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정 고시까지 마치며 신규원전 건설에 속도를 냈다. 원전 건설을 통한 중앙정부의 경제적 지원을 이끌어 그간 ‘석탄과 석회석의 도시, 삼척’이라는 오명을 벗고자 했던 시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삼척시는 원전이 들어설 경우 정부가 안겨다 줄 지역개발비, 대체 마을 발전기금 등이 지역경제 활성화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홍보했다. 원전 유치과정을 살펴보면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한 이같은 삼척시의 열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시는 지난 2008년 강원도개발공사가 소방방재 산업단지 구축을 위해 준비한 449필지 78만2,028㎡를 원전 유치 사업부지로 변경했다. 소방방재 사업이 쉽게 풀리지 않자 사업 시행 2년 만에 원전 유치 쪽으로 방향을 틀어 후속대책을 쏟아낸 것이다.

 

삼척시는 종합발전단지, LNG 생산기지 등 동해안 에너지·관광벨트 조성계획과 연계한 원자력 클러스터 구축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대상 부지도 확장해 동막리, 부남리 일대 1,267필지 317만8,792㎡로 면적을 추가 반영 후 한수원에 신규 원전 건설부지 유치신청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이듬해에는 유치협의회를 통해 찬성률 96.9%의 서명부까지 만들어 청와대와 한수원, 국회 등 5개 기관에 발송하는 등 원전 유치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당시 상당수 지역민도 유치전을 거들며 원전 건설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들떠 있었고 삼척시는 원전 유치를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2012년 9월 해당 부지는 ‘삼척 원자력발전소 예정구역’으로 지정 고시되고 2015년 7월에는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총 300만kW 규모의 원전 2기를 삼척 또는 영덕에 건설한다는 내용이 공고됐다.

 

하지만 견고해 보였던 원전 유치의 탑은 어느 순간 갈라지고 말았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시초였다. 지진여파로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하면서 원자력 안전성에 대한 두려움이 지역민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후 참혹한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지켜본 시민들은 경제성보다 안전을 택하자는 환경단체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며 분위기를 반전했다. 급기야 원전 유치에 대해 주민투표 실시 요구가 거세졌고 이를 거절한 삼척시장 소환투표가 진행되는 등 원전을 두고 지역민의 찬반 갈등도 격화됐다.

 

원전 유치가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 것은 2014년 지방선거였다. 원전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건 현 김양호 시장이 당선된 후 탈 원전 정책이 구체화됐다.

 

원전 백지화를 찬반 주민투표에 부쳐 ‘유치반대(85%)’의 결론이 나자 김 시장은 신재생에너지 확대정책을 통해 삼척시의 이미지 제고에 나섰다. 실제 삼척시는 원전 대체산업으로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핵심 산업으로 집중 육성했다.

 

그 결과 화력발전소 1기에 맞먹는 993㎿의 신재생에너지가 현재 가동되거나 건설 준비 중에 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지역경제 활성화의 새로운 대안으로 액화천연가스(LNG)를 활용한 수소생산단지를 조성키로 하고 행정력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 원전유치 찬반투표.
 

수소산업 최적지 삼척, 시너지 효과 ‘톡톡’

최근 몇 년간 삼척시의 일관된 신재생에너지 확대정책은 업계뿐만 아니라 여타 지자체에서도 주목하는 부분이다.

 

특히 한국가스공사의 삼척 인수기지를 활용한 수소산업 육성이라는 정책 카드를 꺼내든 삼척은 수소산업 최적지로 평가받으며 향후 관련 산업의 메카로 급부상하고 있다.

 

삼척시는 가스공사 인수기지의 LNG를 개질해 수소를 대량생산 후 산업용 에너지로 활용하는 방안과 신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꾸준히 늘리는 방안 등을 앞세워 청정에너지 생산지역이라는

이미지 메이킹을 시도하고 있다.

 

먼저 시는 원전 백지화를 이끌어 해당부지에 수소산업단지 건립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교통과 연계에너지원 인프라 등을 확충하며 관련사업의 초석을 착실히 다져 나가고 있다.

 

최근 삼척은 동해-남삼척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포항에서 고성을 잇는 동해북부선 철길과 태백-삼척을 잇는 복선 철길 건설사업이 구체화되면서 접근성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태양광과 풍력 등의 청정에너지원 확보도 용이해 수소산업과의 연계사업도 시도할 만하다. 연구단지와 기자재 생산단지를 조성해 관련업체와 연구기관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수소연계형 신재생에너지산업의 거점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전문가들 역시 삼척이 지닌 환경적 요인으로 수소산업의 적합지로 판단하고 있다. 지난달 삼척시에서 개최된 ‘강원도 수소에너지 포럼’에서는 이와 관련 된 전문가의 의견이 잇달았다.

 

기조강연에 나선 신재행 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장은 “강원도는 부생수소 생산지역과 거리가 멀어 이를 운반해 사용한다면 수소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경제성은 물론 연계사업 확대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며 “가스공사의 삼척 LNG 인수기지를 활용하고 태양광단지 등의 재생에너지로부터 수소를 생산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연계산업을 육성하고 연구개발 기반을 갖춰 나간다면 강력한 시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단장은 이어 삼척시가 보유한 천혜의 관광 인프라와 수소를 연계해 수소택시, 수소버스, 수소전기차 카셰어링 등을 선보인다면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삼척 LNG기지를 활용한 수소산업 육성 제안은 이영철 한국가스공사 신에너지기술연구센터장도 적극 거들었다.

 

이 센터장은 천연가스를 개질해 수소를 생산할 경우 나프타 개질방식 대비 약 38%의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일 수 있다고 운을 뗀 후 “삼척 LNG기지에서 대량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고 이를 활용한 연계산업 활성화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성도 언급했다. 이 센터장은 “세계에너지기구(IEA)의 발표자료에 따르면 LNG 배관망을 통한 on-site형 수소 제조 시 타 수소생산 방식과 비교해 생산원가가 저렴한 것으로 조사됐다”라며 “청정지역인 강원도가 수소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삼척 LNG기지를 적극 활용한 사업방식이 최적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인환 한국신에너지및수소학회장은 독일 사례를 통해 삼척시의 수소산업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오 회장은 “삼척시는 독일 브란덴부르크 공항과 같이 재생에너지와 수소를 결합한 모델을 적극 고려할 수 있다”라며 “태양광, 풍력 등 풍부한 재생에너지와 LNG기지를 함께 보유하고 있어 수소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말했다.

 

독일 베를린 소재 브란덴부르크 공항은 풍력발전을 통해 생산한 수소에너지를 열에너지와 전력에너지로 전환해 공항 내 견인차, 셔틀버스 등 수소전기차의 충전시설과 전력 그리드망에 활용하는 플랜을 실행 중이다.

 

이 같은 외부 전문가의 의견에 삼척시도 적극 화답했다. 김태훈 삼척시 부시장은 “삼척시, 나아가 강원도 수소산업 육성을 위해 재생에너지와 LNG기지 등 지역의 자원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관련 인프라 구축과 유치 등을 통해 수소연계산업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계획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척시의 수소산업 육성책은 강원도의 신사업기획과도 일치한다.

▲ 김양호 삼척시장.

강원도는 수전해 방식의 수소생산과 관련산업 유치를 위해 태백시 풍력발전단지와 영월군 태양광 발전시설을 활용하는 방안과 저렴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천연가스 개질 방식의 수소생산을 위해 삼척 LNG기지를 통한 실증사업을 구상 중이다.

 

삼척시는 수소산업이 뿌리내리면 경제성 면에서도 원전유치에 비해 나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LNG를 통한 수소생산 실증플랜트가 구축되면 석유화학공업과 자동차부품, 반도체산업, 의료산업 등의 분야와 연계할 수 있는 수소관련 기업유치는 물론 연료전지발전소와 수소빌리지 조성까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 나아가 청정 강원의 이점을 살려 태양광, 파도, 지열, 해양열에너지산업 등의 연구거점지역으로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김양호 삼척시장은 “초기단계인 수소산업이 우리의 미래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제도적 장치뿐만 아니라 과감한 지원이 절실하다”라며 “삼척시는 LNG와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수소산업을 미래 신성장 동력산업으로 육성해 지역주민 고용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명실상부한 친환경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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