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글입니다. 매월 편집장 칼럼으로 채워질 이 공간에 같은 칼럼이지만 다른 글로, 의미로 읽히고 전달될 단 한 번의 창간사입니다.

무엇을 말하기에 앞서 ‘왜 월간수소경제인가’를 먼저 밝혀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 번뿐인 창간사이기 때문입니다.

수소에너지를 둘러싼 시선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두 부류로 나뉩니다. 어찌 두 부류만 있겠습니까마는 대체적으로 그렇습니다. 수소에너지는 ‘미래’라고 말하는 사람이 한 부류입니다. 또 한 부류는 ‘맹목적’입니다. 다시 말하면 ‘수소빠’들입니다.

미래라는 사람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깎아내리거나, 회피하거나, 일부만 동조하거나, 먼 시기의 그것으로 치부하는 부류입니다. 어찌 보면 ‘수소빠’를 제외한 모든 부류가 해당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소빠는 ‘Fall in love’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예뻐 보입니다. 그렇기에 나서기만 하면 모두가 쳐다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미모에 감탄하고 반응할거라 여깁니다. 그렇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라보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렵습니다. ‘빠’보다는 ‘빠’를 제외한 ‘모든 부류’가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부정’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실제 못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예뻐도 ‘예쁘다’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알고도 ‘모른 체’ 해야 할 이유도 있겠지요. 깎아내리고, 회피하고, 일부만 인정하는 이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달리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수소에너지를 ‘먼 시기의 그것’으로 여기는 사람을 제외하면 이제 모두가 ‘수소빠’가 될 가능성은 있게 된 셈입니다. 아 굳이 제외할 필요도 없습니다. ‘먼 시기의 그것’으로 여기는 것은 단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것은 친절히 알려주면 됩니다. 오히려 수월할 수도 있겠지요.

자칫 말장난으로 비춰질까 걱정이 앞서지만 실상입니다. 수소에너지의 경쟁자는 ‘예쁘다’ 말할 수 없습니다. 기존 에너지산업의 기득권은 ‘모른 체’ 하는 것이 아직은 유리합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20~30년 뒤 미래에너지로만 여기고 있어 실생활에 가깝게 다가가도 인지하지 못합니다.

바꿔보고 싶습니다. 경쟁관계는 협력파트너로서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상호보완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모른 체 곁눈질로 바라보는 기득권을 정면으로 바라보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손을 내밉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시장의 수요자이기 때문입니다.

창간호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신 권문식 현대차그룹 부회장님이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을 남겨 주셨습니다. “무엇을 먼저 한다는 것은 항상 모험이 필요하고 어려움이 따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말입니다.

월간수소경제가 하고 싶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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